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슬라빈스키 Frequentis 한국지사장]“와인과 막걸리, 두나라 닮았죠”

[한국 속 글로벌리더를 만나다]한국, 유럽서 아직 저평가… 관계증진 노력할 것

편승민 기자입력 : 2017.01.09 10:09
편집자주더리더는 한국에 정착, 혹은 귀화한 외국인들 중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고자 한다. 한국의 세계화 안에서 그들의 역할을 조명하고, 인종을 떠나 하나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들어보고자 한다.

언제부턴가 한국에 ‘와인’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처음 와인이 들어왔을 때는 소위 고상한(?) 자리에서 마시는 고급 술의 이미지가 강했다. 와인을 따르는 법부터 와인 잔을 잡는 방법, 맛을 음미하는 순서까지 따지면서 마실 만큼 쉽지 않은 술이었다. 하지만 FTA 체결로 점차 와인 수입 국가가 늘면서 중저가 와인에 대한 접근성이 확대되었고, 음식문화도 변하면서 이제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음료로 자리잡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사람으로서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문화 대사’라고 불리는 Frequentis 한국지사 대표 볼프강 슬라빈스키를 만났다. 항공통신 관련업무 차 한국에 처음 왔던 그는 오랫동안 주한유럽상공회의소에서 사무총장과 부회장을 거치며 한국-유럽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와인을 한국에 알리는데도 앞장서고 있는 그에게 와인문화에 대해서 물었다. “한국 전통주인 막걸리와 오스트리아 와인의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아세요?”라고 묻는 그의 눈빛에는 한국과 오스트리아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다. 한국을 참 많이 닮았다는 오스트리아의 와인 이야기와 그의 눈에 비친 한국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언제인가
▶지금 있는 회사에서 1991년부터 일하고 있었다. 영업부서에 있었는데, 당시 내가 중점적으로 영업전략을 폈던 지역은 동유럽에서 중동지역까지였다. 영업과 서비스, 마케팅 부문까지 책임을 지고 있었다.
한국은 1996년 말에 처음 왔다. 한국에서 하는 동료의 업무를 돕고 있어서 오게 됐다. 그때는 주기적으로 오스트리아와 한국을 계속 오갔다. 1997년부터는 프로젝트가 많아져서 한국에 머무는 기간이 점차 늘어났다. 1997년은 한국에 IMF가 왔던 때였는데 그때 Frequentis의 다른 업무들은 다 취소가 되었어도 3가지 큰 프로젝트는 진행됐다.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들이었는데 바로 인천공항 건설, 공항 교통관제센터(Air Traffic Control Center), 그리고 군 관련 지원 사업이었다.

-지금 한국지사 대표로 있는 Frequentis에 대해 소개한다면
▶Frequentis라는 회사는 1945년에 설립되었다. 프리퀜티스는 원래 고주파(High frequency) 통신장치 회사로 유명했고, 1980년대부터는 항공교통관제(ATC : Air Traffic Control) 통신기기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런 항공교통관제 통신장치 생산이 핵심 사업 분야이다. 즉, 비행사와 지상 통제센터 사이에서 하는 모든 통신과 관련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회사다.

-한국에 계속 머무르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내가 했던 선택이라기 보다는 당시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내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들에 대해 전부 책임을 갖고 살펴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Frequentis가 앞서 이야기 한 사업들에 굉장히 집중하고 박차를 가하고 있던 중요한 시기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한국에서 오스트리아 회사가 별로 유명하지 않았다. 내가 실질적으로 계속 한국에 살게 된 것은 2000년 정도부터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사무총장, 부회장을 오랫동안 했다. 유럽기업들이 한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기본적으로 한국 산업 시장은 다른 아시아 시장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이 점은 분명히 유념해 두어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거나 새롭게 한국에 진출하려고 할 때 더욱 그렇다. 나는 그런 부분들에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많이 봐왔다.
유럽국가들과 회사들은 한국 시장에 대해 다소 저평가하거나 전체적인 산업 구조와 비즈니스 환경을 잘못 알고 있는 경향이 있다. 많은 유럽 기업들이 싱가포르에 아시아 본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싱가포르와 한국이 비슷할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같은 아시아 시장과는 전혀 다르다. 나는 오히려 어찌 보면 일본 시장과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도 약간의 유사한 부분이 있을 뿐이지 일본과도 성격이 다르다.
한국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엄청난 규모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재벌’이라는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 LG, 현대 등의 회사들이 외국 기업들의 비즈니스 영역을 막고 있다. 한국에서 유명한 독일 전자기기 회사인 지멘스(SIEMENS)의 경우 자동차, 기차, 전자제품 등 제조회사기도 하지만 그들의 본래 주 비즈니스 영역은 시스템 통합(System Integration)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것이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재벌과 대기업들이 이 부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으로 진출하기는 어렵다.


-오스트리아인으로서 오스트리아 문화와 와인을 한국에 소개하는데 열심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와인은 한국에서 아직까지 낯선데
▶먼저 이야기 해 두고 싶은 것은 이 분야는 현재 내 아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내 아내는 (주)수미르푸드 대표로 오스트리아 와인 수입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나는 이것을 돕고 있다.
오스트리아 와인이 아직까지 낯선 이유는 한국에 와인이 처음 들어왔을 때 오스트리아 와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잘 모른다. 오스트리아 와인의 특징은 보통 와인들 보다 드라이 한데, 특히 화이트 와인의 경우 더 그렇다. 오스트리아 와인은 유럽 내에서도 틈새 시장에 속할 정도로 독특하다. 오스트리아가 와인 생산에 심혈을 기울여 품질은 아주 훌륭하다.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 와인이 인기가 있나
▶사실 와인 마니아 층에게는 상당히 인기가 있다. 오스트리아 화이트와인인 그뤼너 벨트리너(Grüner Veltliner)는 리슬링(Riesling, 독일 화이트와인)과 비슷한 느낌이다. 리슬링도 물론 훌륭한 와인이지만 그뤼너 벨트리너의 경우 리슬링보다 좀 더 식음하기가 쉽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와인을 좋아하는데(특히 오스트리아 동쪽 지방) 그뤼너 벨트리너를 여름에 많이 즐겨 마신다. 가볍게 마시기 좋은 와인이고 잘 취하지 않는다.
알코올 함량은 리슬링과 거의 같다. 리슬링은 좀 더 단맛이 나고, 그뤼너 벨트리너는 그에 비해 좀 드라이한 편에 속해서 마실 때 더 편안하다.

-유럽의 와인문화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한국 와인문화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하겠다. 한국에 처음 와인이 소개되었을 때 등장했던 것이 독일와인이다. 그게 바로 리슬링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지금도 리슬링이 굉장히 유명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개된 와인이 바로 프랑스 와인이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프랑스 와인을 찾는 한국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그 이후에 들어오게 된 와인이 미국과 호주 와인이다. 다음으로 칠레와의 FTA를 체결하면서 칠레와인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칠레와인이 한국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맛도 좋으면서 가격이 굉장히 저렴하다. 한국처럼 와인문화가 과거에 없었고 처음 새로운 문화를 소개함에 있어서 이렇게 적정 가격의 와인으로 시작하는 것도 굉장히 효율적이다.
유럽 와인문화를 보자. 유럽 중에서도 특히 남부 유럽의 와인문화를 보면, 와인은 술이 아닌 ‘마시는’ 문화에서 시작되었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수질이 굉장히 나빴기 때문이다. 오로지 알프스 정상 부근의 물만 수질이 좋았고 일반 지역의 물은 수질이 저급했다. 그렇게 되자 무슨 일이 있어났는가? 물이 없으니 사람들이 와인을 물 대신 마시기 시작했다. 아이들 조차도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와인이 물보다 위생적으로 더 안전하기 때문에 마시게 된 것이다. 로마시대에도 역시 이렇게 와인을 마시는 문화는 이미 있었다. 이렇게 유럽에서는 물 대신 마시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서 와인문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물론 와인을 즐기는 하나의 음료로 마시고 있으며 와인의 종류도 많아지고 품질도 고급화 되었다.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와인문화는 많이 다른가
▶한국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있다. 바로 한국 전통 발효주인 ‘막걸리’와 오스트리아 ‘와인’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9~10월경에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를 수확하는데, 포도가 와인이 되는 과정에서 아주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우유빛 액체가 생성된다. 그런데 이 액체의 색깔과 맛이 한국의 막걸리와 아주 비슷하다. 이 와인의 이름은 ‘슈투엄(Sturm, 발효가 덜 된 오스트리아 햇와인)’이다. 막걸리와 슈투엄 둘 다 여과되지 않은 발효주기 때문에 병에 담아두면 침전물이 생겨, 함께 놓아두면 그 모습이 정말 비슷하다. 내가 한국 술 중에서도 막걸리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


-그럼 지금도 유럽에서는 술을 마실 수 있는 합법적인 나이가 안 되어도 와인을 마실 수 있나
▶이것도 역시 한국과 약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와인은 유럽에서 ‘술’이라는 개념으로 잘 인식하지 않는다. 물론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가족 식사 자리에서 조금 곁들이거나 다같이 마실 때 함께 약간 마시는 경우가 있다. 마치 옛날에 한국에서 농사일을 할 때 아이들이 새참으로 나르던 막걸리를 들고 오는 길에 몰래 마시는 것처럼 말이다. 참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한국의 어떤 문화가 독특하고 매력적이라고 느끼는가
▶나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한 방식(entire way of life)을 참 좋아한다. 한국인들의 삶의 방식은 굉장히 유연하다고 느껴진다. 어떤 삶의 규칙이란 것이 있고 대부분은 거기에 맞춰서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는 일이 생기면 협상하고 타협할 줄 안다. 물론 관용과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사회 안에서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의 이런 태도가 한국만의 독특하고 좋은 문화를 만들었다고 본다. 어떤 논리에서 벗어났을 때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타협과 논의를 통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느끼는 한국의 매력이다.


-음식에 따라 궁합이 맞는 와인도 따로 있다. 가장 좋아하는 와인과 어울리는 한국음식을 예로 든다면
▶기본적으로 먼저 어떤 음식과 함께 와인을 마실 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식사와 함께 와인을 마실 경우에는 음식이 너무 맵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약간의 매운맛까지는 괜찮지만 너무 매운 음식은 와인과 잘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무 매운맛이 나면 와인의 풍미를 느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치찌개 같은 경우는 와인과 먹기엔 다소 맵고, 된장찌개는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것도 와인과 먹기에는 조금 맛이 강한 편이다. 반면에 삼겹살은 화이트와인, 혹은 full-bodied(맛이 풍부한) 레드와인과 굉장히 궁합이 좋다.
이외에도 화이트와인과 맞는 한국 음식도 많은데 맵지 않은 물김치, 파전 등은 잘 어울린다. 나는 개인적으로 다시마 튀각과 화이트와인의 조합을 좋아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지금,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내 꿈은 한국과 유럽간의 관계의 토대를 더욱 단단히 하는 것이다. 유럽과 한국 사이의 관계가 과거에 비해 많이 발전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한국은 유럽에서 다소 저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기쁜 사실은 점점 오스트리아에도 한국인 관광객의 수가 늘어나는 등 눈에 띄는 변화들이 있다는 것이다. 2015년에는 전년 대비 한국인 관광객이 30%정도 늘었다고 한다. 이런 증가에 대해 한국과 오스트리아를 오가는 항공 노선도 증편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인천-비엔나 항공편이 일주일에 3~4회로 늘어난 것이 단적인 예다. 양국의 교류와 협력이 늘고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우리는 더 좋아질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내가 더욱 노력해야겠다 라고 생각한다.

△ 볼프강 슬라빈스키(Wolfgang Herbert Slawinski) Frequentis 한국지사장
–– 1957년 6월 4일생(비엔나, 오스트리아)
–– College for Aeronautics(항공학), 비엔나, 오스트리아
––Oakland University(공학경영과학 석사), 미시간, 미국
–– Rohde & Schwarz 동남 유럽지역 총괄
–– Frequentis 동유럽, 중동, 한국 영업서비스 총괄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사무총장
––주한유럽상공회의소 부회장
––現 Frequentis 한국지부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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