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영국 조기 총선, 쟁점과 전망

그 당시 조기 총선의 이유도 브렉시트였다. 3년 이상 브렉시트 논란으로 교착상태에 빠졌던 영국 정치권이 다시 조기 총선을 결정했으며, 이번 선거는 브렉시트 여부에 대한 ‘제2의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3.8% 차이로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된 후 브렉시트로 인한 영국의 정치적 교착상태는 지속하고 있다. 

양원제인 영국에서는 하원의원만 단순다수제로 선출되며 상원의원은 임명직이다. 현재 영국 하원은 비례대표 없이 총 650개의 선거구에서 각 1명씩의 의원을 선출하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는 거대 정당에 유리하며 정당 체계를 양당체제로 고착화하고, 신생 정당이나 군소 정당의 원내 진출은 쉽지 않다. 

영국 하원은 지난 10월 29일(현지시간) “12월 12일에 총선을 개최한다”라는 한 줄 문장으로 된 정부의 단축 법안을 650명 중 찬성 438표, 반대 20표로 가결했다. 200여 명의 의원은 기권한 것이다. 존슨 총리는 그동안 자신의 브렉시트 추진이 의회에서 반대에 직면할 때마다 조기 총선 카드를 꺼내왔다. 그러나 현재 영국 하원에서 보수당은 298석으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존슨 총리는 얼마 전에 조기 총선 동의안이 담긴 ‘고정 임기 의회법’을 상정했으나 부결되었었다. 이에 존슨 총리는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하원 과반 지지만 얻으면 통과될 수 있는 단축 법안을 다시 상정했고, 결국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것으로 결정된 것이다. 존슨 총리는 조기 총선을 가결하기 위해 출당되었던 보수당 의원 10명도 다시 복당시켰다. 이번 조기 총선 법안이 통과된 것은 미온적이던 노동당 등 야당의 입장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이 브렉시트 협상 기한을 내년 1월까지로 재연장해주자, 야당들은 조기 총선 기간 중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유럽연합 탈퇴)가 추진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고 조기 총선에 동의하게 된 것이다. 

현재 보수당은 298석에 불과해 연립정부를 구성 중인 민주연합당(DUP) 의석 10석을 합해도 과반에는 훨씬 못 미친다.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안이 영국 의회에서 번번이 부결되자 의석을 확보해 브렉시트를 단행하기 위한 돌파구로서 조기 총선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이번 총선을 통해 과반 의석을 확보하여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면서 총리로서 정당성을 인정받고 브렉시트를 완수해 정치적 교착상태를 해소해보겠다는 계획이다. 유럽연합 탈퇴를 강하게 주장하는 정당은 신흥 우파 브렉시트당이다. 

유럽연합 잔류파인 제1야당 노동당(243석), 스코틀랜드 국민당(SNP·35석), 자유민주당(20석)은 이번 조기 총선을 통해 EU 잔류 지지자들을 결집해 최대한 많은 의석수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야당들도 분열된 상황이다. 가장 확실하게 유럽연합 잔류를 원하는 정당은 자유민주당이다. 따라서 유럽연합 잔류 지지자들의 표가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으로 갈리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몇 년에 걸친 브렉시트 논란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정당은 노동당이다. 노동당은 2016년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잔류를 당론으로 정해 선거에 임했다. 그러나 국민투표 후 노동당 지지율이 높은 지역구는 유럽연합 탈퇴와 잔류로 갈라지게 되었고 노동당 지지층 중 브렉시트 반대파들이 노동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당으로 옮겨갔다. 이러한 유럽연합 탈퇴파와 잔류파의 이견은 존슨이 노딜 브렉시트를 추진할 가능성이 커지자 노딜 브렉시트 추진을 먼저 차단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입장 정리가 되었다.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 노동당 대표는 새 노동당 정부에서 ‘유럽연합 잔류’까지를 넣은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노동당의 지지율은 보수당에 뒤지고 있다. 2017년 총선에서 비슷한 수준까지 올랐던 노동당 지지율이 다시 떨어진 주된 이유는 유럽연합 잔류파 지지층의 이탈에 따른 것이다. 이들이 자유민주당으로 기울면서 자유민주당의 지지율은 상승했다. 한편, 영국에서 12월 총선은 1923년 이후 96년 만이다. 총선이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12일 열리는 것은 투표율을 떨어뜨려 노동당에 불리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노동당 지지층인 대학생들이 방학에 들어가는 것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60대 이상의 60%가 브렉시트를 찬성한 데 비해, 18~24세의 73%, 25~34세의 62%가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했었다. 

한편, 노동당의 ‘반유대주의’ 대응 문제가 이번 총선에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영국 내 유대교 수장인 에프라임 미르비스 랍비장은 11월 25일 더타임스 기고문에서 “노동당에 (반유대주의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면서 “양심에 따라 투표해주기를 촉구한다. 영국의 영혼이 걸린 문제”라고 언급했고, 영국 성공회 수장과 영국 무슬림평의회, 힌두평의회도 미르비스 랍비장의 발언에 호응했다. 노동당에 2015년 9월 코빈 대표 체제가 출범한 이후 지속해서 노동당의 반유대주의 대응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더타임스는 2017년 이후 13명의 하원의원이 노동당을 탈당하면서 반유대주의 대응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선거운동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존슨 총리는 크리스마스 이전에 브렉시트 법안을 다시 제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총선에서 승리해 브렉시트를 단행하겠다는 의지이다. 또한, 존슨 총리는 소득세·의료보험료·부가세를 동결하는 ‘3중 세금 동결’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복지지출 증대, 기간시설 확충, 과학·노동 인력 훈련을 위한 대폭적인 재정 확대 등을 약속하고 있다. 노동당은 EU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내용의 새 합의안을 추진한 뒤 새로운 국민투표에 회부하겠다고 공약하고 있으며 기후변화 문제 대응,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 최저임금 인상, 대학 등록금 폐지, 철도·우편·상하수도·에너지 공급망 국유화 등을 약속하고 있다. 

영국 총선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은 노동당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1월 26일 POLITICO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집권 여당이 43%의 지지를 얻어 31%를 기록한 노동당을 12% 포인트나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자유민주당의 지지율은 14%, 스코틀랜드 국민당 4%, 브렉시트당 4%, 녹색당 3%로 나타났다. 브렉시트당은 일부 선거구에서 출마를 포기하면서 보수당으로 세를 몰아주어 보수당 지지율은 높아지고 브렉시트당 지지율은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여론조사 추이만으로 총선 결과를 단정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부동층의 수가 많고, 과거 메이 총리 정부 당시 보수당은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는 크게 앞서고 있었지만 2017년 총선에서 오히려 의석을 잃었다. 지난 3년간 지속한 브렉시트를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지친 영국 국민들이 어느 편에 표를 던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조기 총선에서 과반 이상을 득표하는 정당이 없으면 ‘헝 의회(hung parliament)’ 구도가 되어 향후 정국이 더 혼란스러울 수 있으며 영국 사회의 분열과 브렉시트를 둘러싼 교착상태는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