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제로서 정당정치의 복원

[박상철 교수의 정치클리닉]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박상철 교수입력 : 2019.01.31 15:16

하버드대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대니얼 지블랫(Daniel Ziblatt)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라는 저서는 트럼프 정부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규범이 심각하게 침식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 주범으로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내던진 정당,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과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로서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목하면서, 미국 민주주의 규범의 붕괴를 해소하는 방법을 민주주의의 문지기인 정당의 역할을 복원하는 데서 찾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2017년 촛불혁명과 탄핵을 통해서 쓰나미처럼 민주주의 붕괴의 파편들을 대거 일소한 것으로 보였다. 이에 정치권에서 재건축이 시작되고 있으나 정치의 주체인 정당정치의 복원이 시원찮아서 문제다. 하버드대 두 교수의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경종과 문제의식은 2019년 한국정당정치의 복원 및 정상궤도 진입의 당위성을 확인하게 한다.

한국과 미국 민주주의의 붕괴 조짐들
레비츠키와 지블랫 교수는 미국 민주주의의 침식이 도널드 트럼프에 의해서 가속화되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 붕괴 조짐은 이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흑인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많은 공화당 인사들은 민주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극단적인 대립의 터널로 들어갔다. 미국 특유의 정치적 자제의 규범을 버린 것이다. 이에 두 교수는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뿌리는 적대적 정당대결 양상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흑인에 대한 백인의 배척이 민주당에 대한 공화당의 저주로 둔갑한 것이, 탄핵 이전 노무현-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한국정치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의 비유 또는 대입으로서 노무현 한국 대통령을 연상해볼 필요가 있다. 기득권 세력의 노무현에 대한 비하는 오바마 버금갔었다. 그러다가 여·야당 간의 당파적 양극화는 물론이고 정치적적개심이 극대화된 상태에서 반대당 한나라당의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마치 트럼프의 등장처럼.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이루었던 정치적 치적들은 그 자체로서 백지화 내지 청산의 대상이 되었다. 검찰·경찰·국정원 등 사정기관은 물론 언론의 민주적 생태계마저 청와대 권력의 힘으로 좌지우지하였다. 기실, 사정권력의 정치적 중립과 언론의 자율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규범을 침식해버린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잉태된 당파적 양극화는 반대당 집권 즉, 이명박 정부에서 민주주의 규범의 침식과 침하로 나타났으며, 박근혜 정부에 들어와서는 가속화를 넘어서서 모든 민주적 시스템의 작동이 멈춰버렸다. 과장된 표현일 수 있겠지만 한국정치에서 민주주의가 완전히 소멸되는 위기로까지 치달았던 것이다. 촛불혁명과 탄핵은 역사적 숙명이었다.

여·야의 2019 한국정당정치 복원
2013년 11월 26일 모 일간지에 ‘정당 없는 한국정치’라는 칼럼을 썼는데, 매우 시사적이어서 한 문단을 그대로 옮긴다.

“… 한국정치에서 정당이 사라져버렸다. 제대로 살아 있는 정당이 없다. 새누리당은 대통령 권력 속에 박혀 있고, 민주당은 수권능력 절대결핍 상태이며, 급기야 진보정당은 위헌정당으로 재소당했다. 큰 선거가 없는 올해, 이 땅의 모든 정당이 죽어 있는 셈이다. 정당이 정치주체로서 정치중심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청와대 권력과 원로 및 외곽단체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여·야 간의 정당정치 경쟁 시스템이 사라진 것이다….” 촛불혁명 전 한국정치는 그야말로 ‘정당 없는 정치’ 즉, 민주정치 암흑기였었다. 2019년을 맞이하여 여·야당은 한국정당정치를 복원 중인데 그에 대한 평가는 내년 총선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과거의 새누리당에 비할 때는 청와대로부터의 상당한 정치적 자율성을 가지고 있으나 집권세력의 중심으로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에는 많은 부분에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하다. 촛불혁명·탄핵·2017 조기대선이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만이 아닌 많은 국민들과의 더불어 승리라면 정부 구성에서 그 폭을 넓혀야 한다. 과거 보수정당 지지 유권자도 더불어민주당의 고정 지지층으로 전환시키는 노력이 추가·배가되어야 한다. 대연정(大聯政)은 아니어도 중연정(中聯政) 정도의 통합정부를 구성함으로써 촛불혁명 이후 한국정치에서 새로운 주류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집권당 수준의 정치디자인이 필요하다 하겠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의 경우 수권능력이 절대결핍 상태까지는 아니지만 현재의 정치적 행태는 대안정당으로서의 위용이 너무 초라하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및 민주평화당의 경우 야당으로서 국회보이콧의 전략전술이 매우 엉망이고 명분도 없다. 예를 들어 연동형비례대표제 쟁취를 위한 야당의 단식투쟁과 등원 거부가 국민적 갈망과 얼마나 함께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크다. 연동형비례대표제 쟁취투쟁은 국민 전체보다는 세 야당에게 절실하다는 면만 부각되는 느낌이다.

제1야당으로서 자유한국당의 투쟁방식 또한 명분 확보와 전술적 측면에서 너무 초보적이다.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의 인사에 문제점이 있었다면 그 문제들을 국민들과 공유하면서 등원거부라는 극약처방을 했었어야 했다.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국민들과 공분하는 시간, 즉 정치적 숙성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 밥그릇을 차버린 셈이었다. 제1야당이지만 수권야당으로서 정치적 권위와 파워가 약하다.

한국 돌파구로서 정당정치 복원
촛불혁명 이전의 ‘정당 없는 한국정치’ 시절에서 정당정치가 복원되는 시대로 진입할 경우 한국사회는 가히 폭발적인 발전동력을 얻을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민주적 규범의 치명적 취약점은 여·야 간의 정당정치 경쟁 시스템이 한국 말고는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다. 중국과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의 경우도 자민당 중심의 1.5 정당체계일 뿐이어서 실제 민주적 정치규범이 실존하고 있지 않다. 만약 일본에 정상적인 여·야 간의 정당 경쟁시스템이 있었다면 최근 군사대국으로의 개헌을 획책하는 아베정부의 조작적인 초계기 도발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국민 지지율은 올라갈지 모르지만, 일방적인 개헌정국 구상으로 일시적 현상으로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여·야 경쟁구도가 없는 일본의 불운이자 함정이다.

민주국가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집단이 같이 살면서 조합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갖는다. 동아시아에서 명실공히 민주적 복수정당제를 갖춘 우리나라만이 정당 경쟁시스템이 주는 민주주의 효과(民主主義 效果)를 누릴 수 있다. 물론 그 대전제로서 정당 간의 적대적 경쟁과 당파적 양극화를 걷어내는 복원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에 있어서, 여·야 간의 당파적 양극화 즉 적대적 정쟁의 대상에서 건설적 민주방식으로 전환될 경우 한국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동력이 확보될 것이다.

대북 경제협력은 물론이고 다소 위축적이었던 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이 그 경계와 한계를 허무는 계기로까지 발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남북정상회담 및 북미정상회담을 적대적 정쟁의 재물로 삼을 경우에는 정반대의 역효과들이 속출할 것이다. 요컨대, 2019 한국정당정치의 복원과 효과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와 정부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재건이라는 시대적 사명과 스케일을 가져야 하고, 국회는 자기주장만을 하는 곳이 아니라 정치리더로서의 무언가를 생산해 내는 책임정치로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맨날 얘기하는 한국정치권에 대한 주문이지만 내년엔 선거가 있기에 변화가 있을 것도 같다.

박상철 경기대학교 부총장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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