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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를 위한 북(book)소리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입력 : 2021.10.07 09:08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충녕 이도(李.)는 21세 나이에 왕세자 수업도 못 받은 채 갑작스럽게 양녕을 대신해 왕위에 올랐다. 여전히 실권을 거머쥔 상왕 태종과 기 센 군신들 사이에서 젊은 왕 세종의 입지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왕위에 오른 해 장인 심온이 좌의정 박은의 무고로 역모죄에 몰려 상왕에게 사약을 받는데도 그는 손 하나 못 쓰는 허세였다. 폐세자 형인 양녕과 둘째 형 효령까지 있는 상황에서 그가 왕좌를 공고히 하기까지는 곳곳의 암초를 헤쳐나가야 했다.

그랬던 세종이 조선왕조 최고 성군으로 평가받기까지 뛰어난 국가경영 치적을 쌓았던 배경은 ‘공부, 배려, 민생, 실용, 추진력, 선공후사’였다. 너무 책만 봐서 큰일이라고 태종이 걱정했을 만큼 세종은 공부를 많이 해 다방면으로 박식했던 터라 감히 그를 대적할 신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합리적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토론으로 여론을 수렴했다. <세종실록>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의논하여 보고하라!”다.

흉년이 들어 굶는 백성이 늘어나면 왕자 충녕이 사는 집 앞에는 거지들이 줄을 섰고, 그때마다 충녕은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눠줬다. 그게 너무 잦아 아버지 태종이 근심할 지경이었다. 관비가 아이를 낳으면 100일 출산휴가를 주도록 법으로 정한 왕도 세종이었다. 세종의 정책 최우선순위는 민생이었다. 민생은 백성들이 먹고사는, 굶지 않는 일인데 세종은 자나깨나 이부터 걱정했다. 배려와 민생 챙기기는 디테일에 강해야 가능하다. 

세종은 디테일에 강했다.
세종은 실용주의에다 강한 추진력의 소유자였다. 굳이 장영실이 아니더라도 세종은 기술자들을 극진히 챙겼다. 중국에서 기술자가 오면 최대한 호의를 베풀어 귀화시켰다. 세종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수레를 전국에 보급하도록 강력히 밀어붙였다. 무과 시험에 문과 과목을 추가해 무관의 위상을 높인 것도 세종이었는 바, 먼 훗날 한자로 <난중일기>를 기록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도 그 덕을 보았다. 세종의 황금치세를 일군 주역으로 정승 황희와 맹사성을 들지만 진짜 상신(相臣)은 류관이었다. 류관은 청렴과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대명사였는데 그의 부음을 들은 세종은 흰 옷을 입고 홍례문 밖에 나가 눈물을 쏟았다.

여야 대통령 후보 경선이 한창이다. 만약 후보 중에 대한민국 대통령을 맡아 국가경영을 책임지기에는 공부가 안 돼도 너무 안 된 후보가 있다면 이 사람에게 나라를 맡겨서는 안 된다. 공부가 넘치도록 돼있어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업무가 대통령 업무다.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 잘못 뽑았다가 아직도 호되게 대가를 치르고 있다. 대통령 잘못 뽑아 나라가 산으로 가면 그 대가를 오롯이 국민이 치러야 한다. 최소한 전한시대 궁정토론기록 <염철론>이나 <국가경영은 세종처럼>도 읽지 않은 후보라면 위험하다. 대통령 잘 뽑자!

▲<국가경영은 세종처럼> 박영규 지음 / 통나무 펴냄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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