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컨템포러리 발레로 탄생한 돈키호테 '알론소(ALONSO)'…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주는 고도 같은 작품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정면 기자 입력 : 2021.08.19 13:43
편집자주한편의 좋은 예술작품은 동시대를 반영하고, 희망을 준다.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에서 고도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고도가 무엇을 하는지 조차 모르지만, 그들은 고도를 기다린다. 그들은 그의 소설을 접하고 연극으로 그 고도를 찾아 나선다. 연극의 고도는 삶의 고도 찾기로 이어진다. 발레 알론소에서 마지막 알론소는 죽지만, 돈키호테는 영원히 남아있는 것처럼 돈키호테는 우리들의 또 다른 고도이다. 그리고 작가이자 연출자의 고도이기도 하다. 작품 알론소는 코로나19와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절망적인 세계에도 희망이 있다는 믿음마저 준다.
▲컨템포러리 알론소(ALONSO)포스터./제공=photo by BAKI

메튜본의 백조의 호수 같은 신작 발레 작품이 탄생했다. 컨템포러리 신작 발레가 19일 오후와 저녁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작으로 무대화(공동연출, 안무 신현지)되는 가운데, 세르반테스의 소설을 각색하고 연출한 이단비 연출을 통해 작품 탄생을 듣고 싶었다.

그 이유는 그동안 바질과 키트리를 중심으로 주변인으로 돈키호테가 나온 19세기 고전 발레는 있었지만, 컨템포러리 발레로 돈키호테가 주인공이자 작품 자체를 조명한 발레(현대무용)는 세상에 처음 태어났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을 떠올리면 명실상부 한국의 오페라 하우스라 불리는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지난 6월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 '돈키호테'가 무대에 선보여지긴 했으나, 그 공연은 바질과 키드리가 주인공인 고전발레 이다.

<돈키호테(Don Quixote)>는 문학사에서 ‘인류의 바이블’, ‘인간의 서’로 불리는 작품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인물을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인식하고 있다. 컨템포러리 발레는 돈키호테를 잉태한 세르반테스의 소설의 문학적 가치와 의미를 춤으로 재조명해 큰 의미를 가진다.

연출가이자 작가는 무용 칼럼니스트로, 베테랑 방송작가(교양, 보도부분 등)이다. 사실 이단비 연출은 MBC방송작가 시절 무용을 알리는데 매우 공을 들인 작가로 무용계는 기억하고 있다. 최근 무용계의 화두가 된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알려진 1세대 현대무용가 故 육완순 선생의 마지막 무대인사도 이단비 작가의 글을 통해서다.

짐작 했듯이 이 작가는 무용계와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 씨는 방송에서 대본을 쓰고 현장을 취재하며 글을 통해서 무용을 영상화를 하고, 칼럼을 쓰고, 공연평(RIEW)를 하다가 글을 확장시켜 무대화에 나선 것이다. 그의 말처럼 최근 토론이나 강의에서 이종간의 결합을 강조하는 것을 그렇게 자기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알론소의 배경


소설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지중해 스페인의 라만차 마을에 사는 노인 알론소 키하노가 중세 기사들의 이야기를 탐독하다가 정신이 나가서 자기 스스로를 ‘돈키호테’라고 이름 붙이고 모험에 나서는 데서 시작하는데, 다른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될지 결정하고,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생각만 하고 있지 않고 문을 열고 뛰쳐나가서 기사로서의 행동을 한 사람이다.

알론소는 삶에 지치고 늙어가는 육신을 지닌 인간이지만, 그가 불러낸 돈키호테는 이상향을 향해 거칠 것 없이 나아가는 알론소의 또 다른 자아이다. 스페인 대문호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 1547~1616) 사후에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돈키호테가 갖고 있는 초월성,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는 구원의 메시지를 갖고 있었다는 점을 파악하게 됐다. 이후 돈키호테는 '이상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이번 작품은 알론소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 안에 잊고 있던 꿈의 기사, 돈키호테를 불러내서 함께 호흡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두가 풍차이고, 양떼라고 말한 그것도 돈키호테의 눈으로 보면 다르다. 이는 단순히 풍차와 양떼가 아니라, 내가 넘어서야 하고 전투해야 하는 그 무엇이다.

실제 소설 속에서 돈키호테는 온갖 모험 중에 사람들에게 늘 정신 차리라는 소리를 들었고, 집으로 돌아와 그들이 말한대로 ‘정상적인’ 정신으로 돌아온 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돈키호테를 깨운 자는 알론소이지만 반대로 돈키호테는 알론소를 살아있게 만드는 힘이었다. 이 작품은 ‘알론소’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돈키호테’를 깨우는 기회를 안겨줄 것이다.

발레는 우리에게 존재하는 돈키호테와 알론소 키하노의 모습을 남성 무용수의 2인무를 통해 나타낸다. 알론소 역은 현대 미국 댄스시어터 오브 할렘에서 활동 중인 이충훈 무용수가 맡았으며, 돈키호테 역은 와이즈발레단 이원설 무용수가 맡아 두 캐릭터가 돋보이는 각기 다른 호흡과 색깔의 춤을 선보인다.

특히 엔딩 장면은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오마주로 완성했다. 역병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베니스를 떠나지 않은 작가구스타프 에센바흐가 예술과 미의 정수를 상징하는 소년 타지오를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하는 영화 속 마지막 장면을 알론소와 돈키호테로 치환하여 표현했다. 이 장면은 우리의 육신이 목숨을 다하는 순간, 우리의 꿈과 흔적, 예술적 정수는 여전히 제 생명력을 갖고 환하게 빛나며 남겨진다는 점을 상징한다.

발레는 소설 속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장면 장면의 이미지를 춤으로 표현하는데 주력했으며, 이를 음악적 서사를 통해서도 드러냈다. 각 곡이 갖는 의미와 그 곡이 탄생한 배경은 춤의 각 장면에 정확하게 맞췄다. 예를 들어 알론소가 돈키호테를 불러내는 장면에서는 슈만이 아내 클라라(피아니스트)를 위해 작곡한 사랑의 음악, 미르테의 꽃 Op.25 중 ‘헌정’이 흐른다.

이 음악을 통해 알론소가 자신의 꿈과 이상향인 돈키호테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고백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특히 엔딩 장면을 제외하고 모든 곡은 피아노 소나타와 피아노 독주곡을 사용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피아노 자체가 알론소에서 복선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피아노는 악기 하나로 세상의 모두를 담으려는 구도자적 악기이자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악기이기 때문에 알론소, 그리고 예술가,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인생과 닮았기 때문이다.

△베토벤 △슈만 △프로코피예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로 알론소의 심정과 알론소와 돈키호테를 둘러싼 상황을 춤 언어로 이미지화했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오마주로 한 엔딩에서는 영화와 똑같이 말러 교향곡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사용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피아노처럼 홀로 걷고 사투를 벌이지만, 죽음의 순간, 우리가 살아왔던 삶의 모든 것이 어우러져 오케스트라 교향곡으로 조용히 울려 퍼질 거라는 점을 담고 있다. 특히 슈만의 두 곡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피아니스트 이진상의 라이브 연주 음원을 후원받아 진행된다.

이제 돈키호테 같은 작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작가이자 연출자의 입을 통해서 작품에 대한 탄생과정을 들어보자.



돈키호테를 주인공으로 한 고전 발레는 있었지만, 컨템포러리 발레는 처음이다. 알론소의 탄생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알론소 역 이충훈 무용수./사진=photo by BAKI

중학교 1학년 시절 발레 전공 선생님을 만나서 실기를 처음 접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춤을 너무 좋아해서 애정과 열정이 지금도 있어요. 지금도 발레는 하고 있고요. 발레 말고도 다른 현대무용, 한국무용을 보았고 사이사이에 다른 춤을 배우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무브먼트(편의상 한글로 움직임으로 직역)를 알잖아요. 사실 춤은 직접 해봐야지 난이도도 체감을 해요.

일반 관객 눈에는 똑같이 턴(회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해보면 똑 같이 턴하는 것도 다 같은 턴이 아니거든요! 앞서 말한 것처럼 다양한 춤을 보고 접해서 이 작품(알론소)에서 여러 가지 무브먼트를 선보이고 연출하고 싶은 욕심은 있었죠. 부족해도 좋게 봐주셨으면 해요.

또, 최근에 제가 개인적으로 느낀 것도 제가 글이나 문장을 쓴다면, 발레하시는 분들은 춤이라는 언어를 갖고 각각 신이 다른 언어를 주셨구나! 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우리가 세르반테스 소설이 스페인어로 되어있지만, 한 작품 하나를 가지고 다양한 언어로 한국어로 말한 것이 영어로 될 수 있고, 한국어로 볼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는 작업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한번 제가 문장으로 느끼고, 제가 어디다 감상을 쓰고 이럴 수 있었지만, 요거를 어자피 제가 발레를 사랑하니깐 춤과 관련한 많은 글을 쓰니깐 무대에서 춤 언어로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바뀌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음악 선곡을 제가 다 했는데 그 음악이라는 언어도 입혀지고, 다양한 예술적 언어와 언어들이 만나서 어떤 모습으로 볼까 그게 굉장히 궁금했어요.

돈키호테는 제가 스페인 갔을 때부터 흥미를 가진 소설이었어요. 고전발레 돈키호테는 굉장히 재미있고, 지금까지 좋은 작품으로 공연이 됐는데 아시다시피 19세기 작품이잖아요.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세르반테스라는 인물을 넣어서 새로 새 버전을 만들기는 했는데, 이 문학 자체에서 갖고 있는 돈키호테를 조명한 발레 작품이 기다려도 안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만들다 보니 남자 무용수가 주인공 알론소와 돈키호테로 나온 거예요.



레퍼토리 선곡은 어떻게 했나?


▲이단비 작가./photo by BAKI

음악 레퍼토리는 엄청 심혈을 기울였어요. 처음에는 공연을 지난해 올리고 베토벤 소나타로 다 깔려고 했었어요. 그 이유는 베토벤 250주년 이었는데, 코로나19로 그렇게 될 수 없었잖아요. 저는 또 클래식 애호가고 어릴 때는 악기(피아노)를 또 했었어요. 그러다 보니깐 음악에 대한 애정이 발레만큼 깊었어요. 베토벤 250주년이 코로나19로 상황으로 너무 가려지고, 그로 인한 고통스런 삶이 이 알론소의 고통과 너무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 이걸 전부 베토벤 음악 중 소나타로 깔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깐 사랑의 감정도 나오고 해야해서 그냥 피아노 소나타 독주곡으로 가자 생각해 나중엔 그렇게 되었죠. 당초 처음 계획은 베토벤 소나타로 다 하고 싶었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 중 또 하나는 까멜리아 레이디 같은 경우 전부 작곡가 쇼팽의 피아곡으로 연주가 되는데, 그 드라마 발레가 피아노곡으로 완벽하게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 발레 작품을 만들면 예를 들면 차이콥스키 같은 오케스트라 버전의 음악이 아니라, 제가 피아노를 쳐서 그런지 피아노곡 하나로 커버하는 것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기에 피아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도 있고, 피아노 하나로 작품이 다 되는 거를 하번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사실 안무하기 편안한 곡들은 아니었는데, 그냥 난 몰라 난 돈키호테야! 이렇게 마음먹었어요.


돈키호테라 했는데 작품을 무대화 하며 그런 에피소드가 있어나.


발레에 대한 책을 내겠다고 한 출판사와 계약서를 쓰게 됐어요. 책을 쓰면서 돈키호테에 대한 이야기도 썼는데 ‘돈키호테는 19세기 고전 발레만 있고 원래 문학에 제대로 조명한 발레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 부분을 쓰면서 갑자기 제가 머리가 번쩍했죠. 그래, 아직 안나왔네, 라고요.

뭘 기다려! 아무도 안나서면 내가 만들자! 19세기, 20세기, 21세기, 200년 됐는데 내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열린책들에서 나온, 고대 안영옥 교수님이 번역한 책 돈키호테 두 권을 읽기도 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님이 번역한 번역본 두 권을 읽으며 이 작품(알론소)을 구상했는데, 그 쪽 출판사에 문을 두드리려다 제가 출판사 클 원고를 쓰다가 이 작품이 구상했는데, 다른 출판사와 이야기할 필요없다고 생각했죠.

저와 계약한 출판사 클에 얘기를 했어요. 출판사 클 직원들은 이미 고전발레 돈키호테도 단체관람 하셨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돈키호테도 단체관람 하시죠, 이렇게 제안했어요. 그렇게 해서 그분들이 티켓으로 후원을 해주시고 공연에 오시기로 하셨어요.


발레에 후원을 안하던 기관인 아울라 세르반테스가 후원으로 들어가 있는데 정말인가? 평소 인연이 있었나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이단비 작가./

아울라 세르반테스(Aula Cervantes)에 연락하니깐 약간 당황은 하시더라고요. 무작정 전화하니.(웃음) 사실 방송 작가들은 원래 섭외하고 전화하고 이런 것이 평상시 업무이기 때문에 전혀 모르는 곳에 제가 필요한데 연락을 드리는 거는 저한테는 그렇게 생소한 일이 아니예요. 그래서 저는 그게 전혀 생소하지 않고, (작품이)스페인 문학으로 하는 것, 아울라 세르반테스는 이런 스페인 문화나 문학을 알리는 기관이니, 당연히 저희 후원을 해줄 것이라 생각했어요(웃음) 네 돈키호테는 이거 너무 제 이야기예요. 이 작품(알론소) 자체가 그냥 제가 제안의 돈키호테를 꺼내서 남들이 풍차다, 남들이 양떼다 해도 난 일단 좀 달릴게 하는 마음으로 달려온 거죠.


관객들이 이 장면은 꼭 봐야 한다 싶은 것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이어서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수미상관으로 이어져요.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가 파플러한(대중적)곡이라서 사실 고민을 했어요. 제가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먼저 보지 않고, 말러 음악을 듣고 나서 영화와 책을 접했거든요. 너무나 제 인생에 여러 군데에 예술적 감성을 준 것 중에 가장 포인트가 되는 음악 영화와 책이었어요.
<베니스에서의 죽음> 그 영화 그렇고, 그 마지막 장면이 잊혀 지지가 않는 거예요. 이 마지막 장면을 가지고 함부르크발레단에서 존 노이마이어(예술 감독)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어요. 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서 한번 만들고, 그만큼 다른 예술가들도 많은 영감을 받았다 생각해요

그 마지막 장면에서 제가 느꼈던 것은 그 남자 주인공이 젊어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려고, 화장하고 뭐 이렇게 하고 거기서 죽어가면서 타지오라는 소년을 잡을 수 없는 괴로움 이런 것이, 그 장면 자체가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예술적 정수라고 생각한 소년을 남겨놓고, 죽어가는 모습이 너무 처연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저도 언젠가 그런 모습으로 죽지 않을까 생각도 했고요.

또, 사실 말러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를 쓴 이유는 말러 교향곡 5번이 중의적 느낌의 음악이라 생각했어요. 제가 안무가에게 절대 마지막 장면에서 알론소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면 안된다고 요구했어요. 알론소는 죽지만, 돈키호테는 남아 있어요. 그게 핵심이예요. 알론소의 죽음에 사람들이 처연해서 울지만, 돈키호테가 남아있는 것을 보고 희망을 느낄 수도 있거든요. 말러의 아다지에토가 그런 이중적인 느낌의 음악이 너무 살아있다고 느꼈어요.

굉장히 이중적이고 아름다운 느낌이 들어 있는 음악 이예요. 그게 제가 보기엔 너무 딱 인거예요. 마지막 장면을 먼저 정해놓고 썼어요. 이건 신이 제게 주신 선물이라 생각했죠. 주역 무용수가 은퇴를 고민할 때라서 알론소 역할에 딱 이라고 생각했고요. 우리 모두가 언젠가 겪을 수 있는 감정이 이 작품 안에 녹아있고, 그걸 표현하려는 노력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choi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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