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 대한 책임 ‘온실가스 감축’

[법으로 보는 세상]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기본법’, 기업과 환경단체 반발 넘어야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입력 : 2021.09.03 09:26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9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 2008년 8월 15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60년을 맞는 오늘,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비전의 축으로 제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녹색성장은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며 “녹색성장은 한강의 기적에 이어 한반도의 기적을 만들 미래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 실천방안으로 친환경 주택건립 100만 가구 보급, 그린카 개발, 4대강 사업, 온실가스 2020년 배출 전망치 대비 30% 감축 등의 목표를 내걸었다. 국회에선 2010년에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도 제정됐다.
하지만 녹색성장을 내세우며 진행했던 4대강 사업은 수질 악화로 이어졌다. 녹조가 확산하면서 ‘녹조라떼’ 현상이 심화됐다. 2011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6억1000만 톤으로 전년도 순위(세계 7위)와 차이가 없었다.

# 2021년 8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76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발표한 ‘2050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토대로 국민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겠다”며 “올해 안에 실현 가능한 2030년 감축목표를 공약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넷-제로(Net-Zero)’라고 불리는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발생된 온실가스를 감소시켜 실질적 배출량을 ‘0’에 가깝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범여권 의원 15명이 발의한 내용을 기본으로 ‘탄소중립 기본법’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5% 이상 줄이도록 했다. 기준연도인 2018년은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고치에 이른 해로 7억2800만 톤에 달했다.

탄소기본법의 가장 큰 쟁점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수치였다. 여당은 35% 이상 감축을 주장한 반면, 야당은 2010년 대비 최소 45~50%는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0년 대비 45%’는 2018년 기준으로 바꾸면 50.4%를 감축해야 한다.

민주당은 현실적 부담을 호소하며 “법에는 하한선만 넣고, 시행령에서 좀 더 구체화하자”고 했으나 야당은 법에 명시할 것을 요구했다. 여야는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달 19일 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35% 이상’으로 표결 처리했다. 이제 법안은 국회 본회의 통과만을 앞두고 있다.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어떤 내용 담겼나


이 법안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과 순흡수를 0으로 맞추는 탄소중립 달성과 기후위기 대응 제도 구축을 목적으로 마련됐다. 법의 주요 내용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국가전략 수립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 △정부는 20년, 시·도는 10년 기간의 기본계획 수립 △대통령 소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설치 △기후대응기금 설치 등이다.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2018년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라고 명시한 것이 특징이다.



정부, ‘탄소중립’ 시나리오 발표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이 8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위원회(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스1

2050 탄소중립시나리오위원회(이하 탄중위)가 지난달 5일 탄소감축 목표 초안을 발표했다. 탄중위는 시나리오가 2050년 탄소중립이 실현됐을 때 미래상과 부문별 전환과정을 전망한 것으로 부문별 세부 정책방향과 전환속도를 가늠하는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시나리오는 미래상에 대한 예측으로 내용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정책 여건 변화에 따라 대략 5년마다 갱신된다. 1안은 기존의 체계와 구조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기술발전과 원·연료 전환을 고려한 방안으로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 2540만 톤이다.
 
2안은 1안에서 화석연료를 줄이고 생활양식 변화를 통해 온실가스를 추가로 감축하는 방안으로,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 1870만 톤이다. 3안은 화석연료를 과감히 줄이고, 수소공급을 전량 그린수소로 전환해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넷제로’다.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 0톤이다.

각각의 대안은 석탄발전 유무와 전기차-수소차 비율, 건물 에너지 관리, 탄소포집활용및저장(CCUS, Carbon Capture, Utilitzation, and Storage)과 흡수원 확보량을 어떻게 적용했느냐에 따라 차별화됐다. CCUS는 발전소나 산업시설 등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압축·수송 과정을 거쳐 저장하거나 유용한 물질로 전환해 활용하는 기술이다. 흡수원은 바다숲이나 댐홍수터와 같이 탄소중립에 도움을 주는 자연환경이다.

탄중위는 “공개한 세 가지 시나리오 초안에 대해 9월까지 폭넓은 의견수렴을 진행할 것”이라며 “(8월) 7일 출범하는 탄소중립 시민회의를 통해 일반국민 의견수렴도 함께 진행한다”고 밝혔다. 탄중위는 수렴된 의견을 반영해 위원회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정부 최종안은 10월 말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나라들의 탄소감축 계획은…


유럽연합(EU)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정점인 1990년을 기준으로 2030년까지 55%를 감축하기로 했고 2050년부터 자국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 수입되는 제품에 부과하는 탄소 국경세를 도입하기로 했다.

미국은 탄소 배출량의 정점인 2005년 대비 2030년까지 50~52%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으며, 유럽연합과 마찬가지로 2025년부터 탄소 국경세 시행을 예고했다.

환경단체 등은 이번 제정안에 규정된 2030년 NDC로는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에 역부족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지난달 24일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피크(peak, 정점)를 일찌감치 찍은 나라가 목표를 내건 것과 (한국이) 똑같기는 힘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 장관은 “국내 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중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성장했고 여전히 중화학 공업을 포함한 제조업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며 “이것도 EU 등과는 다른 입장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환경단체들 일제히 반발 “환경보다 경제만 우선한 법”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성명서를 통해 “2050년까지 순배출량 제로를 명시해놓고, 정작 2030년에는 5억 톤에 육박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겠다는 황당한 목표를 제시했다”며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할 탄소중립법을 당장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황인철 공동집행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전 세계 평균보다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뤘고, 그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도 과감하게 하는 게 맞다”며 “지금 수준으로는 매우 부족하다”고 말했다.

황인철 기후위기 비상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이 8월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녹색성장 말고 기후정의를! 기후위기 대응 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녹색연합은 “국회 환노위의 안일한 기후위기 인식 수준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2050년 탄소중립 또한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의무’가 아닌 ‘목표’로만 규정했다”고 밝혔다.

법안에 ‘녹색성장’ 개념이 포함된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왔다. 지난달 19일 환경운동연합은 “녹색성장은 기후위기 유발의 가장 큰 책임자인 기업들에 면죄부를 줄 뿐이다. 기존 저탄소 녹색성장법 기본법의 과오를 반복할 시간이 없다”고 지적했다.



경제5단체, 탄소중립법에 우려…“기업 의견 반영 안 돼”


지난달 25일,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5단체는 대한상공회의소 회관에서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경영계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상근부회장단 회의를 개최했다.

이들 단체 부회장단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과정에서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기업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으며, 35% 이상이라는 구체적인 수치가 탄소중립기본법에 명문화되었다는 점, 감축목표 수치를 설정하게 된 합리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 산업구조와 에너지 체계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탄소중립 정책으로 인해 원자재 가격 상승, 전기료 인상 등에 따른 우리 기업의 국제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자동차업계 ‘산업위축·대량실직 최소화 방안’ 요구


자동차산업협회는 지난달 19일과 22일 탄소중립 기본법 국회 의결과 관련해 자동차부품업계 관계자들과 긴급 온라인회의를 열고 의견을 모았다. 회의에는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회장, 신달석 자동차산업협동조합 회장, 오원석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 이사장, 오유인 쌍용협동회 회장, 이경식 한국GM협신회 크레아 사장, 최정헌 다성 부사장 등이 참여했다.

자동차산업협회는 국내시장이 아직까지 내연기관차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전기차 전환을 급격하게 시도할 경우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발전·전력설비, 충전인프라 확충 등 사전준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6월 17일 오후 충남 논산 국방대학교에서 ‘2050 탄소중립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환경부 제공

특히 법안에 명시된 대로 2030년까지 35% 이상 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약 395만 대의 전기차 보급이 필요하다고 협회는 추산했다. 현재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는 17만 대 수준에 불과하다. 전기차 395만 대를 유지하려면 충전소 구축에 3조3000억원~7조원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또한 협회는 “전기차 생산 시 필요인력은 내연기관차 대비 38%로 충분하다는 연구결과에 따라 근로자 대량실직도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특히 한국GM과 르노삼성, 쌍용 등은 노사관계 등 경영여건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국내 전기차 생산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어서 문제”라고 밝혔다.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은 “선진국의 탄소감축목표를 감안하면 우리의 목표 재정립도 불가피하지만 문제는 속도다”라며 “급속한 탄소감축방안이 미칠 수 있는 산업 위축이나 대량 실직 등 부작용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검토하고 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