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대, 광인적 지도자 그리고 책사

[이일환의 情(정보의 눈으로)·世(세상)·思(바라보기)]

머니투데이 더리더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입력 : 2017.10.17 10:06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다시금 주목받는 이론이 ‘광인 이론(madman theory)’이다. “한 나라의 정치지도자가 미친 사람처럼 비이성적으로 정책을 결정하여 국제 상황을 혼란으로 몰아넣겠다고 협박하여 상대방을 굴복시킨다”는 이론이다.

이를 국제협상에 적용한 사람이 닉슨인데, 닉슨의 행동을 뒷받침한 사람이 키신저였다. 미국은 하루라도 빨리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서 나오고 싶었으나, 전략적으로 우위를 점한 북베트남군과 소련이 지연 전략을 구사(sit silently until the chairs rot)하여 파리 종전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해낸 것이 ‘광인 이론’이다. “하노이 혹은 모스크바에 핵무기를 투하할 수 있다”는 엄포였다. 1969년 여름, 닉슨은 베트남에 대해 뭔가 대담한 행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련에게 확신을 줄 필요가 있었다. 닉슨은 “평화 달성을 위해서는 핵 공격을 포함한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있음”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매드맨 플랜(madman plan)’을 수립했다. 첫 번째 조치가 공개적으로 협상진전 시한 설정이었다. 1974년 11월 1일까지 의미 있는 협상진전이 필요하다는 뜻을 북베트남 쪽에 전한다.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조치도 취할 수 있으며, 공산주의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닉슨 대통령이 분노해서 핵 버튼을 누르면 누구도 제어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암시하도록 했다. 10월 6일 키신저가 국방장관에게 전쟁 준비단계인 데프콘을 발령하도록 지시한다. 10월 13일 ‘HIGH HEELS 69’라는 코드명으로 미군부대와 정보기관 합동으로 핵전쟁 연습을 실시한다. 보안 유지를 위해 닉슨, 키신저, 국방장관, 그리고 알렉산더 헤이그에게만 귀띔했다. 동시에 키신저는 ‘온갖 종류의 형태로 소련과 북베트남을 거슬리게 한다’는 외교적 작전을 구사한다. 어떻게든 협상의 우위를 확보하려는 계산이었다. 이 같은 복안을 눈치 채지 못한 소련은 도브리닌 대사를 닉슨에게 보낸다.


닉슨은 키신저의 조언대로 ‘냉정한 겜블러’처럼 미국의 입장을 언급한다. 도브리닌은 모스크바에 서신을 보낸다. “닉슨은 모욕적인 패배를 결코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며, 베트남 문제로 너무 골머리를 앓아 외국 대사와의 대화 자리에서조차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다.” 닉슨과 키신저는 계획대로 굴러간다고 보고 판돈을 올린다. 10월 26일 아침, 핵무장한 B-52 폭격기 6대를 알래스카 상공을 3일 동안 비행하게 한다. 도브리닌은 다시 모스크바로 추보한다.


 “닉슨은 점점 감정에 휩싸여 단호해지고 있고 균형 감각도 떨어지고 있다.”


광인 이론과 닉슨의 행동이 보여준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 ‘핵 암호가 담긴 흑색 가방(nuclear Football은 최초의 핵전쟁 계획인 ‘DROPKICK’의 코드명에서 파생되었다)을 든 지도자가 이성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대통령은 핵전쟁 버튼을 누르는, 제한 없는 권한을 보유 한다’는 점이다. 1954년 아이젠아워 대통령은 의회에서 “핵전쟁은 너무 긴급히 발발하기 때문에 자문이나 조언을 구할 틈이 없다”고 우려했다.


광인 이론을 새삼 주목한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주고받는 ‘핵 말폭탄’과 한반도 핵 위기가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핵무기에 대한 친밀감을 갖고 있다. 2015년경 “나에게 핵무기는 곧 파워이며, 그 파괴력이 중요하다며, 핵무기를 사용하면 안 되느냐”고 되물은 적도 있다. 문제는 ‘트럼프가 닉슨이 가졌던 핵무기 사용의 조심성이 보이지 않고, 트럼프의 복안도 헤아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김정은의 도발이 계속되면 러시아게이트로 인한 시선 분산을 위해서라도 북한을 상대로 한방 날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트럼프는 평정과 판단, 억제력 그리고 외교적 스킬도 부족하다. 존스홉킨스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임상교수인 존 D. 가트너는 “트럼프는 위험할 정도의 정신질환이 있고 성질상으로도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 악성 자기애(malignant narcissism)가 강하다”고 주장한다. 《종말이 시작되는 법 How the End Begins: The Road to a Nuclear World War Ⅲ》이란 핵전쟁과 관련한 책을 저술한 론 로젠바움(Ron Rosenbaum)도 “정상이 아닌 성향을 내재한 대통령은 비이성적으로 핵전략을 구사할 위험성이 몇 배나 높다”고 지적한다. “만약 대통령이 핵 버튼을 누르라고 지시하면 누가 말릴 것인가? 대통령에 복종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미군 고위 장성이 말릴 수 있을지”에 대해 염려한다.


게다가 김정은은 핵능력 고도화를 과시하기 위해 태평양 상공 수소폭탄 실험을 공언했다. 완성되지도 않은 ICBM의 능력을 과장하고, ICBM에 핵탄두를 실어 ‘미국 본토가 핵전쟁의 무대’가 될 것이라고 호언한다. 국방연구원 이상민 박사는 “지난 7월 28일 밤 11시 40분경에 발사한 화성-14형은 능력의 공갈과 과장된 과시를 통해 부족한 능력을 포장한 이벤트였다”고 예리하게 분석했다. 북한 미사일 개발자들이 김정은의 과욕에 억지로 맞추기 위해 엔진 출력을 무리하게 높여 최대한 사거리를 높이고자 했다는 지적이다.


재진입 기술은 실패했으며, 1~2년 내 북한의 재진입 기술 획득도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공격적인 기질에다, 미사일 발사 등을 ‘전쟁 게임’처럼 다루며 ‘계산된 혼란전략’을 펴는 김정은은 이제 핵 무력을 기반으로 한반도 공산화 통일까지 언급하면서, 70여 년간 국제규범으로 자리 잡은 ‘핵은 공격받기 전에 먼저 사용하지 않는다’는 핵 타부(taboo)마저 깨트리려 하고 있다. 눈여겨볼 지점은 핵 선제 사용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변하고 있는 사실이다. 2017년 8월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미국 핵 공격과 수천 명의 미국 군인들의 사망과의 교환 여부에 대한 조사였다. 이 조사에서 “이란에서 미군 2만 명이 희생당할 위기 상태라면, 핵무기 사용으로 인해 이란 국민 10만 명이 사망해도 무방하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핵 타부였던 ‘비전투원(민간인) 대량살상 면제 규범’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젤리코우(Zelikow) 버지니아대 교수는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붕괴하면서 시스템적 위기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기존의 통념을 깨트리는 새로운 사고와 발상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위기 상황이 고조되고 있는데도 이를 타개해 나갈 ‘책사’가 보이지 않는다. 외교안보 라인이 아마추어이고 윗사람의 심기 맞추기를 업무보다 더 잘하는 ‘의전형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는 비판도 있다.


《삼국지》 조조의 책사이자 정보 전략가였던 가후(賈珝)와 같은 인물이 절실하다. 가후는 간쑤성 무위 출신으로 147년에 태어나 223년에 사망했는데, 본래 ‘장수’의 책사였으나, 조조에게 의탁한 뒤 조심스런 처세술로 ‘숨은 전략가’로 행동했던 인물이다. ‘유표’와 ‘장수’가 연합해서 조조와 싸울 때, 가후는 ‘장수’에게 “조조가 철군한다고 해서 추격하면 패할 것이니 추격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장수’는 이 조언을 듣지 않고 추격하다가 참패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조를 다시 추격하라고 조언한다. ‘장수’는 내키지 않았지만 조언대로 추격하여 대승을 거둔다. ‘장수’는 모순된 전략을 언급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가후의 설명은 이랬다. “조조와 전쟁할 때 그는 불리하지 않았다. 실수도, 작전도 실패하지 않았다. 조조가 급히 철군한 이유는 조정에 뭔가 일이 터졌기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장수’에게 3가지 논리로 조조에게 투항하라고 권한다.


①조조는 천자를 받들어 불충한 신하를 호령했기에 정치적으로 우위에 있다 ②저희는 세력이 약해서 ‘원소’에게 의탁해봐야 도움이 안 되고 조조에게 투항하면 역할이 있다 ③조조는 큰 꿈이 있어 대국을 먼저 생각한다. 가후의 대국을 보는 안목과 분석력을 보여주는 일화다.


세계는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 불투명한 미래를 선제적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는 주체만이 생존하는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다. 진영 논리와 코드 범주를 벗어나 플로리다를 강타한 태풍 ‘어마(Irma)’와 같은 위험한 상황을 돌파할 책사를 찾아야할 절박한 시점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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