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현 교수 “건설 아닌 건축, 패러다임 바꿔라”

[지역을바꾸는건축] 생활형 SOC, 정책가와 지자체 소통 안 하면 이상한 사업 전락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윤희 기자 입력 : 2019.05.17 11:34
편집자주신창훈 운생동 건축사무소 대표가 ‘지역을 바꾸는 건축’이라는 주제로 건축가들과 만난다. 신 대표는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시작으로 서울시 건축상 대상까지 수상한 그야말로 ‘핫’한 건축가다. 뛰어난 설계는 기본이고, 완성된 후 지역사회와 함께 어우러질 공간을 만드는 기획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의 시선으로 변화하는 지역의 모습을 건축을 통해 재조명한다. [편집자]
▲윤승현 교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더리더
“건축계를 대표하는 활동가” 
건축계에서 윤승현 중앙대학교 교수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만큼 건축에 필요한 정책이나 제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새건축협의회에 참여하며 쌓아온 내공이 벌써 10여 년이다. 2019년 2월 회장직에서 물러나 있지만 아직 건축계 고질병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한국에서 왜 나오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아쉬움으로, 생활형 SOC에 투입된 큰 예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쓸 것이고 또 어떤 시스템으로 뒷받침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몇 회로 나눠서 나가자고 말하는 그는 아직도 더 이야기하고 싶다. 윤 교수가 신 대표와의 대담에서 강조한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건설에서 건축으로,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에서 어떻게 만드느냐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거론되는 생활형 SOC 사업에서 건축가의 역할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또 “정책하시는 분들과 지자체의 역할이 달라서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 결국 이상한 SOC산업으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에 담론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새롭게 그의 대표작이 된 북촌 안내소 및 편의시설을 둘러보면서 진행됐다. 그간 옹벽으로 가려져 있던 서울교육사료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북촌 길에 녹아들었다.

건축과 행정이 잘 버무려진 홍연
신창훈: 북촌마을 안내소 및 편의시설’(이하 홍현)은 안내소·편의시설의 역할을 뛰어넘어 북촌마을 일대의 풍경을 바꿔놓은 중요한 공공장소가 됐다. 공공건축물의 성공사례로 평가받으면서 ‘2016한국건축문화대상’ 등 건축 분야의 권위 있는 여러 상을 수상했다. 어떠한 이유로 상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나?
윤승현: 공식사업명은 북촌마을 공용화장실 건립공사였다. 공용화장실이 이름으로 나오니 어색해서 다 짓고 이름을 바꾼 사업이다.
준공되기 전까지, 정독도서관 부지는 인접한 화동길보다 높아 경계부에는 높이 3m, 길이 35m의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옹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정독도서관과 북촌마을 간의 접근성 개선을 원했던 서울시교육청과, 주민지원시설 및 관광 기본 인프라 확충을 원했던 종로구청 간의 협력으로 옹벽이 허물어지고 지금의 홍현(연면적 150.08㎡)이 탄생했다. 

운 좋게도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다. 마을의 길과 연접된 공간이라 허투루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작은 프로젝트지만 가격입찰 방식이 아니라 현상공모 방식으로 냈다. 소액 공모가 나온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고등학생 때 놀던 추억이 서린 자리기도 해서 참여했다.
정독도서관과 북촌마을에 등진 상태가 이 공모를 통해 관계를 맺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보고 60평짜리 공간을 찢어서 사이 공간을 만들었다. 진출입도 가능하고 마당에 풍요로운 녹지공간도 만들고 북촌마을의 활동이 길과 함께 연결되도록 한 게 결과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의도한 대로 작동했다는 게 너무 보람 있는 프로젝트였다.

▲윤승현 교수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사진=더리더

▲신창훈 대표가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사진=더리더


신창훈: 현상설계에서 주어진 공간은 화장실, 안내소, 갤러리, 정독도서관에 진입동선 1개였다. 물리적으로 단순한 부분을 요구했지만 윤 선생님은 그 공간들을 잘게 나누면서 길 안에 스며들도록 계획한 거 같다.
과거에 이곳은 대지의 약점이 많은 공간이었다. 답답했던 옹벽도 그렇고. 물리적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풀었느냐가 핵심인 거 같다. 마당에서 보면 높지 않게 넓게 트여 있지 않나. 디테일한 개념이 궁금하다.
윤승현: 정독도서관의 모습을 화동길 앞에 어떻게 투영하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정독도서관에는 오색찬연한 100년 된 문화재인 서울교육사료관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은 연배가 높지만 완벽하게 숨겨져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그 건물을 주인공으로 드러내는 것이 제일 큰 관심사였다. 비스듬히 위치한 서울교육사료관이 정면보다 투시적인 느낌을 주어 멋있게 읽혀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정면을 바라보기보단 삐딱한 공간으로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한 건 ‘엠티 씨어터(마당)’였다. 다양한 이벤트가 가능한 오픈 공연장을 실현하기 위해 화장실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신창훈: ‘홍현’이란 이름 역시 매력이 있다.
윤승현: 홍현은 우리가 지은 이름은 아니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예전 이 지역에 연관된 이름을 복원해보자고 해서 발주 부서인 문화체육관광과 김천호 과장에게 이야기를 했고 그중 찾아낸 지명이 ‘홍현’이었다. 이 언덕의 흙이 붉은색을 띠고 있는 데서 유래했다. 이름 자체의 매력도 있어서 동네 정체성도 만들고 사람들이 매우 좋아한다.

신창훈: 건축의 재료와 물성이 생경하지 않고 주변의 역사와 배경에 잘 어울린다.
윤승현: 조민석 건축가가 이 동네에 송원아트센터를 먼저 철판으로 지었는데 그 모습이 낯설지 않고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게 북촌마을이 가진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예전 것만 담으려고 하지 않고 요즘 것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 이곳에 더 잘 맞는 느낌이었다.
주조색은 서울교육사료관이 벽돌 건물이어서 그것과 유사한 벽돌색을 썼고, 이 동네가 가진 물리적인 볼륨이 아담한 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네 풍경에 맞게 작게 부서지는 구성으로 이미 스케일에서 마을 풍경에 익숙한 그림이 나왔다고 본다. 그래서 부담 없이 스며들었다.
▲윤승현 교수와(오른쪽) 신창훈 대표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신창훈: 건축가로서 이곳에서 잘 사용했으면 하는 공간이 있다면.
윤승현: 도시에선 길과 연계된 공공의 마당이 무척 중요하다. 마당을 통해 동네 활동들이 확장되기도 하고 발휘되기도 한다. 그런 인식이 여태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잘 활용해서 마을 주민들에게도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창훈: 북촌안내소가 만들어지면서 에피소드가 많다고 들었다. 소개해주신다면.
윤승현: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꼭 이야기를 해야 하는 두 분이 떠오른다. 첫 번째로는 김영종 구청장님이 시작부터 큰 역할을 했고, 발주부서였던 문화체육관광과 김천호 과장님의 경륜에 감동을 받았다.
김 구청장이 정독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길의 콘크리트 옹벽을 허물고 서울교육박물관 건물 사이 공간을 편의시설 부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기획해 서울시교육청에 제안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두 기관이 협치를 통해 북촌의 환경을 바꾼 사례로 생각보다 이런 소통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큰 상도 받고 좋은 결과가 있었지만 초반에는 사업이 1년간 중단될 정도로 마을주민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관광객을 위한 공중화장실 시설을 짓는 것에 대한 주민들의 부정적인 선입견과 거부감이 존재했다. 자신들이 사는 공간이 관광지화된 데 대한 불편함이 있었다. 그분들은 화장실을 없애라거나 땅속에 넣으라는 건축적으로 불가능한 요구를 했다. 

이럴 때 보통 관공서에선 주민들의 말을 들어주는 척하고 설계안을 수정해 처리하는 게 여태까지 관행이었다. 김천호 과장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소통을 통해 풀어보겠다고 말하고는 그분들과 1년간 대화했다. 결국 몇 가지 소소한 조건을 수용하고 원안 설계대로 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행정이 능동적으로 소통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 내가 20여 년간 이 일을 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언제나 약자는 건축이었다. 설계안을 바꾸는 게 일반적 행정의 대응이었는데 이 작품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행정에서 그런 노력을 했다는 것이 엄청난 성과였다고 본다. 한 명의 건축가가 프로젝트를 시작함에 있어서 완결성을 가질 수 있도록 모든 기회를 다 주셨다. 이 프로젝트는 좋아질 수밖에 없는 터전을 가지고 있었다.

주민들 역시 반대는 있었지만 공사가 끝나고 나서는 옹벽으로 있을 때는 이 길로 다니길 꺼려했지만 이제는 너무 좋아졌다고 직접 이야기해준다. 북촌문화축제를 이곳에서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좁지만 마을 사람들이 사랑하는 공간으로 발휘되고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신창훈: 좋은 시스템을 기반으로 건축가가 공간을 만드는 행운이 있었던 거 같다.
윤승현: 대부분 공공 건축물은 행정이 건축 위에 군림하는 방식이었는데 지원하는 방식을 경험했다.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6월 1일 개관

신창훈: ‘인터커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 이름인가.
윤승현: 사실 후회하고 있다. 들으면 바로 이해가 되는 이름으로 했어야 하는데….
의미는 참 좋다. 땅 위에 사람 사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건축가라서 사람인(人)자와 땅에 관련된 터(基)를 썼다. 영어로 인터(inter)라는 말은 영어 접두사로 ‘상호 간의’, ‘사이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관계설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인터라는 접두사에 접미사 커드(kerd)를 붙였다. 커드는 주변을 이야기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주변머리 건축을 하고 있다. 뜻은 좋았는데 너무 어려워서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아무도 모른다.

신창훈: 사람과 땅을 의미하는 터를 중심으로 주변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건축을 하시는 윤 교수님의 의지가 느껴진다. 2014년 국제현상설계로 당선된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가 조만간 개관을 앞두고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땅에 중요한 공공건축물이 만들어지기에 어떤 모습을 드러낼지 궁금하다.
윤승현: ‘서소문 밖 네거리’라 불린 서소문 순교성지는 조선시대 천주교인의 처형장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를 거치며 수많은 신자가 이곳에서 순교했다. 한국 천주교 역사상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은 신유박해 때 체포돼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천주교에서는 성지 중 성지로 단일 성인 배출수로는 44명이 순교했다.
공공에서 그런 의미 있는 땅을 역사를 담은 곳으로 치환시키자 해서 역사박물관을 건립하고 공원을 재조성한다. DDP(동대문역사박물관)가 역사공원인데 현대공원으로는 첫 번째고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가 두 번째 역사공원이 된다.
6월 1일 개관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에 한창이다. 오늘도 인터뷰 전에 내내 공원에 있다가 왔다. 가장 큰 특징은 기념 전당이라는 일종의 메모리얼 홀과 메모리얼 플라자가 있는데 하늘 광장이라고 성 한복판에서 서 있는 신성시되는 공간을 만나게 된다. 가로 25미터 세로 25미터의 홀인데 땅에 결속하지 않고 하늘에 매달려 있다. 4면의 벽이 하늘에 매달려서 열려 있다. 서울 시민들이 건축을 형태로 생각하다가 이런 공간을 만나게 되었을 때 색다른 감성이 전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공간은 형태가 없다.

신창훈: 완공되고 나면 서울의 또 하나의 중요한 공공 건축물이 될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데 건축가는 장소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운영과 사용의 주체는 아니다. 잘 이용되고 사랑받는 장소가 되기 위한 건축가의 당부의 말이 있다면.
윤승현: 천주교 성지로 운영도 앞으로 천주교 서울대주교가 하게 된다. 특정 종교의 전유물처럼 인식될 위험성에 건축가로서 약간 우려된다. 하지만 나도 천주교인이 아니라서 성당을 갈 때 가지는 부담이 있다. 그런 마음은 대웅전에서
▲영주조제보건진료소/사진=김재윤 사진작가
도 마찬가지다. 비종교인에겐 문턱이 높다. 아까 말씀드린 메모리얼 플라자의 하늘광장은 저 같은 비종교인도 스스럼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의 상징이다. 여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그런 성격으로 운영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생활형 SOC 방향은 맞지만 방법이 위험

신창훈: 생활형 SOC사업의 롤모델 영주시의 공공건축가로 지금의 영주시가 있기까지 많은 일을 하셨다. 왜 최근 지자체와 정치권에서 영주시의 모델에 열광하는지 궁금하다.
윤승현: 어떤 건물이든 공공건축물을 지으면 감독관이란 분이 있다. 보이드 아키텍트 건축사 사무소 징기욱 건축가가 설계한 영주시 노인복지관의 감독관이 후에 나를 만나서 하는 말이 “이런 시골 한가운데 이런 건물이 있다니 너무 신기해서 볼을 꼬집게 됩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 해주는 건물입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영주시가 부각되는 이유는 서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주시가 시골에도 마음먹기에 따라 할 수 있다는 ‘본’을 보였다고 보고 그게 큰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용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영주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조제 보건진료소 이야기를 꺼낸다. 그 프로젝트는 어떻게 보면 반은 오기로 시작했다. 영주시의 공공건축가를 하면서 거기서 지어지는 45평 보건진료소를 자문해달라고 프로젝트를 보내왔는데 너무 한심해서 자문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담당 공무원이 “윤 소장님 뭘 그렇게 까탈스럽게 구세요? 시골에선 할머니들이 이 정도만 해도 너무 좋아합니다”라고 했다. 

시골사람들은 눈도 없고 코도 없고 감각이 없나? 시골사람도 그렇게 좋은 풍경 속에서 좋은 시설을 누리면서 살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나? 시골에서 살기 때문에 인프라가 부족해서 그런 것을을 누릴 수 없다면 공공에서 더욱 그런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주시 총괄건축가 역할을 하고 있던 조준배 단장과 함께 상의하고, 시장님께 직접 찾아가 무턱대고 45평 조제 보건진료소를 해보겠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그 보건소 건물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좋은 건축가들이 영주시의 의지를 믿고 만든 건축물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런 곳들이 핫플레이스가 되어 마을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있다.

신창훈: 지역 도시 재생에 대해 영주시 모델을 해보고 나서 느끼는 점이 있으셨다면.
윤승현: 생활 SOC 3개년 계획을 보면 3년간 48조의 예산을 투입한다고 한다. 아직은 준비하는 단계다. 정책하시는 분들과 지자체의 역할이 달라서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 결국 이상한 SOC산업으로 전락하기 때문에 담론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다.
건축계에서는 많은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시스템 이야길 먼저 하면 국토부는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에는 ‘얼마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지금은 ‘어떻게’로 바뀌었다. 건설 정책들은 이에 맞춰 어떻게 지을 것인지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건설의 시대는 지났고 건축의 시대가 왔다. 공공에서 스스로 건축의 시대가 왔음을 시인하고 모든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줬으면 한다. 

두 번째는 도시를 만들고 건축을 만드는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제대로 시행하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집을 잘 지으려면 좋은 건설사를 선정할 수 있는 발주 방식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얼마나 건강하게 발주하고 입찰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공공건축에 예산을 담당하는 조달청 소속 공무원들은 건축을 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국토부에서 내놓은 원칙은 중요치 않고, 예산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건축 부서인 국토부의 기준을 존중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야기인데 정치에 관한 것이다. 정치인으로 인해 시민의 여론을 수렴하고 멋있는 프로젝트를 양산한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것이 이분들에 의해 관장되다 휘둘린다는 거다. 단적인 예로 거의 모든 건축 조건이 정치인의 임기나 선거 일정에 맞춰져 있다. 이 때문에 모든 게 틀어진다. 건축물에 시점을 맞추는 게 중요해지면 망가지는 법이다. 건축프로젝트가 정치에서 해방될 수는 없지만 정치에 매달린 꼴은 없어져야 한다.
도시 재생사업이 역시 매우 좋은 사업이고 꼭 필요한 사업이다. 48조를 쓰겠다는 것도 잘한 거다. 그러나 이 사업은 20년, 30년을 보고 해야 한다. 패러다임도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촉박하게 진행하면 굉장히 위험하다.

신창훈: 생활형 SOC 사업에서 건축가 역할이 많다고 본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이나 ‘한내지혜의 숲’의 경우만 보더라도 프로젝트의 발굴에서부터 건축가의 역할이 컸다. 지자체에 없는 게 뭐냐, 지역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가 탁상 위에서 나오는 건 아니라고 본다. 건축가가 함께 고민한 흔적이 살아나야 좋은 공간이 되고 건축의 힘이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건축이 할 일은 많지만 지금 제도상에선 보여지지 않고 있다. 그런 점이 건축가로서 아쉽다.
윤승현: 좋은 선례를 역추적하면 쉽다. 앞서 언급한 두 프로젝트와 북촌 안내소 프로젝트를 보더라도 모두 같은 공통점이 있다. 건축가가 중심이 되어 프로젝트가 완성될 때까지 주도한 프로젝트였다는 거다. ‘한내지혜의숲’의 경우 서울시가 일종의 가림막 역할을 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구청장의 마인드도 좋았고, 감독관도 훌륭했다. 건축가가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도록 후견인 역할을 했다. 아까 언급한 대로 건축가는 어떤 집을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상과 어떻게 담을지 기획, 그리고 그것을 완성하는 설계와 집을 짓는 과정까지 얼마큼 건축가를 신뢰하고 존중하는지가 중요하다. 이건 건축가가 잘나서가 아니라 지어지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윤승현 교수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더리더

건축, 사회와 접촉하는 플랫폼 역할 필요
신창훈: 새건축사협의회장을 오래 맡아주시고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대해 후배들도 많이 감사하고 있다. 회장직은 물러나셨지만 또 계속 끌고 가셔야 하는 계획이 많을 것 같다.
윤승현: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매년 2~3월이 되면 1년에 한 번 뽑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에 대한 소식이 기사로 쏟아져 나온다. 일본은 그간 6명의 수상자를 냈다. 올해에도 일본의 아라타 이소자키가 상을 받으면서 일본 건축가와 우리나라 건축가가 언론에서 비교되고 있다. 

서현 서울대 교수의 언급처럼 일본의 건축가 이소자키가 훌륭한 것도 있지만 일본의 잘 만들어진 시스템의 역할도 크다. 상은 이소자키가 받지만 생산한 모든 건축물에 대한 평가로 발맞춰 공사하는 건설사, 행정가, 정치인 등 모두가 만들어낸 결과다. 우리나라의 건축가들도 분발해야 하지만 시스템이 일본에 비해 너무 부족하다. 좋은 건축가가 탄생하기 어렵다. 시스템은 개인이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단체에서 해줘야 한다. 그 실체가 새건협(새건축사협의회)이다. 시스템과 정책 제언을 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많은 건축가가 참여해서 역할을 해주고 있어 너무 감사하다. 우리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이 시대의 건축가들은 이런 역할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쓸 수 있는 시간의 10%만 공공과 우리 모두를 위해 써주면 좋겠다. 그런 힘을 모아서 실행으로 움직이도록 노력하겠다.
 
4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 5주기다. 새건협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안산에 지은 세월호 기억저장소였다.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사회기부로 조용히 진행했다.
나를 포함해 당시 회장이었던 임재용 회장의 주도로 새건협의 건축가들이 모두 돈을 모으고 힘을 모아서 46평 남짓한 공간에 기억저장소를 갤러리 형태로 만들었다. 그걸 만들면서 건축이 사회와 접촉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배웠다. 건축계는 사회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회와 만나는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건축계에서 해야 한다. 앞서 말한 프리츠커상의 가장 큰 꼭지가 사회기여다. 한 사람의 건축가가 하긴 어렵고 조직적으로 그런 준비를 해서 필요할 때 나서줘야 한다. 여러 단체가 함께 힘을 모아 해주면 좋겠다.

PROFILE
윤승현 중앙대학교 교수
University of Pennsylvania M. Arch 취득
인터커드 건축사사무소 소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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