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속에 숨은 빛’, 다시 환하게 비추게 하려면…

[편집인 레터]여름철 벌레에게 얼음을 어떻게 이해시킬까?

홍찬선 편집인입력 : 2017.03.02 10:13

▲홍찬선 더리더 편집인
생물학자와 물리학자, 그리고 수학자가 기차를 타고 유럽 여행을 하다 차창 밖의 풀밭에서 검은 색 양을 발견했다. 생물학자가 이를 보고 “이곳 양은 검군…”이라고 하자 물리학자는 “이곳 양의 적어도 한 마리는 검다.”고 수정했다. 그러자 수학자는 “적어도 양의 한쪽은 검다.”고 했다고 한다.

각자 관심을 갖고 있는 정도와 직업에 따라 보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지어낸 얘기다. 다만 이 세상 모든 사물은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낸다.


이런 얘기는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莊子(장자)』에도 나온다. 바다의 신, 北海若(북해약)은 황하의 신 河伯(하백)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얘기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좁은 곳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 벌레에게 얼음을 설명하면 헛소리 그만두라고 큰 소리 치는 것은 그 벌레가 한 철만 경험했기 때문이다…”(<추수편>) 보고 배운 것이 적으면서도 우쭐대는 우물 안 개구리를 뜻하는 井底之蛙(정저지와)를 빗댄 것이다.


조선 최고의 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퇴계 李滉(이황)도 비슷한 가르침을 남겼다. 그는 “병은 자랑함으로써 약을 구하라(發病求藥, 발병구약)”고 하면서 “잘못이 있을 때는 서로 꾸짖어 잘못을 적게 하는 것이 벗의 도리다. 적당히 봐주면서 서로를 저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진리는 무궁하지만 자기 생각은 유한하다. 자기주장을 정론이라고 고집하며 남의 것을 부정하는 것은 편견으로 인해 일을 그르친다.”라는 지적이다.


불행하게도 요즘 한국 사회는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만’과 ‘독선’의 목소리가 높다. 무궁한 진리를 찾자고 달을 가리키면, 달은 보지 않고 손만 보면서 본질과 거리가 먼 얘기로 꼬투리를 잡는다. ‘최순실 등의 국정 농단’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는 물론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公約(공약) 경쟁과 TV 토론, 술자리 등에서도 모두 닮은꼴이다.


자본주의가 붕괴되기 일보 직전에 정부의 재정 및 통화확대를 통한 거시경제정책으로 살려낸 케인즈는 『일반이론』 마지막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의 이론으로 무장된 지금의 지식인”이라고 꼬집었다. 자기가 갖고 있는 것에 포로된 것의 위험성이 큼을 보여준 것이다.


『周易(주역)』 36번째 괘는 明夷(명이)다. 빛이 땅 아래 숨은 象(상)으로 빛이 밝음을 잃을 정도로 어둡고 힘든 시기를 뜻한다. 殷末周初(은말주초)에 紂(주)의 폭정으로 시달렸던 箕子(기자)와 文王(문왕)이 고초를 겪었던 것을 비유하고 있다.


지금 한국 상황이 바로 明夷인 것일까. 내우외환으로도 모자라 삼각 파도와 쓰나미를 넘어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쓰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밀려든 통상 및 주한미군 압력,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북한 핵으로 야기된 사드 배치문제, ‘탄핵’을 놓고 해방 직후처럼 어지럽게 꼬여가는 이념 대결….


明夷 시기에 기자는 거짓으로 미친 짓을 해서 살아남았고, 문왕은 里獄(유리옥)에 갇혀 지내면서 주역의 괘의 뜻인 卦辭(괘사)를 썼다. 비록 상황이 어렵지만, 조만간 밝은 내일이 온다는 用晦而明(용회이명)의 믿음으로 희망을 잃지 않고 고난을 극복했다.


지금이 바로 용회이명, 韜光養晦(도광양회)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자녀가 부모보다 낫고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난 靑出於藍(청출어람)이 되어야 가정과 나라가 발전한다. 안타깝게도 앞으로는 자녀들이 부모보다 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기득권층은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개구리와 우물 안에서 싸우지 말고 개구리를 넓은 세상으로 내보내야 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후 해외순방을 다니면서 세상이 넓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을 많이 바꾸지 않았던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