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농원 김병준 김헌식 부자, ‘도전과 창조’ 정신 잇는 부전자전

[농어촌은 지금, Jump-up] 젊은 세대 유입 위해 정부 차원 다양한 후계농 육성책 필요

머니투데이 더리더 가현정 객원 기자입력 : 2018.04.24 10:09
편집자주1차산업의 대표격인 농업이 6차산업으로 변신 중이다. 농사만 지어 도매가로 농작물을 넘기던 농민들이 제조와 마케팅, 판매, 서비스까지 책임지는 6차산업의 최전선에 나서고 있는 것. ‘더리더’는 농민의 변화로 농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농촌을 찾기 바라는 마음으로 신규 코너를 선보인다. 농촌이 잘 살아야 우리 먹거리의 질이 좋아지고 삶이 풍요로워진다. 제2의 농촌 호황기를 만들 ‘新농민’들을 만나보자.
두레농원 김병준 대표 /사진=가현정 제공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 열여덟 번째 주인공은 충남 서산시 대산읍에 위치한 두레농원의 김병준 대표와 그의 아들 김헌식 박사다. 함께 농사짓는 부부를 인터뷰한 적은 많지만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인터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헌식 박사는 김병준 대표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찌감치 서울로 유학하여 문화예술 분야의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초빙교수이자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느라 무척 바쁜 와중에도 고향 집에 내려와 아버지 곁을 지키는 이유가 궁금했다. 농사일이라곤 전혀 해본 적 없어 마냥 서툴기만 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퍼져 있다. 이번 호에서 특별하게 도전과 창조의 정신을 이어가는 부전자전(父傳子傳)의 표상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 

-김병준 김헌식 부자 소개
소개를 부탁하자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 자랑이 이어졌습니다.

아들 김헌식 박사(이후 김 박사) :
우리 동네가 원래는 어촌이었습니다. 무엇에든 솔선수범하셨던 아버지가 어촌계장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다들 깜짝 놀라곤 합니다. 현대그룹에서 대규모 간척사업을 하면서 바닷길을 막아 어촌을 농촌으로 바꾸었습니다. 사업을 시작할 당시 표어가 ‘바다를 막아 옥토로’였습니다만 지금은 바다에서 더 많은 자원을 얻을 수 있어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당시의 진실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더 이상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닫는 사례입니다. 어부로서 열심히 사셨던 아버지는 농부가 되신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업종은 바뀌었지만 도전과 창조의 정신은 그대로 발휘하셨습니다. 서산에서 최초로 멀칭재배와 고추모종재배를 성공해서 시민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농사일은 할 줄 모르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고향 집에 내려오면 새롭게 충전되고 도전과 창조 에너지가 생성되는 것 같아 좋습니다.

아버지 김병준 대표(이후 김 대표) : 상 받은 이야기를 하면 우리 아들 앞에서 명함을 못 내밉니다. 글 잘 써서 주는 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유학생활을 하느라 타지에서 고생이 많았을 텐데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은 무던한 아들입니다. 너무 자랑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자식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그 이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저 어부로 열심히 살고, 농부가 되어 열심히 농사짓는 것 외에 달리 부모로서 한 일이 없습니다. 바쁜 시간 쪼개서 집에 와주는 것은 고맙지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려면 시간이 없을 텐데 걱정입니다. 우리 아들 착하고 성실한 것은 내가 보증하니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좀 부탁합니다.

닭모이 주는 김헌식 박사 /사진=가현정 제공
-우리나라의 독창적 기술이 활용된 간척사업은
김 대표 : 서산만 간척지는 ‘현대서산농장’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총 매립 면적 1만5409ha에 간척지는 1만1114ha인데, 물막이 공사에 폐유조선을 동원한 ‘정주영 공법’이 적용된 곳으로 더 유명합니다. 북한으로 보낸 소 1000마리가 방목되던 목장지라는 점에서도 특별합니다. 요즘 다시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있어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공들여 회복해놓은 남북관계가 대통령 한 사람의 생각으로 무너지는 걸 보면서 참담했습니다. 무엇보다 서산 간척지가 특별한 이유는 세계 간척 역사에 획을 그었다는 점입니다. 독창적인 우리의 기술이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농업용지로 사용하기 위한 모든 간척지 개발에는 바닷물에 잠겨 있던 갯벌의 소금기를 제거할 수 있기에 충분한 양의 하천수 확보가 필수적인데 적은 강수량으로 인해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토양을 한 번만 씻어내는 다른 간척지와 달리 씻고 내려온 물을 모아 두었다가 다시 사용함으로써 모자란 강수량을 보충하는 방식이 도입되어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첫 번째 호수 물의 소금 농도가 진해지면 바로 아래의 호수로 흘려보내고, 또 다음 호수로 흘려보내서 최종적으로는 바다로 흘려 내보내는 순환관개방식을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도전과 창조의 힘은 어느 분야든 동일하다
김 대표 :
평생을 어부로 살다가 갑자기 바닷길이 막혔을 때의 심정은 다들 비슷했습니다. 막힌 바닷길처럼 우리의 마음도 꽉 막힌 듯했습니다. 하지만 변화된 상황을 한탄만 하고 있어서는 부모와 자식을 책임져야 할 사람으로서 마땅치 않은 일입니다. 농업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활용하면서 농부로서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갔습니다. 바닷길은 막혔지만 땅이 생겼으니 그에 맞게 열심히 연구하고 일했습니다. 그 덕분에 가장 어렵다는 자식 농사는 수월하게 된 것 같습니다.

김 박사 : 시대와 상황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모습처럼 보이던 아버지의 삶을 새롭게 보는 눈이 생겼습니다. 개인에게 주어진 역할에 있어서 최대한 적극적인 자세로 도전과 창조를 계속 해오신 아버지의 모습을 이제야 제대로 봅니다. 무엇보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오늘날 우리 젊은 사람들이 결코 따라갈 수 없을 겁니다. 아버지의 책임감과 성실함은 물론 도전과 창조의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의 제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평론가로서의 삶이 항상 새로운 관점을 유지해야 하는데, 고향 집에 내려올 때마다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어 좋습니다. 집안일을 거드는 것이라곤 집에서 기르는 토종닭에게 모이를 주는 정도라서 부모님께 큰 도움은 되지 못합니다. 그래도 부모님께서 반가워하시는 모습에 기분이 좋습니다.

-모종을 직접 재배한다고 들었는데
김 대표 :
어부로 살다가 농부로 갑자기 역할을 바꾸는 바람에 농사에 대한 지식도 없었지만 어떤 고정관념이나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농사의 원칙만을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봐왔더라면 수월한 점도 있었겠지만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거나 개발하는 데 주저했을 겁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재배기법을 연구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직접 배운 대로 육종을 직접 하면서 남들처럼 모종을 구입하는 일이 거의 없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고추모종 /사진=가현정 제공
고구마순 /사진=가현정 제공
-박사이자 교수인 아들이 고구마 장사에 나선 까닭은
김 박사 :
새로운 품종을 도입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으신 아버지는 정작 판로에는 어려움을 많이 겪곤 하십니다. 고구마의 당분 때문에 당뇨로 고생하는 분들은 고구마를 마음껏 먹지 못하는 현실을 위해 새롭게 나온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장에서는 낯선 품종에 대한 선호가 적어서 좋은 가격을 받기가 힘듭니다. 홍보력과 판매력은 열심히 농사만 지어서는 해결될 수 없는 분야입니다. 고구마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를 지인들과 나누는데 고구마를 구매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고, 내친김에 적극적으로 고구마 판매 공지를 하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고구마 판매를 공지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거의 다 팔렸습니다. 그동안 아들로서 아버지 농사일에 도움이 못돼서 죄송했는데 이제는 판매와 홍보라도 도와드려야겠습니다. 단순히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차원이 아니라 개인 농장의 직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도록 돕는 것이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단순한 보조금 지원 아닌 농산물 유통 개선이 필요하다
김 박사 :
현대 소비자들은 단순히 가격이 싼 농산물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로서의 농산물을 원합니다. 고향 집에서 키우는 토종닭 사진을 보더니 다들 부러워했습니다. 마침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때여서인지 시골집 마당에서 뛰노는 닭의 모습이 눈에 띄었나 봅니다. 건초더미를 던져 주면 맛있게 먹는 닭의 모습이 이제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힘들기만 하고 수익이 나지 않는 농사일이라고 천대받던 시대에서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헌법에 명시되는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농가의 소득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건비와 자재비용은 상승했지만 농산물 가격은 하락만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부분적인 보조금 지원에 그치지 말고, 농산물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유통 부분을 개선하는 정책을 실행해야 합니다. 신선도가 생명인 농산물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져야 합니다.

토종닭 /사진=가현정 제공
-후계농을 구하지 못한 90% 농가를 위한 대안은
김 대표 :
지금까지 어업과 농업으로 생계를 꾸려왔지만 자녀들에게 물려줄 생각은 없습니다. 아버지가 농사를 언제까지 지을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말고,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며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농사를 무조건 자식에게 물려주던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후계농을 구하는 일은 이제 개인의 일이 아닌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국가적 사업이 되었습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기 마련인데, 농가 소득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후계농이 되면 지원해주겠다는 정책은 실효성이 없습니다. 당장 주어지는 현금보다는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대안을 세워야 합니다. 
요즘 들어 귀농•귀촌 증가 등 마을 구성원의 연령 및 계층 변화로 농어촌 마을의 경제 활동의 새로운 자극요소가 되고 있어 긍정적입니다. 농사를 짓고 싶은 젊은 사람들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더욱 중점을 둬야 합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귀농•귀촌 정착 지원 및 농촌 후계 인력 양성, 농촌 삶의 질 및 정주 여건 개선 등 젊은 세대 유입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활용해야 합니다. 문화예술 공간과 교육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농촌마을에 현금만 지원해준다고 젊은 세대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농촌에서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인력이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마을을 기획해야 합니다. 마을 공동체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지금의 농촌 마을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지 못한 채 후계농 지원 정책만을 펼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농업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여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가현정 객원기자 gana0504@naver.com
imgo62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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