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와 정책 판단

[이일환의 情(정보의 눈으로)•世(세상)•思(바라보기)]

머니투데이 더리더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입력 : 2017.11.06 10:13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험난한 세상을 이겨나가는데 용기를 주는 단어가 ‘희망’이다. 인생의 행로에는 고난의 황무지와 실패의 골짜기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뜨는 태양을 가슴 펴고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오늘에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는데도 ‘희망’이란 환상적 단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희망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서 함께 있는 것’이다.

희망은 그러나 정치심리학에서 말하는 ‘희망적 사고’와 결합되면 전개 양상은 달라진다. ‘희망적 관측’이나 ‘부질없는 기대’와 같은 부정적 의미가 작동되기 때문이다.


#1. 중국은 한국에 대해서 ‘사드와 한중관계(경제, 한반도 통일, 북핵문제 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측 인사들은 “한국이 사드도 배치하고, 한중관계도 유지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자 희망적 사고다”(2016.6.22. 문화일보 기사 중)


#2.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적 도발과 사드에 대한 한중, 미중, 중일, 북미, 북일 간 구조적이고 근본적 입장 차이와 대결적 구도 형성 등으로 인해 한반도 안보정세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가 직면한 한반도 안보정세 위험성 및 미중관계 구조적 문제점 등을 일방적이고 희망적 사고가 아닌 보다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安美經中 혹은 “시간은 우리 편이다”라는 희망적 사고에서 벗어나 전략적이고 현실 가능한 대북 대중 전략 수립이 요망된다( 2017.9.6. 정재흥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 연구위원)


#3.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이 굴복할 것이라거나, 대화만 성립되면 문제가 우리 뜻대로 풀릴 것이라는 기대는 모두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 대북제재로 북한 핵문제를 푼다는 생각은 희망적 사고였다. 제재만으로 비핵화를 끌어낸다는 전략은 이제 명백한 실패로 귀결될 것이다. 북한이라는 상대를 오판한 것도 상당히 작용했다.(2017.8.10. 평화연구원 현안진단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100일’)


#4. 러시아 푸틴이 크림(Crimea)를 병합했을 때 오바마는 말했다. “러시아는 더 이상 어떤 행위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민자는 기회를 찾기 위해 러시아에 밀려들지 않고 있다. 러시아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불행히도 이 코멘트는 사실을 외면한 워싱턴의 희망적 사고에 불과했다. 실상은 “러시아는 2000-2015년 간 GDP가 70% 성장했고 인구도 늘고 있으며, 이민자도 미국과 독일 다음으로 많다.”(2016.11.28. Wishful Thinking and Vital Interest, The National Interest)


상기에 예시한 몇 가지 사례에서 보듯 ’희망적 사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본인의 마인드에 맞춰 사물을 바라보고 상황을 해석함으로써 현실과 팩트를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데 있다. 대외관계나 국제문제 같은 거대담론이 아니더라도 ’희망적 사고‘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부지불식 간에 자리잡아 판단을 흐리게 한다.


친인척 중에 어머니뻘 되는 80대 중반 노인(여)이 있다. 남편은 80대 후반으로 3년째 투병중이다. 점점 더 가늘어져가는 생명줄을 가까스로 잡고 살아가고 있다.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다. 나날이 지쳐가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 할머니는 “조만간 남편이 죽을 것이다”는 희망적 사고로 살아가고 있다. 간혹 ‘희망적 사고’가 지나쳐 조금만 남편 건강이 안 좋으면 자식들과 친지들을 호출한다.


문제는 ‘희망적 사고’가 삶의 피로와 짜증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부부 간의 갈등도 남편과 마누라 간의 ‘희망적 사고’ 때문인 경우가 많다.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해주기를 기대하고 이에 못 미치면 실망하며, 이 실망이 반복되면 ‘이혼’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한 개인의 ‘희망적 사고’는 이렇듯 한 가정의 영역 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국가적 현안에 대해 ‘희망적 사고’에 갇히면 단순한 상황판단 오류를 넘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국가이익이나 국가의 운명에 크나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희망적 사고’가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 사례가 한국전쟁이 대표적이다.“중국인민해방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희망적 사고’가 만연하여 워싱턴의 정책 결정에 큰 오판을 가져왔다.


인천상륙작전 대성공도 ‘희망적 사고’의 확산에 한몫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가 기대했던 수준 이상으로 효과가 컸다. 전쟁은 맥아더가 웨이크섬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맥아더의 의도대로 진행될 것처럼 보였다. 유엔군이 승리하여 한반도는 통일된 국가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성급한 낙관론이 넘쳤다.


그러나 “중국인민해방군 개입은 문제될 것 없다”는 맥아더의 호언에 따른 선입관이 야기한 ‘관성적 사고’와 함께, 전쟁 조기 종결이라는 ‘희망적 사고’가 겹쳐 중국의 개입이라는 신호탐지에 실패하게 된다. 물론 맥아더의 의중에 부합하기 위해 중국의 개입을 시사하는 정보를 축소 보고한 정보참모 찰스 윌러비 장군의 ‘맥아더 비위맞추기 정보생산’도 정보를 오판하게 한 원인 중의 하나이기는 하다.


찰스 윌러비 준장은 1949년 6월 본국에 ‘주한 연락처(KLO: Korean Liasion Office)’ 창설을 건의하여 북한의 정부 및 산업 기관에 침투하는 정보활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대북첩보 수집을 위해 백의사(白衣社)와 정의사(正義社) 및 이북출신 청년들을 고용하여 대북 정보원으로 활용했던 인물이었지만, 맥아더 비위 맞추기에 골몰함으로써 일평생 오점을 남겼다.


투키디데스는 말했다. “국제정치에서 희망이란 전략이 아니다. 위험에 처한 상태에서 위안거리에 불과하다.” 정치인은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도록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구축한다. 그리스어로 이를 헤레세틱스라고 한다. 현 한반도의 위기상황 돌파를 위해서는 정치인의 대의와 국익에 입각한 헤레세틱스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점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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