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나오는 경복궁, 걸어 들어가는 경복궁

李達坤(이달곤)의 思政慢文(사정만문)

가천대학교 이달곤 정책학 교수입력 : 2018.01.02 09:56

▲이달곤 가천대학교 정책학 교수
경복궁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궁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을 들어서서 청와대를 향하여 북쪽으로 걸어가면서 살핀다. 하지만 조선 임금들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하루의 일과를 청와대 가까이에 위치한 강녕전(康寧殿)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경복궁의 전각들은, 북쪽 맨 뒤에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이 있고, 그 앞에 국왕이 일상생활을 하는 강녕전, 그 앞에 임금이 정사를 고민하는 사정전(思政殿), 그 앞에 공식적인 회의가 열리는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 그 앞에 내부 출입문이라고 볼 수 있는 홍례문(弘禮門), 그리고 넓은 앞마당을 지나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궁궐 건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정도전이 이성계의 명에 따라 건축하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 명칭 하나하나에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박진훈 명지대 교수는 건물의 이름을 잘 해석해주고 있다. (2017, 혜안)


강녕전은 임금의 건강한 신체와 올바른 마음을 상징하며 통치의 시작으로 본다. 그 다음 사정전은 신중하고 올바른 정책의 구상 즉 정치와 정책을 고민하는 곳, 그 다음 근정전은 결심한 정책의 실현과 행정의 집행에 왕과 신하가 열심히 일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앞의 홍례문은 단지 잘 먹고 사는 것을 넘어서 인륜과 도덕의 핵심인 예(禮)을 넓히라는 의미를, 광화문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군주가 덕으로 이상국가인 올바른 나라 기운을 백성에게 펼치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대부분의 정부는 초기에 인수위원회를 두거나 정책기획위원회를 만든다. 사정전 옆에 문신들의 정책연구기관인 집현전이 있는 형국과 유사하다. 그들은 수많은 일거리 중에서 주요 국정과제를 100개 정도를 제시하고, 대통령과 청와대도 그것을 사주단자 모시듯 소중하게 다룬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의 템포(tempo)는 빠르다. 군사조직을 지휘하듯 한다. 대부분의 국정과제들이 청와대에서 시작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즉, 막 취임한 대통령의 입장에서 시작한다.


맨 북쪽 산기슭에서 광화문으로 내려오는 임금의 사고는 행동 방향과 같다. 대통령의 고민과 결단에 이어서 계획하여 지시한다. 멀리 미래상을 볼 시간이 없다. 세상사를 뒤돌아볼 여유도 없다. 곧이어 수많은 공무원들에게 시행을 독려한다. 밀어붙인다. 초기 구상대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이것을 정책학에서는 전방향 분석(forward mapping)이라고 한다.
사회가 미분화되고, 정부가 휘두르는 힘이 그런대로 작동할 때는 이러한 전방향 전략이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예를 들라면 제법 많다. 그래서 정부 주도로 행정국가를 만들어서 성공했다고 한다. 민주화 과정에서 엄청난 갈등과 상처를 입었지만 말이다. 산업화나 민주화도 완성형은 없다. 지속적인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후진국의 대표선수에서 선진국 문고리를 잡고 세계적으로 중간국(middle power) 행세도 가능해졌으니 ‘용(龍) 되었다’.

헌데 이제는 경복궁 밖이 많이 변했다. 남대문 시장도 경복궁보다 커졌다. 여의도에 가면 정부를 뒤흔드는 언론과 정치가 버티고 있다. 세상을 한순간에 엮어 매어 돌리는 SNS는 세계 수준급이다. 종편은 또 어떻고! 청와대의 힘은 빠졌다.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맘대로 안 되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 공무원 수는 사기업에 종사하는 사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민간이 돌리는 자금은 정부 자금보다 몇 배나 또 많고 빠르게 움직인다. 문제도 해결책도 궁궐 밖에서 찾아야 한다. 미래상을 그리면서.


그래서 필요한 전략이 후방향 분석(backward mapping)이다. 하버드 교수들이 30년 전부터 개발하고 있는 접근법이다. 남대문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아니 워싱턴, 동경, 북경, 베를린에서 출발해야 할 것도 많다. 그리고 여의도 게임도 잘 고려하여야 한다. 청와대의 입장에 서기 이전에 세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잘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기준점을 5년 뒤, 10년 뒤 미래에 놓고 점점 현재로 다가오면서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이고 그래서 언제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를 궁리해야 한다. 시간도, 공간도 뒤로 걸으면서(後步:후보) 하는 국정 기획이 필요하다.

65년이 되어가는 한미상호방위조약(53년 체결, 54년 발효)을 한번 보자. 이 조약은 올해도, 2006년 북한 핵실험 때도, 1995년, 1970년 그리고 1968년 김신조 침투 때도, 발효된 1954년에도 대한민국의 안보에 가장 유효한 동맹 조약으로 작동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여 일상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오늘도 가장 강력한 전쟁 억지력을 제공하고 있다. 소련이 러시아로 변하고 중공이 중국으로 변하였지만 동북아의 평화안전 장치로서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되돌아보니 엄청난 결단이었고 혜안이었다. 당시를 보자. 미국과 소련은 소모전에 지쳐 휴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을 주장하고, 또 있을지 모르는 재침을 대비해서 적극적 군사적 행동을 미국에 요청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미군 지휘 하에 있던 반공포로를 석방하여 미국의 허를 찌르면서 맞서기도 하였다. 전쟁의 참화로 아무 것도 없는 참 힘든 상황에서, 게다가 별 자체 군사력도 없는 처지에, 미국에 당당히 나설 수 있었던 용기를 범인들은 갖기 어렵다. 미래를 걱정하여 만든 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수십 년 후 냉전이 종식된 오늘날까지도 국민의 인권과 복리를 가장 안전하게 보장하고 있는 틀이 아닌가? 미래 비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성공한 것으로 후대에 평가받는 정책’은 아주 많다. 그러한 것들은 대체로 후방향 전략으로 결단이 내려졌고, 그 결단에 앞선 대통령은 비전을 가진 리더로서 평가받고 있다. 기업에서도, 가정에서도 이러한 예는 많다. 1970년대 초 500원짜리 지폐에 나오는 거북선을 런던의 바클레이 은행 중역에 보여주고 조선소 융자를 받는 정주영, 그는 거꾸로 일을 해낸 인물이다. 배를 해외에서 수주 받아서, 그것을 보증으로 세워 은행융자를 받고, 그 돈으로 울산 앞 바닷가에 조선소를 세우는 후방향 전략을 성공시킨 사람이다. 머리카락을 잘라 팔면서까지 자식 공부를 시킨 어머니는 또 어떻고…. 다 한 세대, 두 세대 이후의 세상을 판단하는 예지력을 갖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평가의 시점을 미래로 두는 것. 정책을 고민할 때 국민의 입장에서 시작하는 것. 그것이 후방향 전략의 핵심이다. 정권이 저물 때를 시점으로 상정해서는 아무것도 남길 수 없다. 정권이 끝나고 나서 5년, 10년 흐르면서 과거에 결단한 정책이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복리 증진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다음 정권이 앞 정권의 주요 정책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도 앞서서 고려하여야 한다. 물론 적폐로 몰고 정반대로 나가는 것까지도 고려하여야 하고.

국민은 궁궐 밖에 살면서 세월이 흐른 이후 남쪽에서 북쪽으로 걸어가면서 정책을, 정치를, 그리고 대통령을 평한다. 무서운 것은 역사의 평가다. 역사는 시간을 거꾸로 가면서 평한다. 인기도나 국정지지도는 남쪽으로는 흐르는 바람과 같다. 진정한 평가는 북쪽을 향하여 미래의 시간에서 현재를 보면서 이루어진다.

 
[이달곤 사정만문]은 이 교수가 ‘국민정치와 국가정책을 고민한다는 사정(思政)’이라는 이름으로 만필을 쓴 것임.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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