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방향타 '재보선', 승패공식 어땠나

[심층 기획-4.7 재보선 점화]대통령 지지율 따라 승패 갈려…'거물' 등용문 될지도 관심사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입력 : 2020.12.02 11:19
재보선은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의원 등 공석이 발생했을 때 치르는 선거다. 전국적 주목도는 크지 않을 때도 있지만 재보선 시기와 지역, 등장후보 등에 따라 선거 결과가 주는 중량감은 차이가 있다. 재보선 결과가 차기 총선이나 대선에 영향을 줄 때는 더욱 중요해진다. 노무현 정부 때는 ‘재보선=여당의 무덤’ 공식이 있었다. 재보선이 다음 선거에도 영향을 줘 집권여당이 고배를 마시는 선거가 많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여당은 재보선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상황이 달랐다. 박근혜 정부 때 실시된 5번의 재보선에서 네 번을 집권 여당이 승리했다. 재보선이 거물급 정치인의 등용무대가 된 적도 있다. 대선주자였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김무성 전 의원, 서청원 전 의원 등이 재보선을 통해 원내에 입성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여당의 승리가 이어졌다. 2021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재보선이 열린다. 수도 서울과 제 2의 도시 부산의 민심은 어느 곳으로 향할까. 과거에 치러졌던 재보선을 통해 내년 재보선을 가늠해본다.
▲2018년 6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최재성 등 국회의원 재선거 당선자들이 추미애 대표와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 머니투데이




문재인 정부, ‘재보선=여당무덤’ 공식 안 통하네
역대급 높은 지지율에 민주당 ‘승’



문재인 정부에서 치러진 두 번의 재보선에서는 진보정당이 승리했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와 같이 치러진 6.13 재보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1석, 자유한국당이 1석을 가져갔다. 당시 재보선에 걸려 있는 의석은 12석이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의원이 대선 출마를 위해 사퇴한 서울 노원병, 최명길 전 의원이 당선무효형을 받아 공석이 된 송파을,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박남춘 인천시장이 지방선거를 위해 사퇴해 공석이 된 김해을과 인천 남동갑 등이 선거 지역구였다. 더불어민주당은 광역단체장 출마로 인해 잃어버린 3석을 되찾은 것은 물론이고, 나머지 8석도 차지했다. 

2019년 4월 3일에 열린 재보선에서는 노회찬 전 의원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경남 창원시, 자유한국당 이군현 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해 경상남도 통영시 고성군에서 재보선이 열렸다. 진보정당 세가 강한 창원에서는 여연국 정의당 의원이, 통영에서는 정점식 의원이 당선됐다.

문재인 정부에선 ‘재보선은 여당의 무덤’이라는 속설이 통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부정에 비해 긍정이 월등히 앞섰다. 한국갤럽의 대통령 직무수행평가 문 대통령 2년 차 1분기 지지율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긍정 지지율은 75%인 반면 부정은 19%였다. 야당에서 심판론을 들고 나오기 쉽지 않은 구조다.
▲2013년 4.24 재보궐 선거 당선 동기인 새누리당 김무성, 이완구 의원과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2013년 6월17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 가진 오찬 회동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박근혜 정부의 재보선은 거물들의 ‘복귀 무대’
안철수 대선 후보로·김무성 여당 대표로·서청원 대통령 좌장으로



박근혜 정부 때 열린 여섯 번의 재보선 중 다섯 번은 여당인 새누리당이 이겼다. 박근혜 정부 때도 여당이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대통령에 대한 ‘심판론’이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2년 차 1분기 지지율은 긍정 55%, 부정 34%였다. 

박근혜 정부 때 열린 재보선은 거물급 인사의 정치 복귀 무대였다. 통상 재보선은 낮은 투표율과 평일에 진행돼 총선에 비해 주목을 받지 않지만, 거물급 인사들이 재보선에 출마하면서 전국적인 이목을 끌었다. 거물급 인사의 재보선 복귀 무대로 ‘바람’을 일으켜 다음 선거 승리까지 분위기를 이어갔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처음으로 열린 2013년 4.24 재보선 결과는 새누리당이 2석, 무소속이 1석이었다. 서울특별시 노원구 병에는 안철수 전 의원이, 충청남도 부여군·청양군에는 이완구 전 의원이, 부산광역시 영도구에는 김무성 전 의원이 당선됐다. 김 전 의원은 재보선으로 원내에 입성, 2015년 새누리당 당대표를 역임했다. 이후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안철수 전 의원은 원내에 입성한 이후 2017년 19대 대선에 출마했다. 2013년 10월30일 열린 재보선에서는 서청원 의원이 원내에 들어왔다. 서 의원은 당시 7선을 달성했다. 이후 대표적인 대통령 측근 인사로 분류, 의정활동을 이어갔다.

2014년 7월 30일 열린 재보선은 15석으로 최대규모의 재보궐 선거가 열렸다.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박근혜 정부는 이를 통해서 강력한 힘을 얻음과 동시에 국정운영을 완벽하게 유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안철수 전 의원과 김한길 전 의원은 재보궐 패배를 책임지고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박근혜 정부 후반기로 갈수록 떨어진 지지율은 선거 결과로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에서 열린 재보선은 ‘여당의 무덤’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여당이 승기를 잡아 정부에게 힘을 실어 넣어줬지만 이번 재보선은 달랐다. 2016년 4.30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80석을 얻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122석을 얻어 123석을 얻은 민주당에게 제1당을 내줘야 했다. 당시 같이 열린 재보선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특히 민주당이 한 번도 당선된 적 없는 양주시장 선거에서 당선, 새누리당에게는 뼈아픈 실책으로 자리 잡았다. 또 김해시장도 민주당에게 내줘 PK지역이 요동치는 계기가 됐다.
▲이재오 한나라당 서울 은평을 재보궐선거 후보가 2010년 7월 21일 오전 은평구 연신내 일대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며 거리유세를 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




이명박 정부 낮은 대통령 지지율에 ‘진보정당’ 약진



2007년 12월 18대 대통령선거가 있기 전에 치른 4.25 재보선은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당시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MB와 박 전 대통령였다. 박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를 맡고 있었다. 국회의원 선거구에서는 민주당이 1석, 심대평 전 대표가 있었던 국민중심당이 1석을 가져갔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1석, 무소속이 5석으로 한나라당이 패배했다. MB와 대선 경선을 치르고 있던 박 전 대통령에게 치명타를 안겼다.
2009년 4월 29일,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 때 열린 재보선에서는 민주당이 1석, 진보신당이 1석, 무소속이 3석 당선돼 한나라당이 대패했다. 전날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찰 출두가 이뤄졌었고, 집권 2년 차 1분기 MB의 지지율이 긍정 34%, 부정 55%로 부정평가가 더 높았다. 진보신당은 이 선거로 원내진출에 성공했다.

2010년 7월 28일에 열린 재보선은 ‘여당의 무덤’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여당이 이긴 선거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직후에 치러진 7월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5석, 민주당이 3석을 가져갔다. 이 재보궐선거에서 친이계의 대표 정치인인 이재오 전 의원이 은평을에서 당선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3년 차 2분기 지지율은 이전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긍정이 49%, 부정이 41%로 긍정이 더 높았다. 

2011년 4월 27일에 치러진 재보선에서는 한나라당 세가 강한 분당지역과 강원도에서 민주당이 승리해 MB의 레임덕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분당에서는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와 강재섭 전 의원의 빅매치였다. 민주당에서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민주당 깃발을 꽂아 ‘분당대첩’이라고도 불렀다. 강원도지사에는 엄기영 MBC 전 사장과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맞붙었다. 민주당 강원도지사가 처음으로 당선됐다.

2011년 10월 열린 재보선은 2012년 총선과 대선 전 치러지는 가장 큰 선거였다.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사퇴해 열리는 보궐선거였다. 지방선거가 직선제로 바뀐 이후 조선, 고건 전 서울시장은 민주당과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이었지만 2002년 3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역임하면서 오세훈 전 시장이 2010년까지 재선까지 약 8년 동안 한나라당이 서울시장을 맡았다. 

‘정치권 샛별’로 떠오른 안철수 전 의원은 서울시장 적합도 여론조사 1위를 기록했다. 안 전 의원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후보를 양보하면서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민주당 후보 간의 단일화를 통해 야권 후보로 선출돼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었다. 이 재보선을 기점으로 야권은 2012년 12월 대선 연대 논의를 시작했다.



참여정부, ‘재보선=여당의 무덤’ 공식 만들어



노무현 정부 때 치러진 5번의 재보선에서 모두 한나라당이 이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집권 1년 차 3분기부터 임기 말까지 20~30%대를 기록했다. 반면 부정 평가는 50~60%를 기록하다 임기 말에는 70%를 넘었다.
참여정부가 출범하고 처음으로 열린 2003년 4.24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2석, 개혁국민정당이 1석을 가져가면서 사실상 패배했다. 다음 해 6.5 지방선거에서 재보선 지역구였던 부산광역시, 경상남도시, 제주도를 한나라당에게 내줘야 했다. 전라남도 지역에서도 새천년민주당 박준영 전 지사가 당선됐다.

결정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속화한 선거는 2004년 열렸던 4.30 재보선이다. 당시 17대 총선서 당선된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연이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5석, 무소속이 1석을 차지하면서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이 붕괴됐다. 이후 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런 분위기는 총선거와 지방선거, 그리고 대통령 선거까지 영향을 미쳤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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