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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
집권 8년 동안 4차례 헌법을 개정하여 평균 2년에 한 번씩 헌법을 개정한 셈이다. 지난 7월 22일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개헌 발의선인 3분의 2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한국 역시 개헌의 실현 가능성이 여야의 대립으로 불가능한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개헌이 가장 용이한 체제다. 투표율 99.9%에 찬성률 99.9%인 최고인민회의 선거에서 당선되는 687명의 대의원들은 사실상의 거수기인 만큼 최고지도자가 결심만 하면 개헌은 언제나 가능하다.
2019년 북한 헌법 개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김정은 위원장이 맡고 있는 국무위원장직이 “국가를 대표한다”고 명시된 부분이다. 북한 대외선전매체인 <내나라>가 공개한 북한 헌법 제6장 국가기구 부분의 제2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항목에 있는 헌법 제100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령도자이다”라고 규정했다.
앞서 북한은 2016년 6월 헌법을 개정하며 신설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영도자”라고 규정했다. 2019년 헌법에서는 ‘국가를 대표하는’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실질은 물론 명목상으로도 북한을 대표하는 국가수반임을 헌법에서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2016년 헌법에서는 단순히 김정은 위원장은 ‘전군’을 지휘하는 ‘최고지도자(supreme leader)’였다.
지난 2016년 헌법은 새로 설립된 최고 통치기구인 국무위원회(SAC, the State Affairs Commission)의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원수를 뜻하는 ‘국민 모두의 최고 대표(the supreme representative of all the Korean people)와 통수권자(commander-in-chief)’라고 밝혔다. 김정은의 인민군 통수권을 명시한 102조에는 ‘무력총사령관’이라는 새로운 호칭이 등장했다. 개정 전에는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으로 규정했었다. 실질적인 핵보유국의 최고지도자의 위상을 반영한 것이다.
이번 헌법 개정 전까지 북한을 대표하는 명목상 국가수반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었다. 국무위원장을 국가수반으로 공식화한 것은 집권 2기를 맞아 헌법과 실제권력을 일치시켜 외형상 정상 국가를 지향하는 차원의 조치로 풀이된다. 다른 국가 정상과의 회담이나 조약의 비준·폐기 등 국가의 대표 역할을 국무위원장이 한다고 명시함으로써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서 서명 권한의 실효성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부여한 것이다. 특히 향후 4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비핵화 합의에 도달했을 때 합의문의 서명 주체로서 김정은 위원장의 역할 또한 공식화한 의미로도 해석된다.
김정은 위원장이 헌법상 북한의 국가원수와 군 통수권자로 명기됨으로써 미국과 평화협정(a peace treaty)을 체결할 경우 형식상 실질적인 서명 당사자가 되었다. 이른바 법과 권력의 불일치 현상을 시정하여 대내적으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권력을 강화하는 한편 법치국가를 지향하는 이미지를 대외에 과시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보인다. 이제 집권 8년 차에 수많은 권력 도전을 물리치고 김정은 위원장이 명실공히 꿈꾸어왔던 ‘북한의 대통령(the president of North Korea)’이 되었다.
다만 2019년 개정 헌법도 종전 헌법과 마찬가지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며 다른 나라 사신의 신임장, 소환장을 접수한다”고 돼 있다. 북한이 개정 헌법에서 국무위원장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모두 “국가를 대표한다”고 명시했지만, 국무위원장이 대내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최고지도자이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신임장 및 소환장 접수라는 상징적인 외교 업무와 관련해 국가를 대표하는 역할로 한정했다. 따라서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평양에 부임하는 외국 대사나 외빈을 접대하는 제한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최룡해는 김일성, 김정일 및 김정은 3대에 걸쳐 40년 이상 권력을 유지하여 처세의 달인이라 지칭되던 김영남 전 의장의 역할보다는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개정 헌법에서는 김정일 시대를 상징하는 선군사상이나 선군정치 같은 용어도 삭제되었다. 이것으로 보아 김정은 체제가 군(軍)이 아닌 사회주의 체제의 핵심인 노동당 중심의 국정운영을 지향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종전 헌법 서문(序文)에 있었던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이시다”라는 문장은 개정 헌법에서 통째로 빠졌다. 대신 김일성에는 ‘위대한 수령’, 김정일에는 ‘위대한 령도자’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최근 역대 지도자의 우상화 선전에서 ‘신격화’를 배제하는 움직임을 반영한 것이다.
한편 2019년 헌법은 경제 분야에서 특이한 변화가 있었다. 개정 헌법엔 김정은 정권의 사회·경제 개혁 노선이 대폭 반영되고 그 의미도 구체화됐다. 김정은 체제 들어 도입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33조)를 국가경제 관리의 기본 방식으로 제시하고, “실리를 보장하는 원칙을 확고히 견지한다”(32조)는 표현이 추가되었다. 개정 헌법은 경제운영에 당이 주도했던 기존의 ‘대안의 사업체계’와 ‘독립채산제’를 삭제했다. 대신 기업의 ‘실제적 경영권’을 보장하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시행한다고 못박았다. 국가가 제시한 생산 목표를 채우면 그 외의 부분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생산, 판매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정헌법은 32조에서 “실리를 보장한다”라는 문구를 새로 넣으며 실사구시의 경제원칙을 재차 밝혀두었다. 사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와 관련한 김 위원장의 방침은 헌법 개정에 앞서 이미 실무 지침으로 제시되었다. 김정은은 집권 초인 2012년 6월 28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현실 요구에 맞게 우리 식의 경제관리 방법을 연구, 완성할 것”을 지시했다. 김정은의 현실 요구라는 표현은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교조적인 사회주의 경제원칙의 유연한 적용을 주문한 것을 의미한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이를 당과 군 소관이던 북한의 경제 사업이 내각으로 이관됐고 기업의 경영자율권이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경제운영 방식의 변화 의지를 매년 구체화했다. 북한은 2013년 3월 31일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주체사상을 구현한 우리 식의 우월한 경제관리 방법’을 완성할 것이라 밝혔다. 2014년에는 이른바 5.30 담화를 통해 ‘새로운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라고 특정했다. ‘김정은식 경제’가 헌법에 명시된 건 새로운 경제발전 방식을 최종 확정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김정은식 경제 운용 방식의 변화를 경제개혁이라고 진단하는 것은 여전히 한계가 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Riding the Tiger)’는 1978년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 방식의 경제개혁인지 단순히 찻잔 속의 태풍인지는 향후 경제 운용 결과물이 나와야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과거에도 수차례 유연하고 새로운 경제방식을 내세웠으나 자본주의 풍조의 만연을 우려한 당국의 제동으로 현장에서 시행되지 못한 전례가 비일비재한 만큼 헌법상의 조문 수정이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일성·김정일 시대를 관통하며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졌던 저작(著作) 표현들도 대거 삭제됐다. 2019년 헌법 개정으로 김일성이 1961년 12월 평안남도 용강군에 있는 대안전기공장을 현지 지도한 후 공장(工場) 당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제시한 기업소(공장)의 조직체계와 운영방식인 「대안의 사업체계」 는 58년 동안 공식적인 북한의 기업관리 시스템으로 작동하다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사라졌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기업 운영을 전문화하면서 집단경영체제를 도입하여 노동자들의 적극성을 유도하고, 관리자들의 관료주의를 제거함으로써 계획경영체제의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목적이었으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집단경영의 비효율성이 북한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기업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책임 소재와 목표량의 초과분에 대한 자유처분 권한을 인정한다는 판단을 하였다. 집단주의를 기초로 당 중심의 정치 사업을 기업 경영에서도 앞세우는 게 특징이었던 대안의 사업체계는 기업의 책임경영 강화 방향으로 선회했다. 북한 경제의 2대 경제관리 원칙인 「대안의 사업체계」 는 기업의 관리지침인 데 반해 청산리 방법은 농업의 기본지침이었다.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 도 개정 헌법에선 지워졌다. 「청산리정신, 청산리 모델」 은 ‘당 중심의 공산주의 지도 방법’으로 김일성이 1960년 평남 강서군 청산 협동농장을 현지 지도한 자리에서 지시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각종 기업과 농업관리 방식에서 관용적으로 사용하던 ‘우(위)가 아래를 도와준다’는 표현도 개정 헌법에선 삭제됐다. 기업에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기존에 당국이 책임을 져주었던 관행에 제동을 걸고 기업이나 농장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경영을 주문한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 내각의 역할도 헌법에서 강화됐다. 개정 헌법 33조엔 “국가는 생산자대중의 집체적 지혜와 힘에 의거하여 경제를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관리, 운영하며 내각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인다”고 규정했다. ‘내각의 역할을 높인다’는 표현은 이전 헌법엔 없었던 표현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대응하는 데 있어 당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외무역 분야에서의 국가의 역할도 한층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이전 헌법에서 ‘국가는 완전한 평등과 호혜의 원칙에서 대외무역을 발전시킨다’는 조항이 ‘국가는 대외무역에서 신용을 지키고 무역구조를 개선하며 평등과 호혜의 원칙에서 대외경제관계를 확대 발전시킨다’고 개정됐다.
경제발전에 마중물인 해외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발전 방식의 한계를 인식한 표현이지만 향후 과연 외자유치를 위해 법과 제도를 현실에 맞게 시행할 당국의 의지가 있는지가 향후 대외경제관계 성패의 관건이다. 2019년 헌법에서도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남겨뒀다. 북한 헌법은 서문에 북한을 정치사상 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 강국이라고 표현한 부분을 그대로 유지했다. 향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진척 여부에 따라 이 표현이 그대로 남을지 아니면 삭제될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무적의 군사강국이라는 구호에 걸맞게 김정은 위원장은 7월 21일 함경남도 신포조선소에서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돌아보시며 함의 작전전술적 제원과 무기전투체계들을 구체적으로 요해(파악)했다”면서 “잠수함은 동해 작전수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며 작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최대 3기 탑재가 가능한 최소 2000t 이상의 신형 잠수함이 건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당국이 군사강국을 지향하는 국정지표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정책과 헌법 개정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정책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마지막으로 2019년 북한 헌법 개정은 인적 수집 정보인 휴민트(Human intelligence)에 의한 정보 획득이 아니라, 7월 11일 북한의 자발적 공개에 따라 알려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선거에서 헌법을 개정한 지 3개월이 지나도 북한 당국에서 공개하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는 것이 국정원, 정보사 등 국내 정보기관들의 대북 정보 수집 능력이다. 687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대한 직·간접 접근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지난 1949년 9월 최고인민회의 1기 1차 회의에서 북한 헌법이 제정된 이래 14차례의 제정과 개정이 이뤄졌지만 제대로 적시에 파악된 사례가 있는지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9.19 공동성명으로 남북 화해 협력의 시대를 선언했지만 대북 정보 수집에 손을 놓고 있다면 정보기관의 존립 의의는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공개하지 않으면 북한 내부 사정을 정학하게 파악하려는 의지도, 능력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깜깜이 수준의 대북정보 수집 능력이라면 관련 기관의 예산과 인력 축소 논의가 불가피하다. 헌법 개정안을 분석하면서 북한에서 공개하지 않으면 3개월이 지나도 파악되지 않는 국내 대북정보 수집 체계에 답답함과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