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싸움’ 번진 양곡 관리법 개정안

[법으로 보는 세상] 여야 이어 농민단체도 찬반 갈등,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주목

머니투데이 더리더 이하정 기자 입력 : 2023.02.02 09:32
▲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가 1월 18일 서울 서초구 aT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곡관리법 개정 반대, 푸드테크로 대기업 농업진출 개방 등을 이유로 농림축산식품부를 규탄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해 12월 26일 국회 앞에서 6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한종협)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양곡관리법 개정을 재고하라는 요구였다. 이학구 한종협 회장은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타 작물 전환 유도가 쉽지 않고 판로에 대한 부담이 사라져 쌀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는 정책 실패를 넘어 쌀 가격 하락에 따른 농가경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법률 개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양계협회, 한국육계협회, 한국토종닭협회, 한국육용종계부화협회, 한국오리협회 등 5개 가금단체도 1월 6일 공동성명서를 통해 “양곡관리법이 개정되면 가금 포함 축산 등 타 품목의 공익적 가치 훼손과 축산 부문 예산 지원 축소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며 역시 법 개정의 재고를 요청했다.

후계농 시군대표자들은 지난해 12월 3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회가 농해수위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당연한 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절대 다수의 농업인들은 조속한 양곡관리법 개정을 촉구한다”고도 전했다.

▲ 후계농 시군대표자들이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곡관리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가톨릭농민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쌀생산자협회,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전국마늘생산자협회, 전국사과생산자협회 등 농민단체는 1월 18일 서울 서초구 aT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곡관리법 개정을 반대하는 정부를 규탄했다. 이근혁 전농 정책위원장은 “기존 제도만 가지고는 실제로 쌀 가격이 생산비를 보장할 수 없다”며 “농민들은 자동시장격리형태와 생산비가 보장되는 쌀 최저가격제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민단체 간에도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 양곡관리법 개정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입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꼼수”-“몽니” 양곡법 개정 대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된 건 2021년 12월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삼석(영암·무안·신안) 의원이 개정안을 처음 발의했다. 이후 2022년 9월까지 유사 법안이 총 7건 발의됐다.

▲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 상정과 관련해 소병훈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사진=뉴시스

2022년 9월 1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민주당은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10월 19일 농해수위에서는 개정안이 의결돼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그러나 개정안은 법사위에서 60일 넘게 심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법안은 다시 농해수위로 돌아갔다. 그러자 민주당은 12월 28일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본회의 부의 요구권을 단독으로 의결했다. 국회법 조항을 활용, 법사위를 우회해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것. 국회법 86조는 법사위가 이유 없이 법안이 회부된 날부터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소관 상임위원장이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30일 이내에 여야가 법안에 대해 합의해야 하고,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30일 이후 처음 열리는 본회의에서 법안 상정 여부를 묻는 무기명 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 국회에서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양곡관리법 개정은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시 변수가 생겼다. 국민의힘 소속의 김도읍 법사위원장이 1월 16일 개정안을 법사위에 직권 상정한 것이다. 김도읍 위원장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법안심사 2소위원회에 직권 회부했다. “다수당의 꼼수”, “여당의 몽니”라며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팽팽하다.

▲ 전북지역 농민단체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 10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앞 도로에서 ‘쌀값보장! 농민생존권 쟁취! 전북농민대회’를 열고 나락을 적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민주당 “전 세계적 식량 위기…쌀 산업 지속가능해야”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으로 쌀값이 안정화되는 것은 물론 농가소득도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 상황에서 국내 쌀 산업의 지속가능성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양곡관리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기존 양곡관리법은 생산조정이 미흡해 수요에 비해 과잉 공급이 반복됐고, 재량적인 시장격리로 쌀값 폭락을 야기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개정되는 양곡관리법은 국가가 생산 조정을 통해 구조적 공급과잉을 막고 과잉생산 시 시장에서 격리하도록 해 쌀값 정상화를 가능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또, “농민들 소득 안정화는 물론, 식량안보에도 기여해 농민들과 국익에 모두 도움이 되는 법”이라고 강조한다.

정부여당이 양곡관리법 개정에 난색을 표하는 데 대해 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장인 이원택(김제부안)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정치탄압, 언론탄압, 노동탄압에 이어 농업·농촌·농민 탄압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며 “양곡관리법 개정에 동참하라”고 강력 촉구했다. 이 의원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내용은 쌀이 3% 이상 초과 생산되거나 쌀가격이 평년 가격보다 5% 이상 하락한 경우만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을 정부가 매입해 쌀값을 안정적으로 유지하자는 것으로, 무조건 정부가 매입하는 것도 아니고 무제한 수매하는 것도 아닌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고 날을 세웠다.

쌀 공급과잉 문제에 대해서는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을 통해 해소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정부가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한 전략작물 직불 예산은 고작 720억원에 불과했고, 민주당이 국회 농해수위 예산안 예비심사를 통해 논 타작물 재배 지원 사업 754억원과 전략작물직불 227억원 등 정부안보다 최소 981억원을 증액해야 쌀값 정상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고 주장했음에도 정부 반대로 전략작물직불 예산은 401억 증액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안 해도 되는 쌀 시장격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민주당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라고 비판했다.

▲ 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1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야당의원들이 퇴장한 채로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양곡관리법의 법사위 법안심사 제2소위 회부에 반발해 퇴장했다./사진=뉴시스

▲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볍률안’ 본회의 부의 요구 의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여당 “쌀 공급과잉 심화…타 작물과 형평성 문제도”

그러나 정부·여당은 정부가 의무적으로 쌀을 수매하게 되면 쌀 공급과잉 구조가 고착화되고 재정부담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국민의힘은 “쌀 공급과잉 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쌀값은 계속 하락할 것이다. 쌀 시장격리 의무화는 농업인이 쌀 생산을 유지할 강력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며 “재정부담 규모도 연평균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의무 수매에 농업예산이 함몰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식량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쌀은 이미 충분히 자급 중”이라며 “오히려 다른 품목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져 갈등만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최춘식(경기 포천·가평) 의원은 민주당이 제출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별개의 ‘정부재량 양곡관리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재량 양곡관리법’은 정부의 ‘쌀 가격 안정을 위한 매입’을 ‘법률적 재량행위’로 명확히 정하는 동시에 해당 매입 기준을 법률상 명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민주당이 제출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서 ‘쌀 과잉 생산으로 인한 초과생산량이 전체 생산량의 3% 이상이 돼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하게 되는 경우’와 ‘쌀 가격이 전년보다 5% 이상 하락한 경우’를 정부가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상황에서 제외시킨 내용이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도 수차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쌀 공급과잉 문제와 재정 부담은 심화되고 쌀값은 오히려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다. 정 장관의 주장은 농식품부 산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근거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해 개정안 시행 시 쌀 초과 공급량은 지금의 20만 톤 수준에서 2030년 60만 톤 이상으로 늘고, 쌀값은 80㎏당 17만원대 초반으로 지금보다 8% 정도 하락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정 장관은 이를 언급하며 “농경연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2030년 쌀 수매에 1조5000억원 정도가 들 것으로 봤다”며 “청년 농업인과 스마트팜 육성, 유통시설 스마트화 등 미래 농업을 위한 수요가 많은데 이런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농식품부는 양곡관리법 개정이 식량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격리 의무화가 시행되면 쌀 생산량이 늘어 밀·콩 재배율이 정체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 농식품부는 밀 1.1%, 콩 2% 수준이던 자급률을 2027년까지 각각 7.9%, 40%까지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시장격리 의무화가 시행되면 2027년 밀은 4.0%, 콩은 26.4%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했다.

◇‘거부권 1호’ 법안 되나

▲ 윤석열 대통령이 1월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도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1월 4일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합동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 “지금 생산되는 쌀을 시장에서 어느 정도 소화하느냐와 관계없이 무조건 정부가 매입해주는 식의 양곡관리법은 농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어느 정도 시장 기능에 의한 자율적 수급 조절이 이뤄지고, 우리 농민에게 생산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주고 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가 일정 부분 관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설명이다.

국민의힘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법사위에 계류시켰지만, ‘여소야대’인 현재 국회 상황을 볼 때 법안이 법무부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곧바로 상정될 가능성은 있다. 여당은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될 경우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요청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대통령 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권한이다. 다수당 횡포 등으로 국회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경우 행정부가 이를 견제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장치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해당 법률안은 국회에서 재의결을 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처리할 수 있다. 재의결로 가면 국민의힘은 의석수로 의결을 막을 수 있다.

◇쌀 적정 생산 대책 2월 발표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당초 1월 중 쌀 적정생산 대책을 발표하려다 이를 한 달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는 쌀 적정생산 대책으로 논콩 등 타 작물을 재배하도록 ‘전략작물직불제’에 따른 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발표하기로 하고, 출입기자단에 보도자료도 배포했다가 발표를 미룬 것으로 파악됐다. 농식품부는 1월 9일 충남을 시작으로 10일 전북, 11일 전남, 12일 경북, 13일 경기, 16일 경남, 17일 강원, 18일 충북에서 시도별 설명회를 가졌다. 대책 발표를 미룬 건 양곡관리법 개정 협상을 고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가 설정한 쌀 적정생산 목표는 양곡관리법이 개정되면 재정 부담을 고려해 크게 바뀔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대책 발표에 앞서 야당과 농민들을 설득하는 데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j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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