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선수가 금융감독원 국장이 되기까지

▲박현철 금융감독원 감사실 국장

사춘기 시절, 아버지를 여읜 슬픔은 누구보다 컸다. 삶의 목표가 없어져 방황하는 시간도 보냈다. 그런 그에게 희망은 농구였다. 농구는 그에게 삶의 의지를 되찾게 했다. 농구를 하면서 인생의 목표도 생겼다. 팀원들을 통솔하는 리더십이 있었던 그는 농구 선수가 된 지 1년 만에 주장까지 맡으며 맹활약했다.

농구선수로 활동하던 그는 직장을 한국은행으로 정했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다. 운동선수가 금융권에서 근무하긴 쉽지 않았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선 더욱 힘들었다. 그는 펜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전반적인 금융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1999년 금감원으로 옮겨 증권권역을 맡았다. 새로운 권역의 업무습득이 고되고 권역별 이기주의와 기득권보호를 위한 위화감이 심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견디지 못하고 자기권역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10년 넘게 증권권역을 담당했다. 업계에서 그를 인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국장 자리까지 올랐다.

박현철 금감원 국장은 농구선수에서 출발해 금감원 감사실국장까지 역임했다. 박 국장은 자신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끊임없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회의 편견에 굴복하지 않고 능력을 보이면 언젠간 인정받는다고 밝혔다. 

운동선수였던 그가 금감원 지도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금감원이 열린 조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대한민국 금융 회사를 감독하는 회사로, 자칫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박 국장은 금감원이 어떤 편견 없이 실력 있는 사람에 대해선 인정해 준다고 말했다. 사원들의 노력을 인정해 주는 열린 조직이라고 주장했다. 박 국장은 금감원에게 늘 고맙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국장의 인생 이야기를 듣기 위해 <더리더>는 지난 2월18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렸을 땐 아버지 영향을 받아 장군이 되고 싶었다. 한영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육군사관학교에 가는 것을 희망했다. 그런데 갑자기 부친이 돌아가셨다. 사춘기 고등학생에겐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방황도 했다. 그때 선생님이 ‘너는 키도 크고 체격이 좋으니 농구선수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말 쯤 농구를 시작했다. 시작하고 얼마 안됐을 때 한영고 농구부가 해체됐다. 그래서 홍익고로 전학을 갔다. 본격적인 선수 생활은 2학년 초 홍익고로 전학가고 난 후부터 시작했다.”

“그렇다. 선수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운동을 시작한다. 고등학교 때 진로를 바꿔 시작한 사람은 드물다. 선배, 동료는 물론이고 심지어 후배보다 늦었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선 몇 배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나가서 놀고 싶은 마음을 없애기 위해 머리를 삭발하고, 양 눈썹을 반쪽씩 밀었다. 농구장에만 있으면서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렇게 농구를 하다 보니, 고등학교 3학년 땐 동료 선수들을 제치고 팀의 리더인 농구부 주장을 맡았다. 운동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주장을 맡는 일은 없다. 시작한 지 1년 만에 주장을 맡는 일은 전무후무하다. 리더십이나 통솔력이 있었던 부분도 있지만,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체육 선생이 되고 싶거나, 체육학을 전공하겠다는 마음이 크지 않았다. 막연하게 다른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입학한 이후에도 선수생활을 계속했다. 대학교 4학년 때 농구부 주장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 이렇게 선수생활을 하면서 팀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또 인내심도 배웠다.”

“한국은행에서 날 스카우트했다. 당시 은행권에선 명문대 출신 운동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 관례가 있었다. 그 당시 농구부 주장까지 맡은 것을 크게 봤는지, 스카우트 요청이 들어왔다. 안정적인 직장을 위해 한국은행을 택했다.

처음 입사했을 땐 한국은행 검사통할국에서 근무했다. 당시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부서와 그 정책을 은행들이 잘 수행하고 있는지 감독하는 부서가 구별돼 있었다. 한국은행 안에 집행부와 은행감독원이 있었다. 내가 속한 검사통할국은 금융기관을 검사하는 5개 검사국을 통합하는 부서였다.”

-한국은행은 명문대 출신 많다고 알려졌다.

“명문대 출신이 많을 뿐더러 석·박사 등 엘리트 출신도 많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물가를 안정시키고, 통화신용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곳이다. 대한민국 중앙은행이기 때문에 한국은행에 다니면 늘 공부를 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한국의 화폐 발권 기능을 가지고 있는 중앙은행이다. 통화량 조절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다. 금리와 지급준비율 조절 및 공개 시장조작을 통해 물가를 조율한다. 금리와 지급준비율 조절에 따라 물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연구한다. 경제학이 업무의 기초다. 경제학 전공자들을 입사 시 우대하기도 한다.”

“물론 어려웠다. 한국은행에 다니는 행원들은 늘 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승진도 할 수 없다. 한국은행에서 승진하기 위해선 책임자 승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법학, 경영학, 경제학 등 분야를 선택해 시험을 봐야한다. 매년 15% 전후로 탈락하는 어려운 시험이다. 한국은행 업무성격상 제일 비중을 두고 있는 분야는 경제학이다.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경제학 책임자 승격시험에 합격했다. 일반 명문대 출신도 은행에 와서 15%정도 떨어지는 시험에서 합격하니까, 인사과에선 놀랍게 생각했다. 승진하고 나서 한국은행 마산본부를 경남도청 소재인 창원본부로 이전하는 행사 담당 책임자를 맡았다. 승진 후 곧바로 큰일에 투입돼 핵심적인 업무를 맡았다. 그 후 은행 감사1국에서 4국, 6국을 거쳤다. 금융기관 검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았다.”

“그 당시 4개 감독기관이 통합돼 각권역간 이기주의와 위화감이 심각했다. 그 와중에 은행감독원 출신임에도 나는 증권 권역에 배치돼 12년 정도 근무했다. 금감원 안에서 증권 회사를 감시하는 권역에서 일했다. 증권 권역에서 12년 정도 몸담았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증권 권역에 있는 사람이 없다. 보통 증권 권역으로 배치된 사람들이 3~4년 지나면 자기 권역으로 돌아간다. 권역별 이기주의와 기득권보호 성향으로 견디기 쉽지 않았다. 한국은행과 증권회사는 조직문화가 아주 다르다. 증권은 바로바로 업무가 진행되고 시장과 아주 밀접하다. 그리고 실적에 따라 돈을 번다. 그런 증권사를 감독하니까 업무 성향도 비슷해진다. 3년 정도 증권사 검사를 다시 나가보면 인적구성원이 상당수 바뀌어져 있기도 했다. 한국은행은 금리와 지급준비율 조절 및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물가를 조율하기 때문에 업무성격이 보수적이고 심층적이라 증권회사와 업무성향이 완전히 다르다. 대구지원장으로 있었을 때 빼고는 계속 증권 권역에 있었다.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었던 이유는 진정성과 희생정신 등을 바탕으로 소통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권역간 위화감을 극복하고 업무능력과 소통능력을 인정받아 대구지원장, 조사2국장, 조사1국장(2년)을 거쳐 감사실 국장자리까지 올랐다.”

“유가증권의 발행을 촉진하고 그 관리와 공정한 거래를 위해 증권 관계 기관을 감독, 검사 등을 하는 일을 한다. 증권시장에서 개인이나 상장 회사의 주가조작 등불공정거래에 대한 조사업무를 수행한다.

조사는 시세조정, 미공개 정보 등을 이용해서 진행한다. 불법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을 밝혀내는 업무다. 이들을 형사처벌 할 수 있도록 검찰에 고발하거나 통보한다. 검찰은 우리가 조사한 것을 토대로 벌금을 주거나 기소해서 형을 살게 한다. 검찰에서 정·관계 대형비리사건 수사의 실체적 파악을 위한 자금추적이 필요해 파견요청이 왔다. 대검 중앙수사부와, 서울지검 특수부, 대북송금특검, 노무현대통령측근비리특검 등에 파견돼 금융정보수집과 자금 추적을 했다. 정·관·산업계가 유착된 대형비리사건의 자금 커넥션을 찾아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기여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불공정거래에 대한 절차를 알지 못한다. 조사국장을 할 때 형사처벌과 관련된 피조사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조사환경 설문조사를 통해 조사과정을 개선했다. 또 불공정거래에 대한 절차를 금감원 홈페이지에 오픈시켰다. 조사 내용을 가르쳐주고. 조사 절차에 대해 피조사자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불공정거래 판례집과 조사업무메뉴얼을 발간하고, 신속하고 효율적인 조사가 되도록 조사시스템을 개선했다.”

“운동선수를 하면서 팀워크의 중요성과 나를 희생하는 정신을 배웠다. 같이 생활하는 선수 간 의리도 쌓아졌다고 생각한다. 운동선수로 활동했을 때 배웠던 것이 있었기 때문에 직장생활에서 직원들과 관계를 맺을 때도 수월했다. 금융권에 몸담은 후 퇴근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공부했다. 운동선수 출신으로 어떤 편견이나 보이지 않는 벽 없이 주요 국장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감독원이 열려있는 유연한 조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금융감독원이 외부에서 보면 경직적인 조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실력있는 사람에 대해선 학력이나 출신 관계없이 능력위주로 평가한다. 그만큼 열린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고맙게 생각하고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앞으로 빚을 갚을 기회가 있으면 열심히 하겠다. 공직자윤리규정 때문에 국장을 그만두고 바로 금융권을 나갈 수 없다. 퇴직하고 3년이 지나야 금융권 재취업이 가능하다. 금융권에 재취업전 3년간 실물경제에 대한 경험을 쌓은 다음에 내가 체득한 금융관련 전문 지식을 펼칠 수 있으면 좋겠다. 금융관련 전문가로 대한민국 금융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