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로의 끝없는 줄서기, 이대로 괜찮을까

[김동하의 컬처 리포트]작품+인력의 넷플릭스 단독행, 수출인가 유출인가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김동하 교수 입력 : 2021.02.01 15:05
▲김동하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넷플릭스 쪽 컨택하고 싶은데, 아는 분 있으면 연락처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종종 받는 곤란한 질문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넷플릭스 한국지사에서 여러 임직원과 미팅을 한 적도 있지만, 명함을 못 받거나 받아도 연락처가 없었다. 연락처를 알고 있더라도 연락이 된 적은 그때를 빼곤 거의 없다.

넷플릭스를 향한 ‘줄서기’. 이미 몇 년 전부터 계속돼온 얘기다. 넷플릭스 직원이 공항에서 내리면, 기다리고 있는 제작자들이 몇백 명은 된다는 얘기부터, 정작 당사자는 이메일로 제안 들어오는 기획안과 시나리오가 수백 수천 개라, 일일이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까지.
코로나 이후, 줄서기의 줄은 더욱 길어졌다. 특히 최근 두드러지게 체감되는 부분은 영화, 드라마는 물론이고, 예능, 교양, 다큐멘터리 부문까지. 넷플릭스를 향한 긴 줄에 합류하는 제작자들이 늘어나는 현상이다.
분명 넷플릭스는 ‘단비’였다. 5년간 제작진영에 7700억을 쏟아부은 ‘큰손’이자, 일본과 중국의 몽니 부리기, 대기업 ‘줄서기’에 지친 창작자들이 기댈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이었다.
하지만 콘텐츠 여러 장르를 넘어 퍼져가는 넷플릭스로의 줄서기가 과연 긍정적이기만 할까. 잘나가는 핵심 창작자들의, 주력 작품들의 넷플릭스 단독행은 콘텐츠 ‘수출’일까 ‘유출’일까.

단비로 찾아와 세계를 주름 잡은 넷플릭스

지난해 전 세계 2억 명 가입자를 확보한 넷플릭스와 한국의 제작진영은 매우 특별한 관계다. 서구뿐 아니라 일본에 비해서도 싸고 질 좋은 한국 콘텐츠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보고 과감한 투자를 했고, 그 성과는 아시아에 이어 세계로 뻗어갔다. 마치 2006년부터 K팝 진영과 활발한 콘텐츠 제휴(광고수익을 더 배분하는 정책, K팝 아티스트 및 기획사 전용관 제공 등)로 서로 재미를 본 유튜브와 비슷한 행보였다.
2015년부터 한국 콘텐츠에만 770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했다고 하니, 대기업 줄서기에 지친 한국 제작진영에게는 추가적인 판로자, 새로운 기회의 땅임에 분명했다. 한국의 우수한 콘텐츠를 전 세계 각국의 시청자들이 동시에 볼 수 있게 되니, 일본과 중국 판로가 꽉 막힌 창작진영에는 엄청난 기회의 채널이었다.
지난해 말 가입자 758만 명. 광고 없이 구독료로만 지난해 한국에서 거둔 매출성과만 5173억원이라고 한다. 한국 콘텐츠로 해외시장에서 거둔 성과는 이보다 더 클 것이다. 수직계열화된 대기업들이 잡고 있던 한국 콘텐츠의 큰 주름을, 넷플릭스가 새롭게 만들어 잡은, 그야말로 ‘넷플릭스 천하’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통신-방송-제작 진영 넘나드는 스마트한 수평, 수직 확장
거대 자본과 실시간 보급망을 갖춘 넷플릭스의 행보는 한국에서도 과감하고 파괴적이었다. 기존 업계의 반발이 커질 때쯤, 제휴와 투자를 다변화시키며 발빠르게 대응했다. 방송사, 배급사, 제작사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넷플릭스의 거의 유일한 ‘갑’처럼 보여지는 통신사들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했다. 반대하는 다수의 진영 중에서 제휴 파트너를 잡아 다독이며 확장세를 지속했다. 인터넷 통신망 사용료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졌을 때도, LG유플러스와 손잡고 출발한 넷플릭스는 KT와 콘텐츠 제휴를 맺으며 확장세를 지속했다.
넷플릭스코리아가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줄서기’가 과열되자, 지난해에는 넷플릭스 엔터테인먼트라는 유한회사를 새로 설립해 대응했다. 한국 제작진영을 위해 직접 투자와 제작을 늘리겠다는, 일종의 또 하나의 수직계열화 선언이었다. 이미 수직계열화된 한국에서는 거칠 것이 없는 명분이자, 줄서기를 효과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실리였다.
한국이 만든 <킹덤>으로 시작해 <스위트홈>까지 순수 넷플릭스 전용 시리즈물이 성과를 올리자, 넷플릭스를 향한 제작진영의 줄서기는 심화되는 분위기다. 넷플릭스를 향해, 넷플릭스가 선호하는 스타일로 말이다.

스타벅스, 유튜브 잇는 넷플릭스…‘유출’ 우려는 없나
필자를 포함한 758만 명이라는 가입자가 생긴 건, 물론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편익 때문이다. 때문에 넷플릭스로의 과도한 쏠림을 선과 악, 옳고 그름으로 규정해 공공이 뚜렷한 조치를 취하긴 어렵다.
하지만 ‘토종’, ‘한국형’을 추구하는 제조업 등 다른 분야와 비교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요즘 시장에서 이른바 ‘핫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종이라면 이런 쏠림을 정부가 방치해뒀을까. 현대차 삼성전자 하청업체들이 대거 애플이나 화웨이, 또는 토요타로 줄을 선다면 보고만 있었을까. 콘텐츠 산업은 수많은 사람들이 제작, 유통, 배급, 하도급, 마케팅을 수행하는 제조업 못지않게 촘촘한 생태계인데 말이다.
정부가 콘텐츠 업계의 대기업 수직계열화는 손 놓은 지 오래고, 그렇다고 코로나로 위기를 맞은 주력 대기업을 ‘대마불사’식으로 전폭 지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렇게 방치되는 동안, 비대면 시대 콘텐츠 안방을 유튜브에 이어 넷플릭스에 통째로 내줄 위기라는 사실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지난 2014년 스마트미디어랩(SMR)을 설립해 유튜브로의 콘텐츠 공급을 제한했지만, 유튜브의 시장확대를 견제하는 데는 실패했다.
한국경제에서 정부의 방향성과 컨센서스의 작은 균형은 큰 차이를 만들어내왔다. 이마트 등 토종마트는 지켜냈지만, 스타벅스는 한국시장을 장악했다. 유튜브는 수많은 토종 플랫폼을 딛고 동영상 플랫폼을 잠식했고, OTT부문에서 넷플릭스는 유튜브와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

최근 <킹덤>의 김은희 작가, 배우 전지현, 주지훈이 만든 tvN 드라마 시리즈 <지리산>은 넷플릭스가 아닌 중국의 OTT 아이치이를 택했다. 한국의 작가, 한국의 프로덕션, 한국의 배우들로 만든 작품으로 미국과 중국 플랫폼이 경쟁한 결과였다. 만약 <킹덤>이나 <스위트홈>처럼 아이치이 단독작품으로 이어진다면 어떤 정서로 다가올까. 콘텐츠가 아니라 기술이 해외 플랫폼으로만 제공된다면, ‘유출’ 우려가 불거지지는 않았을까.
넷플릭스를 위한, 넷플릭스를 향한 콘텐츠의 장르 다양성도 한계는 명확하다. 좀비, 폭력, 섹스 등 글로벌하게 자극적인 코드의 작품이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떨어진 얘기지만 BTS는 성장과정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 쪽 플랫폼으로만의 줄서기를 철저하게 거부했다.
같은 한국 감독이 넷플릭스의 600억원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 만든 <옥자>와, 한국 자본 170억여원으로 한국에서 만든 <기생충>, 과연 뭐가 더 글로벌하고, 지속가능한 작품일까. 한국 콘텐츠가 그 어느 때보다 각광받는 지금, 제작 생태계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해 보인다.
▲영화 <옥자> 소개. 출처 : 넷플릭스 Inc 홈페이지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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