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중국에 필요한 건 ‘홍콩과의 대화’"

[인물포커스]“강경 진압하면 천안문 사태 버금… 믿고 같이 가자고 설득해야”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입력 : 2019.09.05 09:49

▲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사진=더리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홍콩사람들은 왜 거리로 나왔을까?


2014년 우산혁명에 이은 두 번째 대규모 시위다. 8월 셋째 주 주말 170만 명의 시대위가 모였다. 중국의 무력개입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금의 시위는 ‘범죄인 인도법 반대’를 위해 시작됐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정치학 교수는 홍콩 문제에서 본질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1997년 영국의 통치를 받던 홍콩이 중국으로 귀속되면서부터 갈등은 시작됐다. 홍콩사람들은 본인을 ‘중국사람(Chinese)’이라 소개하지 않는다. ‘홍콩인(Hongkonger)’이라고 표현한다. 강 교수는 일종의 ‘선민의식’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특수한 지위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19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기 전 ‘홍콩기본법’이 제정됐다. △한 국가 두 체제(일국양제, 一國兩制)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항인치항, 港人治港) △법률적 중심권을 포함하는 고도의 자치를 인정받는 것이 골자다.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와 생활양식이 50년간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고 보장했다. 1997년 협정 후 21년이 지났다. 홍콩시민들은 사실상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28년이 남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홍콩사람들은 불안감이 커진다.


2014년 직선제 쟁취를 위한 ‘우산혁명’에서 홍콩사람들은 평화로운 시위는 중국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홍콩 시위 문제의 본질을 듣기 위해 지난달 20일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찾았다.


-홍콩은 어떤 나라인가
▶홍콩은 작은 어촌이었다. 영국이 아시아 무역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개발한 도시다. 점점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중국 본토에서도 많이 들어왔다. 1997년 7월 홍콩이 중국에 귀속됐다. 중국의 자본과 사람들이 들어왔다. 기존에 살던 홍콩사람들과 갈등이 생겼다. 홍콩사람들한테는 일종의 ‘선민의식’이 있다. ‘중국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국정부에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홍콩도 중국의 일부라는 게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홍콩사람들은 특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는 입장이다.

-문제가 왜 이렇게 복잡해졌나
▶1984년 홍콩이 영국 식민지였을 때 당시 영국 수상이 마거릿 대처였다. 홍콩 반환 문제로 마거릿 대처와 중국의 조자양 총리가 협상을 했는데 실권자는 덩샤오핑이었다. 덩샤오핑이 홍콩을 반환받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 이게 ‘일국양제’라는 것이다. 50년 동안 주권은 중국에 있지만 홍콩의 자본주의나 민주주의 제도, 생활 방식을 전혀 터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시 협상 테이블에서 제시한 게 홍콩 기본법의 골자인 △한 국가 두 체제(일국양제, 一國兩制)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항인치항, 港人治港) △법률적 중심권을 포함하는 고도의 자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무엇인지
▶협정을 맺고 난 이후 홍콩사람들은 하나도 이뤄진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선 ‘일국양제’에 대해서는 덩샤오핑 시절과 시진핑 시절의 개념이 다르다. 덩샤오핑 시절에는 중국 정부와 홍콩 정부가 각각 다른 제도를 쓴다는 개념이었다. 시진핑 시절에 개념을 조금 바꿨다. 중국이라는 하나의 나라가 있어야 두 체제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의미는 중국으로 하나가 되고, 주권도 중국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가 담긴 보안법을 2003년 입법화하려고 하다가 실패했다. 중국은 꾸준히 홍콩을 ‘중국화’하려고 한 것이다.
홍콩인에 의한 통치도 사실상 중국에 우호적인 인물을 세워놓는 경우가 많다. 중국인이 내정한 사람이 총리가 됐다. 고도의 자치를 이룬다는 것의 골자는 홍콩은 홍콩 헌법격인 종심권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바꿀 수 없다. 그런데 홍콩은 판결에 대한 최종 해석권이 중국의 전국인민대표 상무위원회에 귀속됐다. 중국 중앙이 홍콩에 대한 전면적 관할권을 가진 것이다. 또 이번에 범죄인 인도법을 발의하겠다고 해서 시위가 일어났다.

▲지난달 24일 홍콩 쿤퉁 지역에서 시위대가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 이태성 기자
-범죄인 인도법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범죄인 인도법은 범죄를 저지른 나라에 가서 처벌받는 것이다. 이건 사실 당연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범죄인 인도법이 있다. 범죄자가 다른 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그 나라로 다시 보내야 하는 것 자체로는 잘못된 게 없다. 그러나 홍콩사람들은 이 법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을 비방했거나 반대한 것을 범죄로 몰아가 중국으로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국으로 가면 중국 법을 적용받는다. 홍콩사람들은 중국 법은 자의적이고, 비민주적이고, 비인권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는 것이다.

 -직선제도 이뤄지지 않았다
▶반환 20년 후 시행하기로 한 직선제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약속대로라면 2017년에 직선제가 됐어야 했다. 2013년 9월에 홍콩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79일간 시위를 벌였는데도 관철시키지 못했다.

-1997년 반환될 때 홍콩사람들이 반발하지 않았나
▶1997년 협정을 맺을 때는 홍콩사람들도 일단 적응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21년이 지났다. 50년 협정은 앞으로 28년밖에 남지 않았다. 홍콩사람들은 미래가 불안한 것이다. 지금 폭력 시위가 된 것도 중국과 싸우는 것 자체가 게임이 되지 않으니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국제화도 시도하고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중국의 무력 사용 이야기도 나온다
▶지금 시위 자체가 굉장히 폭력적이다. 사람이 죽기도 하고 최루탄에 실명 위기까지 간 사람도 있다. 데모를 세게 진압하지 않았나. 시위가 시작된 이후 700명 이상이 체포됐고, 그중 50여 명은 폭동죄로 기소됐다. 중국정부는 경고의 의미로 인민무장경찰을 배치했다. 여차하면 들어가겠다는 것인데 그러지 않을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무력이 들어가면 복잡해진다. 홍콩은 비무장 군중이다. 데모한다고 도시가 전복되는 것도 아니다. 주권 보호라는 명목으로 들어가면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홍콩은 중국도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지역이다. 현재 중미 무역갈등이 심한데 미국에게 홍콩은 예외다. 1992년 미국이 홍콩법을 만들어 중국과 홍콩의 경제를 따로 구분했다. 아직 미국과 관세전쟁을 하더라도 홍콩은 예외니까 홍콩을 통해 받을 수 있다. 중미가 싸울수록 홍콩의 지위는 높아진다. 홍콩은 여전히 국제 금융도시로서 위상을 지닌다. 자유무역항 기능을 한다. 직간접적으로 중국투자의 60%가 홍콩시장과 관계돼 있다. 중국이 무력으로 진압하면 홍콩의 글로벌 자본이 외부로 빠질 수 있다. 중국이 그런 후유증을 감수하면서 무력진압을 하긴 쉽지 않다. 홍콩사람들도 알고 있다. 12주째 시위하는 자신감이기도 하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사진=더리더
-지금 시위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20대가 많다
▶1997년 반환 이후 세대다. 그들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넘어온 거대 자본과 인력에 홍콩사람들이 갈 곳을 잃었다. 취업을 할 때도 중국인에 비해 대접을 못 받는다. 굉장히 고급인력이어도 쉽지 않다. 홍콩사람들은 경제적 약자가 됐다. 홍콩은 중국의 관문이었다. 10년 전부터 광동성만 관문으로 쓰라고 권위를 축소시켰다. 홍콩이 누려왔던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불만들이 쌓여 길거리로 나온 것이다.

-외국에서는 어떤 반응인가
▶트럼프도 트위터를 통해서 중국에 경고한다. 영국 마찬가지다. 영국의 마지막 총독 크리스토퍼가 “중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우리는 협상 당사국으로 중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언급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 소속이다. 내정간섭이라고 반박한다. 중국은 국제적으로 문제를 알리는 것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1980년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과 비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학생운동의 뿌리는 깊다. 또 확실한 지도부가 있었다. 대학이 많고 강력한 군부독재에 시달려서 저항의식이 있었다. 홍콩은 영국 식민지로 살다가 중국에 소속돼 박탈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다. 누군가 강하게 이끌고 갈 세력, 구심점이 없다. 시민사회가 사회를 제어하는 역량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 시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강경하게 나아가야 한다’, ‘평화롭게 가야 한다’ 등 의견이 나뉜다. 시위로 시민들의 의지는 보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투쟁으로 이어지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들끼리 똘똘 뭉쳐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그래서 시위가 오래 지속될 것 같지 않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선 홍콩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우리를 믿고 같이 가자고 홍콩정부를 통해서 시민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중국의 성의를 홍콩시민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강경 진압하면 천안문 사태 버금가는 견제를 받게 될 것이다. 사실 중국이 홍콩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홍콩과 비슷한 상황은 아니지만 대만이나 티베트 등에서도 자치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빌미를 주기 때문이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중국 대외경제무역대학교 객좌교수
중국 베이징대학교 객좌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 중국어통번역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중국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국제교류협력실 실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