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과 Meliandialogue

이일환의 情(정보의 눈으로)•世(세상)•思(바라보기)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이일환 교수 입력 : 2019.06.19 16:05

여행은 周易(주역)의 축소판이다. 주역의 기본 원리가 元, 亨, 利, 貞이다. 태어나고 젊은이처럼 힘차게 살고, 40~50대 돈 잘 버는 전성기를 지나 쇠락의 길로 접어드는 貞의 길로 간다. 여행과 결부시키면 지친 몸으로 귀국하는 것이다. 처음 여행 계획을 짤 때는 가슴이 설렌다. 어디를 갈까, 무엇을 먹을까부터 시작해서 환상의 시간을 보낸다. 여행지에 도착한 이후에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명승지나 명소를 놓칠세라 종종걸음으로 다닌다. 이국적인 풍광에 감탄하기도 하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는 심정으로 사진 찍기에도 여념이 없다. 거의 일회용에 가까운 사진임에도 연신 스마트폰 사진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사실 스마트폰에 사진 기능이 탑재되면서, 사진은 그 존귀함을 많이 잃었다. 필름 사진이 일반화되던 시절, 정성 들여 사진을 찍고 돌아온 뒤에는 멋지고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을 골라 인화해서 두고 두고 보관해두었다. 개인의 인생사가 자연스럽게 남겨졌다. 간혹 빛바랜 사진첩을 보면 그 당시의 추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가슴에 안고 갈 이 같은 아날로그 시절의 정취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5월 3일~7일, 3박 4일 간의 일정으로 이틀은 자유여행, 하루는 버스 투어 형식으로 타이완의 타이베이를 다녀왔다. 집안의 중요한 사람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여행이기도 했다. 타이완은 우리와 1992년 한때 국교를 단절했을 정도로 애증이 얽힌 나라인 데다, 중국과의 내면적 대립이 여전한 곳이기에 한번쯤은 여행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했었다. 문헌이나 방송 보도에서 보곤 했던 단편적인 타이완에 대해 현지 체험을 통해 알고 싶은 욕망도 타이베이를 여행지로 택한 또 다른 이유다. 특히 타이완과 우리나라는 아시아의 4龍으로 불렸고, 국민소득도 비슷한 데다, 섬나라적인 물리적 지형도 호기심을 부추긴 요인 중의 하나다.

타이완과 밀리언다이얼로그, 그리고 일본
타이완의 타오위앤(桃園) 공항에 도착하면서 먼저 떠오른 단어가 밀리언다이얼로그와 일본이었다. 밀리언다이얼로그는 현실주의 정치이론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예화다. 아테네의 국력이 상승하던 시절, 아테네는 밀로스 섬에 장군을 파견하여 항복을 요구한다.


“강자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며, 약자는 이에 따라야 한다.” 작은 도시국가인 밀로스는 스파르타와 우호적인 국가였고, 지리적으로 통상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어 해상강국인 아테네의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국가였다. 그러나 밀로스는 아테네의 항복 요구를 거부한다. 스파르타와 신이 도와줄 것이란 이유를 내세워 결사항전을 결의한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아테네는 밀로스 섬 주민 1,500여 명을 아이를 포함해 모두 몰살시킨다. 힘이 약한 섬나라의 비극이었다.


이 밀리언다이얼로그를 똑같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우리나라와 타이완에 대입해보았다. 우리와 타이완은 일본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다르다. 필자의 짧은 식견으로는, 타이완은 일본이란 나라를 활용하는 ‘실용적 對日觀’을 갖고 있었다. 타이완 사람이라고 해서 자존심이 없을까마는, 도시바와 도요타, 파나소닉 등 일본의 유수 기업들의 광고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일본차를 비롯 외제차가 90% 이상이었다. 주위사람을 배려하는 일본인의 습성도 배여 있었다. 51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절, 오히려 민초들의 삶이 나아진 것도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가진 요인이라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불가피하게 국교를 단절하고 우리 기업이 철수한 자리에 일본 기업이 파고들었다고 한다.


이에 비하여 우리는 用日보다, ‘관제민족주의’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對立一路로만 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일본이 과거사를 진솔하게 사죄하고 있지 않은 점은 단호히 질책하되,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는 우호, 선린관계를 병행 발전시키는 대승적인 안목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한류와 출중한 예능 프로그램 제작 능력은 일본을 능가하고 있지 않은가. 나영석 PD가 연출한 <꽃보다 할배>는 한국인의 타이완 여행자수를 70%나 증가시킬 정도로 타이완 붐을 일으켜, 타이완 관광국에서 나 PD에게 감사장까지 수여했다고 한다. 딘타이펑(鼎泰豊) 같은 유명 음식점에는 한글로 적힌 대기표를 줄 정도이고(필자의 가족도 30분을 기다렸다), 野柳지질공원에는 곳곳에 한글 안내판이 걸려 있었고, 우리의 명동인 ‘시먼팅’ 한복판에서는 젊은 춤꾼들이 ‘강남스타일’을 배경으로 젊음의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자부심이 절로 우러났다. 21세기를 지향하는 지금, 과거의 틀에 너무 얽매이기보다 통 큰 형님 같은 자세로 일본을 다루면서, 그 언젠가 일본을 능가했을 때, 따끔하게 혼내주는 것이 현실적인 방편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국가성과 개인성, 그리고 中正記念堂(장계석 기념관)
국가성과 개인성은 조화를 이루기 힘든 덕목이다. 국가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개인의 가치가 훼손되고, 개인성에 너무 비중을 두면 국가성, 국가적 통합력이 약화된다. 타이완은 여전히 국가성이 우위에 있었다. 장계석 전 총통을 기념하는 ‘중정기념당’이 베이징의 자금성의 축소판처럼 느껴질 정도로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또 다른 옆 문의 이름도 ‘大忠門’이었다. 이승만, 박정희와 같은 몇몇 전직 대통령의 기념관조차 제대로 짓거나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와 여러 측면에서 대비되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장계석이야말로 공과가 50 대 50이다. 1949년 마오쩌둥이 지휘하는 공산당에 패해 타이완으로 도피한 이후, 타이완 장악을 위해 5만여 명에 달하는 원주민과 內省人(15세기부터 타이완에서 살던 본토 출신)을 죽음에 몰아놓은 사건은 씻을 수 없는 과오이다. 개신교 신자이기도 했던 장계석은 불교도(40%)와 도교 신자(45%)들이 절대 다수인 타이완에 개신교적 시각을 반강제적으로 투입하려 했던 지도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웅장한 기념관을 지어 그 정신을 받들고, 많은 국민도 그를 경배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언제쯤 그 어떤 지도자도 존경의 대상으로 받아들일 날이 올지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나날이 국민들의 심성이 갈갈이 찢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국가성을 보여준 또 하나의 상징물이 타이베이 정부 시청사 건물이었다. 소통과 민주성을 강조하기보다 권위를 중시한 것이 외관에 확실히 드러나 보였다. 장차 개선했으면 하는 이방인으로서 주제넘은 생각도 해보았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던 중 국가성을 드러낸 상징물을 또 하나 발견했다. 길 안내판이다. 타이베이 지하철역 근처의 ‘忠正西路’ ‘愛國西路’ 같은 안내판이다. 과연 서울에 이런 안내판이 존재할 수 있을까. 구겨진 태극기가 외국 정상회담장에 걸릴 정도이고, 태극기는 이제 어느 특정 정파를 겨냥하는 상징물로 격하된 오늘의 한국 상황에서 볼 때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편 타이베이는 소매치기가 거의 없는 편이라고 한다. 도교의 영향 때문이라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도교는 남의 물건에는 뭔가 악귀가 끼어 있다고 여긴다고 한다. 그러기에 남의 물건을 훔쳐봐야 자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잠재해 있어 소매치기도 별로 없다고 한다. 낯선 여행객으로서는 가장 반가운 말 중의 하나였다.


타이완 사람들은 속이 꽉 찬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부자들도 옷차림이 수수하고 티를 거의 내지 않는다고 한다. 일부 건물도 겉은 허름하지만 내부는 매우 화려하다고 가이드는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한다. 떠나오기 하루 전에 들른, 풍등 날리기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쓰펀’ 지역 철길에서 가정의 평안과 행복, 그리고 딸아이의 소망이 담긴 풍등을 날려보내면서 타이완 여행을 마무리했다. 스마트폰으로 웬만한 정보나 사진들이 즉석에서 검색되는 디지털 시대에, 이국적인 풍광이나 유명한 음식을 먹어보았다는 1차원적인 여행기보다, 작은 편린 속에서 의미를 찾아보고, 나아가 시각도 넓혀보는 여행기를 남기겠다는 거창한 의도가 얼마나 충족되었을지 아쉬움이 남는다.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정치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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