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여성시대- 김해숙 국립국악원장]“국악의 ‘렛잇고’ 기대하세요”

[10월호]세계가 공감하고 누구나 따라 부르는 전통음악 만들고 싶어

편승민 기자입력 : 2014.10.01 09:00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국악은 겨레의 얼’이라는 교정 현판의 글귀를 마음속에 품고 국악과 연을 맺게 된지 40년. 가야금 연주자 출신의 김해숙 국립국악원장은 국립국악원이라는 한국 전통음악의 대표기관의 수장으로 새로운 해를 보내고 있다.
우리 고유의 국악으로 겨울왕국의 OST ‘Let it go’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김 원장. 국립국악원장으로서 그의 행보와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63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국립국악원장에 임명된 지 벌써 반년이다. 그간의 소회와 근황에 대해 듣고 싶다.
개인적으로 여성원장이란 타이틀보다는 ‘연주자 출신 원장’이란 부분에 더 비중을 두고 싶다. 국립국악원 일의 90% 이상이 공연관련 업무이기 때문에 공연무대에 대해서 잘 알고 이해하는 연주자가 기관을 대표하게 된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7월에는 국립국악원장 자격으로 독일의 루돌슈타트 음악축제에서 국악무대를 벌였다. 우리의 음악을 제대로 된 좋은 무대에 올리고 왔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올 하반기에는 전주 소리축제에서 산조 전바탕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45분간의 무대를 꾸미게 될 텐데 이를 위해 행정업무 외에도 연주자로서 연주훈련과 체력관리를 꾸준히 할 계획이다.

▲가야금을 처음 접하고 40년을 국악과 함께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국악을 접하게 된 계기와 국악인의 길을 걷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꼭 국악을 하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무렵 두 살 위 언니가 거문고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어렸을 때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하다 보니 가르치는 대로 흡수하고 자연스럽게 국악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교정에 ‘국악은 겨레의 얼’이라는 현판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자라며 국악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우리 겨레를 생각하게 하는 매개체라고 느꼈다. 국악을 훈련하며 절로 우리 민족의 혼을 생각했던 것 같다.

▲최근 국악과 국악인이 광고, TV프로그램 등을 통해 대중에게 전보다 더 다가간 모습이다. 국악원장으로서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예전보다는 국악의 폭이 더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은 대중화됐다고 보기 어려울 듯하다. 국악이 지금보다도 더 우리의 생활 속에, 교육 속에 파고들고 매스컴에도 더 많이 노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80년대에는 사극을 하면 국악을 배경음악으로 활용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1988년 서울올림픽 때도 전통음악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는 점이 아쉽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복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좋은 전통은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컨대 유교사상도 노인에 대한 공경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 감정에 대한 절제와 같은 좋은 점이 많지 않은가. 그런 것들이 교육이나 사회에서 많이 사라진 것 같다. 경제적으로는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오히려 감정적인 면에서는 황폐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의 전통음악이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이 아직 많을 거라 생각한다. 단순한 대중화보다는 생활 속에 스미듯이 침투해 마음을 잡아주는 음악이 돼야 할 것이다. 추석 때 K-POP과 국악에 관한 특집 프로그램을 봤다. 프로그램을 보며 이렇게 명절에만 접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라 사극이나, 한류 드라마에 조그마한 소재라도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면 잘 활용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더 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국악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느낀다.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일반대중들이 최근 몇 년간 국악과 가까워진 계기를 본다면 해외 콘텐츠와의 합작이 많았다. 비보잉과 국악의 만남, 국악과 재즈의 만남 등이 그 예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어쨌든 해외 콘텐츠와 만나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다른 음악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주체적 수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 민족의 악기가 주가 되면서 우리 악기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문화의 악기가 채워주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서양문화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주체적 수용을 하려면 우리나라의 작곡가들이 우리의 정서를 담아서 작품을 쓰고 우리다운 연주스타일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음악의 스펙트럼이 지금보다 더 넓어져야 할 것 같다. 예컨대 마구잡이 식의 대중화가 아닌 방향성을 잘 잡은 퓨전의 형태가 나와야 한다. 서양음악에 클래식, 세미클래식, 팝 등 다양한 장르가 있는 것처럼 우리 국악도 정통으로 가야 할 것은 정통을 유지하고, 대중적인 요소와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은 주체적으로 퓨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국립국악원에서 국악연주와 플라멩코 합동공연이 있었는데 우리 음악의 중모리·중중모리와 플라멩코의 기막힌 조화를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장단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리듬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조화로운 요소들을 잘 찾는다면 얼마든지 서양문화와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악원장으로서 올해 새롭게 시도하는 부분이 있다면 짤막하게 소개해달라.
상반기에 진행된 공연의 90%가 작년에 이미 결정된 작품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보다는 공연의 질 자체를 높이는 데 집중하며, 서울에 있는 4개의 예술단 감독들과 호흡을 맞추고자 노력했다. 아울러 국악원 내에 있는 연구실이 공연과 연주를 보강해주는 동시에 정책적으로도 뒷받침할 수 있는 기관이 되도록 힘썼다. 이처럼 상반기에는 공연물로 성과가 내기보다는 행정적인 보강에 집중했다.
나는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 창작악단 연주자들이 연주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작곡하면서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계속 만들고 생산해내야 그것이 미래에 또 다른 전통이 된다고 보는데, 국악계는 그런 부분에는 아직 취약하다. 최근 창작악단 연주자들이 직접 작곡한 곡을 무대에 올리는 공연을 했는데 아주 성공적인 첫발을 디뎠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노력은 한번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올 가을에는 작곡과 관련한 학술회의도 가질 생각이다.
연초에 국립국악원의 대표공연을 개발해 연말 무대를 갖겠다고 했다. 오는 11월 ‘공무도하’극을 할 예정으로 막바지 준비 중이다. 예술작품을 하나 만드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데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국악 쪽에서도 ‘Let it go’처럼 남녀노소를 사로잡을 수 있는 곡을 탄생시켜 관객의 입에 맴돌게 하고 싶다. 전통적인 예술과 현대의 것이 어우러져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요즘 우리 문화가 서구화되면서 사람의 입맛도 서구화되고 '귀맛'도 바뀌어 전통음악만으로 승부를 보기 어렵다고 일전에 밝힌바 있다. 국악만이 가진 핵심 콘텐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바뀌어버린 ‘귀맛’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동쪽 끝에 치우쳐서 과거 모든 문물이 바다와 대륙을 통해 주머니처럼 품어지는 형태에 있었다.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지정학적 특성에 기인해 아주 관대하고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최근 한류바람이 불면서 이제 조금 한국적인 것, 우리의 것에 관심이 생기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부족하다.
지난 7월 유럽에서 우리 전통음악을 아무런 변형 없이 그대로 무대에 옮기는 실험을 하면서 느낀 점이 한가지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 전통문화가 가지고 있는 예술성이 인류보편적으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예술이 가진 뛰어난 예술적 감수성은 어디에 내놔도 뒤처지지 않으며 세계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국악을 통해 변해버린 사람들의 ‘귀맛’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정체성을 가진 전통적인 핵심을 유지하면서 주변에 들어와있는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대중과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음악을 만들어가는 스타일, 장단, 악기 음색의 어우러짐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예컨대 국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판소리와 국악 고유의 장단, 그리고 전통악기의 고유한 색을 다른 장르와의 만남에 활용한다면 좋은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국악을 사랑하는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국악은 겨레의 얼’이라는 것을 마음에 품고 공부를 계속해온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은 국악을 단순하게 과거의 음악으로 보지 말고 우리의 혼과 정신이 담긴 민족의 결정체로 봐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국악에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흥, 신명, 슬픔, 한도 있지만 그 안에는 한국인 내면의 ‘깊음’이 들어있다. 전통예술은 긴 세월 동안 응축되고 걸러진 채 남아 있는 겨레의 얼과 혼이다. 국민들이 이러한 우리 겨레의 얼, 소중한 우리의 것에 더욱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줬으면 좋겠다.

편승민 기자
carriepyun@mt.co.kr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1954년 9월 부산 출생
국립국악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음대 국악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음악학 석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문학박사
1981∼1985년 대한민국예술원 전문직연구원
1998∼201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교수
2005∼2007년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2007∼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장
現 국립국악원 제 18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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