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변호사에서 최장수 서울시장까지…박원순은 누구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입력 : 2020.07.10 10:36
▲지난 2018년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인권변호사에서 시민사회 운동가, 그리고 '최장수' 서울특별시장을 지낸 박원순 서울시장이 운명을 달리했다. 박 시장은 10일 오전 0시께 서울 종로구 삼청동 숙정문과 삼청각 중간 지점 성곽길 인근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박 시장은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년 2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경기고등학교에 입학, 재수해서 1975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입학한지 수개월만에 유신체제 반대 학생 운동과 관련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돼 대학에서 제적됐다. 이후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졸업한 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사법연수원 12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동기로 알려졌다. 

1982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첫 발령을 받았으나 6개월만에 사표를 내고 이듬해 변호사로 개업하고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박 시장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관련 소송에서 피해자 측 변호인단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우 모 조교 성희롱 사건'은 1993년 우 모 조교가 신정휴 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발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관련 소송이었다. 6년간의 법정투쟁이 이어졌고 1999년 6월 25일 신 교수가 우 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최종판결이 나왔다.

박원순은 16대 총선을 앞둔 2000년 1월 12일 참여연대와 환경연합 등 420여개 시민단체와 함께 '2000년 총선 부패정치 청산 시민연대'(이하 총선연대)를 구성했다. 박 시장이 단체 상임집행위원장으로 낙천·낙선 운동을 이끌었다.

이후 2001년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해 1% 나눔 운동을 진행했다. 또한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모인 기부금을 통해 한부모 여성 가장 창업을 지원하는 '희망가게 사업', 태평양제약과 함께 독거 노인들에게 생계비 등을 지원하는 '노인지원 기금 사업', 미숙아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 사업' 등의 사회적 사업을 진행했다.

2011년 10월 오세훈 전 시장의 사퇴로 열린 서울시장 재선거에 출마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서울시장 후보군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양보로 단일화 하면서 당선에 성공했다. 돈도 조직도 없던 박 시장이 후보였던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을 꺾고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중앙정치에 성공적으로 입성했다는 평이 나왔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며 서울시 차원에서 전격적으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결단력을 과시했다. 당시 "늑장 대응보다 과잉 대응이 낫다"는 명언을 남기며 단숨에 대권주자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2014년 열린 지방선거에서도 56.12%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시장은 재선에 당선된 이후에도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비정규직 정규직화, 도시재생 등을 실현했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중도포기하고 2018년 열린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 서울시 최초로 3선 시장에 올랐다. 여전히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된 그는 지난 6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발표한 '서울판 그린뉴딜'은 박 시장의 마지막 정책이 됐다. 

박 시장은 최근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해당 고소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된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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