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현 화장실연구소 소장, “나를 비추는 화장실은 ‘사람’이다”

화장실 이용예절인 ‘도’가 지켜질 때 문화선진국 될 것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입력 : 2018.09.17 09:13
모든 사람이 하루에 한 번 이상 꼭 가는 곳, ‘근심과 걱정을 해결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해우소(解憂所)라는 명칭도 있는 그곳. 바로 화장실이다.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화장실은 언제 처음 만들어졌으며, 어떤 변화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됐을까? 

과거에는 화장실 하면 ‘지저분한’ ‘더러운’ 등의 이유로 이야기하기조차 꺼렸던 것과 달리 현대사회 화장실은 ‘문화의 척도’ ‘나를 비추는 거울’로 대변된다.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 기준 확립과 발전에 기여해온 자타 공인 전문가 조의현 화장실연구소 소장은 “화장실이나 분뇨(糞尿)에서는 냄새가 나지만, 글로 쓰는 화장실 이야기는 향기가 난다”고 말했다. 그리고 “화장실을 보면 그 사람, 그 집단, 그 가정, 그 국가를 알 수 있기에 화장실은 ‘사람’이다”라고 덧붙였다. 

-화장실은 매일 사용하지만 어떻게 처음 생겼는지는 잘 모른다. 화장실 기원을 이야기한다면
▶화장실이 맨 처음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다만 세계적인 화장실 연구가들에 따르면 유적으로 추정 가능한 화장실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이다.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통치자 사르곤 1세가 왕국에 6개의 옥외 변소를 만들어서 청결에 모범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과거 원시인들이 유목생활을 할 때는 자연에 배변활동을 하다가 동서양 모두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화장실이 생겼다고 본다. 사람들이 정착해 모여 살면서 인분이 쌓여 냄새도 났지만, 인분을 활용해 농사 거름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배변물 저장 방법, 모으는 장소로서 화장실이 발전하게 됐다. 동양은 주로 농사에 활용하는 방향으로, 서양은 동양보다 산업화가 먼저 되면서 인분을 좀 더 위생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는 600년 전 백제시대 무왕때 화장실 유적이 전라도에서 발견됐다. 신라시대에는 수세식 화장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앉아서 변을 보면 물이 나올 수 있게 됐던 구조가 나타났다.

-화장실을 보면 가정이나 회사, 나아가 국가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는데
▶역사적으로 로마가 가장 번성했을 때 목욕문화를 포함해 화장실 문화가 굉장히 발전했다. 또 수세식 화장실을 제일 먼저 발명한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유럽을 지배했고, 수세식화장실 대량 보급에 앞장섰던 미국은 누구나 인정하는 문화경제선진국이 됐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화장실이 발전하면서 문화 수준이나 국민의 자긍심이 많이 높아졌다. 반대로 구 소련이나 중국은 아무리 군사대국, 무기대국이라고 하지만 화장실이 형편 없으니까 문화선진국이란 말을 붙여주지 않았다. 화장실 문화가 발전하지 않고 문화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결국 ‘화장실이 발전한 나라가 문화선진국이다’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는 어떻게 발전해왔나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운동은 초기에는 ‘깨끗함’ 중심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아름다움이 중시되면서 음악과 시가 있고, 상쾌하면서 휴식할 수 있는 장소로 바뀌었다. 이제는 한 걸음 나아가 자원을 절약하고, 환경을 보존하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이용자 편의를 중시하는 화장실로 발전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화장실 문화운동을 시작한 것은 1996년 5월 ‘2002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가 결정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함에 따라 외국인들이 양국에 오면 축구경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를 보게 되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가 일본과 문화차이가 있으면 안 되지 않겠나’ 하면서 일본에 질 수 없다는 국민성을 건드렸다고 본다. 1998년 한국관광공사가 관광 진흥 차원에서 화장실 문화운동을 시작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때 처음으로 베스트&워스트 화장실 콘테스트가 시행됐다. 1999년부터는 문화시민운동 중앙협의회가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 제도를 시행했다. 이처럼 정부가 강한 의지로 적극적으로 이끌어줬고 시민단체를 잘 활용했으며 국민이 적극적으로 화장실 문화운동에 동참한 결과, 화장실문화가 많이 발전했다.
그리고 국민적 컨센서스를 획득한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인데 이는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이 1만 달러는 돼야 화장실 문화운동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실제 일본이 화장실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85년 국민소득은 1만1500달러 수준이었고, 우리나라가 2002월드컵을 준비할 당시 국민소득은 1만달러 정도였다. 즉,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돼야 화장실 문화운동도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 속 세계 전쟁이 화장실 발전에 기여했다는 재밌는 사실이 있다. 어떤 연관이 있나
▶역사적으로는 왜 화장실이 전쟁과 관계가 있는가. 예전에는 전쟁을 하다 보면 전투보다 위생 문제로 인해 죽는 사람의 수가 더 많았다. 결국 화장실 변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발견됐다. 그래서 군대에서의 화장실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생물학자 한스 진저(Hans Zinsser)는 그의 저술에서 ‘페스트, 콜레라, 티푸스 그리고 설사 등이 카이사르, 한니발, 나폴레옹 같은 사람들(작전) 보다 더 전쟁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우리가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으로 잘 알고 있는 ‘정로환(正露丸)’은 사실 러일 전쟁 때문에 탄생한 약이다. 정(正)은 ‘정복한다’는 뜻의 의성어이고, 로(露)는 ‘러시아’의 한자 표시며, 환(丸)은 ‘구슬 약’을 뜻한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무기보다 중요한 것이 군인들 건강문제라고 일본은 판단했고, 러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상비약품으로 정로환을 지급했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 승리했고, 전쟁에서 전염병 사망자 수가 전투로 죽은 사람 숫자보다 적어진 것도 이 전쟁이 처음이었다.

▲조의현 화장실연구소 소장/사진=더리더
-화장실 전문가가 된 과정이 궁금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소심한 성격이었다.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소변은 봤지만 대변을 못 봤다. 대변을 참고 집에 오다가 5m를 남겨놓고 바지에 실수한 적도 있다. 중고등학교때 수학여행을 가면 2~3일 정도 참기도 했다. 나는 군대를 공군을 갔는데 이유가 그때 육군 논산훈련소에 가면 화장실에 칸막이 없이 구멍만 뻥뻥 뚫려 있다고 해서 겁이 나서 그랬다. 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당시 우리나라 건설경기를 필두로 수출이 강화되고, 경제가 부흥하면서 은행 직원들이 산업체로 많이 갔다. 그때 나도 대림요업(현 대림 B&Co)이라고 변기 만드는 회사로 가게 됐다.
위생도기 만드는 기술은 일본과 기술제휴를 해서 일본을 자주 다녔는데 처음에 일본어를 못해서 통역사를 데리고 다녔는데 불편했다. 그리고 일본 공장에 연수 다녀온 기술자들은 기술 전수를 잘 안해줬다. 뭐가 망가지면 직원들 나가 있으라고 한 뒤에 고치고 하는 식이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고 직접 자료를 모았다. 한 번은 귀국길에 도쿄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샀다. 그때 샀던 책을 번역해서 ‘화장실이 변한다’라는 제목으로 자비를 들여 100권 정도 비매품을 만들었다. 그 책을 언론사와 관광공사 등에 보냈는데, 관광공사에서 당시 처음으로 베스트&워스트 화장실 콘테스트를 하는데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와서 그때부터 이런 일을 하게 됐다. 우연한 기회들이 쌓여 필연적인 운명이 된 것 같다.

-화장실 전문가로서 그동안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의 심사를 여러 차례 맡아왔다. 아름다운 화장실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화장실 대상 심사기준이 있는데 공개하지는 않는다. 다만, 평가 요소가 매년 조금씩 시대에 따라 바뀐다. 그중에서도 법률의 적합성을 가장 크게 본다. 화장실이 갖춰야 할 조건에 대한 법이 있는데 여기 맞아야 한다. 공중화장실로서 최소한의 크기, 남녀 변기수 비율 등이다. 남녀 변기수 비율의 경우 작은 화장실은 1대1이지만 규모가 좀 있으면 1대1.5로 여성용 변기를 많이 두게끔 되어 있다. 그리고 유지관리 상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의 증진, 에너지 절약, 디자인 창의성 등을 주요 지표로 심사한다.

-아름다운 화장실은 관광명소가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화장실 사례를 이야기해준다면

▶경기도 남양주에 가면 피아노 화장실이 있다. 피아노 화장실은 하수종말처리장에 만들어졌다. 주민기피시설인 하수종말처리장을 설치하기 위해 설득하는 과정에서 하수처리장 오폐수를 맑은 물로 정수해 이 물을 이용한 피아노 폭포와 피아노 화장실이 탄생했다. 피아노 화장실은 지어졌을 당시 1년에 30만 명 이상이 방문했다. 지금은 생태공원과 물놀이장까지 갖춰 4계절 관광지로 호응을 얻고 있다. 주민기피시설을 주민환영시설로 만든 대표적인 사례다.
수원에는 화장실 문화 전시관인 해우재(解憂齋)가 있다. 2007년 세계화장실협회 초대 회장에 선출된 고 심재덕 전 수원시장(민선 1, 2기)은 협회 창립을 기념해 사택을 변기 모양으로 지어 해우재라고 이름지었다. 2009년 심 회장이 세상을 떠나고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해우재를 수원시에 기증했다. 수원시는 해우재를 ‘화장실문화 전시관’으로 바꿔 시민에게 개방했다. 이곳은 하루에 1000명 이상의 내외국인들이 방문하면서 화장실 문화공원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의 스티커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문구다. 이는 화장실문화연대에서 보급한 것인데 이외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다면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대표팀 허재 감독이 현역 농구선수 시절 동부 전신팀인 삼보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해였다. 당시 허재 선수는 부상했으면서도 크게 활약했다. 그때 인터뷰에서 기자가 어떻게 그런 투혼을 발휘했냐고 물으니 허재는 ‘어느 공중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가 거기에 쓰여 있는 스티커 문구를 보고 다짐을 했다’고 하더라. 그 문구는 바로 ‘한 번 날아간 새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었는데 그걸 보고 ‘이번에 우승을 놓치면 이제는 끝이다’는 생각을 갖고 뛰었다고 말했다. 문구가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큰 감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번 세계화장실 리더스포럼(화장실 문화 국제교류사업 일환)에서 외국에서 온 화장실 관계자들에게 그 나라 화장실에 대한 문구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더니 이런 문구를 말해줬다. ‘Beautiful people leave their back beautiful(아름다운 사람은 자기 뒷자리도 아름답게 한다)’, ‘따뜻한 변기에 앉으면 마음도 따뜻해진다’, ‘위생적인 화장실은 국가와 민족을 부강하게 한다’ 등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런 문구들이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화장실도 중요하지만 화장실을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한 이용문화가 전제돼야 하는데 ‘화장실 도’에 대해 당부하고 싶은 말은
▶‘화장실 도(道)’라는 말 자체가 좀 어색하지만 내가 사용한 지는 꽤 오래됐다. 차를 마실 때 예법인 다도(茶道)가 있듯이 화장실에도 화장실을 이용하는 예절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이름지었다. 화장실을 구성하는 요소는 화장실을 만드는 사람, 유지·관리하는 사람, 그리고 이용자다. 화장실을 만들어만 놓고 유지·관리가 안 되면 이용할 수가 없고, 앞에 두 가지가 되는데 마지막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잘못 이용하면 유지가 안 된다. 삼위일체가 돼야 화장실 도가 완성된다. 화장실을 만들고 유지·관리하는 것은 정부나 관리 주체가 있지만 이용자는 국민 전체다. 누구든 화장실을 이용할 때 ‘여기는 우리집 화장실이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나온다.

-앞으로 더 나은 화장실 문화를 위해 정부에 바라는 점은
▶화장실 문화의 완성은 설치와 유지·관리, 이용문화의 삼위일체다. 시설과 유지·관리 면에서는 앞서가고 있지만 이용문화는 아직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다. 화장실 이용예절 향상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국가적으로 더 했으면 좋겠다. 일부 행정부 쪽 이야기를 들으면 이제 화장실문화는 이 정도면 되지 않았냐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아직 2% 부족한 이용문화를 개선하는 데까지만 좀 더 정부가 앞장서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화장실 문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바람이다.
'제19회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에서 광주·전남권에서는 유일하게 봉화산둘레길 화장실이 특별상인 행정안정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사진=순천시청 제공
-조 소장에게 ‘화장실’이란
▶화장실은 결국 ‘사람’이다. 쉽게 말하면 화장실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고, 내 생활이다. 화장실을 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의 성향이 다 나타난다. 일본에서 한 증권분석가는 ‘투자할 때 기업의 대차대조표가 보기 어려우면 그 회사 화장실을 가보고 화장실이 더러우면 투자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서울시 음식점 화장실을 심사할 때도 보면 음식은 맛있지만 화장실이 지저분한 집이 있다. 그런데 화장실이 깨끗한 집치고 음식 맛이 떨어지는 집을 보긴 어려웠다. 화장실은 결국 그 사람, 그 집단, 그 가정, 그 국가를 나타내는 얼굴이기 때문에 ‘화장실은 사람이다’라는 것이 내 평소 지론이다.


조의현 한국화장실연구소 소장
現 한국화장실협회 고문
1945년생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조흥은행 재직
(주)대림요업(現 대림B&Co) 상무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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