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보는 세상]제주 4.3, ‘사건’ 떼고 바른 이름 찾을 때

‘희생자·유족 보상금 기준’ 특별법 개정 이어 정명 목소리 높아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입력 : 2021.12.06 10:41

제주 4·3 73주년 추념일을 하루 앞둔 4월 2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지석에 희생 유족들이 찾아와 참배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제주 4.3사건 희생자에 대한 국가차원의 보상 기준을 규정한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 11월 23일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최종 개정안은 제주 4.3사건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금 기준을 마련하고 청구권자의 범위와 순위, 신청기간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개정안 심의 과정에서 법률안의 핵심인 배·보상 금액과 위자료를 대신할 용어 등에 대해 여야 간 논의가 이어졌지만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보상 청구권자의 범위와 순위를 포함한 주요 사항이 대부분 반영됐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사진=뉴시스

오 의원은 “금번 법률개정을 통하여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모든 분들이 해원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하며, 정부의 입장을 수용해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내신 오임종 제주 4.3유족회 회장님을 비롯한 제주 4.3희생자유족의 위대한 결단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 법안심사소위 통과에는 제주도의 노력도 있었다. 구만섭 제주도지사 권한대행은 지난달 22, 23일 양일에 걸쳐 제주도의회 및 4.3유족들과 함께 국회를 방문해 박재호 행안위 법안1소위 위원장 등 행안위 소위원회 소속 위원들을 만나 4.3특별법 개정안 통과에 여야의 초당적 협력을 호소했다.

4.3특별법은 향후 행안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등을 거쳐 정기국회 본회의 표결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제주 4.3사건은 무엇인가?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 동안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7년 3월 1일, 제주 북국민학교에서는 제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가 열렸다. 이날 기념식을 마친 군중들은 가두 시위에 돌입했는데, 관덕정 부근에서 시위대를 구경하던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이 탄 말에 차여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때 기마경찰이 아이를 두고 그대로 지나가자 일부 군중들이 돌멩이를 던지며 항의했고, 관덕정 부근에 포진하고 있던 무장경찰은 군중에게 총을 발포해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3.1사건에 항의해 3월 10일부터 제주도민들은 민관 합동 총파업을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지목하면서 본토에서 응원경찰이 대거 파견됐고, 극우청년단체인 서북청년회 단원들은 제주에 들어와 경찰, 행정기관, 교육기관 등을 장악했다.

그들은 제주도 인구의 70%가 좌파단체의 동조자이거나 좌파분자의 거점이라고 제주도민들을 좌파로 몰아가며, ‘빨갱이 사냥’을 한다는 구실로 테러를 일삼으며 민심을 자극했다.

제주 4·3 71주년을 하루 앞둔 2019년 4월 2일 오후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원들이 제주시 화북1동 곤을동 마을터를 둘러보고 있다. 곤을동 마을은 4·3 당시 초토화돼 터만 남은 마을이다./사진=뉴시스

1947년 11월 14일 UN총회는 한반도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미국 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소련의 거부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1948년 2월 미군정은 선거 감시가 가능한 지역인 남한에서만 단독 선거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한반도가 영구적으로 남과 북으로 갈라질 것을 우려한 좌파 진영과 우파 일부, 중도파까지 격렬하게 반발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를 전후해 제주도 350명의 무장대는 도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공격했다.

무장대는 경찰과 우익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 남한 단독선거 및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조국의 통일 독립, 반미 구국투쟁을 봉기의 기치로 내세웠다.

미군정은 4월 5일 전남 경찰 약 100명을 응원대로 제주에 급파하고 제주도 도령을 공포해 제주의 해상교통을 차단하고 미군 함정을 동원해 해안을 봉쇄했다.

1954년 9월 21일까지 계속된 제주도에서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3만 명이 넘는 제주도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 4.3사건 특별법’ 변천사


1980년대 민간에서 시작된 4.3진상규명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본격 조명되기 시작했다.

이 법안은 제주 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으로써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정됐다.

법안 통과 이후 국무총리 소속으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구성됐고, 제주도에 ‘실무위원회’가 출범해 본격적인 진상조사와 희생자 선정 작업이 진행됐다.

4.3특별법은 현재까지 총 5번에 걸쳐 부분적 개정이 이뤄졌고, 지난 2월 처음으로 전부개정이 이뤄졌다.

제주 4·3사건 희생자에게 국가가 보상금을 지급할 근거를 마련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있다. 재석 229인 중 찬성 199인, 반대 5인, 기권 25으로 여야 의원들의 투표 결과가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 표시돼 있다./사진=공동취재단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은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위자료 지급 △추가 진상조사 △불법 군사재판 4.3수형인에 대한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재심 추진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특히 4.3사건 당시 영문도 모른 채 군·경에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4.3수형인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일괄적 재심 근거가 마련된 점이 획기적 개정으로 평가됐다.

지난달 법안소위를 통과한 일부개정안은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의 후속으로, 당시 4.3 희생자의 위자료 지원 근거를 담았지만 보상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이 포함되지 않았어서 행안부의 연구용역을 통해 보완 입법했다. 법안심사소위는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안과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 발의안을 병합심사한 뒤 일부 조문을 수정해 통과시켰다.

일부개정안에 따르면 행안부가 용역을 통해 마련한 보상금 지급 기준안에 따라 희생자 1인당 9000만원을 균등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보상금은 제주 4.3사건으로 입은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지급되는 일시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후유장애나 수형인은 장해 정도나 구금일수 등을 고려해 9000만원 이하 범위에서 지급되도록 하고, 유족 보상청구권 대상에 희생자 제사를 지내거나 무덤을 관리하는 5촌도 인정했다.

또한, 희생자가 죽거나 행방불명된 이후 신고된 혼인관계의 효력을 인정하기 위한 혼인신고 특례를 신설했으며, 보상 업무의 효율적인 처리를 위해 4.3명예회복위원회에 보상심의 분과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4.3특별법 개정안이 행안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되면 내년부터 5년간 희생자에게 보상금이 지급된다.



4.3사건이 국가추념일이 되기까지


4.3사건에 대해 대통령으로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공식 사과했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0월 31일 라마다플라자호텔 제주에서 열린 제주도민과의 대화에서 정부차원의 첫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저는 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2014년 1월 17일 박근혜 정부에서는 제주 4.3을 66년 만에 국가추념일로 지정했다. 추념일 지정은 2013년 여야가 국회에서 제주 4.3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대의견으로 ‘추념일 지정’을 제시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국가추념일 지정으로 인해 당해 제66기 제주 4.3사건 희생자위령제는 처음으로 국가 주관 행사로 봉행됐다.

2018년 4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 4.3사건 발발 70주년을 맞아 추념식에 참석해 노 전 대통령의 공식 사과에 이어 제주도민들에게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거듭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 사업, 유해발굴사업 등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4월 3일 오전 제주 4·3 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제73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을 마친후 4·3 사건 당시 부모와 오빠를 잃은 손민규 어르신을 위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4.3사건, 남은 과제는…


한때 광주 사태라고 불렸던 5.18은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마찬가지로 제주 4.3은 아직 공식적인 이름이 없어 정명(正名)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전문가들은 4.3사건 희생자뿐만 아니라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활동을 하다가 고초를 겪거나 4.3으로 인해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피해 회복 조치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기영 소설가의 경우 1978년 <순이삼촌>이라는 소설을 통해 제주 4.3을 세상에 알렸지만, 그로 인해 1년 뒤 군 수사기관에 끌려가 사흘 동안 모진 고문을 받고 금서조치를 당했다.

3월 16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형사2부(부장판사 장찬수) 심리로 제주 4·3 당시 군법회의에 회부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행방불명 희생자 유족이 신청한 재심 사건 선고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재판부는 72년 전 군법회의의 불법성을 인정, 청구인 측 모두에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가 선고되자 청구인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제주도사진기자회

한편, 오영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는 제주 4.3 관련 6개 사업의 내년도 예산 49억6000만원이 증액·의결됐다.

이날 의결된 6개 사업의 예산은 △4.3특별법 후속조치사업(기존 19억원) 18억6000만원 증액 △4.3사건 가족관계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신규) 1억원 △제주 4.3평화재단 추가 진상조사 사업(기존 6억원) 5억원 증액 △제주 4.3평화공원 활성화 사업(신규) 11억원 △4.3트라우마 회복 지표 개발 연구(신규) 2억원 △전국단위 위령시설 조성사업(기존 7억원) 12억원 증액 등이다.

오 의원은 “73년간 아픔과 고통 속에서 살아온 희생자와 유족분들에게 국가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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