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피싱과 디지털 리터러시

[김동하의 컬처 리포트]영화 <보이스>, <시민 덕희> 출격대기…구제 ‘복잡성’ 해소돼야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김동하 교수 입력 : 2021.06.02 10:10
▲김동하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한국영화계. 하반기 개봉을 앞둔 영화들 중 ‘보이스 피싱’을 소재로 한 두 편의 영화가 있어 눈길을 끈다. CJ ENM과 쇼박스가 투자배급하는 <보이스>와 <시민 덕희>다.

총제작비 100억원에 육박하는 상업영화들이 보이스 피싱을 소재로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대중들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심각한 문제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마도 영화는 간악한 보이스 피싱 일당들을 처단하는 이야기로 펼쳐질 것이다. 조직의 냉혹함과 잔인함이 강렬하게 표현될수록, 대중들이 느끼는 통쾌함은 커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보이스 피싱 조직을 일망타진한 무용담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하지만 실제 피해자들에게 절실한 건 ‘검거’나 ‘처단’과는 거리가 있다. 당사자들에게 범인을 잡는 것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건, 금전적 손실을 회복하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법조계 전문가들은 형사적 처벌과 돈을 돌려받는 일이 ‘별개’임을 강조한다. 범인을 잡아도 돈을 받아내려면 멀고 먼 길이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 비대면 트렌드 속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가 유난히 강조되고 있는 요즘, 보이스 피싱은 단순 ‘보이스’를 넘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전반으로 침투하며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기범을 잡기도 어렵고, 돈 찾기는 더 어려운 보이스 피싱 문제, 이대로 괜찮을까.

<보이스>, <시민 덕희>…경찰? 공무원? 우리가 직접 잡는다

보이스는 변요한, 김무열, 김희원 주연으로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를 만든 쌍둥이 김곡, 김선 감독이 연출했다. 실제 보이스 피싱 업체들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접근한 범죄 액션물이다.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거대 보이스 피싱 세력들을 장기간 취재를 통해 조사하고, 그들의 철저한 기획력과 간악함을 파헤쳤다는 후문이다.

<시민 덕희>는 라미란, 공명, 염혜란, 박병은 주연으로 <선희와 슬기>를 연출한 박영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실제 보이스 피싱 범죄조직의 총책을 검거하기 위해 나선 시민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보이스 피싱을 당한 한 시민의 시선으로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하는 통쾌한 이야기로 알려지고 있다.

두 영화는 상업영화 업계 대표주자인 CJ ENM과 쇼박스가 투자배급하는 영화다. 상업영화의 잣대에서, 소재가 얼마나 대중적인지,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얼마나 새롭고 호소력 있는지를 철저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시나리오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위험 정도, 상식적인 위협과 뻔한 해법을 제시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건 이 영화들에서 보이스 피싱 악당을 응징하는 주인공들이 경찰이나 형사, 공무원, 변호사 같은 전형적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공권력에 실망한 일반 시민이 직접 나서거나, 공권력을 통한 해결에 실패한 주인공이 합법의 경계를 넘어서는 해법을 취한다. 다시 말하면 소재와 문제의식은 철저하게 현실을 반영하되, 해법은 답답한 현실을 거부하고 뛰어넘는 방식으로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낸다는 얘기다.

지난해 하루 19억, 상상 초월하는 보이스 피싱의 위험

실제로 보이스 피싱의 실제 사례들을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보이스 피싱의 심각성은 우려 이상. 보이스 피싱을 구제하는 방식의 복잡성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지난해 기준 하루 피해금액이 19억원에 달했던 보이스 피싱의 유형은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보이스 피싱은 상황별로 시나리오가 정교하게 짜여 있으며, 기획 단계에서부터 엄청난 공을 들여 수행하고 보완한다고 한다. 누군가 감각이 부족하거나, 부주의하거나, 감이 떨어져서 당하는 일이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노인과 중장년은 물론이고, 대학생, 교육자, 공무원까지도 보이스 피싱 사기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40~50대 남성은 대출빙자형 사기에, 50~60대 여성은 경찰, 검사, 국세청 등 사칭형 사기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하루 피해가 약 100건에 달한다는데, 그렇다면 실제 시도되는 보이스 피싱의 규모와 조직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건지 파악은 가능한 걸까.

최근 보이스 피싱을 당한 필자의 지인은 얼마 전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그 직후에 일당들이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대출 금리를 낮춰주겠다면서 전화했다고 한다. 일종의 저금리 대환을 해줄 테니, 일단은 돈을 보내 갚고 나서 대출금을 보내주겠다는 것. 이처럼 대출을 미끼로 유혹하는 일은 기본이고, 검사나 수사기관 행세를 하며 위협하는 일도 다반사다. 일단 통화에 걸려들기만 하면 대포통장 또는 명의도용 사건에 연루된 것처럼 위협하며 쉴 새 없이 압박한다고 한다.

문제는 돈…사기범 처벌과 피해구제는 ‘별개’

보이스 피싱 피해자들은 뭔가에 홀린 듯 입금을 진행한 이후에 사기를 직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피해자는 빨리 경찰에 신고한 뒤, 반드시 입금한 은행에 지급정지를 신청해야 한다. 이후에 금융감독원에 채권소멸절차개시를 신청해서, 지급정지신청한 돈을 찾아가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다. 빨리 지급정지를 신청해서 피해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그 피해금을 채권소멸절차를 통해 환급받는 게 1차적인 대응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해결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은행에 어렵사리 지급정지를 신청해놓았더라도, 이후 정상적인 출금이라며 돈이 빠져나가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돈이 실제로 지급될 돈인지, 보이스 피싱 세력의 출금인지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영화 보이스 관련 포스터 이미지

보이스 피싱은 형법적으로 사기에 속한다. 범인이 잡히더라도 돈을 받아내는 건 ‘별개’의 법률행위다. 오히려 신고 후 돈은 못 찾고, 형사적 수사의 시발점으로 활용되는 일도 많다.

일반적인 민사소송 즉 부당이득반환청구는 기각되기 쉬우며,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도 확률이 높지 않다고 한다. 민사소송은 더욱 어려운 게, 당사자에게 승소하더라도 강제집행할 재산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이스 피싱에 가담한 중간책들이 대부분 ‘고액 알바’ 이런 유혹에 빠져들어, 자신의 명의를 빌려주거나 통장을 빌려주는 ‘알선책’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중간책들이야말로, ‘알바’를 했을 뿐인 자신의 억울함을 소명하더라도 사기 또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실형을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사를 통해 공범에서 벗어나도 피해자들에게 민사소송을 당할 위험은 남아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의 시대…구제 복잡성 해소돼야

핀테크, 마이데이터 등으로 금융의 혁신이 본격화되는 요즘. 디지털 방식을 통한 온라인 금융활용은 디지털 문해력, 즉 리터러시의 핵심 중 하나다.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도 크게 확대되는 추세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의 관점은 분야와 진영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교육 분야는 디지털 리터러시의 윤리나 도덕을, 기술 분야는 변화와 진보를, 시장에서는 적응과 활용법을,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문명과 철학의 거대담론을 중심으로 디지털 리터러시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 같은 활용이나 윤리, 철학 중심 교육의 빈틈을 보이스 피싱이라는 범죄는 지속적으로 파고든다.

분명한 건 대중들의 금융과 소비가 디지털화될수록, 보이스 피싱의 수법 역시 단순히 목소리(보이스)를 낚는 방식에서 보다 디지털화되며 진화한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 피싱 유형 중 가장 크게 증가한 건 자녀를 사칭해 엄마 아빠를 상대로 사기를 친 ‘메신저 피싱’이었다. 통화가 아닌 문자나 카카오톡을 통해 앱을 설치하도록 하고, 그 악성 앱을 통해 휴대전화를 조종하고 통화를 가로채는 수법이다. 일단 앱만 설치되면, 이후 금융감독원이나 검찰을 사칭한 사람들이 번갈아 전화해 수사 운운하며 겁을 주고, 확인차 해당 기관에 직접 전화를 걸면 앱을 통해 전화를 가로채 보이스 피싱 세력이 받는 형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지난해 보이스 피싱 건수가 감소했고, 범정부적인 척결 대책도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정당한 구체신청에도 지급정지를 하지 않을 경우 금융회사도 책임을 지도록 했고, 지급정지 신청 후 환급률이 50% 가까이 올랐다는 점도 긍정적 변화다.

백신의 위험성을 알리는 톡, 반정부 집회를 독려하는 톡, 가짜뉴스가 넘치는 SNS만이 디지털 리터러시의 해결 과제가 아니다. 어쩌면 보다 많은 사람에게 더욱 직접적이고 보편적인 위협은 고도로 디지털화된 보이스 피싱일 수 있다. 오랜 기간 방치된 피해호소 및 구제 방식의 복잡성 만큼은, 변호사들이 아닌 공공이 해소해주길 바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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