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영국 총선과 그림으로 보는 영국 선거사

[이종희 정치살롱]

이종희 교수입력 : 2017.06.13 17:27
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강순후 · 이종희
▲선거연수원 이종희 교수
영국의 총선이 6월 8일 치러졌다. 영국은 양원제와 단순다수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하원의원만 단순다수제로 선출하고 상원의원은 임명직이다. 영국의 단순다수대표제는 비례대표 없이 총 650개의 선거구에서 각 1명씩의 의원을 선출하는 소선거구 1위 대표제이다. 다가오는 6월 총선은 메이 총리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 전략을 놓고 국민의 의견을 묻기 위해 치러지는 선거이다. 메이 총리는 의회의 의석 과반수를 겨우 넘긴 보수당 의석의 한계점, 2019년 브렉시트 협상 완료 기한 등의 정치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조기 총선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영국의 하원의원 선거(general election)는 법률상 5년에 한 번씩 실시하게 된다. 하원의원 선거 결과를 토대로 총 650석의 과반수인 326석 이상을 차지한 정당이 집권 내각을 구성하며 선거에서 승리한 당의 당수가 총리직을 맡게 된다. 영국에서는 통상 한 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하는 단일정당 내각(single party cabinet)을 만들어왔다.

▲영국의 총선 절차 / 그래픽:김미소
이번 총선에서 보수당은 ‘이민자 제한’과 ‘브렉시트 협상력 제고’를 선거의 주요 이슈로 제시하고 있다. 영국의 보수당은 개인주의와 시장 자유주의를 강하게 주장하는 정당으로 상징되어 왔으나 메이 총리는 이번 조기 총선을 앞두고 공약을 통해 새로운 보수가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과거에도 서민 다수를 위한 정책을 표방한 사례가 존재했다. 그 예로 영국의 보수당의 이념을 정립하고 보수당을 ‘국민의 대중정당’으로 발전시킨 벤자민 디즈레일리(1804 ~ 1881) 총리를 들 수 있다. 영국의 참정권 확대에도 기여한 디즈레일리는 “보수당은 엘리트나 어느 특정 계급의 당이 아니라 전 국민의 당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디즈레일리는 13년간 보수당을 이끌면서 4차례 총리직을 수행하고 보수당을 국민의 당으로 변모시켰다. 그의 “오두막이 행복하지 않으면 궁전도 안전하지 않다"라는 명언은 보수당의 자유주의 이념에 복지국가와 혼합경제의 이념을 수용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영국은 전통적인 군주제 국가였으나 청교도 혁명, 명예혁명 등을 거치면서 시민의 자유를 확대시키고 공화정에 기반을 둔 의회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나라이다.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는 선거제도를 통하여 발전되었다. 영국에서 선거제도가 도입될 당시 선거권은 땅을 많이 가진 지주(地主)에게만 부여되었다. 그리고 선거 과정에서 많은 유권자 매수와 향응 제공이 있었다. 영국의 초기 선거 모습을 그린 영국의 대표적인 화가 ‘윌리암 호가드’의 그림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윌리엄 호가드(William Hogath)의 선거향응(Election Entertainment), 1755/출처: Wikimedia

이 그림은 18세기 영국의 정치풍자 화가 윌리엄 호가드(William Hogath)가 1755년에 그린 '선거향응(Election Entertainment)'으로, 1754년 영국 옥스퍼드주에서 있었던 선거를 풍자한 것이다. 18세기 영국에서는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 전 국민의 5%도 되지 않았고 투표소가 멀었기 때문에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을 술집에 모아 며칠간 식사와 술을 제공하고 투표소까지 데리고 가는 것이 흔하였다. 이 그림은 선거 연회장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남자와 여자, 술을 큰 통에 채우는 여자, 술에 취해 의자에서 자는 남자, 시중드는 여자, 후보자로 보이는 남자가 임신한 여자의 배를 만지는 모습 등 당시 상류층의 부조리와 잘못된 선거풍토를 잘 표현하고 있다.

영국의 선거제도 발달과정을 선거권 확대 과정과 공명선거 정착 과정으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영국도 처음부터 보통선거가 실시된 것은 아니었다. 영국의 선거법은 15세기경에 마련되었다. 영국의 선거권 확대는 여섯 차례의 선거법 개정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영국의 선거권 확대 과정/그래픽: 김미소

[영국의 선거권 확대 과정]

제1차 선거법 개정(1832년)

영국의 초기 선거에는 귀족, 토지를 가진 부자 등 매우 제한된 상류층만이 투표권을 가졌다. 1832년에 영국은 선거법을 개정하여 도시산업 자본가와 중산층이 새롭게 참정권을 획득하게 된다. 선거법의 개정 배경에는 18세기 중반과 19세 초반에 걸친 산업혁명으로 인한 산업자본가인 부르주아 세력의 탄생과 1830년에 발생한 프랑스 7월 시민혁명의 영향이 있었다. 1831년 휘그당(자유당의 전신)이 의회의 다수당이 되면서 그레이 수상이 선거권을 확대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으나 상원에서 부결되었다. 이에 내각이 사퇴의 절차를 밟았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법안이 상원에서 부결된 것에 국왕도 정치적 부담을 느껴 상원 의원들을 설득시켜 선거법 개정안이 상원을 통과할 수 있게 하였다.

1832년 양원을 통과한 선거법에 의하여 신흥 도시지역에 선거구가 신설되고, 도시지역에서는 연 10파운드의 임대가액을 가진 주택의 소유자 및 10파운드 이상의 주택임대료를 지불하는 자, 농촌 지역에서는 연 10파운드의 임대가액을 가진 토지의 소유자 및 연 50파운드 이상의 토지 임대료를 지불하는 농민으로 선거권이 확대되었다. 그 결과 종래 16만 명에 불과한 유권자 수가 65만 명으로 늘어났으나 당시, 총인구 약 1천5백만 명에 비하면 유권자 비율은 4.3%에 불과하였다. 또한, 1832년 선거법 개정으로 부패 선거구 및 지명 선거구가 폐지되었다. 개정 이전에는 부패선거구에서 의원 의석이 공공연하게 매매되었고, 그 수입이 유권자에게 배분되는 부패가 만연하였으나 의원이나 유권자 아무도 죄의식이 없었다. 또한, 지명 선거구에서는 특정 대지주가 소수의 몇몇 유권자를 지배하여, 사실상 대지주가 후보자를 지명하기도 하였다.

제2차 선거법 개정(1867년)

제1차 선거법 개정 때 노동자들은 부르주아를 지지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이 조직적인 노동자 운동을 전개했다. 대략 1838년부터 1850년대 초까지 전개된 노동자 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영국에서 ‘차티스트(Chartist)’로 불렸다. 차티스트 운동은 ➀ 21세 이상 남자의 보통선거권 부여 ➁ 임기 1년의 의회 운영 ➂ 무기명 비밀투표제 ➃ 선거구 조정 ➄ 피선거권 자격제 폐지 ⑥ 하원의원 유급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했다. 차티스트의 이러한 주장은 국민의 서명을 받아 1839년과 1842년, 1848년에 의회에 제출되었으나 부결되었다.

1860년대에 들어 노동자들의 선거권 참여 운동이 다시 전개되었다. 1867년 귀족과 지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당이 노동자의 지지를 확보하고자 먼저 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하였고, 여기에 자유당이 더욱 개혁적인 수정안을 제출하면서 도시의 노동자들과 소시민에게까지 선거권이 주어졌다. 그 결과 유권자 수가 130만 명에서 250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노동자 및 소시민에게 선거권이 확대되자 자유당과 보수당은 그들의 표를 확보하기 위하여 전국 단위의 조직을 구성하고 유권자에 대한 접촉을 시도한다. 정당은 유권자의 의사를 받아 의회에 반영하고, 내각 또한 선거 결과에 의하여 구성되는 등 대의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갔다.

자유당은 1832년 정권을 잡은 후 1862년까지 정권을 유지하였다. 자유당과 보수당은 경쟁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당시 자유당의 지도자는 윌리엄 글래드스턴이었고 보수당의 지도자는 벤자민 디즈레일리였다. 양 지도자는 총리를 역임한 지도자로서 의회에서의 토의와 선거를 통하여 영국의 의회정치제도와 선거제도를 발전시켰다.

▲차티스트의 시위 모습/출처: Wikimedia


제3차 선거법 개정(1884년)

1867년 제2차 선거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소작농 및 광산 노동자들은 선거권을 부여받지 못하였다. 제2차 글래드스턴 내각에 의하여 1884년 선거법을 개정하여 소작농과 광산 노동자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하였다.

제4차 선거법 개정(1918년)과 제5차 선거법 개정(1928년)

선거법 개정으로 선거권이 확대되었으나 여성참정권의 확대 문제가 대두되었다. 여성에게 주의회 투표권이 주어졌으나 전국적으로 여성에게 투표권은 부여되지 않았다. 영국의 여성참정권 확보에 크게 기여한 사람으로 에멀린 팽크허스트(1858~1928)를 꼽을 수 있다. 그녀는 영국의 맨체스터에서 태어나서 남편인 리처드와 함께 여성 참정권을 위한 운동을 하였다. 1898년 남편이 죽은 후 여성사회정치동맹(WSPU)을 결성하고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끌었다. 1865년 여성참정권위원회가 결성되어 여성참정권을 요구하였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에멀린의 남편과 여성참정권 운동을 함께 한 존 스튜어트 밀은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1867년 선거법 개정 당시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수정안을 제출하였으나 부결되었다. 또한, 1892년에 전국적으로 여성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제출되었으나 이 법안도 부결되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여성참정권 운동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여성의 지원과 사회적 지위 향상 등으로 여성참정권 실현이 중요한 국가과제로 나타났다. 이에 1916년 선거법 개정위원회가 설치되어 개정안을 마련하였고 1918년 로이드 조지, 내각이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남성의 경우 21세 이상으로 선거권이 확대되었고 여성은 30세 이상에 한하여 처음 선거권이 보장되었다. 1928년부터는 여성과 남성이 똑같은 참정권을 얻게 되었다. 

[영국의 공명선거정착과정]

공명선거의 나라로 일컬어지는 영국도 하루아침에 선거풍토가 깨끗해진 것은 아니다. 130여 년 전인 1880년 영국의 총선거에서 금품 및 향응 제공의 매수행위가 전 지역에서 대규모로 발생하였다.

상상을 초월한 부패로 얼룩진 1880년의 영국 총선거

여당인 보수당과 야당인 자유당이 총선거에 참여하였는데 치열한 경쟁 끝에 자유당이 정권을 탈환하였다. 당시에는 불법 선거운동원들이 기승을 부리고 매수행위와 선술집을 전세 내어 음식과 술을 제공하는 등 부정선거가 극에 달하였다. 후보자들은 유권자에게 술을 제공하고 마차에 태워 투표소에 보냈다.

개혁의 주역 글래드스턴 수상과 제임스 법무장관의 등장

1880년 부패추방을 공약으로 내걸고 보수당과 경쟁하여 승리한 자유당의 글래드스턴은 선거 후 수상이 되어 부패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철저한 조사를 하였다. 글래드스턴 수상은 헨리 제임스 법무부 장관에게 부패추방을 위한 법안 마련을 지시하였다. 제임스 장관은 1881년 “부패 및 위법행위방지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면서 다음과 같은 명연설을 하였다.

"지금이야말로 부정과 부패행위에 종지부를 찍는 법률을 의회의 이름으로 제정할 때입니다. (중략) 지금 부패행위를 근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도 몇 번이나 법 개정을 해왔습니다만, 선거제도 그 자체를 고치지 않는 한 어떠한 개혁을 해도 허사입니다. 현재 이 나라 최대의 악은 선거에 막대한 돈이 드는 것입니다. 숭고한 애국정신의 소유자라도 돈이 없으면 의원이 될 수 없습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의원에 당선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영국입니다. (중략) 이 얼마나 불명예스러운 일입니까?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나라의 의회가 세계 속의 웃음거리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국민의 대표인 우리들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실성이 지금 문책당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선거개혁은 이 연설로 시작되어 법안을 둘러싼 논쟁과 대결 끝에 2년 뒤인 1883. 8. 25 영국의 선거풍토를 근본적으로 바꾼 『부패 및 위법행위방지법』의 제정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부패 및 위법행위방지법 제정 후 변화

엄격한 법 적용으로 인해 선거비용과 불법사례가 획기적으로 감소하였고, 공명선거가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 남서부의 조그만 시골 마을 브레모아에 있는 헨리 제임스의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고 한다. 『헨리 제임스는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이다( He was a friend of the poor)』.

이번 조기 총선에 영국 국민은 물론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브렉시트 협상력 강화와 공정한 사회, 국민주류의 대중 정책을 모색하고 있는 메이 총리와 보수당에게 영국 국민들이 이번 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안겨 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참고문헌>
박지향, 2017, 『정당의 생명력 - 영국 보수당』.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英총리, 대처 버리고 新보수 세운다(종합)” (news1. 2017. 5. 19 인터넷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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