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입법의 발의 전 절차적 제도 도입

[정재룡의 입법의 현장]

전 국회 교육위원회 정재룡 입법 칼럼니스트 입력 : 2019.09.03 09:30
▲정재룡 입법 칼럼니스트 전 국회 교육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우리나라는 행정부가 국가의 형성과 발전을 주도함으로써 입법에 있어서도 주도권을 행사해왔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소위 통법부 시대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보니 14대 국회(1992년〜1996년)에서도 정부입법 가결률은 92%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의원입법이 활성화하면서 법안 제안의 주도권자가 정부에서 국회의원으로 바뀌었고 정부입법의 가결률도 19대 국회에 73%까지 떨어졌다. 

특히 17대 국회에 의원입법이 급증하면서 법안 제안 건수(정부 제출 포함)가 7489건에 달하여 16대 국회 2507건에 비하여 무려 약 200% 증가하였다. 이후에도 법안 제안 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대 국회는 위원장 제안을 제외하더라도 2만 건을 넘어섰다.

이제 더 이상 정부입법 시대라고 할 수 없다. 바야흐로 의원입법 시대이다. 그러나 단순히 법안 제안 건수나 가결률이 전부는 아니다. 폭증하는 의원입법의 내용이 중요하다. 의원입법이 그 내용에서 품질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단순히 양적 팽창으로 의미 있는 평가를 받을 수 없다. 그 경우 오히려 국가법령질서에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실제 사례를 통해 분석해볼 때 의원입법의 부정적 결과가 드러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10월 고급골프장 등에 대한 수용권 부여에 대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했는데, 그 취지는 공익적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민간의 사업에 대하여는 공용수용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헌법재판소는 공익성이 인정되는 사업이라도 사업자의 이윤 추구로 그 사업 시행으로 획득할 수 있는 공익이 현저히 해태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제도적 규율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위헌성이 있는 민간수용권 규정이 2000년 이후 의원입법을 통해 양산되어왔다.

개별 법률상 공용수용권 규정의 특징 중 하나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사업인정 절차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한 ‘사업인정 의제’ 조항이다. 사업인정은 개인의 재산권을 강제로 취득하는 것을 정당화할 정도로 공익적 필요성이 인정되는 사업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이다. 그런데 개별 법률에서 공용수용권을 규정하면서 이러한 사업인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사업시행에 대한 행정처분이 있는 경우 사업인정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조항을 함께 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에 따라 사업인정 절차가 유명무실화되고 있다. 이처럼 사업인정 의제는 사업시행의 편의에 지나치게 치우쳐진 제도로서 공익성 검증을 면탈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민간수용에 사업인정 의제가 허용된 경우인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것은 대부분 의원입법으로 허용되고 있다.

성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입법의 경우 형법의 규율대상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의원입법을 통해 특별법이라는 모자가 덧씌워지면서 규율대상이 일부씩 분리되어나가는 특이한 입법경과를 가지고 있는데, 이로 인해 현행 법률이 적지 않은 문제점을 잉태하게 되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비롯하여 10여 개에 달하는 여러 형사특별법으로 인하여 「형법」을 비롯한 형사기본법이 형해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 특정 구성요건에 대한 법정형이 짧은 시일 안에 급격하게 상향조정되면서 다른 구성요건에 대한 법정형과 비교하여 구성요건의 불법성과 법정형의 역전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 유사·중복규정이 산재하여 적용법규가 불명확하거나 형사처벌의 흠결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처럼 의원입법에 의한 형사특별법의 양산과 이에 따른 성폭력범죄 처벌규정들의 복잡성은 법적용에 있어서 자의성이나 착오를 야기하여 처벌의 형평성을 저해하고 법체계에 대한 신뢰를 상실시키고 있다.
또한, 의원입법 중 내용상 문제가 커서 가결되지 못하고 임기말 폐기되는 비율이 50%를 상회하고 있는데, 이렇게 결함이 있는 의원입법의 양산으로 인해 의원입법의 가결률이 크게 하락하고 국회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
이상의 사항들을 놓고 볼 때 의원입법의 양산에 따른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문제가 앞서 언급한 사항들에 그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민간수용권 입법을 모두 위헌적 입법으로 볼 수는 없지만, 의원입법의 경우 입안 이후 발의 전 또는 국회심사과정에서 공익성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게 문제가 된다.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입법의 경우도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사건에만 대응한, 급조된 대증요법식 의원입법으로 입안 이후 발의 전 또는 국회심사과정에서 현행법체계와의 정합성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된다.

결국 의원입법의 양산에 따른 부실 입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원입법의 발의 전에 문제점을 수정·보완하는 절차를 필수적으로 거치도록 하고, 국회심사과정에서도 문제점을 수정·보완할 수 있도록 개선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는데, 여기서는 발의 전 단계의 개선책만 논하기로 한다.
정부입법의 경우는 소관부처에서 법안을 입안한 이후 관계부처협의, 입법예고, 규제심사, 법제처심사 등의 절차를 거쳐 문제사항들을 삭제하거나 수정·보완하여 완성도를 높인 후 국회에 제출한다. 그 결과 정부입법은 당연히 가결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반면, 의원입법은 정부입법에 있는 것과 같은 절차가 없고 입안만 하면 언제든지 발의할 수 있다. 그 결과 의원입법의 가결률이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위헌성을 포함하여 문제 있는 사항들이 입법화되는 결과도 피하기 어렵다. 정부입법이라고 법안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의원입법의 문제가 더 큰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정부에서 입안한 것인데도 정상적으로 정부입법으로 추진하지 않고 의원에게 부탁하여 의원입법으로 추진하는 것이 많다. 이러한 법안 중에는 시급성이 인정되는 것도 있지만, 관계부처협의와 규제심사 등 정부입법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절차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원입법으로 추진되는 것이 더 많다고 봐야 한다. 결국 정부입법의 편법적인 추진에 의원입법이 이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결국 의원입법도 발의 전에 정부입법에 있는 것과 같은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입법은 법제처심사가 의무화되어 있는 반면, 현재 의원입법은 법제검토절차가 의무화되어 있지 않은데, 의원입법도 발의 전에 국회 법제실의 검토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해야 한다. 현재도 의원이 국회 법제실에 입안이나 법제검토를 의뢰하여 입법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는데, 관련하여 19대 국회(2015년 11월 기준) 중에 법제실에서 정식으로 회답하기 전에 법제실의 부정적 의견을 수용하여 스스로 의뢰를 철회한 것이 37.7%이고, 법제실의 회답을 받은 이후에도 발의하지 않은 것이 60.7%였다. 현재 의원입법의 법제실 경유율은 50%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를 볼 때 의원입법의 법제검토를 의무화하기만 해도 문제 있는 의원입법의 발의가 대폭 축소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소위 심사를 한 번도 거치지 않고 임기말 폐기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법안들은 대폭 걸러질 것이다.

정부입법의 경우 국회 제출 전에 가장 중요한 절차가 관계부처협의인데, 현재 의원입법은 발의 전 그런 절차가 없을 뿐만 아니라 발의 이후에도 국회법상 어느 심사과정에서도 관계부처협의를 실시하도록 하는 명시적인 규정은 없다. 현재 법사위원회의 체계·자구심사과정에서 사실상 관계부처협의를 실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국회법상 근거를 갖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의원입법의 법제검토를 의무화하면서 동시에 법제실에서 관계부처협의를 수행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각 상임위원회에서 의결된 모든 법안이 일시에 몰리는 법사위원회보다 법제실에서 시간을 두고 관계부처협의를 실시하는 것이 입법의 내실화를 위하여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역대 정부의 지속적인 규제개혁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체 규제 건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정부입법의 경우 「행정규제기본법」에 따라 규제개혁위원회에서 규제심사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불합리하거나 과도한 부담을 안기는 규제는 걸러지는 반면, 의원입법은 그러한 절차가 없어 문제 있는 규제들이 대부분 의원입법으로 신설 및 강화되고 있다. 행정부가 규제의 신설 및 강화를 추진하면서 규제심사를 회피하기 위하여 의원입법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많다. 의원입법 때문에 규제심사제도가 거의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의원입법도 정부입법처럼 발의 전에 「행정규제기본법」에 따른 규제심사와 유사한 절차를 거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서 규제심사는 국회입법조사처가 수행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입법예고의 경우는 의원입법도 실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발의 이후 위원회에서 형식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입법예고를 의원입법 발의 전에 해당 의원실에서 실시하도록 하고 정부입법 수준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입법예고의 기간도 정부입법은 40일인 점을 감안하여 현재 10일 또는 15일에서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행정절차법」에 따르면 정부입법은 의견이 제출되는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이를 존중하도록 하고 의견제출자에게 그 의견의 처리결과를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반면, 「국회 입법예고에 관한 규칙」은 같은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제출된 의견이 소홀히 취급될 우려가 있으므로, 의원입법의 입법예고에도 「행정절차법」의 취지와 같이, 제출된 의견을 존중하도록 관련 규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의원입법의 발의 전에 이와 같은 절차를 거치도록 하되, 그 절차를 정부입법의 절차와 완전히 동일하게 운영하자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차이는 정부입법의 경우 각각의 절차에서 법안의 수정이 거의 강제되는 반면, 의원입법은 법안의 수정을 강제하지 않고 단순히 절차의 이행을 요구하고 발의할 때 그 내용을 각각 결과보고서로 첨부하여 발의 이후 국회심사과정에서 그 내용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한 정부입법은 4단계의 절차를 순차적으로 이행하도록 하여 4개월여의 기간이 소요되지만 의원입법은 4단계의 절차를 동시에 이행할 수 있게 하여 입법추진이 장기간 지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40여일 정도 소요될 것이다.
다만, 신속한 국민의 권리 보호 또는 예측 곤란한 특별한 사정의 발생 등으로 시급성이 인정되는 의원입법인 경우에는 그러한 절차 이행에 예외를 허용해야 한다. 예외 허용의 요건으로는 예외가 너무 쉽게 허용되어서는 안 되므로 교섭단체 대표의원 간에 협의를 거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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