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급변하는 시대에 ‘열린 자세’ 필요”

[김택환의 넥스트 월드 & 코리아]"국가미래 새로운 차원 논의…정치권, 통합 위해 노력해야"

대담 김택환 경기대 교수, 정리 홍세미 기자 입력 : 2019.05.02 10:29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더리더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흥미로운 이력을 가진 정치인이다. 우선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유신독재에 항거, 두 번 복역하고 네 번 제적을 당했다. 사회적으로 반정부인사라는 낙인이 찍혀 취업을 할 수 없게 되자 아버지가 꾸리던 농장 ‘풀무원’을 기업으로 만들어 사업을 성공시켰다.


풀무원의 창업신화를 이룬 그는 기업총수로 살지 않고 정치권으로 다시 돌아갔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연장선이다. 1992년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경기도 부천시 중구을에 출마, 첫 금배지를 달았다. 원 의원은 15대 총선에서 낙선했는데, 이유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1995년 창당한 국민회의에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에 잔류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총선 당선을 위해 DJ를 따라 국민회의에 들어갔지만 원 의원은 ‘통합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민주당에 잔류해 선거를 치렀다. 15대 총선에서 낙선한 사람 중 뜻이 맞는 사람끼리 정치 모임을 결성한다. 김원기 의장을 대표로 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다. 당시 청문회 스타로 인기 정치인 반열에 올랐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인간시장> 작가 김홍신 전 의원, 소장파 대표 김부겸 의원, ‘빈민의 벗’으로 불린 고(故) 제정구 전 의원과 함께했다. 통추는 상징적으로 ‘하로동선’이라는 고깃집을 창업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원 의원은 “애초 돈벌이 목적이었다면 창업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치적 동지들끼리의 모임에 의의를 둔 가게였다”고 회상했다.

원 의원은 “창의성이 발현된 순간은 첫 번째가 풀무원이었고 두 번째가 부천시장을 역임할 때”라고 말했다. 원 의원이 부천시장을 역임할 때 수도권 도시들은 ‘서울 주변 도시’였을 뿐 도시들만의 색깔이 없었다. 그는‘문화적인 색깔’을 입혀야 시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만든 부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BIAF), 부천 국제 만화축제 등은 국제적인 행사가 됐다. 그가 현재 몰두하는 것은 ‘통합’이다. 현재 정치는 남북관계로 민족사적 변화기에 놓였다. 원 의원은 급변하는 시대에 새롭고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통합’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달 2일, 때이른 초여름 날씨를 보인 날 원 의원을 찾아 대담을 나눴다.

<풀무원 창업가>
김택환 우량 기업 풀무원을 창업한 후 기업가의 길을 가지 않았다. 정치인으로 가게 된 계기가 있나
원혜영 나는 원래 사업에 뜻이 있었던 게 아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전적이 있어 대학에서 제적당해 당시에 졸업장이 없었다. 감옥도 갔다 오니 반정부 인사로 낙인찍혀서 취직하기 힘들었다. 생계는 이어가야 하니까 아버지 회사에 다녔다. 당시 아버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기농장인 풀무원을 운영했다. 유기농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소비자에게 판매하면 사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풀무원식품을 창업했다. 이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서 사업에서 손 떼고 원래 했던 민주화운동으로 복귀했다. 정치도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김택환 풀무원의 전 주식을 사회에 환원했다. 그 동기나 철학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원혜영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같이 일하고, 같이 먹자’고 이야기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했다. 어렸을 때는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도 생활했다. 당시는 어린 마음에 불만도 있었다. 이런 것을 접하면서 나눔을 생활화하고 그런 문화를 만드는 게 내 일부가 됐다.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체화된 것 같다.

김택환 ‘갑질’이 아니라 ‘갑의 역습’으로 항상 겸손하고 아랫사람을 먼저 챙긴다는 평을 듣는데
원혜영 국회의원을 하거나 중요한 일을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예우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겸손하자는 마음이다. 우리 지역 유권자들이나 혹은 우리나라 국민, 내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를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항상 내려놓을 준비를 하고 사는 게 좋다. 국회의원은 4년 계약직이다. 언젠가 보좌하는 사람들이 모두 따르지 않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이 문 열어주고 가방 들어주다가 그러지 않으면 불편하거나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나. 평소에 꼭 필요한 도움이 아니면 받지 않는다. 나혼자 지내는 게 더 편하다. 그래야 이 직업을 그만두더라도 그런 대접이 소홀하거나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내려가는 것은 하나의 삶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더리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통추>

김택환 노무현 대통령과 통추를 함께 했는데 회고와 평가를 한다면
원혜영 김원기 의장이 좌장을 맡았다. 노무현, 김정길, 이철, 박석무, 이미경, 이강철, 김원웅, 제정구, 이수인, 김홍신, 김부겸, 홍사덕, 홍기훈, 김원웅 등이 함께했다. 1992년 DJ가 대선에서 실패하고 정계 은퇴를 했다가 1995년 다시 대선에 출마하려고 정계 복귀했다. 당시 민주당이 통합 야당이었는데 다른 야당인 국민회의를 만든 것이다. DJ에게 ‘신당을 만들지말고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십시오. 야권 분열은 필패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국민회의가 창당됐다.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야권 분열은 명분이 없다. 통합의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 민주당에 남았다. 정치적으로는 사실상 실패다. 국민회의에 따라가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선거에서 낙선했기 때문이다. 통합의 정신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뜻있는 사람들끼리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만들었다. 정당까지는 아니고 정치적 단체다.

김택환 하로동선(夏爐冬扇, 훗날을 위해 급하지 않은 일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고깃집도 운영했다
원혜영 정치활동을 하려면 아지트 같은 게 있어야 한다. 또 다들 낙선했으니까 수입이 없었다. 그래서 부업으로 식당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하로동선’을 만들었다. 하로동선은 ‘여름 난로’, ‘겨울 부채’처럼 당장 쓸모가 없지만 6개월이 지나면 필요하다는 사자성어다. 우리가 모두 낙선한 정치인들이라 지금 당장은 쓸모 없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분명 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김택환 결과적으로는 망했다
원혜영 식당은 모름지기 주인이 모든 정성과 노력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솔직히 바쁜 사람들 아닌가. 이런 사람들이 여럿 모여서 사업을 한다는 것은 사실 주인이 없는 사업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
으로 간다고 이런 사업은 잘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통추에서 정치적 후배 축에 속했지만 풀무원이라는 성공신화를 이뤄낸 사람이니까 나에게 조언을 구해왔다. “이 식당은 무조건 망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했다. 이 판단은 명확했지만 돈벌이 목적보다는 정치적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묶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 식당을 개업한다고 하니까 우리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기대도 컸다. 돈벌이 목적이 아니라서 참여했다. 결과는 적자 많이 내고 문 닫았다.

김택환 원 의원이 풀무원 창업가니까 노 전 대통령이 찾아와서 상담한 일화도 유명하다
원혜영 알려진 사실인데도 조심스럽긴 하다.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에 생수사업에 돈을 빌려줬다. 그 사업을 하는 사람이 사업을 제대로 못해서 어떻게 사업을 일으켜야겠느냐고 물어봤다. 영업이나 이런 사업적인 부분에 대한 조언이다. 생수사업은 재료비가 가격인 유일한 사업이다. 그 얘기는 유통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다른 제조업은 생산원가를 절감하고 품질을 개선해야 잘 팔리고 수익이 남는다. 생수사업은 지하수 물 파서 깨끗한 온천수를 깨끗하게 포장해서 판매하는 것이다.

마케팅 능력과 유통능력이 승부를 결정짓는다. 그런 점에서 이 사업은 유통망을 가지고 있거나 자본력이 센 곳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노 전 대통령은 ‘10억이나 투자했어’라고 하더라. ‘그 10억을 날렸다고 생각하고 손 떼는 것이 최선의 투자’라고 조언했다. 어찌됐든 그 생수사업 때문에 노 전 대통령과 주변 동지들이 고생 많이 했다.

김택환 노 전 대통령이 취임 이후 행자부장관 제안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맡지 않았던 이유는 능력 부족인가 겸손인가
원혜영 능력 부족은 아니고.(웃음) 그때 민선시장으로 재선된 지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다. 나를 뽑아준 90만 부천 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 아니고 상징성 있는, 이장에서 군수가 된 김두관 의원이 있지 않느냐고 하면서 김 의원을 추천했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더리더
<창의성의 두 번째 실현, 부천시장>

김택환 민선 초기 부천시장을 역임하면서 부천 오케스트라, 만화 판타스틱 등 서울과 인천 거대 도시 사이에서 부천의 아우라를 만들었다
원혜영 부천시장 재임 시절 기획한 부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부천 국제 만화축제는 세계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다. 특히 부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아카데미 공식 지정 국제 영화제다. 부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은 아카데미상 심사할 때 본선 진출권을 자동으로 받는다. 이렇게 아카데미상과 자매 영화제를 맺은 우리나라 영화제는 부천이 유일하다. 부천시장을 할 때는 주변 수도권 도시는 신생도시였다. 특성과 뿌리, 역사가 없다. 그런 익명의 도시와 같은 시에 색깔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민들의 자긍심과 정체성이 문화라고 생각했다.

김택환 문화 이외에도 처음 시행한 게 많다
원혜영 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걱정이 많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도로에 있는 미세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고압살수차 장비를 도입했다. 진공 흡입 대형 청소기를 자동차에 장착하는 것이다. 부천시장을 역임할 때는 미세먼지가 사회적인 이슈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중에 판매가 안 됐다. 우리 시가 자동차 회사에 얘기해 도로에 투입되게 했다. 또 몇 분 후 몇 번 버스가 도착한다는 버스 안내 시스템을 부천에서 가장 먼저 도입했다. 부천이 도입한 이후 5년 뒤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서울시에 도입, 전국으로 확장했다. 기초시가 각각의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김택환 그 영감과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나
원혜영 내가 그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이 있는 게 아니다.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를 갖추려고 한다.

김택환 최근엔 어떤가. 지금 몰두하고 있는 법안은

원혜영 최근에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은 ‘웰다잉 기본법’이다. 우리 사회가 노령사회에 접어들었다. 6년 뒤면 전 국민의 20%인 1000만 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사회가 된다. 현대의학이 발달하면서 노인 수명이 길어지고 안타깝게도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명이 연장되는 경우도 많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라고 한다. 현대의학으로도 치료해봐야 전혀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도 인공호흡이나 투석을 통해서 생명을 유지하게 돼 있다. 본인이 삶의 마무리를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그게 웰다잉 기본법이다. 오랜 숙원 법이었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에 대한 사전 의견서를 작성하는 게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사회의 관심과 호응을 얻고 있다.

김택환 현재 반정치, 반국회 정서가 강한 것은 어떻게 풀 수 있나
원혜영 정당과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경향이 생기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국회와 정당을 부정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과 부정적인 태도가 밑바닥에 깔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과 중국도 이름에 ‘민주주의 공화국’이 들어간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 나라의 정치는 국민의 수준만큼 이뤄진다. 민주주의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회나 정당이 잘못하는 것은 채찍질하고 잘 선택하는 주인의식이 필요하다. 맹목적인 반정치주의에 휩쓸리면 국회나 정당을 유능하게 만들 수 없다. 국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정치다. 이것을 외면하고 반대만 한다면 정치인들만의 정치가 되는 결과가 나올 수 없다.

김택환 선진화법 재정에 앞장섰는데
원혜영 51%가 49%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만들었다. 합의민주주의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푸는 제도다. 그 장치가 선진화법인데 우리가 대통령제지만 입법권과 시민권, 인사 청문회를 보면 국회와의 공조없이 대통령이 정부를 끌고 갈 수가 없다. 그런 상태에서 국회도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성숙시키기 위해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통령도 지금처럼 야대여소가 아니라 국회에서 다수세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능동적인 국회와의 협조와 소통 노력이 필요하다.

김택환 선진국의 대통령은 소통을 많이 한다. 문 대통령은 어떤 것 같나
원혜영 문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여야 대표를 직접 찾아가서 만났다. 그건 아주 잘한 일이다. 그런 노력은 보여주기가 아니다. 일상적인 대화와 타협의 방식으로 계속 유지되고 발전되면 좋은데 자꾸 끊어지는 게 아쉽다. 자주 만나는 노력은 대통령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보다 실질적인 소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택환 이해찬 대표는 다음 총선에서 240석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원혜영 240석은 원외 지역위원장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특별하게 의미 부여는 하지 않아도 된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남북관계와 민생경제다. 남북관계가 지금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선거에서 중요한 판단 재료는 민생경제라고 본다. 경제가 어려울 때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집권 야당 입장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더리더
<한반도 평화 정착 사명감>
김택환 민주당에서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장 역할을 맡고 있다. 어떤 일을 하는지
원혜영 원래 우리 당에 국정자문회의가 있었다. 그걸 외교안보통일 분야와 경제 분야 둘로 나눴다. 제가 외교안보통일 국정자문위 의장을 맡고 있다. 작년 초부터 우리 한반도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70년 전의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씻고 교류와 협력을 통한 평화시대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 중요한 기회를 살려야 한다. 집권 여당인 만큼 반드시 이번에 평화 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역할을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김택환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을 위해 어떤 혁신과 개혁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나
원혜영 지난 100년은 기적도 만들었지만 어떤 면에서 지옥 같은 시기를 겪었다. 빠르게 변하다 보니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하다. 이렇게 지속되면 하나의 국가와 사회로 존립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많이 나온다. 국내도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가 심하다. 국제적으로 넓게 보면 남북이 분단되어서 서로 함께하는 것보다 경계하고 대적하는 것도 양극화다. 또 과학기술 변화도 너무 급속도로 이뤄져 예측하기조차 힘들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정치권에서는 우리 사회 문제가 무엇인지 논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통합을 위한 노력이다. 변하는 사회를 예측하고 대응하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얼마 전 카풀제도에 대해 극심한 대립이 있었다. 어렵게 풀리긴 했다. 이 외에도 자율자동차 시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 새로운 의제들이 나오고 있다. 국가 미래에 대한 전망과 대응책을 공유하기 위한 새로운 차원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공유하고 함께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이 정치문화로 새롭게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김택환 정치인으로서 최종 꿈과 희망을 말해주기 바란다
원혜영 우리 세대만 해도 통일에 대해 체념하는 수준이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한반도 정세 변화는 정말 가슴을 뛰게 한다. 한반도에서의 대립구도를 해소한다는 것은 크게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냉전의 마지막 그루터기를 해소하는 세계사적인 의미도 있다. 우리가 분단과 대결 구도 속에서도 성장했다. 이제 질적인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남북 간 평화 구도를 바꾸는 게 큰일이다.

김택환 북한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나
원혜영 나중에 북한의 도시 중에서 한 곳의 고문관이나 자문의원을 하고 싶다. 도와줄 일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1951년 9월 27일,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경복고등학교·서울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했다. 풀무원식품을 창업, 민주화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정치권으로 돌아왔다. 민선 제2, 3대 부천 시장을 역임했고 제14대, 17대, 18대, 19대, 20대 국회의원이다.


김택환 경기대 교수
국가 비전 전략가로 독일 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4차 산업혁명 및 독일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세계 경제 패권 전쟁과 한반도의 미래> 등 다수의 역작을 집필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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