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클리닉

우리는 어떤 리더를 갈망하고 있는가?

[김영수의 新史記 열전]초(楚) 장왕(莊王)의 리더십에 주목한다(2)

나라의 삼보(國之三寶)
어느 날 장왕은 급한 일로 태자를 궁으로 불러 들였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태자는 급한 김에 궁문에서 마차를 멈추지 않고 그냥 궁 안으로 들이쳤다. 그런데 형법을 관장하고 있는 관리가 태자의 마차를 가로막고 나섰다. 마차를 타고 들어서서는 안 될 문을 태자의 마차가 무단으로 넘어버린 것이다. 이는 엄격하게 법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 법을 어기면 마차의 끌채를 자르고 마부는 목을 베었다. 태자는 왕이 급하게 부르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마차를 몰고 궁문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담당관은 눈썹 하나 까딱 않고 태자의 마부를 끌어내어 목을 베고, 마차의 끌채를 잘라 버렸다. 궁으로 들어와 장왕을 만난 태자는 울면서 그 담당관을 처벌해 달라고 애원했다. 이에 장왕은 태자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법령은 종묘사직을 경건하게 지키고 국가의 정권을 존엄하게 만드는 도구이다. 법제를 지켜서 국가 정권과 조상의 강산을 보호하는 사람은 나라의 충신이다. 그런 사람을 어찌 처벌한단 말이냐? 법령을 무시하고 개인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 위에 놓는 사람은 반역자와 같아 국가의 가장 큰 적이자 군주의 지위를 뒤엎은 가장 큰 근심거리다. 법제가 일단 흔들리면 정권도 흔들리고, 법제가 보장을 받지 못하면 정권도 보장을 받을 수 없다. 그럴 경우 내가 네게 무엇을 전할 것이며, 너는 또 무엇을 후손에게 전할 것이냐?”


말귀를 알아듣는 태자의 표정을 확인한 장왕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 담당관은 설사 내가 앞에 있었더라도 나 때문에 너를 봐주지 않았을 것이며, 네가 장차 내 뒤를 이을 후계자라서 네게 잘 보이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야말로 정말 덕과 능력을 갖춘 충신이 아니겠느냐? 이런 신하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 초나라의 복이다!”


▲초나라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
태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흘 동안 한데서 잠을 자며 죄를 뉘우쳤다. 전하기로는 태자가 훗날 즉위하여 그 담당관을 두 등급이나 승진시킴으로써 그를 표창했다고 한다. 장왕은 국가를 유지하는 법령과 그 법령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충신 그리고 그런 인재를 중시하는 정책이야말로 진정한 보물이라고 확신했다. 후세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장왕의 삼보’라 부르며 그의 탁월한 리더십을 칭송한다. 장왕의 삼보는 나라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세 가지 큰 축을 의미한다. 아울러 이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작동될 때 국가의 기틀이 제대로 선다는 점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장왕이 괜히 매력적인 리더가 아니다. 그가 인재를 얼마나 중시하고 갈망했는지 다른 일화를 통해 좀 더 확인해본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걱정하다 - 불식불침(不食不寢)
전국시대 개혁가이자 군사 전문가 중 한 사람이었던 오기(吳起)가 자신을 발탁한 위(魏)나라 무후(武侯)와 나눈 대화에 초 장왕이 등장한다.(『오자吳子』「도국圖國」, 『신서新序』「잡사雜事」) 무후가 신하들과 국사를 논의하는데 신하들 중 누구도 무후의 생각을 따르지 못했다. 조회가 끝난 뒤 무후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 많은 신하들 누구도 자기를 뛰어넘지 못한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를 본 오기는 춘추시대 패주의 한 사람이었던 장왕의 일화를 꺼냈다.


초 장왕은 신하들과 나라 일을 상의한 뒤 자신의 식견을 뛰어넘는 신하가 없으면 물러나와 울적해 했다. 대신 신공(申公)이 그 까닭을 묻자 장왕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내가 듣기에 모든 시대마다 성인이 계시고 나라마다 인재가 있다고 했소. 성현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는 사람이라야 왕이 될 수 있고, 성현을 친구로 둘 수 있는 사람이라야 패주가 될 수 있다고. 지금 내 능력도 보잘 것 없는데 신하들조차 나를 뛰어넘지 못하니 초나라가 위기에 처할 조짐이 아닌가 두려울 뿐이오!”
이야기를 마친 오기는 무후에게 “장왕은 그 때문에 근심하고 우울해 했는데 왕께서는 오히려 의기양양해 하시니 신은 심히 두려울 따름입니다.”라 했고, 무후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군주와 신하는 나라와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들로 재능이란 면에서 객관적으로 높고 낮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군주의 재능이 신하를 앞지를 때 무후와 같은 군주는 아주 득의만만해 했다. 반면 장왕은 매우 걱정스러워 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가지 심리 상태는 두 유형의 서로 다른 인식 상태를 반영한다.


위나라 무후가 보기에 신하들이 자신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재능이 남다르다는 뜻이고, 이 때문에 당연히 군주가 되는 것임을 나타내는 표지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그 자신의 자긍심을 만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신하들의 능력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리게 했다. 그래서 무후는 다행과 기쁨을 함께 표출했다.


그러나 장왕이 보기에 신하들이 자신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인재의 부족과 국가의 허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장왕은 이런 현실이 천하의 패주가 되려는 장왕의 객관적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국가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때문에 장왕은 초조하고 불안해서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못했다. 물론 이런 상반된 인식은 그 나름대로 성립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무후와 장왕은 모두 한 나라의 군주라는 최고 리더이다. 군주를 보다 큰 사회적 관계 속에 넣고 살펴보면 군주가 이런 사회적 역할에서 성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그가 국가의 건설과 발전에 적극적인 추진 작용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따라서 고명한 군주라면 늘 주의력을 나라 일에 쏟고, 나라가 지속적으로 발전해야만 자신의 가치도 최대한 실현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무후의 인식은 진정으로 요구되는 군주의 역할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한 차원 낮은 심리적 욕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장왕의 시야는 보다 넓고 그의 인식은 더욱 우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 군주의 지혜와 능력 차이가 갈라진다. 이 차이는 결국 역사가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사실 군주와 신하는 서로 다른 사회적 역할을 갖는다. 사회는 이들에게 다른 역할을 요구한다. 군주가 갖추어야 할 재능은 구체적 일을 꾀하는데 있지 않고 주로 신하들이 제기한 일들을 조종하고 판단하는데 있다. 군주가 신하들을 능가하는 출중한 재능과 신하들에게 일을 충분히 위임하길 좋아하는 성격이라면 그가 추구하는 사업은 무한한 생기와 활력을 가질 것이며, 동시에 성공의 조건과 기초를 갖추게 될 것이다.


무후는 구체적으로 일을 기획하는 면에서 어쩌면 정말로 신하들보다 뛰어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개개인의 뛰어남만 볼 줄 알았지 수하 인재들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보질 못했다. 이는 리더의 주의력이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사실과 거시적 인지력와 파악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기는 장왕의 고사를 꺼내 이를 깨우쳐 주려 했고, 무후는 부끄러워했다. 이는 적어도 무후가 잘못을 알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리더의 풍모까지는 잃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입만 열었다 하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를 남발하는 우리 주변의 리더들을 장왕은 말할 것 없고 무후를 비교해 봐도 얼마나 부끄러운가? 분명히 말하건대, 경험에도 유효기간이 있고 유통기한이 있다. 경험이 리더의 소중한 자산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리더십으로 승화되려면 부단한 자기노력과 자기성찰이 따라야만 한다. 유효기간과 유통기한이 지난 경험에 매몰되어 진작에 화석화된 경험으로 모든 일을 진단하고 판단하려는 것은 정말이지 위험하다. 해봐서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해보고 그 일로부터 어떤 지혜와 통찰력을 얻은 것이 중요한 것이다. 마사지는 못 생긴 여자가 잘 하더라가 아니라 그런 문화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문화가 필요한지에 대한 심각한 인식과 성찰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리더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개인적 경험의 과장과 일반화는 조직원과 백성의 마음을 다치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 경험은 참고의 대상이지 무조건적 자랑과 맹목적 추종의 대상이 결코 아님을 리더는 단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믿고 맡길 인재이자 멘토를 찾다
장왕의 인재관이 어떠했는지는 위 일화 하나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는 나라의 세 가지 보물로 인재를 중시하는 정책을 꼽았고, 자기를 뛰어넘는 인재가 보이지 않으면 먹지도 자지도 않고 걱정했던 그런 리더였다. 그런 리더에게서 손숙오(孫叔敖)라는 역사상 최고의 청백리가 나온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손숙오는 중국 역사상 손에 꼽는 명재상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초 장왕 때 재상에 해당하는 영윤(令尹)이란 고위급 벼슬을 지냈다. 민간의 처사로 있던 손숙오를 영윤 우구가 자신의 후임으로 장왕에게 추천함으로써 불과 석 달 만에 영윤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영윤이 되자 초나라에는 새로운 기풍이 생겨났다. 손숙오가 영윤으로 있을 당시 상황에 대해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관료사회는 평화롭게 단합되었고, 풍습은 훌륭하게 유지되었다. 정치는 느슨했으나 단속하는 대로 지켜졌고,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는 하급 관리도 없어졌다. 도적떼도 사라졌다. (…) 모든 사람이 편익을 얻게 되면서 백성들은 모두 자신의 생활에 만족했다.”


도대체 손숙오가 어떤 인물이었기에 한 나라를 이런 경지로까지 끌어올렸을까? 이와 관련해 『열자』에 실린 일화를 소개한다. 호구 장인이란 은자가 손숙오에게 “사람에게는 세 가지 원망이 있는데 아시오.”라고 물었다. 손숙오가 ‘세 가지 원망’이란 것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은자는 “작위가 높은 자는 사람들이 질투하고, 권력이 큰 자는 군주가 미워하고, 녹봉이 많은 자는 원망이 뒤따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손숙오는 “저는 작위가 높아질수록 뜻을 더욱 낮추었고, 권력이 커질수록 마음을 작게 먹었고, 녹봉이 많아질수록 더 많이 베풀었으니 세 가지 원망을 피할 수 있겠지요.”라고 답했다.


관리 노릇을 하는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따르기 마련인 작위, 권력, 녹봉은 관직의 높낮이에 비례한다. 사람들이 더 높은 관직을 원하는 이유도 이런 것들이 관직의 높낮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더 높은 작위, 더 큰 권력, 더 많은 녹봉이 있다면 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란 양면성을 갖기 마련이다. 먼저 보다 높은 작위일수록 그 수는 적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보다 높은 작위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목표로 삼는다. 높은 작위에 있는 사람은 결국 출세를 꿈꾸는 사람들이 오르려는 좁은 길을 막고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여러 사람의 시기와 질투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정권이 사회에 베풀 수 있는 권력의 총합이란 객관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누군가 한 사람이 아주 큰 권력을 갖고 있다면 군주의 권력을 감소시킬 수밖에 없고, 나아가 군주의 지위를 위협하게 되니 군주의 미움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녹봉을 받게 되면 보통 사람들의 생활수준과 격차가 벌어지게 되고 사치와 안일한 생활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고 그래서 원망을 사게 되는 것이다. 호구 장인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손숙오에게 사회생활을 전면적으로 통찰할 것과 보다 깊게 생각해볼 것을 권유했던 것이다.


손숙오는 세 가지 원망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 역시 그런 원망을 듣고 싶지 않았다. 한 시대의 명재상으로서 그는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세 가지 원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먼저 그는 작위가 높아질수록 마음가짐을 더욱 낮게 가진다고 했다. 낮은 작위와 무작위는 높은 작위가 존재할 수 있는 기초다. 한 사람이 영광스러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렇지 못한 다수의 민중이 존재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손숙오는 백성들을 멋대로 대하거나 능멸하지 않고 늘 존중하는 마음으로 백성들에게서 나온 영광을 최대한 다시 돌려주려고 한 것이다. 손숙오는 이런 마음가짐을 유지했기 때문에 자리로부터 오는 시기와 질투를 피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권력이 커질수록 손숙오는 더 근신하고 조심스럽게 처신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이 갖는 한계를 잘 알았다. 자신의 행위를 조심스럽게 이 한계선상에 올려놓고 통제했으며, 한계를 넘어 권력을 남용하는 일을 절대 하지 않았다. 군주가 충분히 자신의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음으로써 철저하게 위협을 피했다. 이와 동시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양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정해진 예의규범과 각종 현실적 요구에 맞추어 신중하게 처신하면서 평온과 적절함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처신함으로써 그는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군주의 미움이나 증오를 피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녹봉이 많아질수록 백성들에게 그만큼 더 많이 베풀었다. 손숙오에게는 많은 녹봉이 향락과 안일한 생활의 밑천이 아니었다. 빈민을 구제하고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본이었다. 이렇게 손숙오는 백성을 위해 일하는 공평무사한 관리로서의 고상한 정조를 나타냈고, 백성들 역시 이런 그에게 어떤 원망도 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손숙오가 다스린 나라가 어땠겠는가? 손숙오의 통치는 유연했다. 늘 백성들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시행했다. 다음 일화는 통치나 정책의 시행과 관련하여 유용한 지혜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초나라 민간에서는 바퀴가 작고 몸체가 낮은 수레인 비거(庳車)가 유행하고 있었다. 장왕은 비거가 말에게 불편하니 수레를 높이라는 법령을 하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손숙오는 “법령이 자주 내려가면 백성들은 어떤 것을 지켜야 할지 모릅니다. 수레의 높이를 올리고 싶으시다면 마을 입구로 들어오는 문의 문턱을 높이십시오. 수레를 타는 사람은 대개 높은 사람들로서 솔직히 이들이 문턱 때문에 번번이 수레에서 내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는 대응책을 내놓았다. 반년이 지나자 백성들은 스스로 수레를 높였다.


손숙오의 이런 통치 방법에 대해 사마천은 이렇게 평가한다.


“결국 이는 가르치지 않아도 백성들이 절로 감화되어 따르는 것이다. 즉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직접 보며 본받고, 먼 곳에 사는 사람은 주변에 보이는 것을 모방하게 되어 있다.”


관리와 지도층의 솔선수범이야말로 순조로운 통치와 정책 시행을 위한 최상의 방법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손숙오는 세 차례나 재상직에 올랐어도 기뻐하지 않았는데, 이는 자신의 재능이 그 자리에 오르게 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세 번이나 파면되었지만 후회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것이 자신의 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손숙오가 얼마나 청렴결백한 관리였는가는 그 자손들이 끼니를 걱정할 정도였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손숙오와 함께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누었던 연예인 우맹(優孟)은 손숙오의 식솔들이 형편없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보고는 손숙오처럼 분장하여(우맹의관) 장왕 앞에서 손숙오를 그리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장왕은 앞서 간 청백리 손숙오가 새삼 그리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맹에게 정중한 예를 갖추어 절을 올렸다. 장왕은 진심으로 앞서 간 청백리 손숙오와 그런 손숙오를 새삼 상기시켜 준 우맹을 공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튿날 바로 손숙오의 후손들이 끼니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게 충분한 배려를 해주었다. 장왕에게 손숙오는 부하 관리이기에 앞서 평생 마음속에 품고 살아갈 정신적 멘토였던 것이다. 리더와 그를 따르는 인재와의 관계는 장왕과 손숙오처럼 담담해야 한다.


두 사람은 물질적 풍요로움과 권력이 가져다주는 편리를 초월하여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함께 봉사한다는 차원 높은 경지에서의 감동적인 조우를 2600년이란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다음 호에 계속)

김영수 사기(史記) 연구가


김영수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대 한·중 관계사로 석사·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92년 박사 과정 수료 후 학위를 포기하고 본격적인 중국 공부에 나섰다. 중국 소진학회 초빙이사, 외국인 최초의 중국 섬서성 한성시 사마천학회 회원이며, 영산 원불교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20년 동안 중국을 다니며 중국사의 현장과 연구를 접목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역사서『사기(史記)』를 통해 인간관계를 통찰하는 ‘응용 역사학’ 분야를 개척했다.
저·역서로는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1 – 사마천, 삶이 역사가 되다』,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성찰–김영수의 사기 경영학』, 『사기의 리더십』, 『완역 사기 본기本紀 1, 2』, 『완역 사기 세가世家 1』, 『현자들의 평생 공부법』, 『사마천과의 대화』, 등이 있다. 『고대 중국 야철기술 발전사』(역서)로 과학기술처 장관상을,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로 섬서문학창작연구회로부터 ‘吉春史學奬’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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