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제를 도입할 때다

[李達坤(이달곤)의 思政慢文(사정만문)]

가천대학교 이달곤 교수입력 : 2018.08.03 15:07
‘말도 안 되는 소리 !’ 신문에 글깨나 쓴다는 사람 10 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나온 반응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국회의 근원적 개혁에는 양원제가 묘수라고 생각했었다. 모험일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경험을 듣고 자료를 검토한 결과 이 제안에 이름을 걸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국회 TQM은 정쟁보다 더 심각한 수준

우리나라의 21세기 과제 중에서 정치개혁이 남북문제 다음이라는데 동의할 것이다. 경제활동과 시민사회 수준에 한참 뒤처지는 정치문제의 핵심에는 정당이나 선거제도 같은 것들도 있다. 하지만 국회 구조와 운영도 그 비중을 따지자면 둘째 갈 수 없는 화급한 과제다. 고질적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에는 4가지가 있다고 역사는 말한다. 구성원, 기술수단, 업무절차를 혁신하든가 아니면 마지막으로 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문제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을 조합하여 쓸 수도 있다.

국회의 문제점으로 흔히 정쟁과 저급한 행태를 꼽지만,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법률을 만드는 공정과 그 결과물’이 본질적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국회의 입법 과정과 입법의 내용물인 법률이 정말 수준 이하다. 형식적인 절차는 겨우 지켜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법률안을 다루는 자세, 과정과 공법, 그리고 전문성은 심각하다. 이를 국회 입법의 전반적 품질관리(TQM·Total Quality Management)의 문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이다. 의원들은 상시국회에서 엄청난 양의 법률안을 쏟아내고 있는데 말이다. 20대 국회 전반기 (2016년 5월~2018년 5월)에 국회에 발의된 의원입법의 수가 1만2968개라고 한다. 놀랄 만한 물량이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법률을 전부 세더라도 1400개가 조금 넘는 정도인데, 어찌 이런 숫자의 법률안이 발의되고 있는지 놀랄 만하다. 그 말은 자구 수정 등 건수 위주의, 선심성 법안으로, 껍데기 숫자 놀음의 입법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법률안의 내실은 어떠한가. 수많은 법률안이 행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하는 데 머문다. 행정국가의 연속 선상에서 국회도 움직인다는 의미다. 또 많은 법이 규제 일변도이거나 지시와 명령에 기초한 직접 통제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지, 지시, 보고, 감사 등이 제일 많이 나타나는 개념이다. 국민과 기업인의 창의성을 무시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일례로 대학의 연구과정을 건설공사 공정과 같은 방식으로 규제한다. 획일적인 통제는 곳곳에서 눈에 띈다. 법률조항이 작고 단순하다. 그렇다고 대통령령을 비롯한 하위 법령에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어렵게 하고 있다. 

경제활동을 금지하는 규제 때문에 국민이 불편하고, 나라 경제가 일어설 수 없다고 정권마다 아우성친다. 하지만 국회의 그 많은 법률안을 훑어보면 규제가 들어가 있지 않은 법률안은 별로 없다. 질서를 만드는 것이 법률이고 질서는 규제를 부르기는 하지만 그 규제의 방법과 유형에 대해서 깊이 고민한 조항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회의원의 입법 과정에는 규제영향평가도 적용되지 않는다. 최고의 기술(BAT·Best Available Technology)을 기업에서 창의적이고 융통성 있게 도입하는 것을 주문하는 식의 수준 있는 입법기술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행정국가식의 조세감면이나 기술개발지원금을 동원하고, 행정부 입맛에 맞추어 공공기술연구소나 공사를 만드는 데 치중한다.

청부입법은 또 어떻고

하물며 법률은 만드는 공정에도 자신들이 직접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위 청부입법이다. 여당 의원들이 행정부의 청부를 받아서 행정부의 기관 설치나 규제감독 권한을 강화하는 법률안을 대신 의원입법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절차가 엄청 간편해서 행정부도 좋고, 의원은 활동건수를 올려서 시민단체의 상을 받아서 좋은 것이다. 입법 청부업은 관행이 되었다. 

대통령의 비호가 핵심

행정부의 감시와 감독 또한 국회의 핵심 기능인데 이를 방기한 지는 오래되었다. 많은 여당 의원들은 정권의 목표를 실현하는 전위조직으로서 여당 위상에 매료되어 있다. 여당 핵심인사라면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 헌신하고 그를 끝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의리를 힘의 원천으로 삼아 활동하고 있다. 그러한 의지를 구현하는 전국적 지점망을 가진 조직으로 여당이 존재하는 것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사진=뉴스1
규모를 줄이고 급과 격이 다른 상원을 

물론 본질적인 문제에 앞서, 당파적 정쟁과 서투른 이념 대결에서 파생하는 패거리 문화와 싸움판이 일차적인 해결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괜찮은 사람이 국회의원만 되면 ‘저 꼴이다’는 패거리문화. 이런 문화와 행태를 일차적으로 개선하고 국회 TQM을 개혁하는 데는 구조를 뜯어고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괜찮은 상원’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아니, 단원제 하나로도 이 모양 이 꼴인데 두 개를 만든다면 문제가 제곱으로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회를 키우고 전근대적인 상원 도입이 기득권자의 놀이터가 될 것이라며 반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행태와 문화가 바뀐다.

하지만 필자는 달리 생각한다. 우선 상원에 해당하는 기관을 두면 국회의원의 행태가 바뀔 수 있다. 국회에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다. 국민도 상원의원으로는 수준 있는 인물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국민은 새로 설치되는 상원을 ‘양식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6년 정도의 재직기간을 주고 국사를 장기적 관점에서 파악하도록 해보자. 하원은 2년마다 선거하여 단기간의 성과로 평가하고, 변하는 세상을 그때그때 반영시키는 일종의 소환제가 필요하다. 정치인을 가까이 오래 관찰한 필자의 생각은 좋은 사람들이 새로운 국회문화를 만들 것으로 믿어진다. 지금은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기 때문에 문제다. 국민이 양화를 제도적으로 구분해주기만 하면 달라질 것이다. 

절차가 복잡하여 싸움이 그치지 않고 입법과정이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상원은 흔히 ‘재고(再考)의 공간’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보다도 더 늦어질 것인가? 아닐 것이다. 또 속도가 체질화된 우리 사회에서 입법 TQM을 위한 숙려와 재고는 가치 있는 것이다. 실제 통과된 법률이 수많은 흠결을 가지고 경직되게 집행되는 것보다는 만드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고 고민하는 과정에 무게가 실려야 할 때다. 상원이 잘 운영되면 하원의 진흙탕을 속히 청소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권력이 분산되고, 정치산업이 축소된다.

상원의 가장 큰 효과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데서 나타날 것이다. 총리를 국회가 추천하자는 안은 사실상 별 효과 없이 갈등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무게 있는 정치인이 정쟁에서 벗어나 국가의 앞날을 고민하는 양식 있는 행동을 한다면 국회의 권위가 살아날 것이고 그것은 청와대 독주를 막는 데 기여할 것이다. 행정부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또 국회의원 규모만 커져서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구조개혁을 하는 것이기에, 나선 김에 규모를 조정하면 된다. 정보의 흐름이 광전자적인 시대에, 전국이 2단계 지방정치로 확장되어 있고, 도시화율이 90%를 넘어가는 사회에서 300명의 하원을 둘 필요가 없다. 200명이면 충분하고, 상원은 60명 정도면 좋을 듯하다. 국회의 전문직을 좀 늘리는 것은 필요하다. 이렇게만 된다면 비용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구역이 넓어지면 광역과 기초의 지방의원 숫자를 대폭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렇다면 제도유지 운영비는 줄어든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 

우리는 제2 공화국 때 양원제를 9 개월 정도 실시해본 경험밖에 없다. 그래서 과거를 운운하면서 부정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정치 선진화를 이룬 국가, 그리고 15대 경제대국들은 나름대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상원의 권한을 하원과 같이할 필요는 없고 제한적으로 설정하고, 국민대표형으로 한다면 더욱 초당파적 관점에서 의정활동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일부에서는 지방(支邦)대표형으로 지방(地方)의 입장을 중시하는 유형으로 구성하자는 방안도 있다. 여기에 직능별 대표를 추가할 수 있다면 이해 대립의 국정문제를 다루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구조개혁을 함에 있어서 존경받는 정치인 없이 국가의 위상은 개선될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흔히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잘못하면 꼰대질하는 인간들로 들릴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상원은 그러한 꼰대가 아니다. 노회한 정치꾼도 아니다. 의정활동이나 정치행태 면에서 성숙한 인물이다. 존경받을 가능성이 열려 있는 정치적 공간에 입지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상원이 꿈이 되어야 한다.

이달곤 교수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정책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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