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치를 위해 바뀌어야 하는 것들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안민호 교수 입력 : 2019.11.01 08:42

이래서는 안 된다. 아무래도 정권교체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조국 사태를 보며 든 생각이다. 누구를,한쪽을, 일부를 바꿔서 될 일이 아니다. 서로 욕하면서 닮은 건지, 원래 그런 류가 모여드는 곳이라 그런 건지, “모두가 도둑놈(민나 도로보데스)”이라는 옛 유행어가 새삼스럽지도 않다. 모두가 한가지고, 전체가 썩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렇게 보인다. 세세히 살펴보면 남다르게 훌륭한 이들이 정치판이라고 왜 없겠냐만, 그들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보이는 건 표리부동한 위선자요, 들리는 건 내로남불 선동가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는데 우리나라 정치권이 딱 그렇다. 선한 이들은 신념을 잃어버리고 악인들의 격정적 열렬함만 가득한 곳이 우리네 정치판이다. 최소한 그런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치 엘리트 집단 자체를 교체해야 

정권교체, 정당교체가 아니라 우리 정치판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어 보인다. 누구 말마따나 불판이 더러운데 새 고기 올려본들 오염되고 시커메질 뿐이다. 제대로 익은 고기를 먹으려면 썩은 불판을 바꿔야 한다. 판 교체의 핵심은 사람이다. 여(與)건 야(野)건 할 것 없이 대한민국 정치엘리트 집단 자체를 교체해야 한다. 한두 사람 바꿔서 될 일이 아니다.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의 허탈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때마침 국회의원 선거가 몇 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그 어느 때보다 이 문제는 중요한 선거 의제가 될 것이다. 다음 총선에서는 더 과감히 더 많은 사람을 교체하는 정당이 결국 승리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 교체, 엘리트 교체를 위해 스스로를 내던지는 이들이 많은 정당일수록 승리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것은 한낱 필부라도 예측할 수 있으리만큼 명확하다.

판을 바꾸는 과감한 상징적 조치가 필요 

정치는 말이고, 말은 상징이다. 상징적인 것이 정치적 행위다.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현역 정치인 모두를 바꿀 수는 없다. 누구나 그것을 안다. 모두 바꾸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바뀐 모두가 또 구태가 된다. 결국 교체가 일상이 될 수 있는 과감한 상징적 조치들이 필요하다. 그 조치들은 명백한 부조리를 제거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저자 칼 포퍼는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추상적인 선을 추구하기 보다, 구체적 악을 제거하는 데 집중하라고 말한다. 주관적 선을 추구하면서 또 다른악을 만들지 말고, 누구나 동의하는 구체적 해악요소를 줄이는 것이 개혁이라는 의미다. 대한민국 정치판에도 그런 구체적이고 명백한, 누구나 문제라고 인정하는 해악과 부조리들이 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정치 교체, 엘리트 교체는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다. 너무나 당연한데, 당연하게 하지 못했던 그것을 해내면 대한민국의 정치는 바뀐다. 새로운 정치를 위한 이런 상징적 조치라 할 만한 게 몇 가지 있다.

첫 번째, 재선 이상 국회의원 비율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국회의원 재선 이상의 비율을 획기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 여야를 불문하고, 그들의 명성만큼 추악한 게 우리 정치인들이다. 여야의 최고 엘리트들을 그대로 두고 새 정치는 언감생심이다. 그들을 얼마나 교체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정치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과거처럼 눈 가리고 아웅식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나 제도로 정착하게 해야 한다. 정당마다 공천 시 정치 신인에게 여론조사 가산점과 같은 어드밴티지를 주는 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선(選)수가 높을수록 공천이 불가능할 정도의 페널티를 주는 보다 공격적 방안이 필요하다. 그래서 신인 공천 비율이 80~90% 정도는 되도록 해야 한다. 그 정도는 되어야 우리 정치판을 바꾸는 상징적 조치라고 인정받는다. 국회의원은 대대로 해먹는 자리가 아니라 한번 죽을힘을 다해 봉사하는 자리다. 죽을힘을 다하면 두번 하기 어렵다. 그런 인식이 상식이 되어야 새 정치가 가능하다.

두 번째, SKY 출신 비율도 대폭 줄여야
정치 엘리트 교체를 위해서는 출마, 당선 횟수뿐만 아니라 특정 대학 편중 비율 역시 획기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 정치인의 학벌 문제는 이제까지 심각히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간과하고 갈 것이 아니다. 특정 학교 출신들에게 페널티를 주는 조치가 언뜻 과격해 보일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국민의 대표, 대리자를 자임하는 국회의원들의 학벌이 특정 몇 학교에 집중되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려할 만한 문제고, 그런 과대 대표되어 있는 몇몇 대학에 페널티를 부여하는 것은 심각한 학벌 편중도를 완화시키려는 합리적 조치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학벌은 단순히 출신 대학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의 수많은 불평등과 불공정, 부조리들이 하나로 결집된 거대한 사회적 상징이다. 이 문제를 그대로 두고는 우리 정치판을 결코 바꿀 수 없다. SKY 출신을 줄이면 그 어떤 것보다 많은, 근본적인 것을 바꿀 수 있다. 덤으로, 중요한 유권자 대표성도 높일 수 있다.

세 번째, 50대 이상 남성의 비율
국회의 시민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원 집단에서 초과 대표되고 있는 여러 인구 사회학적 측면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인데, 학벌 이외에 가장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할것이 바로 남성과 50대 이상의 초과 대표문제다. 각 정당에서 공천 시 여성이나 청년들에게 어드밴티지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그것이 허울뿐인 생색 내기 시늉이어서는 안 된다. 시늉이 아니라 결과로 보여주어야 하고, 국회에서 50대 이상 남성비율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과감한 조치들이 도입되어야 한다. 특정 인구 집단이 과대 대표되는 것을 정당 스스로 제한하지 못한다면 정당 국고 보조금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유사한 법률안이 제출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출신지역이나 거주 지역, 지역 연고등도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평생 서울 수도권에 살다가 갑자기 연고도 없는 지역을 대표한다고 나서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이냐 아니냐의 문제
재선 이상, SKY 출신, 50대 이상 남성의 비율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판을 바꾸는 최소한의, 그렇지만 매우 결정적 요소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기도 하다. 이를 위해 특별한 제도 변화도 필요 없다. 정치인 스스로의 결단과 유권자의 과감한 선택만으로도 가능한 변화다. 그 변화는, 우리와 더 유사한 가치와 삶의 방식을 공유하는 이들이 우리를 대표해야 하고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여서는 안된다. 이것은 여야의 문제도 아니고 좌우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의 대표가 귀족적 삶을 사는 특별한 소수에 속하는지, 보통의 삶을 사는 일반적 다수에 속해야 하는지의 문제다. 보통의 주거환경, 보통의 교통수단, 보통의 교육을 경험한 평범한 사람들이 우리의 대표가 되어야 한다는 게 결코 무리한 요구일 수 없다. 이건 상식과 원칙의 문제다.

우리의 선택이 바뀌어야
사회적 문제를 제도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제도를 바꾼다고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우리 삶의 가치와 지향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리의 선택도 바뀌어야 한다. 나라가 온통 여야, 좌우로 나뉘어 싸우다 보니 우리마저 그런 상식과 원칙을 잊어버렸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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