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유기농 30년의 뚝심 강소농, 참한농원 이현부·김종연 부부

친환경 유기농재배의 원조 참한농원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상철 팜라이터(farm writer)입력 : 2018.10.18 10:18
▲참한농원 이현부·김종연 부부/사진=홍상철 제공
30년간 친환경 유기농 재배를 고집하는 고집 센 농민이 있다. 누구는 선각자라고 하고 누구는 미련한 사람이라고 한다. 평가가 극과 극이다. 이렇듯 이중의 평가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친환경 유기농이라는 외길을 걷는 농민이 있다. 경북 예천군 개포면에서 ‘참한농원’을 운영하는 이현부(62) 김종연(58) 부부 이야기이다. 벼와 배, 매실을 주 작목으로 재배하면서 호두와 감, 모과 등을 조금씩 재배한다. 주로 생과와 배즙·양파즙·사과즙 등 1차 가공품을 생산·판매한다. 추석용 배 택배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참한농원의 김종연 대표를 만났다. 

-현재의 영농규모는
▶“현재 벼 1만9800㎡와 배 2만6000㎡, 매실 6600㎡를 재배한다. 이외에도 호두와 모과, 복숭아 등의 작물이 조금씩 있다. 연간 3억 원 정도의 조수익을 올리지만 일반 관행농업보다 인건비를 비롯한 경영비가 많이 들어가는 편이라 농업 순소득은 많이 낮아진다.”

-유기농을 시작한 지 30년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27년이다. 큰아이가 일곱 살이던 1991년 서울 생활을 접고 남편을 따라 이곳 예천으로 내려왔다. 귀농 첫해부터 남편이 친환경 유기농을 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그때 농사도 몰랐고 유기농도 몰랐다. 그냥 남편이 하는 일을 지켜보는 정도였다. 농업에 있어서 그 시기는 증산이 일차적인 목표이던 시절이었다.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개념도 정립되지 않은 시기라 주변으로부터 이상한 사람이란 취급도 받았고, 관련 기관에서 정보도 구하지 못했다. 먹거리를 자연에서 얻고 사람은 자연과 함께해야 한다는 남편의 철학 때문에 남들보다 먼저 뛰어든 셈이다.”

-왜 유기농을 고집하는가
▶“건강한 삶은 바로 건강한 먹거리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남편의 철학이었다. 고집이 아니라 소신이었다. 첫해 농사를 시작하면서 밭 주변에 쌓여 있는 농약병과 폐비닐 같은 각종 폐기물을 보고 많이 생각했다. ‘절대로 우리는 화학제품을 써서 농사를 짓지 말자. 수확이 적겠지만 정성들여 농사를 지으면 제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많이 달랐다. 재배와 판매까지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가장 힘든 것은 주변의 시선이었다. 서울까지 유학 보내서 공부를 시켰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농사를 짓겠다고 내려오니 부모님의 실망이 많이 컸고 반대도 심했다. 귀향한 아들을 서울에서 실패해 낙향한 것처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에 대하여 부모님이 많이 마음 아파하셨다. 특히, 장터에 나가면 친구들이 “자네 아들이 서울서 내려왔다면서, 왜?” 하고 묻는 말을 가장 아프게 느끼셨다. 다음으로는 기술도 교재도 없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일본의 무농약 재배 사례들을 많이 참고했다. 소득은 없어도 지출을 없앨 수 없으니 경제적인 어려움도 많았다. 어렵게 지은 농산물을 들고 공판장에 나가면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결국은 직거래로 방향을 전환했다. 귀향하면서 팔았던 서울의 아파트 한 채 값이 5년 만에 날아갔다. 그때는 앞으로 잘 살아 갈 것인가 하는 두려움도 있었으나 남편이 유기농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믿었다.”

-직거래시장 개척은 순조로웠나
▶“세상에 공짜도 없고 쉬운 일도 없었다. 아무리 친환경을 강조해도 믿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서울의 친구나 지인들을 중심으로 직접 판매를 시도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고객을 확보하는 과정을 거쳤다. 다행히 우리 집 과일을 먹어본 사람들의 소개를 통하여 판매가 많이 늘어났다.
2001년에 은인을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 서울에 있던 어느 지인이 우리 농장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 홈페이지를 통하여 남편이 시골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올렸다. 이것이 도시민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고 인터넷 판매를 시작했다. 다른 농가보다 빨리 시작한 덕분에 인터넷 판매가 큰 성과를 냈다. 인터넷 판매에는 남편의 감성적인 글들이 일등 공신이다.”

-부모님으로부터 인정은 받았나
▶“처음 우리 부부가 귀향했을 때 아버님이 많이 실망하셨다. 친환경을 한다면서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보다 아버님이 인정을 하지 않으셨다. 아들이 주변의 비웃음의 대상이라는 사실에 속상해하셨다. 10년 정도 지나 2000년에 들어서면서 친환경농업이 주목을 받고 정부시책으로 채택되면서 조금씩 인정을 하셨다. 참한농원의 친환경 유기농이 신문과 방송에 소개되고, 사례 발표와 친환경농산물품평회 대상을 받으면서 인정을 넘어 자랑거리가 되었다. 10여 년 만에 자식 자랑거리를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부모님의 얼굴이 얼마나 밝아졌는지 모른다. 우리 부부도 아버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 가장 기쁜 일이었다. 아버님은 9년 전에 별세하셨다.”
-친환경 유기농은 어떻게 짓는가
▶“통상적으로 우리는 친환경 하면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유기농은 재배기술상 병충해 방제가 가장 큰 과제다. 관행농업에서는 농약을 살포하면 바로 해결되지만 유기농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미생물이나 영양제 등을 활용한 발효액과 배양액을 만들어 식물을 건강하게 만들어 병충해를 이겨 내도록 하는 것이 큰 줄기이다.
즉 세균에 대해서는 면역력을 키워주고, 해충은 기피제를 뿌리는 방식으로 병충해를 이겨내는 것이다. 모든 작물들이 다수확 위주로 육종이 된 까닭에 체질적으로 약하고, 고유의 야생성을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우리 농장의 배나무도 20년이나 되었지만 수확량이 관행농업의 50% 수준이다. 처음 10여 년간은 거의 수확이 없다고 봐도 된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토양관리는 어떻게 하나
▶“토양관리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두고 꾸준하게 관리해야 한다. 땅도 작물도 적응해야 한다. 식물이 자라는 데 영양성분은 필수요소이다. 우리 농장에서는 두 가지 방법을 쓴다. 하나는 쌀겨(米糠·rice bran·벼에서 왕겨를 벗기고 난 다음 현미를 백미로 도정하는 공정에서 분리되는 고운 속겨)를 2년에 한 번씩 뿌린다. 유기농 퇴비는 구입해서 쓰지만 검증된 업체의 것을 구입해 농장에서 완전히 숙성시킨 이후에 뿌린다.”
▲참한농원 이현부·김종연 부부/사진=홍상철 제공
-친환경 인증을 많이 받았다
▶“우리 농장은 30년 전부터 친환경 유기농을 실천하다보니 다른 농가보다 앞서갔다고 할 수 있다. 현장에서는 당연히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지만 도시 소비자들에게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어 모든 작목에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쌀을 비롯해 배, 복숭아, 감, 매실, 호두 등 면적에 상관없이 모두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택배로 농산물을 배송할 때 해당 농산물별로 친환경인증서 사본을 넣어서 보낸다. 이것이 소비자 신뢰도 향상에 도움이 된다.”

-유기농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이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친환경 유기농이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걸 원한다. 그러나 친환경 유기농을 원하면서도 크고 모양이 좋은 것만을 요구한다. 친환경 유기농으로 생산하면 관행농업으로 생산한 농산물처럼 크고 좋은 것이 나오기 어렵다.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로는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숙제인 동시에 일종의 모순이다. 이런 이중의 잣대를 없애는 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주된 소비층은 
▶“대부분의 고객은 한 번쯤 건강에 이상을 느낀 분들과 건강과 깨끗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농장의 ‘유기농 배’ 같은 경우 80% 이상이 환자들이거나 그 가족들이다. 암 수술을 한 환자나 간질환이 있는 분, 당뇨병 증세가 있는 분들이 많다. 우리도 그분들의 절박한 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깨끗한 농산물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흔히들 ‘내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만든다’는 말을 실감한다.”

-일반농산물과 비교해 가격은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이라고 해서 많이 비싼 것은 아니다. 처음 유기농을 시작할 당시에는 비쌌으나 지금은 일반 농산물과 큰 차이가 없다. 우리 농장에서 생산한 유기농 배의 경우 7.5kg 한 상자에 5만 원을 받지만 일반 배는 이보다 낮고 변동이 심하다. 우리 농장의 경우 25년 전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 번도 올린 적이 없다. 농산물은 꼭 돈 액수만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쌀은 가업이다
▶“우리 집은 대대로 예천에서 벼농사를 지어왔다. 벼농사가 우리 집안을 이끌어 나가던 기본이었다. 그래서 다른 작목에 비하여 소득이 떨어지지만 버릴 수 없다. 어쩌면 쌀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켜 나가야하고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지켜야 할 농사이다. 모든 논에 우렁이 농법으로 벼를 재배한다. 모내기를 하고 우렁이종패를 뿌리면 우렁이가 잡초를 갉아먹어 제초제를 치지 않아도 되는 농법이다. 1년에 우렁이 종패값으로 60만 원 정도 들어간다.”

-종부(宗婦)라고 들었다
▶“이곳 종산골은 가평이씨 집성촌이고 나는 종부이다.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친인척이다. 모두 27년 전 귀농할 때 내가 마을에서 가장 젊다보니 마을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처음에 농촌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건강이 많이 나빠졌으나 마음을 바꾸고 나서 회복되었다. 농사에 대한 기술도 인식도 없었다. 그럴수록 농사일에 전념했다. 농업의 가치를 발견하고 적응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종갓집이라 1년에 제사를 12번 모셨다. 집안은 늘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지금은 조금 줄였다.”

-농촌생활에 만족하는가
▶“물론 예전에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자연과 농사공부는 끝이 없다. 계속 공부를 한다. 특히 남편이 좋아한다. 우리 남편은 ‘자유인’이라 농사일과 공부밖에 모른다. 지금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농사일을 하면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그때 자랑스러운 아들이라고 흐뭇해하시던 아버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하루 달라지는 자연의 변화에 가슴이 설렌다. 간혹 도시 친구들을 만나면 모두가 돈 이야기만 한다. 나와는 상관없는 딴 세상에 사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유기농 원조가 생각하는 유기농정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관심도 많고 발전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 유기농에 도전하지만 3~4년을 넘기는 농가는 드물다. 의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두 가지 정책을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 먼저 유기농 농산물이 적정한 가격으로 평가 받을 수 있도록 일반 농산물과 구분하는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 경매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일반농산물과 함께 하는 현재의 경매제도로는 유기농이 발전할 수 없다. 다음으로는 학교급식에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의무적으로 구매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일부 자치단체에서 조례로 제정해 지원하고 있지만 많이 부족하다. 이 두 가지만 마련되면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 생산이 활성화될 것으로 본다.”

-앞으로 계획은
▶“지금처럼 큰 변화 없이 정직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가장 큰 꿈이다. 5년 전부터 배즙과 사과즙, 호박즙, 양파즙, 복숭아즙 등 일차 가공품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먼저 우리 농장의 농산물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이웃농가의 농산물을 구입해서 사용한다.
그러나 인력과 시간, 시설이 부족해 이웃농가의 희망 물량을 전량 처리하지 못한다. 시설을 좀 더 보강해 이웃농가의 물량을 구매해 생산을 확대하고 이것이 지역 농산물의 소비 확대로 이어지게 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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