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사법위원회의 법률안 체계와 자구심사 제도의 개선방향

정재룡의 입법의 현장

국회 교육위원회 정재룡 수석전문위원입력 : 2019.05.03 08:30

▲정재룡 국회 교육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은 국법체계의 조화와 균형을 위해서 헌법의 규정에 적합하면서도 다른 법률과의 조화·균형을 전제로 추진되어야 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다른 위원회 법률안에 대한 체계·자구심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체계심사란 법률안 내용의 위헌 여부, 관련 법률과의 저촉 여부, 균형유지 여부, 자체조항 간의 모순 유무를 심사하는 동시에 법률형식을 정비하는 것이며, 자구심사란 법률안 용어의 적합성과 통일성 등을 심사하여 법률용어를 정비하는 것이다.
오늘날 의원발의 입법이 양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부처 사이의 이견이 충분히 조정되지 않거나 이해집단 간의 견해 차이가 반영되지 않은 상태로 법률안이 상임위원회에서 의결되는 경우가 늘고 있고, 재정부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거나 제재의 균형성을 갖추지 못한 과도한 내용이 의결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전체적인 법체계의 부조화 문제, 나아가 헌법 위반의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바, 심도 있는 체계·자구심사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법제사법위원회가 체계·자구심사 시 법률안의 실질적인 내용까지 심사하는 것은 다른 위원회의 법률안심사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어왔다. 19대 국회(2013년 5월)에서 법제사법위원회가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전부개정안 심사 시 화학물질 유출사고로 중대한 피해를 일으킨 기업에 부과하는 과징금의 상한을 대폭 하향조정한 것이 월권 논란의 대표적 사례이다. 또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다른 위원회 법률안을 장기간 계류시키는 경우가 많아 법률안 처리 지연 문제도 야기되고 있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회부된 지 1년여 만인 지난해 12월 가결된 비리사학 먹튀방지법(개정 사립학교법)이 처리 지연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7월 20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협상 시 원내대표들은 법사위원회 등의 효율적인 상임위원회 활동에 관한 제도개선을 협의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률안 체계·자구심사 제도의 개편에 관한 국회법 개정안이 7건 발의되어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운영위원회 소위원회의 이에 대한 심사에서는 △해외사례가 드물고 상임위원회 의결권을 침해하므로 폐지, △본질적 내용 심사 금지 명문화, 120일인 심사기한을 단축, 재적위원 3/5인 의결정족수 완화 등 개선, △체계·자구심사가 필요하고 법률안 계류 문제는 운영개선으로 해결이 가능하므로 현행 유지 등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는데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다.

만약 법제사법위원회가 문제가 있는 법률안의 실질적 내용을 불가피하게 수정한 경우에 소관 위원회가 그 사항에 대하여 이견이 있다면 소관 위원회는 전원위원회를 활용하여 대처할 수 있다. 전원위원회(국회법 제63조의2)의 경우, 본회의와 달리 재적의원 4분의 1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이 가능하고 안건 수정 제안도 위원회처럼 1인의 동의(動議)와 1인의 찬성으로 쉽게 가능하므로, 소관 위원회는 전원위원회를 활용하여 그 의사를 반영할 수 있다. 다만, 전원위원회의 개회 요건이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는 때’로 되어 있어 상임위원회의 위원 수가 20인 내외임을 감안하면 개회 요구에 지나치게 많은 수의 의원이 필요한 바, 전원위원회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개회 요건을 10인 정도로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

법제사법위원회가 다른 위원회의 법률안을 오랫동안 계류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이 무한정으로 가능하지는 않고 계류기간이 120일을 경과하면 소관 위원회 위원장은 간사와 협의하여 이의가 없는 경우에는 의장에게 법률안의 본회의 부의를 서면으로 요구할 수 있고 이의가 있는 경우는 해당 위원회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장에게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120일은 너무 긴 기간이기 때문에 단축할 필요가 있다. 20대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의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심사 소요기간은 평균 35.8일인데, 그 점을 고려하더라도 120일은 너무 과다하다. 또한, 해당 위원회 간사 간 협의에서 이의가 있는 경우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을 요구하는 것도 다소 엄격한 측면이 있다.이 규정의 활용에 따라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던 법률안이 본회의에 부의된 사례는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 자동취득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2017년 12월 8일 본회의 의결)이 유일하다. 따라서 이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관련하여 현재 계류 중인 국회법 개정안 중 권은희 의원 안은 120일을 60일로 단축하고, 재적위원 5분의 3을 재적위원 과반수로 완화하고 있다.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심사가 법률안 내용에 대한 실질적인 심사로 이어져 월권 논란이 야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국회법에 체계·자구심사의 범위를 상세히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으나, 법률안의 내용이 헌법에 위배되는 등 상위법이나 타법과 상충·저촉될 때에는 국가법체계의 통일·조화를 위하여 체계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체계·자구심사의 범위를 일의적으로 명확히 법에 규정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법에 명시한다고 해도 그 해석·적용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우리 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률안 체계·자구심사 제도는 외국에 이와 유사한 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우리 정치의 현실적 요구를 반영한 제도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정치적 요구를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이 제도의 기능적 측면만을 생각할 때 이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보다는 대안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필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그 업무를 법제실로 이관하여 실시하는 것인데, 법제실의 검토 결과 경미한 경우에는 그것을 반영하여 본회의에서 처리하고, 의원들의 면밀한 심사결정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그 내용을 보고하여 의장이 그 법률안을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여 심사하도록 하거나 전원위원회(또는 본회의)에서 심사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법률안의 체계·자구심사는 의원보다는 이 분야 업무의 전문가들이 수행하는 것이 적합하며, 실제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체계·자구심사로 수정되는 사항은 대부분 의원이 아닌 직원들의 판단에 따라 처리되고 있다.

이 경우 각 위원회의 법률안들이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법제사법위원회(또는 전원위원회)를 경유할 필요 없이 바로 본회의로 회부되므로 국회운영의 합리화와 효율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현재 법제사법위원회가 체계·자구심사라는 명목으로 모든 위원회의 법률안을 심사하는 것은, 1951년 1월 이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의 발의자인 엄상섭 의원이 그 제안 이유를 본회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듯, 사실상 본회의의 기능을 대행하는 것으로서 이는 본회의 형식화의 한 이유가 되고 있으므로 이를 폐지한다면 본회의의 법률안 심사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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