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장, “공공미술, 스며들게 하고 비워내라”

주변과 조화, 상징적 의미 고려… 덧붙이기보다 관조의 여백 필요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입력 : 2019.05.14 09:15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장
‘공공미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우리가 사는 도시 공간 속에서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조형물, 벽화, 장소에 이르기까지 대중을 위한 미술이 바로 공공미술이다. 공공미술이 처음 탄생한 것은 1960년대 말 미국 정부가 미술가들을 구제하기 위해 시작한 ‘미술을 위한 일정 지분 투자’부터였다. 건설 예산액의 일정분을 미술작품 설치에 할당하는 제도에서 시작된 공공미술은 이제 도시재생과 역사교육의 영역까지 확장됐다.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장은 저서인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에서 독일의 수도 베를린 풍경에 스며든 열 가지 기념조형물을 소개했다. 그가 소개하는 독일의 기념조형물들은 기존에 봐왔던 정체성 없는 단순 조형물과는 다르다. 독일이 과거를 반성하고 역사를 잊지 말 것을 스스로 경고하면서도, 도시경관과 시민들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백 소장은 우리나라 공공미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묻자 “광주는 5.18 민주화운동의 본거지입니다. 광주를 떠올렸을 때 누군가 제안한 것처럼 518m 높이의 빌딩이 생각나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합니다”라며 “공공미술은 도시에 스며들고, 현재와 미래에 지속적인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공공미술이란 무엇인가
▶공공미술은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벽화, 조각, 사진 등을 의미한다. 공공미술이 설치될 만한 장소는 광장, 공원, 공공기관 건물 앞 등 다양하다. 하지만 공공미술의 개념도 점점 확장 중이다.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의 미술작품 외에도 진행 과정의 행위를 중요시하는 경우도 있다.

-법적으로 공공미술 작품 설치 비율이나 기준이 따로 있나
▶말씀하신 공공미술과 관련된 법은 문화예술진흥법에 있는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를 의미하는 것 같다. 신축 및 증축 연면적이 10000㎡ 이상인 건축물은 건축 비용의 100분의 1 이하의 범위에서 미술작품 설치에 비용을 사용해야 한다는 법이다. 국가 및 지자체를 제외한 건축주는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대신 그 비용을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할 수도 있다.
건축주는 미술작품을 설치하려면 관할 시,도지사에게 미술작품의 가격과 예술성 등에 대해 감정, 평가를 받아야 하고, 해당 지자체는 설치된 미술작품을 관리해야 한다. 세부적인 내용은 지자체마다 조금씩 다를수 있다. 하지만 이런 건축물에 설치된 모든 미술작품을 많은 사람이 향유할 만한 공공미술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상당수가 해당 건축물 입구의 내외부를 장식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제73주년 광복절인 2018년 8월 15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환여동 환호해맞이 공원 소녀상이 태극기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사진=뉴스1
-우리나라 공공미술은 언제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어떻게 달라져왔나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 기념동상이나 항일인물상 같은 것들이 설치되면서 우리나라의 공공미술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60~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기엔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같은 역사인물상이나 이승복 동상 같은 반공 관련 인물상 등이 정부 주도로 세워졌다.
1995년엔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가 전국적으로 시행되어 기존의 기념조형물보다 다양한 공공미술작품이 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법은 조금씩 개정되어왔다. 본격적으로 공공미술이 미술계의 이슈가 된 것은 2000년대 초·중반이었다. 그 시기부터 현대적인 의미의 다양한 공공미술에 대해 논의하면서 제도적 개혁을 고민하고 현장에서 실천하는 예술인이 많이 생겨났다.

-국내 공공미술 작품 중에 예술적, 사회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다면
▶아직까지 국내에서 개인적으로 특별히 좋아하는 공공미술 작품은 없다. 전국의 공공미술 작품을 모두 보지도 못했고 자세히 연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평가를 하기가 조심스럽다. 국내 공공미술 작품의 예술적 가치 평가에 대해서는 유보한다. 왜냐하면 공공미술은 미술작품 자체의 수준만 가지고 평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술작품이 놓인 장소의 의미, 주변 환경과의 조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모두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가치 면에서는 최근 ‘평화의 소녀상’이 많이 알려지면서 공공미술로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와 함께 ‘평화의 소녀상’이 대중들에게 상징적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서울역 앞에 설치됐던 슈즈트리, 삼성역 코엑스의 강남스타일 조형물, 여의도 한강공원 내 괴물 등은 오히려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평을 받았었다. 이 작품들에 대해선 어떻게 봤나
▶‘슈즈트리’는 그저 물량 공세로 시선을 사로 잡으려는 조악한 수준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평가할 말이 없다. ‘강남 스타일’은 춤 동작보다는 양손이 묶인 것처럼 보인다. 차라리 좀 더 예쁘게 팝아트 스타일이나 포토존을 위한 조형물로 만들었다면 설득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용은 대중적인데 전통적인 재료와 조형언어를 사용했으니 당연히 어색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괴물’은 생뚱맞게 보인다. 영화 <괴물>이 한강을 배경으로 한다고 그냥 한강변에 덜렁 그 조형물 하나만 설치해놓으니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강한 조형물이면 주변 환경도 그에 걸맞게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많은 분위기로 함께 조성되어야 어울린다.
서울역 ‘서울로 7017’ 보행길 개장을 기념해 설치됐던 ‘슈즈트리’ 조형물/사진=서울시청
코엑스의 ‘강남스타일’ 조형물/사진=강남구청
여의도 한강공원의 ‘괴물’ 조형물/사진=영등포구청
-최근 저서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을 통해 역사를 응축한 베를린의 기념조형물에 대해 조명했다. 독일 공공미술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베를린 기념조형물의 특징은 성역화되어 있지 않고 일상 속에서 쉽게 접근이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념조형물은 공공미술의 한 장르에 불과하다. 그래서 독일 전체의 다양한 공공미술을 그렇게 똑같이 특징 짓기는 힘들다. 다만 독일에서는 대체로 공공미술 작품과 주변 공간의 관계가 조금 더 느슨하고 여유롭다. 비좁은 장소에 무작정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지 않는 편이다.
이것은 도시 경관의 문제와도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에서 도시의 풍경은 온갖 간판과 시설물들로 너무 복잡하지 않는가. 독일은 우리보다 도시 풍경이 더 차분하고 여유로운 편이다. 그 때문에 공공미술도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니콜라우스 히르슈(Nikolaus Hirsch)·볼프강 로르히(Wolfgang Lorch)·안드레아 반델(Andrea Wandel), 「17번 선로(Gleis 17)」(1995~1998) 장소: 그루네발트역(Bahnhof Berlin-Grunewald) ⓒ 2017. 백종옥 All rights reserved.
-저서에서는 베를린에 있는 총 열 가지 기념조형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무엇이었나

▶독일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찾고 좋아했던 곳은 그루네발트역이다. 그루네발트역은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베를린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을 동유럽 수용소로 실어 나르는 일을 도맡았던 곳이다. 1941년 베를린에 거주하던 유대인이 6만6000명 정도였는데 이들 중 약 5만 명이 그루네발트를 포함한 세 개의 역
을 통해 유대인 집단 거주지 게토, 정치범 수용소, 학살 수용소로 실려갔다. 그루네발트역 17번 선로에는 독일제국철도의 열차를 통해 죽음의 수용소로 추방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선로를 따라 약 132미터에 걸쳐 양쪽 승강장 바닥에 기념조형물들이 평평하게 깔려 있다. 총 186개의 주물 강철판에는 1941~1945년 사이에 베를린에서 특별열차가 출발한 날짜와 수송된 유대인수, 행선지를 연대순으로 새겨놓았다.
이 경고의 기념조형물은 승강장과 선로의 풍경을 크게 훼손하거나 변형하지 않고 풍경에 완전히 밀착된 상태로 설치돼 있다. 이런 설치방식으로 인해 발아래 수평으로 깔린 추모비를 내려다보는 관찰자는 구체적인 역사 자료를 보는 것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묵념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과거 독일처럼 우리나라는 분단 국가 상태다. 통일이 된다면 현재 베를린 장벽처럼 분단의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 관광, 교육의 장이 될 텐데 어떻게 조성해야 할까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들과 자연 상태로 보존할 지역들을 잘 구별해야 할 것이다. 너무 서둘러서 조형물이나 박물관 등을 조성하기보다는 많은 토론 과정을 거쳐서 가장 적합하면서도 창조적인 형식을 찾으면 좋겠다.
독일에서 베를린 장벽에 벽화를 남겼다고, 그 벽화를 그린 예술가들을 데려와서 3.8선 지역에도 벽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하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정말 곤란하다. 독일이 했던 방식을 그저 모방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현재와 미래에 지속적으로 의미있는 방식으로 보여주려면 장기적인 비전도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역사 기록물 수집과 연구, 역사를 기억하는 조형물이나 건축물, 그리고 다양한 문화, 관광, 교육 관련 프로그램 개발 등을 동시에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것이다.

-‘기념조형물들만 봐도 그 사회가 보수적인지 개방적인지 알 수 있다’고 책에서 밝혔다. 가장 보수적인, 개방적인 나라와 기념조형물의 예를 든다면
▶가장 보수적인 나라, 또는 가장 개방적인 나라를 확정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모든 사회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념조형물이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은 틀림없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기념조형물이 조성되면 대체로 높은 기단을 가진 동상이나 수직적인 탑의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이제 비민주적인 독재 국가나 폐쇄적인 사회에서 선호되는 편이다.
유럽의 기념조형물을 보면 전반적으로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특히 베를린은 다른 곳보다 현대미술과 건축 형식을 띤 기념조형물이 많은 편이다. 베를린은 통독 후 유럽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곳이 되었다. 반면 가까운 북한을 보면 거대한 김부자 동상이나 선전화가 주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을 통해 북한이 어떤 사회 분위기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피부에 스며드는 형식’의 공공미술은 무엇인가
▶공공미술 작품이 설치된 장소에 밀착된 느낌을 줘야 한다. 즉 그 장소의 주변환경과 단절되지 않고 조화로운 느낌이 들어야 하고, 장소의 의미와도 맥락이 맞아야 한다. 또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광장, 공원, 정류장, 광고판 같은 것들과도 어울리는 형식이어야 한다. 도시의 일상을 구성하는 요소처럼 말이다. 또한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고 머무르고 느낄 수 있는 공공미술, 이런 것을 ‘도시의 피부에 스며드는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공공미술 발전을 위해 법적으로 수정·보강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공공미술 하나만으로 해결이 안 된다. 도시계획과 도시경관 디자인, 가로정비와 같이 가야 한다. 이를테면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갖다놔도 주변에 간판이 덕지덕지있다면 작품에 대한 느낌이나 존재감마저 사라져버릴 것이다. 공공미술을 하려면 환경 정비를 같이 하든지, 도시계획과 연계해야 한다. 관련조항을 만들거나 협의기구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특히 도심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장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나
▶2006년에 ‘아트인시티’라고 하여 문화관광부가 주최해 전국 11개 지역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저는 당시 ‘부산 물만골 프로젝트’에서 예술감독을 했다. 그리고 익산문화재단에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년 동안 문화정책팀장으로 활동하며 작가들과 함께 익산 ‘문화예술의 거리’를 조성했다. 이곳의 특징은 가로등과 공공미술을 결합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또 다른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공공미술 프로젝트도 좋고 기념조형물 쪽도 참여하고 싶다. 제가 광주에 있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5.18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0년이 다 되어가지만 버려진 사적지가 여전히 많다. 제가 참여할 수 있다면 베를린의 기념조형물처럼 도시의 피부에 스며들고,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으
로 접근해보고 싶다.
또한, 정치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남북문제가 급진전된다면 3.8선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반드시 나올 텐데 그런 부분에도 관심이 많다. 제 나름대로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어 계속 공부하고 있다. 기회가 온다면 참여하고 싶다.

-우리나라 공공미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제안한다면
▶무언가 자꾸 만들어서 덧붙이는 것보다 비워내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한국 도시들의 풍경은 포화 상태다. 여백이 거의 없고, 맥락없이 잡다하고 복잡하다. 거리를 다니면 각종 간판, 현수막, 시설물 등으로 인해 시각 공해가 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든것이 오래가지 못하고 바뀐다. 무언가 깊이 성찰하고 오래 감동할 만한 여유가 생기기 어렵다. 이런 곳에 좋은 작품을 갖다 놓는다고 해도 존재감이 생겨날 리 없고 주변환경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우리나라의 공공미술은 그 주변을 함께 비워내는 방식, 관조의 여백을 살리는 방식으로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1992)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교(UDK) 조형예술과 졸업(2003) 및 마이스터쉴러 졸업(2004)
2018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저서 <잠에 취한 미술사>(2017),<베를린, 기억의 예술관>(2018)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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