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정치]정치인의 품격

7월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남한산성'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머니투데이 정치부(the300) 정진우 기자입력 : 2018.07.06 11:30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전쟁기간 중 광해군은 선조와 갈라졌다. 선조는 의주로, 광해군은 평양으로 피신했다. 광해군은 전쟁 중 평안도, 강원도, 황해도 등에서 민심을 수습하고 군사를 모으는 등 국가 안위를 위해 적극적인 분조(分朝) 활동을 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1606년(선조 39년) 선조는 인목대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적자,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고 했다. 광해군의 세자 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이 된 것. 그러나 선조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운 광해군은 대북파 지지를 받아 1608년 왕위에 오른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포스터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 추창민 감독 작품)

1616년 광해군 8년, 왕위를 둘러싼 권력다툼과 붕당정치는 극에 달한다. 역모와 독살의 위협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광해군(이병헌)은 점점 더 난폭해져 간다. 광해군은 도승지 허균(류승룡)에게 자신을 대신할 대역을 찾아 줄 것을 명한다. 허균은 기방에서 탈을 쓰고 만담꾼을 하고 있는 하선(이병헌)을 발견한다. 하선이 광해군을 쏙 빼닮은 외모를 가진 것은 물론이고 목소리, 말투까지 왕과 똑같이 따라하자 광해군은 하선에게 사흘에 한 번 왕 대역을 시키겠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광해군이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허균은 하선에게 광해군이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왕의 대역을 할 것을 명령한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조선의 왕이 된 하선은 허균의 지시하에 궁중 법도를 익히고 국정을 운영하는 일까지 대신하는 위험천만한 왕 노릇을 이어간다. 하지만 폭군이었던 광해와는 달리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하선으로 궁정은 술렁이기 시작하고, 허균의 말을 따르지 않고 잠시 가짜로 갖게 된 권력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내는 하선을 보고 허균도 당황하기 시작한다. 

광해군은 영창대군을 대북파 요청에 따라 서인으로 삼았으나, 영창대군은 이듬해 살해당했다. 5년 뒤인 1618년엔 폐모론에 따라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켰다. 그리고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실리 외교를 펼친 광해군은 명분을 중시하는 지배층의 눈엣가시였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은 결국 서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서인들은 반정을 일으키며 광해군을 폐위시킨다.(1623 인조반정)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조는 명과 가깝게 지내고 금을 배척하는 ‘친명배금’ 정책을 펼친다. 후금은 형제관계를 요구했으나 조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후금은 이것을 구실삼아 1627년 정묘호란을 일으키게 된다. 3만 군사를 앞세운 후금은 압록강을 건너 황해도까지 침입했고 인조는 후금과 형제관계를 맺게 된다.

영화 '남한산성' 포스터
-영화 ‘남한산성’ (2017, 황동혁 감독 작품)
1636년 인조 14년, 정묘호란 이후 청나라(후금)와 형제관계를 맺었지만 여전히 조선은 명나라를어버이의 나라로 섬겼다. 청의 대군은 이에 다시 한번 조선을 침입하며 병자호란을 일으킨다. 인조는 왕세자와 왕실 가족을 먼저 강화도로 피신시켰고 후에 강화도로 가려고 했으나 한양 가까이 온 청나라 대군에 막혀 갈 수가 없게 된다. 인조와 조정은 한양을 지키는 요새였던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45일간 청나라와 맞서 싸웠다. 추위와 배고픔, 군사 숫자의 절대적 열세 속에서 남한산성에 고립된 대신들의 의견 또한 첨예하게 대립한다. 살기 위해선 청과 화친을 주장하는 주화파 최명길(이병헌)과 죽더라도 명분을 저버려서는 안되기에 청과 싸우자는 척화파 김상헌(김윤석) 사이에서 인조(박해일)의 고민은 깊어져만 간다.





정치부 기자들의 영화 톡톡 (더300 정진우 기자, 더리더 편승민 기자 이하 정, 편)

광해를 통해 본 우리의 리더
: 6·13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우리는 민심을 확인할 수 있었죠. 국민이 원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우리 정치인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깨닫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 이제 후반기 국회가 새롭게 열리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뽑힌 지도자들이 민선 7기를 이끌어나갈 시작점이네요.
: 이런 시점에 ‘정치인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 줄 수 있는 ‘광해’와 ‘남한산성’ 이렇게 두 영화를 살펴봤습니다. 휴가철에 볼 만한 영화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네요.
: 광해는 진정한 리더의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남한산성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에 대해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참 다양하지만 영화에서 그려지는 주제는 가짜 광해를 향하고 있죠. 오직 백성만 생각하는 군주, 백성의 삶을 바꾸는 정책 등을 가짜 광해를 통해 자세히 보여줬습니다.
: 영화에서는 가짜 광해가 대동법을 시행하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는 광해군이 대동법 시행을 했다는 기록이 있죠.
: 맞습니다. 광해군이 실제로 여러 제도를 도입했어요. 저는 영화 속 가짜 광해가 보여준 친서민 정책이나 개혁적인 생각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영향을 많이 줬다고 생각해요. 문 대통령이 2012년에 이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던 것을 보면 그럴 것 같습니다. 특히 항상 반대파에 시달리는 진짜 광해를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났을 것 같기도 하고요.
: 저는 전형적인 낡은 정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메시지를 준다고 봤어요. 가짜 광해는 진짜 왕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일반 국민이었잖아요. 그런 시선에서 봤을 때 기존의 정치는 세력 다툼과 권력에만 집착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거죠. 그런데 이런 평범한 국민이 실제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왕이라는 자리에 가게 되면서 진짜 국민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봤어요. 얼굴만 같은 다른 사람. 당시 광해군이 다른 왕들과 다른 제도들을 시행했던 것을 픽션으로 서민을 대변해 일어난 것처럼 잘 풀어낸 것 같아요.
: 네, 저도 공감합니다. 생김새가 똑같은 사람이 왕을 대신한다는 영화적 장치가 당시는 불가능했던 서민정책이 가능케 한 환경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실제 조선왕조실록에서 광해군과 관련해서 15일치의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상상하며 만들었으니 그런 바탕에서 영화적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강직한 정치인이 그리운 시대
: 광해에서 또 하나의 포인트는 왕을 그림자처럼 모시는 도승지 허균이나 조 내관, 도부장이에요. 모두 가짜 광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컷
의 정체를 알지만 충성을 다하는 모습이 나오죠. 물론 현실을 위한 하나의 쇼지만 나중에 도부장은 목숨까지 바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한번 주군으로 섬긴 사람을 끝까지 섬기고, 배신하지 않죠. 서로 속고 속이는 정치가 만연한 여의도 정치 혹은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비꼰 것 같았어요.
: 그래요? 저는 가짜 광해의 인간적인 면모에 다들 빠져버린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 마지막 장면을 보면 허균이 배를 타고 떠나는 가짜 광해를 보고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합니다. 그런 모습들이 진짜 지도자들이나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모습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자기의 자리, 이권을 위해 옮겨다니는 철새 혹은 시정잡배 같은 정치인들을 향한 일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 관객이 1200만 명이 넘은 걸 보면 그런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나타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영화 개봉 당시 이명박정부 말기였는데 MB정부에 실망한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 저는 배신의 정치까지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도자에 대한 갈망은 분명 있었다고 봐요. 왕을 최측근에서 돌보는 도승지는 허균입니다. 저는 허균은 홍길동전을 만든 사람이라는 점에서 또 의미하는 게 있다고 봤어요. 홍길동전에서 가장 유명한 게 ‘호부호형(呼父呼兄·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른다) 하지 못 한다’는 거잖아요? 서자의 아픔을 이야기했던 작가였죠.
: 그렇네요. 왕을 왕이라 부르지 못하고, 광해 역시 서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중의적이네요.
: 그리고 어떻게 보면 영화 속 가짜 광해에게 충심을 보였던 것도 출신으로 누구를 판단하기보다 진짜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은 나의 진정한 왕이다’고 인정할 줄 아는, 시대를 앞서간 충신을 그렸다고 봤습니다.

영화와 현실 속 정치의 품격
: 남한산성 이야기로 넘어가 보면 주화파와 척화파를 대신하는 두 명의 충신이 나옵니다. 인조가 극단적인 결정 장애를 보여주는 상황에서 누구의 말이 맞는지 보다 논리적인 대결을 보여줬습니다. 사실 정답은 없어요. 역사가 평가를 해준 것이지만 그 상황에서 진짜 척화파의 말대로 했으면 지금 나라의 운명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몰라요.
: 영화 속에서는 청과 화친을 하느냐, 배척을 하느냐로 나뉘지만 현대 시선을 통해 본다면 딱 여당과 야당이 대립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다만 영화가 보여주는 다른 점이라면 현재 정치처럼 정쟁을 위한 반대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특히 지금 열강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우리의 외교정책을 놓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친미냐 반미냐, 이렇게 볼 수도 있지만, 힘 있는 나라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갈리는 지점이 약간 다를 수 있지만, 특히 미중 갈등이 극에 달하는 상황을 떠올릴 수 있어요. 박근혜 정부 때를 생각하면 미국이 명나라, 중국이 청나라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중국이 우리나라한테 미국 말만 듣는다며 사드 보복을 해서 우리 경제가 힘들어졌죠.
: 맞아요. 그런 면에서 명과 금(청나라 전신)에 대해 실리외교를 펼쳤던 광해군은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 다행히 문재인 정부 들어 대중관계가 개선되면서 한한령이 풀렸습니다. 이걸 굴욕 외교라 하진 않지만 어쨌든 주화론 입장이 묘하게 겹칩니다. 그걸 보면서 정치인들의 자질이 어때야 하는지 그런 걸 읽었어요.
: 저는 그 안에서 지금의 대미, 대중관계보다는 우리 여당과 야당이 가져야 할 자세를 봤어요. 영화에서 보면 처음 김상헌과 최명길이 청과 화친을 하느냐 마느냐로 엄청나게 갈등을 겪잖아요? 지금도 어떤 정치적인 문제를 가지고 여야의 의견이 갈리는 것은 똑같죠. 하지만 영화 중반에 군사들의 추위문제, 식량문제 등의 해결책에 대해 김상헌과 최명길이 같은 의견을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민생을 위해선 여야가 협치한다는 거죠? 현실 정치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웃음)
: 마지막에 두 사람이 택하는 자신의 운명도 자신의 뜻대로 됐다고 기뻐하거나, 뜻대로 안됐다고 비관하지 않습니다. 최명길의 눈물이나 김상헌의 죽음 모두 결국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 우리 여야를 놓고 보면 그런 게 느껴질 수 있을까요?
: 그런 걸 느낄 수 없어서 그런 바람도 들어 있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겉으로 보기엔 서로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를 보면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맞습니다. 열이면 열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죠. 맞는 것에 대해선 ‘그부분은 맞는다’고 인정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영화에서 그 두 명은 싸울 부분은 싸우되 맞는 부분은 인정하잖아요.
: 그게 정말 여의도 정치에 필요한 겁니다.
: 최명길이 인조에게 한양으로 돌아가더라도 김상헌을 꼭 가까이하라고 하는 것도 정치적 견해는 다르지만 그 사람을 인정하는 거죠.

다시 민들레 피는 봄이 오면
: 남한산성에서 ‘나루’ 라는 이름의 여자아이가 등장합니다. 저는 감독이 왜 여자아이를 넣었을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 왜 넣었을까요?
: 영화 마지막에서 날쇠(고수)가 대장간에서 일하고 있고 나루는 친구랑 놀러 가잖아요? 두 가지 의미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나루는 이 영화에서 다룬 47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겪고, 지켜본 인물인 셈입니다. 즉,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된 한겨울의 남한산성 생활과 다시 봄이 찾아오면서 끝나는 영화를 아이의 시선에 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기 전에 ‘그해 봄, 다시 민들레가 피었다’는 자막이 나오고 아이들이 연날리기를 하러 가잖아요. 연이라는 게 그 시대 희망과 소망을 의미한다고 하더라고요. 봄이 왔고, 새 시대가 왔고 그 아이가 새로운 시대를 염원하는 하나의 상징인 것 같습니다. 결국 감독은 아이를 통해 이 나라가 새롭게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한산성은 치욕의 역사지만 새로운 시대를 위한 하나의 길이라고 말입니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 전 이 영화에서는 대사를 좀 유심히 봤는데요. 마지막에 청나라에 친서를 보내느냐를 두고 김상헌과 최명길의 대립이 극에 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최명길이 인조에게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라고 하는 부분에서 많은 공감이 됐어요. 그리고 서날쇠가 영화 중반에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나라가 어떻게 됐건, 그냥 밥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의도 중요하지만 목숨보다는 잠깐의 치욕을 견디는 것이 국민의 삶을 계속되게 하는 데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 두 영화를 통해 지도자와 정치인의 품격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정치도, 정치인도 좀 그렇게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 나루가 연을 날리러 갔으니 우리도 희망을 가져봅시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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