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무기화, 상호의존성의 무기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나 국제사회에서 ‘함께’ ‘더불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 찾아보기 어렵다기 보다 중점적인 단어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이후 기존 국제사회나 미국사회를 지탱해오던 근원적인 가치체계가 무너지면서, 세계는 불안정과 불확실성이 new normal이란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역시도 이 풍조를 타고 그토록 강조하던 ‘통합’이니 ‘단합’이란 단어는 거의 종적을 감추고 상대 진영을 향한 날선 공방이 펼쳐지고 있다. ‘정의’라는 단어도 무엇이 정의인지 모를 정도로 혼돈을 겪고 있다. 필자는 이를 ‘emocracy(emotion+democracy)’라고 부른다. 즉 한 사회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정의’의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으면 그게 정의인 세태’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가치관의 혼돈을 보여주고, 또 만들고 있는 것이 ‘정보의 무기화’ ‘상호의존성의 무기화’이다.

작금의 한국이나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보면 ‘정보의 무더기’가 진리를 낳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 많은 정보가 방출될수록 세계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과다 정보와 과다 커뮤니케이션은 어둠 속에 빛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디지털 정보환경이 가져다주는 이런 취약점을 특정 세력은 교묘히 이용한다. ‘정보의 무기화’를 갈고닦아 더 정교한 무기로 만든다.

그 첫 번째 단계가 ‘역정보 퍼뜨리기’이다. 한때 IT 기업들은 평범한 국민들에게 디지털 환경이 힘을 실어준다고 선전했지만, 이는 허구임이 드러나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과 같은 IT 강자들은 데이터라는 1차적인 정보를 장악하고 재가공하여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공룡’으로 발돋움하고 ‘경제적 이익’의 상당수를 독식하고 있다. ‘글로벌화’는 이들 플랫폼 기업들이 만들어준 인프라를 이용하여 역정보 퍼뜨리기의 숙주가 되고 있다. ‘글로벌화’는 금융흐름, 국경을 넘나드는 정보와 상품 등이 국가 간의 새로운 리스크를 유발하고 상대방을 착취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또 한 국가의 파워는 국제정치 속에서 행사되고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 한국의 경우, 조국 사태를 전후하여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실검 순위 1위 만들기’ 경쟁은 한국적 정보무기화의 단적인 사례이다. 특정 네티즌들이 조직력을 동원해 네이버 같은 대형 포털의 실시간 검색순위를 조작한 데 이어, 특정 기사에 달린 댓글 순위를 유리한 방향으로 노출하기 위해 대거 동원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 한동안 이어진 홍콩 민주화 시위 사태에서 중국은 활발히 역선전전을 구사했다. 홍콩 시위 군중을 ‘비도덕적인 서구 권력의 대리인’이란 프레임을 만들어 퍼뜨렸다. 이를 통해 군사적 개입 명분까지 만들고자 했다.

‘정보의 무기화’의 두 번째 단계는 정보의 흐름과 대중의 여론을 통제하는 것이다. 역정보의 망령을 악용하는 방법이다. 현재 보도되고 있는 내용 중 지배세력들이 듣고 싶지 않은 내용은 ‘가짜 뉴스’로 낙인찍어 신뢰성을 저하시키고, 청와대 게시판과 같은 대중 접촉 창구를 일시적으로 폐쇄해버리는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나 인도 등지에서 수시로 활용하는 수법이다.

세계적으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인터넷 셧다운 건수가 2배나 늘어났다고 한다. ‘정보의 무기화’의 세 번째 단계는 보다 악랄한 방법으로 자행된다. 데이터를 훔쳐 이를 은밀하고도 교묘한 방법으로 조작하여 조금씩 대중들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버밍햄 법대 Karen Yeung 교수는 이를 ‘hypernudges’라고 부른다. 개인에게 맞춤식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거짓되고 왜곡된 내용을 카톡이나 이메일 등으로 보내는 방법이다.

그 다음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을 흔들어놓은 사례가 ‘상호 의존성의 무기화’이다. 여행이나 무역 등과 같은 비군사적 사안을 상대국을 압박하는 무기로 삼는 방법이다. 현 국제정세가 사실상 ‘신냉전’으로 치달으면서 상호의존성의 무기화 현상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국제정치학에서 자유주의 이론 신봉자들은 국가 간에 무역이나 인적교류 그리고 문화적 왕래 등이 활발해지면 국제사회에 평화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트럼프가 미중 무역전쟁에서 구사하고 있고, 일본이 한국에 대한 압박 차원에서 채택한 ‘상호의존성의 무기화’는 정글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무역’을 무기화하면서 중국에 뿌리를 둔 외국 기업들을 흔들고 있다. 메이저 기업들에게 공산당 강령에 순응하라고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 소비자들에게 접촉하는 범위를 차단하겠다고 위협한다. 미국 역시도 ‘상호의존성의 무기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란에 대한 압박 차원에서 미국의 최대 강점인 금융망을 이용해서 동맹국들이나 우호국들에게 미국의 입장을 지지 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네트워크를 이용해서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은 ‘중심적 행위자들(hub actors)’이 다른 나라들을 대상으로 정보를 제공하거나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사법적 수단을 가진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프랑스 재무장관 Bruno Le Marie는 이란에 대한 금융제재 실행 여부를 놓고 “미국은 경제 분야의 세계 경찰이 아니다”라고 거칠게 비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란에 대한 제재에서 ‘목진지 파워(the power of chokepoints)’를 구사했다. 금융데이터 파놉티콘이라고 할 수 있는 SWIFT를 무기화하기로 미국과 EU 국가들은 은밀히 합의했다. 금융망에서 가장 취약한 포인트가 결제시스템이고, 19개 이란 은행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명분은 “이란은 글로벌 SWIFT 시스템을 이용해 핵무기 프로그램 개발 자금을 조달하고, 테러 집단을 지원하며, 선량한 자국 국민들을 억압하는 데 이용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리차드 홀부르크 같은 대사 등이 전면에 나서 사기업을 상대로 이란 정부에 대한 압력 수위를 높이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사실 글로벌 경제네트워크 구조는 안보 결과물이기도 하다. 국가 간의 상호의존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현재의 각종 이론들은 상호 의존네트워크를 각국이 어떻게 상대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지에 대한 방향성도 제시하지 못했다. 상호의존성이 가져다주는 취약성 정도만 언급했을 뿐이다. 경제적 제재가 ‘상호의존성의 무기화’의 한 단면으로 연구되고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무기화’가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교한 연구가 미흡한 실정이다. 그간의 연구결과가 어찌되었던, 자본•재화•정보•여행 등은 독특하게 다른 나라들에게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도록 만드는 수단이 되고 있다. 정보를 모으고, 경제적 또는 정보 흐름을 중간에서 차단하면서 그 상대국의 취약점이 무엇인지를 간파해나간다. 그러고는 정책 변화를 강압하고 자신들이 원치 않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은근히 압박한다.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하는 국가들은 미셀 푸코가 일찍이 설파했던 원형감옥의 감시체제인 ‘파놉티콘’적 특성을 활용한다. 한병철 교수가 <투명사회>라는 책에서 “오늘날 세계 전체가 하나의 파놉티콘으로 발전한다. 파놉티콘의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벽은 없다. 세계를 경제적 파놉티콘으로 만든다”고 설파했는데, 이 주장은 ‘상호의존성이 무기화’되면서 상당한 예지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무기화되는 이 시대에 필자는 그래도 하이데거의 주장에 동조하고 싶다. 하이데거는 “손은 행동한다”고 규정했다. 하이데거에게 손은 의미와 진리의 근원을 가리키는 ‘존재’의 매체로 나타난다. 하이데거에게 손은 행동하지 않고 생각하는 수단이다. 손의 모든 작업은 사유 속에 바탕을 둔다. 사물인터넷 시대를 앞두고 있고, 영상 시대라며 유튜브와 같은 영상으로 몰려가고 있는 이 시대에 ‘손’이 대표하는 사유의 시간과 공간은 더욱 중요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 가치 있는 정보를 가려내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일환 청장정보연구원 원장
한양대 자문교수
정치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