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치변화와 군(軍)

단국대학교 차동길 교수 입력 : 2019.11.01 08:42

한반도 정치는 김정은의 2018년 신년사를 기점으로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년사에서 남북 사이에 제기되고 있는 모든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의 원칙에서 풀어나가자고 제의했다.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비핵화 문제와 관련한 민족공조(民族共助) 요청이다. 남북은 이를 계기로 세 차례에 걸친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가졌고, 사상 최초로 세 차례의 미·북 정상회담도 개최했다. 북한의 전략적 입장은 비핵화 문제를 주공(主攻) 방향으로, 남북문제를 조공(助攻)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비핵화 협상을 계기로 미국과 정상 차원의 관계 개선에 성공한 김정은은 중국,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전통적인 북·중·러 협력체제 복원에도 성공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권의 동맹 우선 정책을 민족 우선 정책으로 전환함으로써 9.19 남북 군사합의를 이루고,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에 국가적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극복할 수 없는 한계로써 기대했던 남북경제협력은 진전되지 못하고 있으며, 평화 분위기 조성이라는 긍정적 효과 못지않게 대북 위협인식 약화 및 동맹 균열,국론분열이라는 부정적 효과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 채널을 구축하고, 미·북 정상 간 친밀도가 높아지면서 대남 관계는 대화와 협력에서 무시와 강압으로 전략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김정은이 금강산관광 관련 대남 의존정책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며 “보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들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남북 정상의 평양 선언을 뒤집는 것이어서 향후 대남전략 변화에 관심이 쏠린다.

한·일 관계는 일본의 대한경제제재와 한국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에서 볼 수 있듯이 더는 우방국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최악의 상황이다. 한·미·일 남방 협력 관계는 약화되고, 북·중·러 북방 협력 관계는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북한 비핵화 전략목표 달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러시아의 동북아시아 세력 확장의 계기가 되고 있다. 실제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한반도의 정치적 변화 상황에서 군(軍)의 태세 유지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주적개념 삭제로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왔고, 북한 비핵화 문제로 한·미 연합연습 및 훈련이 취소되거나 축소된 반면,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수중 시험발사 등 핵무기 개발의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핵보유국으로서 대미억제 및 대남 강압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북한이 적인지 아닌지,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도발인지 아닌지, 6.25전쟁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묻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쩔쩔매는 군(軍) 수뇌부의 모습은 절대적 평화주의에 휩쓸린 정치화된 군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정치적으로 비핵화 협상 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군사적으로 군 본연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점에서 북한 눈치 보기라는 비난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해병대사령관의 용병(用兵) 원칙
손자(孫子)는 말하기를 “용병의 원칙은 적이 오지 않으리라고 믿어서는 안 되고, 언제 와도 대적할 수 있는 자신의 대비를 믿어야 하며, 적이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을 것이 아니라, 공격해오지 못하도록 하는 방비 태세를 믿어야 한다”고 했다. 요즘 해병대사령관(중장 이승도)의 당당함이 국민에게 큰 울림을 주고, 적에게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듯하다. 이 사령관은 해병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어느 국회의원의 질의를 받고 북한을 적(敵)으로 규정했으며 북한이 점유한 함박도(咸朴島)를 유사시 화력으로 초토화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고 언급했다. 해병대사령관으로서 군사적 관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인데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절대적 평화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과 배치되는 견해를 밝혔기 때문이고,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국민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해병대사령관의 말은 북한에도 큰 위협이 되었는지 북한 대외선전 매체‘우리민족끼리’ TV는 즉각 ‘연평도를 벌써 잊었는가?’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이승도 해병대사령관을 ‘골수까지 동족 대결에 환장한 광신자’라며 비난했다. 이 사령관은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부대장(대령)으로 13분 만에 응징보복사격으로 적의 추가도발을 막은 현장 지휘관이었다. 북한은 훗날 이 사령관을 사살하겠다며 그의 사진을 실은 전단을 제작하여 대남 심리전에 이용했고, 연합사령관은 이 사령관에게 ‘내가 지켜주겠다고’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병대사령관이 보여준 당당함은 말뿐이 아니었다. 최근 해병대는 서북도서에서 적 기습강점에 대비하여 3000여명의 병력과 상륙돌격장갑차(KAAV), 코브라 공격헬기 등이 참가하는 대규모 도서방어 종합훈련을 진행하였다. 9.19 남북군사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서해 개머리 해안포 포문 개방, 북방한계선(NLL) 인근 5개 섬(장재도,갈도, 무도, 아리도, 함박도)의 군사기지화 등 북한의 위협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병대사령관의 대북인식과 용병 원칙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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