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의 섬처럼 고립되는 한국의 외교와 안보

[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남성욱 교수 입력 : 2019.09.02 11:41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북한과 한 번이라도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인사들의 공통된 특징은 불쾌감이다. 2001년 평양에서 개최된 임진강 수해 방지 대책 회담에 대표로 참석하고 난 필자의 소감 역시 불쾌감과 이질감이었다. 

3박 4일 동안 밤낮으로 전개된 회담은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에 임진강 수해 방지 시설의 건설을 둘러싼 자재 지원과 현장조사의 순서를 둘러싸고 격론 끝에 결렬로 끝이 났다. 사실 실제 회담을 진행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회담 일정과 의제를 확정하여 주도권을 쥐기 위한 물 밑 기 싸움에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했다. 
회담 이전은 물론 결렬 이후 남측 대표단에 대한 신경전과 푸대접은 물론이고 험담과 비외교적인 언사는 전 세계 어느 국가와의 회담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사례였다. 북한과의 협상은 난해하고도 불쾌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북한은 자유주의 국가인 남한과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에서는 상대를 철저히 무시하고 압박한다. 

도대체 협상을 하려는 의사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대를 짓밟는다. 북한이 협상 상대를 무시하고 비인간적인 모멸감을 주어 상대가 백기를 들게 만드는 압박 심리 협상 전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외교 협상은 전쟁의 연속이 아니라는 지적은 외교 고전인 니콜슨의 <외교론>에 확실하게 명기되어 있지만 북한에게는 예외다. 훌륭한 협상자는 결코 그릇된 약속을 하거나 신의를 저버림으로써 협상의 성공을 도모하지는 않는다는 니콜슨의 발언은 적어도 북한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딘 러스크(Dean Rusk) 전 국무장관은 1968년 푸에블로 납치 사건을 둘러싸고 북한과 벌였던 10개월간의 협상이 그의 관료 생활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고 술회했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1950년〜1960년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회담을 주도하였던 직업 외교관 케네스 영(Kenneth T. Young)은 판문점에서 난무했던 날카로운 고성과 신경전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고 훗날 고백했다. 흔히 회담 시작과 말미에 통상적으로 오가는 덕담은커녕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북한 대표들은 미국 대표들에게 “자본주의 협잡꾼, 강간범, 도둑, 죽은 자 눈에서 동전을 훔치는 날강도, 국적 불명의 혼혈아, 전쟁광, 숫양과 붙어먹은 놈’ 등등의 험악한 욕설을 퍼부었다”고 아더 딘(Arthur Dean) 장군은 치를 떨었다. 

북한인들의 입에 담지 못할 비속어와 욕설은 회담장 안과 밖에서 중요한 무기였다. 판문점에서 열린 북한과 유엔사 간 협상에서 북한의 욕설이 심해지자 참다못한 유엔사 측이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리자 북측 수석대표는 “지금처럼 남한에서 군대를 데리고 꺼져버려! 빨리 없어지란 말이다. 이 개새끼들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북한의 욕설 행태는 상대를 공포로 몰아넣는 일종의 협상파탄 전술이자 협상 상대방인 미국인에게 서양문화의 자책감에 빠지게 하여 양보를 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상대를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압박하는 북한의 외교협상 전략은 세월이 가도 불변이며 최근 들어서도 여전하다. 2005년 7월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타진하기 위해 북경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났던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6자회담 대표는 그의 회고록 <미국 외교의 최전선, Outpost>(2014, 메디치)에서 “북한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인 대화도 비즈니스였다. 코소보 문제 해결을 위한 발칸에서의 경험과 달리 북측 인사들과는 10대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스포츠나 취미 얘기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거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아무리 회담을 거듭해도 서로를 거의 알지 못했다”고 북한과의 협상에 대한 어려움을 언급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도 북한이 협상에 임하는 전술과 자세를 평양의 외교관 양성기관인 국제관계대학에서 배웠다고 그의 회고록 <3층 서기실의 암호>(2018, 기파랑)에서 밝혔다. 국제관계대학은 협상 전 육체적 준비,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방법, 협상을 깨는 방법, 협상에서 고지를 선점하는 방법 등으로 구분해서 구체적으로 가르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중요한 협상에 나가기 전에는 3일 전부터 특이한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협상 도중 화장실에 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물도 잘 안 마신다.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담 때에는 북한과 미국 간의 신경전으로 13시간이나 앉아 있다가 결국 미국 대표가 먼저 일어났다. 회담을 깨버려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다짜고짜 상대방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져 흥분시켜야 한다.

북한이 최악의 거친 수준의 막말을 하는 심리전 측면의 이유는 내부와 외부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외부적 측면에서 볼 때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다. 인터넷 시대에 점잖은 표현이나 외교적인 수사를 사용하여 발언할 경우 어느 나라, 어느 언론이 주목하겠냐는 입장이다. 특히 개인이나 특정 대상에 대해서는 인신공격성 비난을 통해 상대가 겁을 먹게 한다. 남한의 유명 인사들에게 북한은 소위 ‘찍히면’ 피곤하며 화제의 대상이 되는 것은 품위에 맞지 않는다는 무의식적인 기피 인식을 갖게 한다. 최근 평소 북한에게 우호적인 박지원 의원이 강원도 통천 부근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최소한의 금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트위터에서 지적하자 바로 다음 날 북한은 박 의원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조선중앙통신은 8월 18일 논평에서 박 의원의 북한 발사체 비판은 “입에 담지 못할 험담질”이라며 “북한과의 연고를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해먹고 이제 와서 배은망덕한 수작을 늘어놓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언어 테러 수준의 비판으로 재갈을 물려야지 제2, 제3의 발언을 막을 수 있다는 배신자 응징 및 유사 사례 재발 억지 전술이다. 

내부적으로는 최고 존엄인 김정은을 지키려는 우회적인 대응전략이다. 남한에서 김정은의 신상발언이나 정책 등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나왔을 때 이를 강경 대응하지 않는다면 북한 내부에서도 유사한 비판 여론이 나올 수 있다는 판단하에 극단적인 비난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북한 전역에 걸려 있는 “김정은을 결사 옹위하자”는 구호는 북한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관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정치 구조를 볼 때 북한은 항상 미국이나 한국에 대한 증오감과 투쟁심을 북한 주민들 내에서 끊임없이 자극해야 한다. 외부의 적이 끊임없이 자신들을 공격한다는 포위의식(siege mentality)을 주입시켜 거친 대응을 인민들에게 주문한다. 경제적 위기 등에 대한 인민들의 불만을 미국의 경제제재 등 외부요인으로 전가하는 희생양 만들기 전술이다.

2013년 10월 28일 북한 선전선동 매체인 <우리 민족끼리>는 18명의 언론인과 교수, 전문가의 실명을 공개하고 이들을 집단 비난했다. 대상자 18명의 공통점은 김정일과 김정은을 비판했다는 점이다. 조선, 동아, 세계, 문화일보 등 신문과 연합뉴스, KBS, MBC, SBS 등 방송 기자들과 신문에 북한 비판 시론을 게재하였던 전문가 18명에 대해 괴뢰 보수언론의 나팔수라고 비난했다. 필자 역시 명단에 올랐다. 중앙일보 2013년 10월 24일자 “김정은 2년 통치의 3대 키워드” 제하의 시론에서 “최고 존엄인 김정은을 불안한 통치자”라 언급했던 것이 북한 선전선동부의 심기를 거슬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욕설과 험담이 화두가 된 이유는 최근 들어 한국 정부는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욕설의 목표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보수 정부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역사의 시궁창에 처박힌 역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정신병자, 특등 대결광’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남북이 대립하던 시절이라 북한이 “뜻대로 안 되니 또 시작하는구나”라고 무시했다. 집권 이후 북한에게 우호적인 문재인 정부에게는 비교적 비난을 자제하였거나 비난하더라도 남한 전체를 두루뭉술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지난 8월 이후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막말 수준의 비난이 시작되었다. 입장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8월 16일 대변인 명의 담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폄하했다. “아랫사람들이 써준 것을 그대로 졸졸 내리읽는 남조선 당국자”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과 같은 거칠고 비외교적인 표현을 썼다. 문 대통령의 실명은 언급하지 않아 ‘금지선(red line)’은 지켰지만, 북한 당국이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것은 근래 없던 일이다. 조평통은 문 대통령이 전날 광복절 기념사에서 제안한 평화경제 구상에 대해선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비아냥댔다. 또한 “북쪽에서 사냥총 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에 애써 의연함을 연출하며 북조선이 핵이 아닌 경제와 번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력설하는 모습을 보면 겁에 잔뜩 질린 것이 력력하다”고 힐난했다.

북한의 막말 공세는 지난 4월 시작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를 하지 말라”고 남한을 비난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노딜(no deal)을 수습할 방안을 찾는 중이었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국장은 6월 담화에서 남한의 북미대화 중재 노력에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고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다. 한미 연합지휘소훈련이 시작된 8월 11일 이후 북한은 막말의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권정근 국장은 담화에서 청와대를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개”라고 비하했다. 또 “군사연습을 한 데 대하여 하다못해 그럴싸한 변명이나 해명이라도 성의껏 하기 전에는 북남 사이의 접촉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며 남북 대화 단절까지 거론했다. 이어 조평통은 8월 16일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다시 마주앉을 생각도 없다”고 협박했다.

남한에 대한 북한의 막말 전략의 의도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남측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진보정부라는 판단하에 과거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처럼 상당한 경제적 지원을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핵과 미사일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유발한 북한에게 경제적 지원은 유엔 제재 위반이라 문 정부도 불가항력이다. 제재 위반을 내세워 대북지원에 나서지 않는 문재인 정부가 집권 3년 차에 들어간 만큼 이제 기대를 접는 수순의 벼랑 끝 압박으로 남한의 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다음은 중국의 확실한 지원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으로 남한의 효용가치가 낮아졌다는 평가다. 북한 입장에서는 중국의 대북 지원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남한의 5만 톤 식량 지원은 명분이나 실리 측면에서 거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난 오사카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격 성사된 6월 25일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평양 방문은 김정은 집권시대 양국 혈맹 관계의 복원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2011년 12월 30일 김정일의 사망 이후 총사령관의 직위로 북한의 3대 지도자에 오른 김정은에게 중국 최고 지도자와의 정상회담은 숙원 사업이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시 주석은 김정은을 앞세워 북핵과 무역으로 전선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하였고 이는 전격적인 평양 방문으로 이어졌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결정한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올해 6월 방북 이후로, 조만간 쌀 80만t을 선박 편으로 보낼 예정이라고 일본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옥수수를 포함하면 중국의 대북 식량지원 규모는 100만t 전후가 될 전망이라고 한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북한은 가뭄의 영향으로 지난해 식량 생산량이 전년대비 12% 감소해 100만 명 이상이 굶주림 상태에 빠졌다. 중국의 연구기관도 올해 북한에서는 150만~180만t의 곡물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올해 5월 국제기구를 통해 총 800만 달러의 대북 인도적 지원 계획을 발표하고 쌀 약 5만 톤을 보내려 했으나 북한은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지원을 거부했다. 북한은 한미 합동군사훈련 재개로 한국과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사히는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은 중국의 지원으로 식량이나 경제사정에서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한국에) 더욱 강경하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무대응으로 일관해온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다만 ‘점잖게’ 대응했다. “북한의 그러한 발언은 남북정상 간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합의정신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북관계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8월 16일 정부가 내놓은 공식 입장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불만스러운 점이 있더라도 대화를 어렵게 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정부는 그간 한미연합훈련이 북측을 겨냥한 야외 기동훈련이 아니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한 연합지휘소훈련임을 여러 차례 설명했다”며 “북측의 비난은 도를 넘는 무례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초지일관 북한을 유리그릇 깨지지 않게 잘 관리하자고 강조하며 평화경제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북한의 대남 비난을 계속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의 온건한 입장을 포기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전격 파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방위비 협상을 앞두고 한미군사훈련이 싫다고 연일 떠들어댄다. 북한은 한미군사훈련 연습이 종료되었지만 미사일을 발사하며 신무기 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선전하고 있다. 한국의 외교 안보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동북아의 갈라파고스의 섬처럼 고립되고 있다. 혼돈의 한반도 어디로 가는가?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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