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먹통으로 다시 빛 보는 ‘온플법’

[법으로 보는 세상] 온라인 플랫폼 ‘갑질’ 제동, 정부 자율규제에 야당 입법화 온힘

머니투데이 더리더 이하정 기자 입력 : 2022.11.02 09:39
10월 15일 SK C&C 분당 데이터센터에 화재가 발생했다. 이곳에서 가동되던 카카오 3만2000여 개 서버도 가동이 중단됐다. 카카오톡이 멈췄다. 뱅크도, 페이도 멈췄다. 소상공인, 택시기사들은 업무에 차질이 생겼고, 예약 지연, 물건 주문, 배송 오류 등의 피해를 겪었다. 카카오 계열사 주요 기능의 불통은 며칠 동안 이어졌다. 화재 발생 5일 후인 19일이 돼서야 주요 서비스가 정상화됐다.

카카오 화재로 다시 관심이 쏠린 곳, 국회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인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카카오, 네이버, 쿠팡, 배달의민족 등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입점 업체를 상대로 하는 이른바 ‘갑질’을 규제하는 법안이다. 온플법은 지난 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공정위는 ‘자율규제’로 기조를 전환했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도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이번 카카오 ‘먹통’ 사태로 빅테크의 독과점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며 온플법 논의 재개 여부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를 위한 전국네트워크가 6월 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추진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플랫폼 갑질 방지’ 온플법…법안 8건 국회 계류 중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은 검색 알고리즘 조작이나 과도한 수수료 부과 등 플랫폼 입점 업체에 대한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막는 법이다.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 업체 간 표준계약서 교부를 의무화하고, 입점 업체에 대한 구매 강제와 경영 간섭 등을 규제하는 내용으로, 플랫폼의 이른바 ‘갑질’을 방지하겠다는 것.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공정거래위원회 주관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에 대한 법률안’이 8건 제출돼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월 제정안을 제출했다. 정무위에 계류 중인 법안들은 대개 거래액 1조원 매출 또는 매출 1000억원 이상인 18개 국내외 플랫폼 사업자를 규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 네이버쇼핑,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카카오모빌리티, 구글플레이, 애플 앱스토어, 원스토어, 쿠팡, 배달의 민족, 요기요 등이 대상 사업자다. 이와 별도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는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돼 있다.

법안들이 국회에 제출될 당시 공정위와 방송통신위원회는 규제 관할권을 두고 기싸움을 벌였다. 이에 여야는 양측 안을 각각 손질해 지난해 중 처리하기로 했지만 불발됐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 12월 중 두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었지만, 야당인 국민의힘이 제동을 건 것. 이후 대선 정국이 시작됐고, 플랫폼 업계를 중심으로 규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10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 자율규제 우선 기조…8월 ‘민간자율기구’ 출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온플법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규제를 최소화하자는 새 정부의 기조에 따라 ‘온플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던 공정위가 민간자율규제로 돌아섰다. 지난 8월 19일 플랫폼 민간자율기구가 출범했다. 민간자율기구는 △갑을 △소비자.이용자 △데이터.인공지능(AI) △ESG(환경.사회적책무.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4개 분과로 나뉘었다.

갑을, 소비자·이용자 분과는 오픈마켓과 배달앱 등 업종별로 기업, 입점업체·소비자·종사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회의체를 구성해 자율 규제 방안을 논의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전반적인 종사자·입점업체·소비자 보호 이슈를 다룰 필요성도 제기돼 관련 협회·단체, 기업 등이 주기적으로 모여 현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데이터·AI 분과는 데이터·AI의 투명성·신뢰성 확보, 개인정보 보호 등과 관련해 정부·기업·전문가 등이 협업해 세부적인 자율 규제 방안을 도출해나가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ESG 분과는 정부·기업·전문가 등이 협업해 플랫폼이 사회가치 창출에 기여하고, 자율적으로 거버넌스를 개선해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공정위는 자율 규제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9월 취임 후 첫 행보로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배달앱 3사 대표를 만났다. 한 위원장은 “자율 규제가 플랫폼의 혁신 성장을 유지하면서 거래 당사자 간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달 국정감사장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의 이 같은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국회 정무위 소속 소병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배달앱 수수료 문제는 자율규제보다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한 위원장은 “수수료와 중개료를 법으로 직접 규율하는 것을 최후 수단”이라며 “적정한 기준과 수준에 대한 합의가 자율기구에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다만, 온플법에 대해서는 “국회 통과를 반대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위원장이 바뀌었지만, 온플법은 당초 공정위에서 제출한 법안이었던 만큼 공정위의 입지는 애매할 수밖에 없다.

▲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이 10월 2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카카오 불통 사태로 본 플랫폼의 독점 문제 긴급 좌담회’에 참석해 피해 사례 발표와 구조 진단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중소상공인 피해 막아야” vs.“중복규제가 혁신 막아”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52.3%는 플랫폼에 입점하지 않고는 영업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입점 중소상공인의 20.7%는 최근 3년간 과도한 수수료와 광고비 책정, 일방적인 정산과 책임 전가 등의 불공정 거래를 경험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최근 국민의힘 지도부와 만나 온플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온라인 플랫폼의 독점에 따른 불공정 거래를 해소해야 한다”며 “플랫폼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거래상 협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지난달 말에는 중기중앙회와 소상공인연합회, 대한숙박업중앙회, 한국외식업중앙회, 전국가맹점주협의회, 한국대리운전총연합회 등이 기자회견을 갖고 “온플법 처리가 늦어질수록 중소상공인 피해는 누적된다”며 법안 처리를 주문했다.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시민단체들도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를 위한 전국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정부가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제재하지 않고 자율에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방관”이라며 온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플랫폼 업계는 지속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온플법이 플랫폼 업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데다 중복 규제라는 입장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한국핀테크산업협회 등이 모인 협의체인 디지털경제연합은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일각에서는 규제 공백으로 플랫폼법이 필요하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은 공정거래법, 약관규제법, 전자상거래법, 대규모유통업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오프라인 시장보다 더 많은 규제로 상시 관리·감독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 불황의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새로운 규제가 등장하면 업계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가 10월 11일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앞에서 배달 노동자대회를 마치고 기본료 인상, 지방 차별 폐지 등을 촉구하며 오토바이 행진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野, 온플법 처리 총력…與, 신중


카카오 먹통 사태 후 민주당은 온플법 불씨를 살려가고 있다. 민주당은 올해 정기국회 22대 민생입법과제 중 하나로 온플법 처리를 선정한 바 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카카오 사태 이후 “정부를 설득해 온플법을 연내 처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조승래 의원은 “이번 사건이 벌어지면서 정부·여당도 온라인 플랫폼 자율 규제에서 플랫폼 폐해를 막아야 한다는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며 “여야가 논의를 활성화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온플법 논의에 적극 나설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은 카카오 사태 후 10월 19일 열린 당정협의회 이후 “온라인 플랫폼에 기반을 둔 기업들이 문어발식 확장만 하다가 소비자 보호에 소홀히 한 것이 문제”라며 “소비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규제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입장이다. 양금희 수석대변인도 “독과점 피해 등을 들여다볼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민간의 경제 영역을 해치거나 일종의 규제를 다시 만드는 것은 안 된다”고 밝혔다. 다만, 카카오 먹통 사태 이후 대형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민주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입법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관측이다.

▲ 온라인플랫폼공정화네트워크 등 플랫폼 노동 관계자들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 제정 및 플랫폼 노동자 권리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유럽에선 플랫폼 독과점까지 규제


유럽에서는 대형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에서 나아가 독과점 문제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지난 7월 대형 온라인 플랫폼의 독과점을 제한하기 위한 ‘디지털시장법(DMA)’이 유럽의회를 통과했다. 중개 서비스나 검색 엔진, SNS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대규모 플랫폼 기업이 자사 서비스를 타사 서비스보다 우위에 두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애플이 아이폰에서 애플 앱스토어만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나 구글이 안드로이드폰에 사전 설치된 앱을 삭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또, 플랫폼을 사용하는 업체가 제공했거나 이들의 활동을 통해 얻는 데이터를 플랫폼이 활용하는 것도 금지된다. 규제 대상은 이용자 수를 중심으로 한다. 그동안 시장점유율 기준에서 감시 대상 기업을 정한 것과 달리 온라인 플랫폼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유럽연합은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10~15개 기업이 규제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안은 내년 4월부터 시행 예정이다.

터키에서도 7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과도한 할인과 마케팅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을 막기 위해 광고와 마케팅 비용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플랫폼이 자체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도 제한된다. 판매자와 소비자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플랫폼이 중개자에 판매자 역할까지 동시에 하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내용이다.

스페인에서는 지난해 5월 ‘라이더법’이 통과됐다. 배달 라이더를 프리랜서가 아닌 고용 노동자로 인정하고 배달 콜 배치와 라이더 평가 방식 등 근로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을 라이더들에게 알리도록 의무화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일본에서는 플랫폼과 입점 업체들의 거래·계약 조건 등의 정보 제공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디지털 플랫폼 거래 투명화법이 2020년 통과된 바 있다.

구글, 애플 등 빅테크 기업의 본산지인 미국도 최근 들어 플랫폼의 반독점을 위한 입법 노력이 시작됐다. 지난해 6월 미 하원에서는 ‘플랫폼 반독점 패키지 5대 법안’이 발의됐다. 규제 대상 플랫폼이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할 때 해당 인수 거래가 경쟁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하도록 했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잠재적 경쟁자를 선제적으로 인수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해온 것을 겨냥한 것이다. 자사 서비스나 제품 우대도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데이터 상호운용성, 이동성 보장 의무 등도 법안에 담겼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j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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