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정상회담 1주년, 미·북 관계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고려대학교 남성욱 행정대학원장입력 : 2019.06.04 08:00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역대 북한의 권력 실세 중에서 백악관 집무실에서 미 대통령을 만난 인물은 조명록과 김영철 2명이다. 조명록은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미 특사 자격으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친서를 전달했다. 조명록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겸 군총정치국장 직함에 군복을 입고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획기적인 북·미 관계 개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영철 역시 2018년 5월에 이어 2019년 1월 백악관 집무실에서 2차례에 걸쳐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했다. 백악관을 방문해서 ‘철천지원수’라는 미 대통령에게 직접 친서를 전달하는 것은 평양 최고지도자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월 24일 김정은 위원장이 김영남으로부터 트럼프 대통령과의 워싱턴 면담 결과를 보고받는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보낸 친서를 전달받았으며 김정은은 ‘훌륭한 친서’에 큰 만족을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김영철의 워싱턴 방문 직후 폼페이오 장관 역시 세계경제포럼에서 “김영철이 지난주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추가적인 진전이 이뤄졌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은 김정은이 큰 만족을 표시한 친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영어 해득력이 부족하고 미국 정치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김영철은 워싱턴의 복안을 오해한 것일까? 아니면 폼페이오의 발언에 대해 통역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일까? 결국 65시간의 장거리 열차 방문을 통한 하노이 회담이 북한 입장에서는 ‘노딜’ 이라는 참담한 결과와 함께 북한의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만을 스스로 고백하는 자충수로 막을 내렸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진행된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로 끝난 후 김영철과 함께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도 외교무대에서 사라졌다. 김혁철은 지난 1월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위한 양측의 실무회담을 앞두고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대신해 북핵 실무 협상 담당자로 등장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파트너였다. 토끼사냥이 완료된 만큼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무능한 사냥개를 내치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을 자행한 것일까? 아니면 하노이에서 평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김정은에게 3일 동안 무릎 꿇고 반성했다는 소문대로 하노이 ‘노딜’에 대한 희생양일까? 

5월 초 어린이날 연휴를 앞두고 1년 5개월 만에 북한의 전격적인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누구의 아이디어이며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일까? 북한은 1차 미사일과 발사체 사이에서 한미 양국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노동미사일의 여단본부가 있는 평안북도 신오리에서 내륙을 관통하는 탄도미사일을 2차 발사했다. 김영철의 퇴진과 숙청 이후 북한 정세는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일까? 하노이 회담 이후 인사개편을 통해 전열을 정비한 북한이 본격적으로 ‘새로운 길’에 의한 군사 도발에 나서는 걸까? 

김영철의 숙청 이후 북한 권력의 분야별 행보는 누구를 중심으로 작동될 것인가? 권력에서 추락하는 인물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반등하는 인물이 있다. 우선 대미 협상은 김영철을 대신해 이용호와 최선희의 쌍두마차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다. 북한 외무성이 통일전선부 대신에 대미 협상의 창구 역할을 되찾았다. 지난 4월 26일 북·러 정상회담을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용차에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탄 모습이 화면에 포착됐다. 김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함대사령부에 있는 전몰용사 추모 시설인 ‘꺼지지 않는 불꽃’에서 헌화했다. 검은색 벤츠 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를 타고 온 김 위원장은 상석인 오른쪽 뒷좌석에서 내렸고, 동시에 이용호 외무상이 전용차 앞자리에서, 최 제1부상이 김 위원장 옆자리에서 내렸다. 북한 간부가 전용차에 동승하는 사례는 극히 드문 일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권력 서열 순위가 무색한 수준이다. 

김정은의 강대국 외교는 외무성 라인으로 작동될 것을 예고한다. 최선희는 지난 4월 말 마이크 폼페이오의 인터뷰 내용을 거론하며 “미국이 우리가 제시한 시한부 내에 자기 입장을 재정립해가지고 나오지 않는 경우 참으로 원치 않는 결과를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5월 미사일 발사를 예고한 셈이다. 최선희는 4월 20일에도 존 볼턴 미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의 언론 인터뷰를 문제 삼아 “희떠운 발언이며 멍청해 보인다”고 비난했다. 최선희는 김정은의 연말 시한 가이드라인을 백업하며 강공 작전으로 ‘대미 장외 여론전’을 주도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조기 유학한 젊은 지도자 김정은 입장에서는 영어 해득력이 없는 노쇠한 김영철보다는 영어가 유창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최선희를 실무적으로 신뢰할 것이다. 김일성은 생전에 북한과 같은 약소국은 외교, 군사 및 과학기술의 3대 분야는 실무 테크노크라트의 의견을 중시하라는 지침을 내렸었다. 장기 근무로 업무의 연속성과 일관성이 보장된 정통 외무성 간부들이 중용되는 이유 중의 하나다. 3차 북·미 정상회담이 김정은의 희망대로 연말 안에 개최되어 스몰딜에 해당하는 합의문이라도 도출한다면 최선희는 아마도 북한 최초의 여성 외무상이 될 것이다. 대남 관계의 큰 틀은 외무성에서 잡고 실무적인 업무는 통전부장에 새로 임명된 장금철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다. 장금철은 2001년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참사로 6.15 남북공동행사에 참가했고 이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중앙위원에 임명되어 아태평화위원회에서 민간 교류 업무를 맡았었다. 

2019년 4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됐고, 통일전선부장으로 임명되어 실무적인 대남 업무를 처리할 것이다. 남북 관계는 대미 관계와 분리해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금철 등이 최선희 등과 조율해서 김정은의 최종 지침을 받는 체계로 정책이 진행될 것이다.
2019년 북한 권력구조 개편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북한의 내각 수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의 퇴진이다. 천하제일의 처세술로 3대에 걸쳐 명목상 권력의 2인자 역할을 했던 김영남의 퇴진은 이제 권력의 세대교체가 완성됐다는 것을 상징한다. 지난 4월 14기 최고인민회의는 김정은을 ‘최고 수위’로 추대했다. 김정은의 실질적인 권력과 형식적인 권력을 일치시키려는 의도다. 김 위원장은 실질적인 북한의 지도자이지만 아버지 김정일 시대의 권력 프레임에서 통치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국무위원장은 국가의 최고영도자이지만, 외교적으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이 국가를 대표했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 도입한 시스템이다. 

김정은이 북한을 통치하지만, 형식적으로 김영남에게 대외 수반 역할을 맡기는 방식이었다. 김정은은 형식적 수반 체제를 바꿔 고령인 김영남(91세)을 퇴진시키고 ‘김정은 원톱’ 체제로 권력체계를 단순화했다. 최룡해(70세)가 김영남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최룡해는 또한 북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에도 오르며 확실한 2인자가 되었다. 최룡해는 김정은이 해외 순방에 나설 때 평양역에서 김정은을 배웅하며 김정은 부재 중에 평양의 권부를 관리한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기간 동안에는 평양의 충실한 진돗개 역할을 수행했다. 결국 최룡해는 김정은의 권한을 위임받아 당과 내각 및 군의 총괄 지배인(manager)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최룡해는 형식상의 북한 총리로서 5월 6일 러시아 여객기 화재 참사와 관련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위로 전문을 보냈다. 

북한 노동신문은 최룡해가 만수대의사당에서 장 카를로 엘리아 발로리 이탈리아국제그룹 이사장을 접견했다고 5월 3일 보도했다. 하노이 회담 이후 경제는 박봉주가 후방에서 관리하고 김재룡이 전방에서 활약하는 투톱 시스템으로 작동된다. 2019년 4월 내각 총리로 선출된 김재룡은 산간 오지인 자강도 당위원장에서 일약 김정은 2기 정권의 경제 수장으로 발탁됐다. 평안북도 당위원회 비서를 거쳐 2015년 2월 자강도 당위원회 책임비서에 올랐다. 북한은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렬로 기대했던 대북제재 해제가 무산되면서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발전’ 노선 채택이 불가피해졌다. 평안북도와 자강도에서 지방의 당 관료로 지방경제 발전을 위해 활약해온 공로가 인정돼 깜짝 발탁됐다. 김재룡을 총리로 발탁했다고 해서 전임 박봉주의 좌천 및 숙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박봉주가 노동당 부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을 여전히 겸임하고 있다. 80세 고령의 박봉주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통해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응하는 세대교체 인사다. 김정은의 신임이 여전한 박봉주는 김정은 위원장의 경제관리 정책을 구현하기 위해 후방에서 경제 전반을 관장할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회담의 노딜 이후 김정은은 외교 및 대외 관계는 이용호와 최선희, 평양 권부관리는 최룡해, 경제는 박봉주와 김재룡을 통해 삼각 통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연이은 미사일 발사를 통해 “평화는 힘으로만 담보할 수 있다”며 강공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2019년 한반도 정세는 김정은의 군사 도발로 새로운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연말까지 미사일의 사거리를 늘리는 살라미(salami) 군사 도발로 한국과 미국을 압박할 것이다. 사거리가 2500㎞인 중거리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지나가는 순간 대화냐 제재 강화냐 선택의 분기점에 직면할 것이다. 군사 도발로 김정은의 목표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측근들의 운명도 김영철과 같이 미궁에 빠질 것이다. 

역사적인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1주년을 맞았지만 미국과 북한 간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실타래는 여전히 엉켜 있다. 오히려 미국이 불법 화물 선적 혐의로 북한 화물선을 억류하면서 양측의 샅바 싸움이 격화되고 있다. 미국의 북한 화물선 억류는 제2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로 확산될 수 있다. 지난 2005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도출된 직후 미국 재무부가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하고 이 은행에 예치된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 2500만 달러를 동결하자, 북한은 9.19 합의 이행을 거부하고 6자회담도 좌초했다. 

최근 북한의 김성 유엔대사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미국의 선박 억류를 맹비난했다. 하지만 미국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북한의 유엔 제재 위반을 점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5월 탄도미사일 발사가 유엔 결의안 위반이라고 규정하고 볼턴 보좌관은 선박 송환 요구에 1968년 나포된 푸에블로호의 송환부터 논의하자고 응수했다. 향후 3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에는 양측이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입장 차이는 워싱턴과 평양 간 거리만큼이나 멀다. 양측의 기선 제압 싸움은 여름이 다가올수록 심화됨에 따라 금년도 삼복더위를 더욱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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