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협상 3라운드에 들어가는 북한과 미국, 노딜이냐 굿딜이냐 갈림길!

[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남성욱 교수 입력 : 2019.10.01 10:56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북한과 미국이 다시 만난다. 지난 2월 말 하노이에서 ‘노딜(no deal)’을 선언하고 각자 갈 길을 간 후 8개월 만이다. 당초 일정을 변경하여 문재인 대통령도 뉴욕에서 취임 후 9번째 한미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북미 간에 합의를 촉진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동안 북한은 미사일과 신형방사포를 10차례 발사하며 미국이 자신들의 존재를 망각하지 말고 대화에 나설 것을 압박했다. 평양은 시간이 기약 없이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연말까지라는 정상회담의 개최 시한을 제시했다. 지난 6월 말 오사카 G20 정상회담 이후 판문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깜짝 회동함으로써 양측이 정상회담의 이벤트를 끌고 갔다. 트럼프는 비무장지대(DMZ)에서 김정은과의 만남이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을 만한 빅이벤트라는 것을 사전에 간파했고 성사시켰다. 싱가포르, 하노이 및 판문점 등 양 정상 회동의 흥행은 절정에 달했다. 이제 양측이 만나서 언론 보도용 사진만을 찍고 헤어진다면 결국 ‘리얼리티 쇼’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성과’를 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양측은 10월 실무협상을 재개할 예정이다. 북미 정상회담은 형식적으로는 톱다운(Top down) 방식을 통해 비핵화 합의 도출을 기대하나 경험상 실무단계에서 합의문 초안이 작성되어야 한다. 김 위원장이 실무협상에서 논의한 불완전한 협상안을 가지고 보좌관들을 물리치고 정상회담의 구석진 무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유혹하여 전격 서명을 하게 만드는 ‘유인전략’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실무협상 합의문 초안에서 주고받기의 구체적인 가닥을 담아야 한다. 실무협상에서 합의하지 못하면 정상회담에서도 합의할 수 없다는 하노이 노딜의 교훈을 새기고 양 보스의 의견이 사전에 충분히 조율되어야 정상회담에서 서명될 수 있다. 정상회담 현장에서 상대를 설득하여 빅딜이 이뤄지는 각본 없는 극적 드라마는 영화 주제에 불과하다.

하노이 회담 이후 계절이 3번 바뀌었기 때문에 주변 환경도 변화가 있었다. 우선 북한이 그동안 협상에서 이를 갈며 비난했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퇴진했다. 대북 강경파인 볼턴은 그동안 선(先) 핵포기 후(後) 보상의 리비아 방식으로 북한 비핵화를 주장하며 대북 압박과 제재를 강조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과 이견이 심했던 볼턴을 경질하고 오브라이언 인질 담당 특사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이 주장했던 리비아 방식이 “말이야 쉽지만 현실적이지 않다”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볼턴은 경질 3일 만에 백악관에서 일했던 과거 외교 안보 참모들과 같이 트럼프의 대북협상이 실패할 것이라고 비관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한편 트럼프 미 대통령은 9월 18일 북핵 협상과 관련해 “리비아 방식을 언급했던 것이 우리를 지연시켰다”며 “어쩌면 새로운 방식(new method)이 매우 좋을 수도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북미 간의 협상이 기존과는 다른 궤도로 진입하는 것이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리비아 방식’의 핵심은 체제 보장이나 제재 해제 같은 보상 조치 이전에 선제적으로 핵무기나 핵 물질, 핵 장비를 반출하는 것이다. 리비아는 2003년 말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후, 2004년 1~9월 사이에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를 비롯해 핵무기 제조와 관련된 장비·서류 일체를 미국에 제출했다. 미국은 핵 프로그램 반출이 이뤄진 이후인 2004년 9월 금융 제재를 풀고, 비핵화가 완전히 종료된 후인 2006년에야 리비아와의 국교 정상화 및 테러 지원국 해제를 했다. 볼턴은 이 방식을 지지하며 북한 핵무기의 반출이 보상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북한은 리비아 방식에 강력 반발하며 볼턴을 ‘인간쓰레기’ ‘흡혈귀’라고 비난했다.

하여튼 볼턴의 경질을 쌍수를 들어 환영한 쪽은 평양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자신들에게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 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를 압박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까지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9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경질을 환영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단 볼턴의 경질과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방법’ 발언으로 인해서 협상에 대한 북한의 기대치는 높아지고 있다. 북미 실무협상의 북측 수석대표로 알려진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전 베트남 주재 북한대사)는 9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리비아식 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방법’을 언급한 것을 환영하며 향후 진행될 협상 결과에 낙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앞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9월 9일,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며 북미 실무협상 재개 의사를 밝혔다. 워싱턴과 평양은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계산법’이라는 키워드로 상대의 입장 변화를 장외에서 촉구하고 있다.

협상 분위기를 조성하는 과정에는 트럼프 대통령도 가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2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관계 구축이 재임 기간 미국에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이라고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양자 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북한을 언급하며 “나는 적어도 3년 동안 이 나라에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은 내가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라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긍정적인 일이라고 본다. 그의 나라(북한)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그(김정은)도 이런 사실을 안다”고 주장했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 ‘새로운 방법(a new method)론’을 꺼낸 트럼프 대통령은 실무협상 재개를 앞두고 유화적 신호를 보내는 모양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방식’이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이 강한 거부감을 보였던 ‘리비아 방식’을 비판하며 ‘새로운 방식’을 언급한 것 자체가 북한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끌고 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새로운 방식’은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여 북한 체제 보장과 제재 해제를 북 비핵화 조치와 병행하는 단계적 방식을 추진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방식’을 언급하면서 “어쩌면 매우 강력한 공격(attack)일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요컨대 협상과 함께 압박을 언급하는 모호성 전략을 유지하여 북한이 최대한 비핵화에 나서도록 하는 전술을 구사한다.

실무협상을 위한 사전 분위기는 충분히 조성되었다. 분위기 조성이 협상 타결로 이어질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과연 양측은 연말까지 ‘새로운 방식’으로 비핵화 협상을 타결할 것인지 다양한 변수와 시나리오들을 진단해보자. 우선 외부변수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다. 트럼프는 본인의 재선이 불확실하다고 판단하면 지옥이라도 갈 심산으로 다양한 깜짝 카드를 꺼낼 것이다. 플로리다, 미시간, 위스콘신 등 민주당과 공화당의 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10개의 주(swing states)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밀린다는 예측이 나오면 파격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다. 그중의 하나가 북한과 ‘전례없는 협상’이다. 북한이 영변핵만을 포기하는 대가로 제재 완화와 연락사무소 설치, 주한미군 철수 및 종전선언 등 북한이 요청했던 다양한 안을 수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여전히 유효한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대선 레이스가 본인의 전략대로 우세를 유지하여 재선 확률이 높다면 리스크가 적지 않은 파격적인 협상안보다는 현상 유지적인 ‘김정은에 대한 관리 전략’을 고수할 것이다. 금년 가을 실무협상에서 미국은 대북 보상 방안을 논의하되 의회에 보고해야 하는 제재 해제보다는 북·미 간 연락사무소 개설과 같은 체제 보장 조치를 먼저 논의하는 협상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미·북이 모든 것을 일시에 타결하는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협상 방식을 포기하고 하나하나씩 점진적으로 주고받는 방안이다. 빅딜(big deal)이냐 스몰딜(small deal)이냐의 방식에서 작은 것부터 합의해서 이행해가며 신뢰를 구축하는 스몰딜의 방식이 채택되는 것이다. 스몰딜 방식은 양측의 주고받기를 소규모로 구분하고 이행하여 협상 모드를 유지해나간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북·미 양측이 핵심에 도달하지 못하여 일정 시점에 협상 동력이 약화된다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영변핵과 강선 등 플러스 5개의 우라늄 농축시설이 비핵화의 대상이지만 스몰딜 협상으로 영변만의 비핵화만 진행하는 데도 수년이 걸린다면 미국의 대북 보상 역시 상응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완화보다는 북미 간 연락사무소 설치 등 북한 체제 안전 보장에 치중한다면 평양의 불만은 고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북한이 ‘단계적 해결(step by step)·동시적’ 해결방식을 곡해하여 최종 비핵화의 목표는 감추어놓고 살라미 전술(salami strategy)로 미국의 보상만을 도모하는 ‘점진적(incremental) 비핵화’를 상상한다면 협상은 과거의 재판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그동안 희망했던 스몰딜 방식이 도입되더라도 가장 중요한 변수는 대북제재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의 마지막까지 제재의 카드는 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북한이 협상에 나오는 결정적인 이유는 대북제재라는 확신을 하고 있으며 이번 유엔총회에서도 이를 확인했다. 2016년 이후 6개의 안보리 제재안은 북한의 돈줄을 틀어막았다. 유엔 안보리는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후 지금까지 모두 11건의 대북제재를 결의하였다. 이 중 6건이 2016~2017년 결의됐고 무기 거래와 관련된 특정 기관과 개인을 제재한 2017년 6월 결의안을 뺀 나머지 대북 제재안들이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하노이 회담 결렬 당일 심야 기자회견에서 자신들이 미국에게 요구했다고 밝힌 5건의 유엔 제재였다. 역대 미국 행정부의 대북제재는 470건으로 이 중 절반이 넘는 240건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시행되었다. 최고 수준의 대북제재가 북한을 협상장에 나오게 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허구가 아니며 모든 제재는 상호 연계되어 촘촘한 저인망 그물 수준이다. 하노이 회담은 돈줄을 죄는 간접제재의 성과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전에 미·북 간 회담에서 북한은 종전선언 및 평화체제 등으로 주한미군 철수 등의 안보상 우려 해소가 우선이었다. 하지만 제재로 먹고사는 민생은 물론 김정은의 금고인 평양의 궁정경제조차 펀드멘털이 흔들리고 있다. 결국 제재 완화는 북한이 비핵화의 제스처 카드만 가지고 협상에 나오는 초기단계에서는 미국이 상당한 정책 유연성이 필요한 조치다. 결국 가을날 유럽 스웨덴 스톡홀름이나 오스트리아 비엔나 등 제3국에서 북한과 미국 간의 실무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완화와 미국이 고수하는 제재 유지가 접점을 찾지 못하면 첫눈이 내리도록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실무협상이 결실을 맺기는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서늘한 가을바람 속에서 워싱턴과 평양은 노딜(no deal)과 굿딜(good deal)의 갈림길에 들어서고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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