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의 4者회담 구상

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고려대학교 남성욱 행정대학원장입력 : 2019.02.04 08:00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
새해 들어서 2차 북미정 상회담 개최를 위한 북미 간의 은밀한 접촉이 본격화되었다. 지난 연말부터 북한과 미국 간에 다양한 물밑 채널이 가동되더니 마침내 김영철 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 하여 트럼프 대통령과 90분간에 걸친 면담을 했다. 이어 2월 말 총론적인 2차 정상회담 개최 합의가 미국에서 발표되었다. 

북미 정상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이후 8개월여 만에 베트남에서 다시 얼굴을 맞대게 됐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비롯한 북미 대표단은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의 추운 시골 별장에서 양측이 주고받을 ‘퍼즐 맞추기’를 진행했다. 1차 정상회담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비난을 받아서인지 2차 분위기는 일단 신중 모드다. 양측은 일단 ‘스몰딜(small deal)’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핵문제의 복잡함을 인식한 트럼프 대통령이 한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원샷딜(ons shot deal)에서 부분적으로 후퇴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기존에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와 관련시설의 신고, 사찰 및 검증에서 일보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을 등에 업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연초에 전격적으로 베이징을 방문하여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의 폐쇄와 ICBM의 해체를 미국의 대북 제재완화 카드와 교환하는 부분 패키지 합의를 요구했다. 민주당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멕시코 국경장벽을 설치하는 연방정부의 예산 동결인 셧다운으로 고심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흥행이 예산되는 북미 정상회담 카드를 꺼내 들었다. 

베트남 회담의 주요 의제로는 북한의 핵연료 물질과 핵무기 생산 동결이 올랐다. <뉴욕 타임스>는 북미 협상과 관련해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이 핵연료와 핵무기 생산을 동결할지가 북한과 논의 중인 한 가지 주제”라며 북한 핵동결이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미래핵 제거라면 핵동결은 현재핵 제거라는 점에서 현실화될 경우 비핵화 과정에서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북한의 핵동결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큰 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에서 엄청난 진전을 이뤘는데도 언론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여러 차례 불만을 토로했는데, 미언론은 북한이 협상 진행 중에도 은밀하게 핵ㆍ탄도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미 언론이 작년 연말 북한 양강도 영저동과 황해북도 삭간몰 미사일 기지 동향을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속고 있다는 식으로 비판한 것은 일례 다. 미국의 상응조치가 변수이긴 하지만 북한이 핵동결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김 위원장은 이미 신년사에서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핵무기 생산과 실험·사용·확산을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4불(不)’ 입장을 천명한 상태 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미 주일 미군이 자제 홈피 동영상에서 북한이 15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 동결 카드는 나쁜 선택이 아니다.

제조한 핵무기인 과거 핵이 최소 20개 넘게 있는 이상 현재핵의 동결은 제재 완화와 주고받기 카드로서 수용할 만하다. 동시에 북한의 미 본토를 위협하는 ICBM 폐기 문제도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애초 ICBM 폐기 문제는 북한이 사실상 ‘무장해제’라고 강하게 반발해왔다는 점에서 비핵화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 진전된 이후에나 논의될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미 직전 “미국민의 안전이 궁극적 목표”라고 밝히면서 이슈로 급부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도 이번에는 북한으로부터 ICBM을 빼앗았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안전하게 됐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업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사찰과 검증이라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아무리 진전된 조치를 내놓는다고 해도 북미 간 불신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찰과 검증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나 협상무용론을 불식시키기 어렵다. 

과거 북핵협상때도 사찰, 검증 문제는 번번이 걸림돌이 되곤 했다.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능력과 시설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된 상황에서 정치적, 기술적으로 민감한 사찰, 검증 과정에서 ‘디테일의 악마’가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 이제 한 달여를 앞둔 북미 간의 빅이벤트는 사실상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마지막 정상 간에 회담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구체 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북미 정상회담은 그야말로 ‘리얼리티 쇼’로 전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국제정치 또한 반복된 다. 20세기 중반 고착된 냉전 프레임이 변화하지 않은 동북아 국제정치는 북한 외교의 전술 전략에 의해 과거와 현재 및 미래가 융합되어 작동한다. 북한의 주목할 만한 신년 움직임은 중국을 적극적으로 북핵 이슈에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정월 초하루 소파에서 발표한 금년도 신년사에서 20년이 지난 ‘1997년 4자회 담’ 카드를 슬그머니 꺼내 들었다. 김 위원 장은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도 적극 추진하여 항구적인 평화보장 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전협상의 당사자는 결국 미국, 북한 및 중국이다. 한국은 북한 서포터즈인 만큼 당연히 참석 대상이다. 

1997∼99년간 제네바에서 6차례 진행되었던 남북미중(南北美中)이 참여하는 ‘4者회담’을 복원시켜 종전선언을 이끌어 내는 카드를 예고한 것이다. 4자회담은 사실 1996년 김영상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의 제주도 회담에서 제안되었다. 휴전 협정 조인국인 중국을 참여시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구도를 형성하려는 의도였다. 필자와 절친인 언론인은 입사 후 처음 제네바로 가서 4자회담 현장을 취재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하지만 최초의 4자회담은 각자의 동상이몽만 확인한 채 만 2년에 막을 내렸다. 북미 직접 회담을 선호하여 당초 회담에 소극적이었던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장은 마지못해 회담장에 나타나 주한미군 철수, 한미 대규모 전쟁연습 중단 및 북미 당사자 간 평화협정 체결 등 기존 레퍼토리를 반복했다. 중국은 전쟁 상태 종식 선언, 내정 불간섭 및 군축 조치 등을 강조했다. 4자회담은 참석자들이 파안대소하는 언론 홍보용 사진은 여러 차례 촬영했지만 특이할 만한 해법이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자회담도 결실을 맺기 어려운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4자회담의 성과가 도출되지 않은 것이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2019년 황금돼지띠 해 서울-평양-워싱턴-베이징의 사정은 1997년과 다르다. 지난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는 진전되지 않으며 대북제재는 유지되고 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2차 회담을 앞두고 동북아 국제정치의 판을 흔들어서 트럼프의 기선을 제압할 거버넌스를 구축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김정은은 신년사 에서 “우리의 주동적이며 선제적인 노력에 미국이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하며 상응한 실천행동으로 화답해 나선다면…” 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새로운 거버넌스는 4자회담이었고 구체적인 행동은 엄동설한에 열차 방중(訪中)이었다. 

조선중앙통신은 “북중 두 정상은 회담에서 한반도 정세관리와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 조종해 나가는 문제와 관련해 심도 있고 솔직한 의사소통”을 강조했다. 북한말사전에 따르면 조종이라는 단어는 이니셔티브를 행사한 다는 의미로서 주도권을 쥐고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신년사와 일맥상통한다. 김정은 본인의 주도로 협상 국면이 조성되었으며 북한이 갑(甲)이며 미국은 을(乙)인 셈이 다. 특히 든든한 큰형님격인 시진핑의 아낌없는 후원을 받은 김정은으로서는 천군만 마를 얻은 심정일 것이다. 미국의 선제 양보 조치를 촉구함으로써 미국의 신고 검증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오히려 제재 완화와 종전선언 관철에 주력할 것이다.

결국 북한은 중국을 북미협상에 끌어들여 남북중(南北中) 대 미국이라는 3대 1 구도를 형성하는 외교전을 전개할 것이며 이미 베이징에서 일보를 내디뎠다. 베트남 다낭 으로 굳어지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공은 이제 워싱턴 코트로 넘어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차와 같은 ‘선전용 정상회담’을 하든지, △북한의 요구인 ‘제재 완화와 종전선언’ 카드와 ‘영변 핵시설 및 ICBM 폐기’ 카드를 맞바꾸든지, △2차 회담을 무기한 연기하든지 택일해야 할 것이 다. 멕시코 국경 장벽 예산 문제로 연방정부 셧다운이 4주를 넘기고 있는 혼란스러운 국내정치에 정신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북중 정상회담의 의미와 금년도 북한의 입체적인 4자회담 전략을 제대로 간파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역설적으로 23년 전에 한미 양국이 제안했던 4자회담 카드로 미국의 대북제재를 무력화시키고 종전 선언을 유도하려는 김정은의 복안과 여전히 ‘편지 주고받기’로 비핵화의 생색을 내는 트럼프 간 치열한 일전이 전개될 수 밖에 없다. 2말3초의 베트남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행보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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