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가 진짜라던데…

李達坤(이달곤)의 思政慢文(사정만문)

가천대학교 이달곤 교수입력 : 2018.02.01 10:25

▲이달곤 가천대교수
35년 전 보스턴에서 만난 중국 친구가 생각난다. 그는 대도시 혼잡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물 자전거에 걸터앉아 시내를 돌아다녔다. 중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그가 유명대학의 대학원과정에 왔기에 그 연유를 물었다.


그는 문화혁명의 주동 홍위병이었다. 대학을 다녔을 리가 없었다. 공자(孔子)도 모르고 이백(李白)도 몰랐다.  나름 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를 관찰하고 다녔다. 4년째 되던 해 그의 작은 방에서 오리탕에 술을 나누며 본심을 들었다. 그는 완전히 돈(money)에 빠진 시장예찬론자였다! 그 후 그는 소위 한 건하기 위해 한국도 왔었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만 당시에는 혼란스러웠다.


홍위병이 본 2인자 저우언라이
1966년 마오쩌둥이 대약진 이후 일으킨 문화혁명(無産階級文化大革命)에 목숨을 걸고 10년을 따라 다녔다는 것이다. 젊은 무식 무산자인 자기들 앞에 감히 나설 수 있는 인간은 중국 산하에서는 찾기 어려웠다. 민중민주 깃발을 들고 문명을 이야기하고 인간의 한계를 안다는 유식자들을 제거하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으로 보았다. 모든 고등교육은 정지되고 오직 공산당의 선전선동 쇼만이 횡횡하였다. 유능한 지성인은 제거되고 전문가는 사라졌다. 홍(紅: red)이 전(專: expert)을 말살시킨 전장의 맨 앞장에 섰던 그였다.


그가 4년의 미국 생활을 겪으면서 완전히 시장자본주의의 맹신자로 돌아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새로운 경험과 변화된 환경이 생래적이거나 정치가 주입한 이념을 바꾼다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의 주위에는 변신한 친구들이 널려있었다. 그들은 만나면 서로 히죽히죽 웃었다. 그래서 오늘날 중국식 시장경제가 가능했고, 자유의식도 상당히 자리잡게 된 듯싶다.


그렇다면 198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 발달은 어떻게 가능하였을까? 그에게 물었다. 문혁 초기에는 저우언라이, 그 이후에는 덩샤오핑 같은 이들이 문혁 와중에도 많은 과학자와 전문가를 숨겨주고 보호했기에 때문에 빨리 일어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기술자와 의사들은 광란의 홍(紅)은 이 또한 지나간다고 믿었고, 권력의 2인자 중에는 이들이 국가의 번영에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Eldest Son》(Han Suyin 저, Pimlico, 1994, 일본에서는 《壯兄》으로 번역 출간)에도 나와 있다. 2인자의 좋은 본보기다. 광란의 폭군 아래서도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2인자들은 다음 제2기를 내다보았다.


대통령제의 제2기 : 합리성과 전문성
미국 대통령제를 오래 연구한 리처드 뉴스타트(Richard E. Neustadt)는 역대 대통령을 비교 분석하고 나서 대통령제에서는 둘째 해부터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2년차가 중요하고 제2기 내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제2기 비서실과 제2기 내각이 가장 좋은 인물들로 구성되면 성공한다는 가설이 있다.

내각제가 여러 당파의 모임으로 그림과 같다면, 대통령제는 음악과 같다. 대통령제에서는 내각제와 같은 이념과 당파들의 조화로운 그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이념과 주도세력 그리고 비전이 정해져 있다. 오직 시간, 즉 리듬과 타이밍이 결판낸다. 정치는 타이밍이라는 말이 이래서 생겼다.


대통령과 그 주변은 시간에 쫓긴다. 그래서 첫해는 과욕을 한다. 임기 초에 덤비지 말라는 충고는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승리한 대통령에게 끝까지 하지 말라고 국민 편에서 충고할 수 있는 충신이 현대사회에서는 없다. 참모들은 물론이고 대통령도 처음으로 국사를 맡는 아마추어 시기가 첫해이다. 거대한 관료제를 움직여 본 경험도 별무하다. 이슈의 역사와 깊이 그리고 진폭을 알기도 어렵다. 지지자들에게 시원스럽게 보여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떨칠 수 없다. 그래서 단순하게 여론에 맞추어 일을 처리한다.


후진 정치는 공격을 주무기로 한다. 선거 공신들은 왕정시대의 훈구대신들과 같이 앞선 정권과 야당을 공격함으로써 입지를 쉽게 구축하는 방안을 찾는다. 복잡한 일에 서투른 몸짓을 보일까봐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공격에 더욱 열중하면서 여론을 등에 업고 앞 정권을 비난하고 반대 방향으로만 정책을 밀고 간다. 맘이 편한 출발점(ground zero)은 앞선 정권을 사정하여 몰아세우고 정책 방향을 반대로 끌고 가는 것이다. 간쟁하는 사림과 사간원도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제1기는 요란하지만 남는 장사는 아니다.


국민은 제2기를 고대하는 것이다.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정책 전문가는 뭐니 뭐니 해도 행정부 공직자를 중심으로 공공의 문제를 오랫동안 공부하고 다루어온 인력들이다. 그리고 연구소의 연구위원들도 제법 축적되었다. 국제적인 동향은 교수들이 도움이 된다. 경제계는 물론이고, 국제정치 분야도 경험 있는 인사들이 제법 축적되어 있다.


물론 전문가들도 문제는 많다. 4대강에 대해 정반대 예측을 하고 진단하며 평가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전문가가 있기나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원자력 발전 문제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거대 시스템에 대해 정치가 일으키는 공포를 잠재울 수 있는 전문가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떻게 하나. 인간이 지닌 합리적 해결은 역시 전문가의 손에 있는 것을! 데카르트(René Descartes) 이후 합리성에 도전하여 문화와 문명을 융성시킨 국가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불붙는 정치의 웅변보다는 냉철한 전문가의 논쟁을 지켜보는 시기를 가져야 한다.


새 정부가 일을 맡으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보자. 지속되는 대형사고, 최저임금, 남북긴장, 비트코인, 주택시장, 인구절벽, 사상 최대의 실업난, 기술개발과 R&BD 침체, 기업경쟁력 저하 문제 등이 정치 1기로 풀어질 것인가? 창업 이후에 수성도 수성이지만 국민을 위해서는 경장(更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2기를 출진시킬 때다.


청와대 보좌진을 경신하고 정치로 출발한 내각의 정치적 성향을 축소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전문가형 보좌 기구와 내각 중심의 정부에서 대통령과 정교하게 의논하고 내각이 공직자와 함께 혼연일체로 나서는 탈바꿈(metamorphosis)을 시도하여야 한다. 세종시와 소통 강화도 필수적이다. 대다수 전문가는 세종시에 내려가 있고, 장관들만 서울에서 유랑 아닌 임시 사무실에 앉아 있는 형국은 문제가 많다. 급한 청와대는 결정 템포에 맞추어서 자신들이 먼저 나선다. 분권과 자율을 정치적으론 이야기하지만, 실제 모든 결정권이 집권과 규율로 변한지 좀 되었다. 청와대에서는 전문적인 분석을 할 수도 없거니와 해야 할 곳도 아니다.


정권의 초기 현상은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있다. 흔한 말로 팬덤(fandom) 현상으로 시민이 나뉘고 갈등이 커졌다. 투쟁적 언쟁이 미세먼지 세상으로 공동체를 몰고 간다. 1980년대 민주투쟁은 한 세대가 흘러간 옛 가락이다. 숙의 민주주의와 전문적이고 집합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기하는 제2기가 기대된다. 대통령제의 리더십이 기대되는 길목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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