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20대 여성들

[안민호의 여론객설(輿論客說))]

숙명여자대학교 안민호 교수입력 : 2018.07.04 09:06
작년 대선기간 중 내가 담당했던 사회소통 이론 수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소통가능성’이란 주제로 강의하는 와중이었는데 매우 총명하고 수업 열의가 대단했던 한 학생이 약간은 짓궂은 미소를 띠며 물었다. 도대체 한국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도 소통이란 것이 가능하냐고. 조금은 갑작스럽기도 했고, 또 선거 기간 중임을 감안하면 꽤 예민하고 도발적 질문이었기에 순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수업의 학생들은 박수를 치고 폭소를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나는 사람들이 대개 자신이 속한 사회의 내적 이질성을 과장되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음을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지지자들 간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한국당과 민주당이 서로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답했다. 유럽에서 오랜 기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도는 서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철천지원수였지만 이슬람이나 불교 문화권에서 보면 그 이질성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덧붙이니 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바로 수긍했다. 자유주의자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던 그 학생은 학기말에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찍으려는 마음으로 투표장에 들어갔던 자신이 갑작스레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하게 된 그 변화의 몇 분을 체계적이고, 극적으로 설명하는 에세이를 제출했고, 최고 점수를 받았다.


우리나라의 보수 정치 세력이 폭삭 망하고 진보는 크게 성공한 것처럼 해석하는 언론 보도를 보다가 그 학생과의 대화가 불현듯 떠올랐다. 자신이 속한 집단내의 다양성은 과대평가하고,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의 이질성은 과소평가하는 인지적 편향을 내집단(內集團) 이질성, 외집단(外集團) 동질성 가설이라고 한다. 이것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타 집단에 대한 부정적 스테레오타입과 관련된 것이고 주류가 비주류 집단에 대해 가지는 인지적 오류라 할 수 있다. 핵심은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이고, 다르다고 말하기 위해서 그들은 동질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다른 이들도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허위합위효과(false consensus effect)까지 더해지면, 그들은 결코 우리와 소통할 수 없는 대상이 된다. 나는 한국당과 민주당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보수와 진보라는 저널리즘적 이분법 틀로 재단하니 그렇지 조금만 따지고 들어가면 차이보다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르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두 정당간의 이질성이 정당 내 이질성보다 커야 할 텐데 수 십 년에 걸친 분당(分黨)과 합당(合黨) 역사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그렇게 말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서로는 상대를 수구골통과 종북주사파라며 비난하고 격렬하게 싸운다. 정당에 몸담고 있는 정치인들 뿐 아니라 정파적 언론인들도,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포털 기사를 봐도, 댓글을 봐도 악의와 저주가 넘쳐난다. 한발만 빼고 봐도 보이는 것이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다. 정파성이라는 것이 그렇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동이불화(同而不和)
대북정책이나 노동 정책 몇 가지를 제외하면 이념이나 가치 측면에서도 한국당과 민주당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보수정립을 위해서 ‘자유’라는 가치에 집중해야한다는 어느 보수 원로의 인터뷰기사를 본적이 있다. 맞는 말씀이긴 한데, 대한민국에 자유를 주장하지 않는 정당이 어디 있는지 묻고 싶다. ‘자유’는 보수, ‘평등’은 진보라는 식의 이분법적 구분은 아주 낡은 인식이다. 자유가 없으면 평등할 수 없고, 평등하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 동전의 양면,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적 관계다. 물론 정치이념으로써의 자유주의는 매우 중요하고 차별적 가치를 가진다.

사실 자유주의는 보수만의 이념도 아니고 진보만의 가치도 아니다. 사회주의자들이 보기에 자유주의는 보수의 가치다. 반대로 극우적 관점에서 보면 자유주의는 진보의 가치가 된다. 자유주의는 한쪽으로 사회주의와 대립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보수주의와 대비된다. 서있는 자리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기도 하는 것이 자유주의다. 극좌 사회주의가 허용되지 않고, 극우 파시스트 정당도 존재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정당들의 이념적 좌표는 형식적으로 보수적 자유주의에서 진보적 자유주의 스펙트럼 안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는 한국당과 민주당을 구분하는 척도가 아니라 묶어주는 가치가 된다.

문제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넘쳐나야 할 그 자유주의적 가치가 일상의 삶 속에서는 실상 매우 낯설고 희귀하다는 점이다. 좀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진보 진영의 유명인사인 유시민 전의원이 국회에 처음 등원할 때 흰색 면바지와 라운드 셔츠를 입고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자유주의자임을 드러내기 위한 작은 퍼포먼스였다. 찢어진 청바지와 헐렁한 코카콜라 광고 티셔츠를 입은 의원과 교수님들이 흔한 서구사회 기준에서 볼 때, 그의 복장은 범생이에 가까운 것이었지 리버럴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나리 복장이라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작은 소동이었지만, 그 정도의 일탈도 포용하지 못하고 껄끄러워 하는 이들이 겉으로는 자유주의를 주창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자유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닮았고, 실천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모두가 자유를 말하는데 자유주의자는 드물다. 다르지 않은데 원수처럼 싸운다. 동이불화(同而不和)가 바로 민주당과 한국당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새로운 세대의 청년 자유주의 문화 네트워크
가부장적이고, 집단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는 정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언론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대학도 마찬가지다. 사회 전반에 걸친 오래된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결코 변할 것 같지 않던 이런 보수적 문화에 균열이 감지된다. 대학에서 20년이 넘게 젊은 세대와 교류해왔지만, 지금 꿈틀거리고 있는 이것은 이전에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수준의 변혁이다. 나는 이것을 ‘청년 자유주의 문화 네트워크’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변화를 체험적으로 인식한 것은 올해지만 곰곰이 되짚어 보니 두서 너 해는 된 것 같다. 사회적으로는 미투 캠페인이나 페미니즘 열풍과도 관련되어있다. 이 흐름은 단순히 여권신장 운동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오래된 권력관계와 관용 없는 보수적 문화에 대한 전면적 문제제기고 일상과 문화의 민주화, 자유화를 위한 사회적 행동이다. 이 문화운동은 한국에서 이미 20대 여성들의 절대 다수가 적극 공감하는 주류적 가치로 자리 잡았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를 포함한 다양한 SNS와 모바일 커뮤니티 앱들이 이 흐름을 견인하는 플랫폼들이다.

20대 여성이 만드는 변혁들
최근 선거를 보면 60대 이상을 제외하고 가장 투표율이 높은 인구 집단이 20대 여성이다. 50대 남성보다 20대 여성의 투표율이 훨씬 높다. 지난 총선, 대선, 지방선거의 놀라운 결과 뒤에는 20대 여성의 적극적 정치 참여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곧 30대가 될 것이고, 지금은 10대인 후배들이 그들의 길을 따를 것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사회에서 지난 50년 이래 문화적으로 가장 이질적 계층이 이들이고, 오래지 않아 이들의 가치가 대한민국의 주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조금 과장해 말하면, 이들은 우리 사회의 첫 번째 진짜 자유주의 세대라 할 수 있다. 동성애에 대한 문재인 후보의 조심스런 발언 하나에 반응해 지지도를 크게 출렁이게 만드는 바로 그 세대다. 586세대를 감수성 부족한 보수 아재들처럼 보이게 하는 이들 계층에 대한 이해는 앞으로 무엇을 하던지 필수다. 최근 선거에서 연속으로 큰 패배를 맛본 한국당이 보수 재건을 위해 모든 것을 원점에 놓고 재점검하겠다고 한다. 절치부심하고 있을 분들에게 책상에 앉아 신문 보며 아는 지식으로 갑론을박하지 말고 길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직접 만나기를 권한다. 아이스 바 하나를 팔기위해서도 시장조사하고 고객 목소리 듣기위해 노력한다. 정치도 그래야한다. 20대 여성들을 찾아가 얼마나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직접 들어보고 새로운 정당,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데 꼭 반영하기를 바란다. 거기서 분명 미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안민호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 학부 교수
언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