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선의 동맹 잊지 말아야”, 한미 관계는 ‘NO’라고 말하기 보다 국가이익이 우선

[인물포커스]염돈재 건국대 초빙교수

임윤희 기자입력 : 2017.06.01 10:13

▲염돈재 교수
검정색 미끈한 수트에 잘 빚어 넘긴 머리, 운동한 듯한 넓은 어깨와 훤칠한 키…. 스파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남성상이다. ‘007 제임스 본드’가 우리 상상력을 여기까지 끌어 올려놨다. 인물포커스에서는 해외 공작만 30년간 해온 원조 스파이를 만났다.

제임스 본드 같은 스타일보다는 형사 콜롬보가 스파이에 더 적합하다고 말하는 그는 바로 국정원 제1차장을 지낸 염돈재 교수다. 지금은 건국대에서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염 교수는 스파이는 창의적인 직업이라고 말한다. 007 제임스 본드의 작가도 스파이 출신이었고, <노인과 바다>(1952)로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훗날 밝혀졌지만 KGB 요원이었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타인의 마음을 움직여 정보를 훔쳐내는 스파이는 역설적으로 신뢰가 기본이다.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권 때 시작한 대공산권 정책(북방정책)의 실질적인 사령탑으로 한·소 정상회담을 만들어 냈으며, 그 뒤로도 공산권에 대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청와대를 거쳐 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 제1차장으로 활약했다. 스파이로 지냈던 그의 인생 스토리에 대해 듣고 이제 막 출범한 문재인 정권의 국정원 개혁 과제와 안보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염 교수는 서훈 국정원장 내정자에 대해서는 “능력도 뛰어나고 인간관계도 좋아 국정원 선후배들 간에 신망이 높다”고 평했으며, 문재인 정부의 안보·통일관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유사하다며 “현 상황은 북한의 핵개발과 김정은의 공포 통치로 그때와는 많이 다르므로 걱정하는 국민이 없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국정원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공군 첩보부대에 근무한 대학 친구가 있어 정보 업무에 관심을 갖게 됐고, 1968년 정규과정 공채 5기 시험에 합격해 들어가게 됐다. 처음엔 정보 분석을 하고 싶었는데 교육을 받고 보니 첩보 업무가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지망했고, 채용시험 성적과 졸업성적이 1등이어서 원하는 부서에 갈 수 있었다.”

국정원 차장까지의 성장 스토리가 궁금하다
“교육 후 계속 해외첩보 파트에 근무했고 그 중 12년은 브라질, 미국, 독일에서 근무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청와대 정책보좌관실에서 북방정책 담당 비서관으로 근무했다. 김영삼 정부 출범 후 박철언 계열로 찍혀 1995년 2급 계급정년으로 조기에 퇴직했다. 퇴직 후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마쳤고,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후 8년 만에 국정원 해외담당 차장으로 복귀해 2004년 말 퇴직했다. 국정원 재직 30년간 해외첩보 분야, 즉 스파이 업무를 한 셈이다.”

스파이 하면 제임스 본드가 떠오른다. 실제로는 어떤 차이가 있나
“흔히 스파이는 제임스 본드처럼 미남이고 기민하고 눈치 빠른 사람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영국 해외정보부 MI6는 사람들 눈에 쉽게 띄는 사람은 뽑지 않는다. 스파이 일은 약삭빠른 사람보다는 좀 어눌하고 진실해 보이는 사람이 더 잘한다. 신뢰성이 있어야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본드는 화려해 보이지만 “실패한 스파이는 화려하고 성공한 스파이는 따분하다”는 말이 있다. 진짜 스파이 활동은 30%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계획 수립, 훈련, 행정 처리 등 따분한 일로 보내기 때문이다.”

청와대에는 어떤 계기로 가게 됐는지
“1986년 미국에서 귀국 후 안기부 박철언 특별보좌관실에서 중소팀장을 맡아 북방정책 연구를 한 인연 때문이다. 청와대 근무 시에는 북방정책 입안과 헝가리, 소련 등 공산국가와의 수교 교섭 업무를 담당했다.”

북방정책 추진 시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
“소련과 국교가 없던 시절, 비밀 교섭을 통해 1990년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중국과 국교가 없던 1989년 우리 탁구대표 안재형 선수와 중국 세계랭킹 1위 자오즈민 선수의 탁구 커플 결혼을 성사시켜 세계적 화제를 만들기도 했다. 밝힐 수는 없지만 재미있고 보람된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독일 통일에 관심이 많던데 계기는
“독일 통일 직전 독일 근무를 자원해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북방정책의 종착점이 통일이므로 독일 통일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3년 근무 중 많은 주요 인사들을 만났고, 1993년 귀국 시에 한 캐비닛 분량의 자료를 가져와 2010년 ‘독일 통일의 과정과 교훈’을 썼다. 독일 통일 후 26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우리가 독일 통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요즘 그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잘못 알고 있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우리는 브란트의 동방정책, 서독 사민당(SPD)의 화해협력 정책이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 통일은 아데나워 초대 총리부터 통일을 이룬 콜 총리까지 서독 기민당(CDU) 정부가 추진해 온 ‘우위 유지 정책’ 또는 ‘힘의 우위 정책’이 거둔 성과이다.
우리는 독일이 통일비용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생각하나 독일 사람들은 통일 비용 때문에 고생한 적도 없고, 통일 후 독일 경제는 더욱 강해져 요즘은 ‘유럽의 엔진’이라 칭송 받고 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매우 많아 잘못된 대북·통일 정책과 국론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다.”

국정원 개혁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한 말씀 한다면
“일부 정치권은 국정원을 개혁해 국내 정치 개입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이제 국정원은 국내 정치 개입을 할 수가 없다. 정부 부처를 출입할 수도 없고, 불행하지만 정치권에 줄 대고 있는 직원들도 있어 정치 개입을 하면 금방 알려지게 돼 있다.
정치 개입 시 처벌도 5년 이하의 징역으로 대폭 엄해졌다. 그런 처지에 누가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런 일을 하겠는가? 개혁을 잘못하면 중요한 안보기관을 불구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이제 국정원의 개혁은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염돈재 교수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는 햇볕론자로 국정원장에는 부적합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서 후보자와 혹시 친분이 있나
“좀 아는 사이이다. 능력도 뛰어나고 인간관계도 좋아 국정원 선후배들 간에 신망이 높다. 일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서 후보자가 주로 남북대화 업무를 해 왔기 때문에 북한 변화 유도와 간첩 및 종북세력 색출이 주 임무인 국정원장으로 부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서 후보자는 현명한 분이니까 이런 걱정을 잘 감안할 것으로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안보관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에 있지 않았나. 문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개인적 친분은 없으나 정의감이 강하고 퍽 따뜻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대선공약과 저서 내용을 보면 안보·통일관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한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북한의 핵개발과 김정은의 공포 통치로 옛날과 많이 다르므로 걱정하는 국민이 없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

미국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에 ‘노(no)’라고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저서에서 밝힌 사실을 언급하면서 “한국이 미국의 대북 공조에서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사드 배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5·24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문제를 둘러싼 갈등 가능성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미 간의 문제는 NO라고 할 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이익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판단하는 게 더 중요하다. 아울러 미국은 세계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동맹 파트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정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최우선 국정 과제는 북한 핵문제 해결, 튼튼한 안보 유지, 일자리 창출 등 세 가지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갈등 치유와 국민 화합이다. 탄핵정국과 대선을 거치는 동안 국민 간의 갈등이 최고 수준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폐청산’보다는 ‘국민화합’에 주력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염돈재 건국대 초빙교수
1943년 8월 27일, 강원도 강릉
건국대학교 초빙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박사
청와대 비서관
주독일 대사관 공사
국가정보원 제1차장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원장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초빙교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한독통일자문위원회 위원
現 건국대학교 초빙교수



임윤희 기자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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