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사고와 다양성, 그리고 정책 결정

[이일환의 情(정보의 눈으로)·世(세상)·思(바라보기)]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입력 : 2017.06.26 10:52
집단사고(groupthink)란 응집성이 강한 집단에서 집단의 친밀한 분위기를 유지하려는 기대와 집단 압력의 영향으로 중요한 정책 문제에 대해 집단적 동조현상(concurrence seeking)이 유발되어 현실적인 평가와 검증의 의욕 저하, 정보의 탐색과 처리에 대한 정신적 능률성 저하, 그리고 도덕적 판단의 저하 등을 초래하는 집단 구성원들의 공통 사고방식이다.

소규모 집단이든 규모가 큰 조직체 이든 집단사고 현상은 존재한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고, 논의하고 또 술자리를 함께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類類相從이란 한자어가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집단사고가 중요한 의사 결정이나,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는 순간 얘기는 달라진다. 단적인 사례가 마오쩌뚱의 최대 실책 중의 하나인 ‘大躍進 운동’이다. 대약진 운동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1958년부터 1960년 말까지 추진된 정책으로서, 정치적 가치와 군중운동에 입각한 인적자원 동원과 기술의 혁명을 통해 농·공업의 동시 발전과 급속한 增産을 이루어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는 일종의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의 실험 운동이었다.

마오쩌뚱의 고집에 의해 추진된 대약진 운동은 능률과 물질적 자극을 도외시하고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나 과학 정신이 결여되어 참담한 실패로 끝났으며, 전쟁도 없이 단기간 내에 3,000만 명이라는 최악의 아사자를 내는 등 중국 인민과 국가에 엄청난 후유증을 안겨주었다.

문화혁명의 직접적인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했던 大躍進 운동은 통치자가 밀어붙인 잘못된 정책 결정이 국가와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좌절과 손실을 안겨주는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대약진 운동의 시작과 시행 과정을 살펴보면, 집단사고의 증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마오쩌뚱이 하면 문제가 없다는 과신 ▲마르크스 원칙을 준수한다는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믿음 ▲집단적인 합리화 그리고 다른 의견을 가진 反冒進派(실사구시 입장에서 현실 여건을 고려해서 추진하자고 주장한 주은래 등을 지칭)에 대한 압력과 자아비판▲ 반대 정보를 차단하는 심리적 방어 등이 총체적으로 작동했고, 그 결과 중국 전 산업과 사회를 폐허로 만들었다.

중요 대외 정책 결정에 있어 집단사고가 수시로 문제가 되곤 했던 美國도 트럼프 정부 등장 이후 집단사고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정부가 사드배치 비용을 지불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술과 반대 견해를 제시했던 맥마스터 안보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데 이어, 각종 정책자문 집단 구성에 필수 요건인 다양성(diversity)을 무시하고 있다. 심지어 다양성을 ‘구성의 다양성’과 ‘의견의 다양성’으로 구분하고, “의견의 다양성만 있으면 되지 구성의 다양성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계속적으로 문제 삼는 언론 등을 향해‘正體性 정치의 게임(the games of identity politics)’을 벌이지 말라고 윽박지른다. 트럼프 케어(Unaffordable Care Act)라고 부르는, 건강보험 개정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상원healthcare 그룹을 구성하는데, 13명의 남성으로만 구성하고 여성은 한 명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 트럼프 행정부 내에 집단사고 발생 가능성이 잉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단사고는 미래를 선제적으로 내다보고 예측하는데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가속의 시대(the age of accelerations)’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단기적인 이익만 생각하는 사고(short-termism)와 더불어 집단사고는 효과적인 예지력(foresight)을 갖추는데 주요한 장애물 중의 하나다. 급변하는 세계는 ‘안정이란 환상’ 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민자로 상징되는 인구학적인 변화,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기술의 급격한 발전, 병원균들의 내성 증가와 같은 위험 등은 국제사회, 국내의 정치 및 경제 지도를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현재’에 갇혀 사고하고 생활한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면서 미래를 잘 예측하고 있다고 과신하는가 하면, 미래는 불확실하고 복잡한데 미리 준비하는 것은 의미 없는 행동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기술 낙관주의를 예로 들어보자. 기술이 우리의 삶을 더 편하고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소리 높여 고창해 왔으나, 가짜뉴스 사태에서 보듯 예상치 못한 복병이 등장해서 우리의 사고체계까지 흔들어 놓고 있다.

가짜 뉴스의 전파자 역할을 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소셜미디어라는 편리한 기술적 도구를 세상에 내놓을 때, 이런 부정적 현상까지 예측했을까?

이는 ‘전략적 예지력’이 절실함을 보여준다. 예지력은 ‘예측’이나 ‘예견’과 다르다. 미래 예측은 현실을 안주하게 만드는 ‘그릇된 확실성’을 전파할 위험성이 있다. 반면, 예지력은 미래 변화상을 알려주는 신호와 잡음을 구별하게 해주며, 어느 순간 갑작스런 사안이 돌출되더라도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전략적 예지력’은 그냥 형성되는 게 아니다. ①여러 가지代案을 놓고 숙고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고 ②기존에 옳다고 믿는 가정에 도전하며 ③나와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는 대화의 공간을 열어놓아야 가능하다.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목소리를 내도록 고취해야 한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회의가 성공했던 요인 중의 하나는 196개 회원국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외교활동과 논의에 능동적으로 참여했기에 가능했다.

지난 5월 10일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청와대 인선과 주요 직위 인선을 보면 안도감이 든다. 아직까지 집단사고의 시그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복심으로 불리는 ‘3철(이호철,양정철, 전해철)’이 눈물을 머금고 2선 후퇴한 것이나, 친문과 비문을 가리지 않은 능력자의 기용은 집단사고를 막아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는 우려스런 구석은 여전하다. 역대 모든 정권이 그랬듯이 초기에는 ‘탕평’과 ‘통합’ 그리고 ‘화합’을 앞세우지만, 정치적 위기에 부딪치거나 집권 중반기에 이르면, ‘나와 가까운 사람들’로 주변을 채워왔다.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결국에는 민심도 잃고 실패한 정권으로 막을 내렸음을 목도해왔기 때문이다.

2016년, 브렉시트라는 세계적 질서를 뒤흔드는 사고를 친캐머런 영국 전 총리는 집단사고의 전형을 보여준 지도자다. 자신과 가까운, 그것도 최상위층만이 진학하는 ‘이튼 칼리지’출신들로 주변을 채웠다. 대다수 민중들의 대안적 견해와 관점은 끼어들 여지도 없었고, 경청할 생각도 갖지 않았다. 그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집단사고가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데 크나큰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사례다.

문재인 정부도 초심을 유지하길 고대한다.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되기 시작하면, 촛불(중국에선 燭光집회라고 부른다)이 그토록 열망해온,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 또한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CIA가 집단사고의 병폐를 깨기 위해‘레드 셀(RED Cell)’이란 대안적 조직을 운영한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대담한 분석력과 창의성 그리고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요원 5명으로 구성했고, 부시 전 대통령조차 ‘생각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당 태종 시절명재상 魏徵의 말은 집단사고의 병폐를 막는 금과옥조다. “銅으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하게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득실을 알 수 있다’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前 국가정보원 부산지부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
한국국가정보학회 이사
한국가버넌스혁신포럼 이사
미래예측포럼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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