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테러적 현상’, 그리고 ISIS의 궤멸론에 대한 평가와 전망

‘테러’라는 용어는 부정적 의미로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아왔다. 2019년 4월 15일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미국의 일부 극우 논객은 “무슬림들이 기독교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한 행동(테러)이었다”는 과격한 주장을 편 것이 이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테러는 비정규 세력이나 집단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과격하고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기존 세력이나 국가를 공격하는 것을 지칭해왔다. 이른바 무장테러이고 정치테러이다. 이 극단적이고 잔인한 테러는, 필자가 부르는, ‘테러적인 현상’까지 연결되고 있다. 지구촌 전체뿐 아니라 우리나라 도처에도 안개비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과의 날 선 대결이나, 트럼프의 공격적 레토릭과 전투적인 국정 운영은 ’테러적 현상‘의 원천을 제공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지배세력의 반대세력이나 집단에 대한 비판이나 공격 역시(야당의 대응도 마찬가지) ‘한국적인 테러적 현상’의 원천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치세력 간의 칼로 베는 듯한 공방은 단순한 여론장악이나 권력장악 다툼을 넘어서서 “대한민국이란 한 지붕 밑에 과연 같이 살 수 있느냐”는 극단적인 분위기로까지 몰고 간다. 심지어 어떤 이는 “국경이 그어지지 않은 삼국시대”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이 같은 대립현상은 개인의 삶에도 미치고 있다. 진주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벌어진 참극(5명 살해)은 단순한 조현병에 걸린 정신병자의 무모한 행동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테러적 현상’이 우리 사회 곳곳에도 투영되고 있는 한 사례로 봐야 한다.

그간 국제테러의 대표격이었던 IS가 시리아에서 그 근거지를 거의 상실함으로써 테러에 대한 관심이 멀어져가는 듯한 상황에서, 미국이 이란의 혁명수비대(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 IRGC)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국무부의 <해외테러조직(FTO, Foreign Terrorist Organization)> 리스트에 4월 15일자로 올렸다. 이 리스트에는 하마스 등 67개 조직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논리는 “이란 정권이 테러리즘을 국가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란 혁명수비대가 지난 40여 년 동안 테러행위에 간여했다”는 이유다. 이란 역시 유사한 레토릭으로 맞대응함에 따라 ‘테러’가 다시 관심단어로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4월 21일 일요일 290여 명이 사망하고 45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진 스리랑카 사원 6곳의 테러가 IS와 연계되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IS 궤멸론에 대한 회의론도 나타나고 있다.

IS는 진정으로 궤멸되고, 그 후신은 다시 등장하지 않을 것인가?
금년 들어 터키 주변 지역을 거주하는, 아직 공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쿠르드족(Kuridish-led SDF)이 미국과 영국 및 프랑스 등의 지원을 받아 한때 IS가 장악했던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을 되찾고 있다. IS의 최후의 거점인 소위 Caliphate 국가로 자처해온 바구즈(Baghouz)가 붕괴될 상황에 직면했다. IS는 2014년 7월경, 모술 지역을 장악하고 지도자인 Abu Bakr Al-Baghdadi가 Caliphate국가를 선언함으로써 그 세력이 절정에 달했다. 요르단 지역까지 통치하고 수백만 명을 통치 대상으로 장악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 수많은 전투와 정복 전쟁도 상당 부분 사라졌다. 의문은 IS가 건설하겠다던 칼리파 국가가 진정으로 끝났느냐의 문제다. 문제는 이들 조직 핵심들이 지하로 잠입하고 후일을 도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물론 바구즈를 점령할 당시 우려했던 IS 동조자들의 집단자살이나 순교적 행동은 거의 없었다. IS 심복들도 시민들이 도시를 떠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전투를 할 수 없는 사람들(여성, 아이들, 노인 및 부상자 등)을 없애기도 했다. 사실 IS의 실착 중의 하나는 서방 인질들에 대한 참수였다. 이 반인륜적 행위는 중동지역 개입을 주저하던 오바마 당시 행정부가 IS 격퇴에 참여하는 계기를 만드는 역효과를 가져왔으며, IS의 종말의 서곡이었다. IS는 전화 감청이나 공격용 드론, 그리고 정교한 폭탄 공격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또 하나의 실책은 게릴라 전술을 포기하고 정규군 전투형태로 맞선 것이었다. 게릴라전 형태로 버텼다면 쿠르드군이나 서방연합군이 쉽게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한때 IS는 장기적인 계획과 터널 공사에 대단한 수완을 보기도 했다. 2014년 초 지하디스트들은 5~6미터 깊이에 정교한 통로를 파기 시작했다. Raqqa, Tabqa, Mosul과 같은 공격을 받을 수 있는 도시를 중심으로 터널을 구축했다. 이 터널은 무기나 식량의 저장고, 지휘소 같은 역할을 했다. 터널 굴착에서 나온 것들은 사원 등지에 숨겼다. 5천만 달러에서 3억 달러에 달하는 비밀 자금을 이라크 사막 어딘 가에 숨겼다는 얘기도 있다.

바구즈가 IS의 몰락을 보여 주는 상징이지만, 이슬람국가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듯 보인다고 해서 IS가 완전히 패배했다고 단언하는 것은 속단이자 좁은 시각이다. 미국 중동지역 사령관 Joseph Votel은 말한다. “지금 보고 있는 현상은 조직으로서 IS의 항복이 아니다. 자신들의 가족과 칼리파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다. 피난민 캠프에서 내부 결속을 은밀히 다시 다지고, 먼 지역에서 근거지를 확보하여 소생할 기회를 엿보기 위한 것이다.”

이를 아랍어로 ‘Baqiya wa tatamaddad’라고 한다. IS 추종자들이 후퇴하면서도 곳곳에 ‘Baqiya’를 새겨놓은 것이 이를 입증한다. “지하 테러조직으로 회생하여 끊임없는 공포를 불어넣는 존재가 될 것이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역사는 “거대권력도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여러 군사적인 참패가 보여준다”고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지는 말한다. 팔레스타인 지역 예수 등장 당시의 Masada, 텍사스 지역의 알라모(옛 멕시코 지배 땅) 등이 그 적절한 사례이다. 서방 연합군이 바구즈를 점령했지만, 숨은 지하 추종자들의 소규모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Sleeper Cells(잠복한 테러행위자)이다. 이 지역을 취재하러 들어갔던 서방 기자들도 황급히 빠져나올 정도다. 3월 23일 오후 임시로 만든 ‘Comrade Rostom’ 지역에 들어갔던 미국 NBC방송기자가 현장에서 터진 폭발물로 즉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여러 취재기자들이나 통역원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IS의 Sleeper Cell들이 후방을 공격하기 위해 숨어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테러’라는 단어는 아직까지 우리에겐 이방인 같은 단어이다. 한국에서는 북한의 남한에 대한 테러 공포도 역사적인 유물 같은 단어가 되었다. 그리고 취업이나 학업 등 다양한 이유로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이 300만 명을 넘었다. 안산 지역이나 서울 신도림 지역은 남의 나라 같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물론 국정원이나 공안기관에서 면밀히 주시하고 있을 것으로 믿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IS가 전략거점을 포기하고 게릴라전으로 승부를 걸기로 전략을 틀었다면, 우리 역시도 언제든 테러 대상 지역이 될 수 있다. 한국에도 Sleeper Cells이 없는지를 다양한 시각에서 수집해야 한다. 그래야 보다 정확한 정보 생산도 가능하다. 최근과 같은 북한 주요 인물에 대한 ’정보분석 실패론’이 나와서는 안 된다. 나아가 ‘테러적 현상’이 더 이상 만연되는 것을 하루속히 막아야 한다. 이는 사법적 조치나 심리적 조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공동체의식이 균열되고 붕괴되는 것도 한 원인이고. 분열의 토대와 격한 감정을 키우고 양성하는 정치권의 책임은 더욱 크다. 그리고 일선 사법기관들(부문정보기관)의 정보적 감각을 배양함으로써 ’테러적 현상’ 중의 하나인 ‘진주 참사’와 같은 일을 선제적으로 방지해야 할 것이다. 7번이나 징후를 신고했음에도 무시한 것이 참혹한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정보는 예측과 판단이다. 분석의 정확성과 판단력만이 정보기관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최적의 지점이다.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