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빛날 5인] 조세현 작가, ‘평창 성화’ 든 빛과 어둠의 가교

“올림픽과 패럴림픽에서 휴머니즘이 담긴 순간 남기고파”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지선 기자입력 : 2018.01.02 13:12
사진을 ‘빛의 예술’이라고들 한다. 빛이 비춘 피사체를 렌즈로 담아 사진이라는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은 사진작가의 몫이다. 하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작가의 역량은 그 둘을 얼마나 잘 다루는 가에 따라 평가되기도 한다. 주로 흑백의 인물사진을 작업하는 조세현 작가의 작품에서는 그 둘의 절묘한 조화를 느낄 수 있다. 사진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 역시 빛과 어둠을 좇는 여정인 듯 했다.

“한때는 빛만 쫓았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스타들을 대거 데뷔시킨 그는 이미 국내 최정상 상업 포토그래퍼다. 그런 그의 프레임에 어느 날부터 어둠과 그림자가 담기기 시작했다. 노숙자, 입양대상아동, 장애인 운동선수 등 사회의 소외계층을 돕는 나눔 활동에서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것. 한때 ‘쇼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지만 그런 활동들에서 큰 만족감을 얻는다며 오랜 시간 묵묵히 활동을 이어온 조세현 작가. ‘브릿지(bridge·다리) 역할’을 자처한 그는 빛과 어둠 사이 그 어딘가에 존재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더리더>는 지난달 13일 조 작가의 작업실인 아이콘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의 작품 활동부터 2017년 ‘세상을 밝게 만드는 사람들’에 선정된 소감, 그리고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서의 활동 계획까지 들어봤다.

-‘사진작가 조세현’ 소개 부탁한다
▶정확히는 ‘인물 사진작가’다. 인물 사진 위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노숙인들과 소외 청소년들에게 사진을 가르쳐주는 희망프레임의 이사장이자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위원장이다. 이외에도 여러 타이틀이 있지만 그 중 역시 인물 사진작가인 것이 가장 좋다.

-인물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이유는
▶10년 정도 패션잡지사에서 일하면서 커버 사진을 많이 찍었다.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급속도로 이뤄졌던 당시 패션사업도 엄청나게 발전했다. 하루에 표지 사진을 10~20개씩 촬영하며 패션 사진가로 활동했다. 물론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다. 지금도 패션사진가이자 인물 사진가다.

-연예인들을 비롯한 유명인들과 작업을 많이 했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인물 사진가로 활동하다보니 내가 찍은 사람들이 성공한 경우가 종종 있다. 연예인들을 데뷔시키기도 했고, 내 사진으로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들도 있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패션지에서 활동하다 보니 스타들을 데뷔시킨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야말로 길거리에 있는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연예인으로 만들었다. 대표적으로는 전지현, 김민희, 고소영, 이정재, 소지섭, 권상우 등이 있다.

-상업 사진작가로 왕성히 활동하다 요즘엔 사회활동가의 행보도 보이고 있다
▶사실 그런 시선에 대해 다소 불만이 있다. 이상하게 그런 사회공헌활동만이 좋은 일로 비춰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상업적인 일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물론 외부의 도움도 받고 예산을 타서 사회활동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지만, 활동 주체의 여유가 있어야 좋다고 생각한다. 외부에만 매달리다 보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 않나.
그래서 상업적인 부분을 숨기는 것이 싫다. 실제로 지금도 꾸준히 상업 사진작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돌과 배우들을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고, 광고도 찍고, 선거 포스터들도 찍는다.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진 않다. 오히려 봉사활동들은 내겐 참 쉬운 편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신기해하고 칭찬해주는데 나는 그저 시간을 좀 내고 관심을 좀 더 기울인 것뿐이다.

-사회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그전에는 스타들만 촬영했다. 20여년 동안 빛만 쫓았던 셈이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신부님이신 집안 어르신의 인도로 어둠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세상에 이런 것도 있구나 싶더라. 그런 것들이 참 남의 일 같지 않고 내 일처럼 들렸다. 아마도 사진을 처음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었던 본능이 마음속에 계속 자리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인간상이 담긴,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패션지에서 일할 동안에는 어둠에 눈 돌릴 겨를이 없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카메라를 처음 들었을 때 갖고 있던 본능이 돌아온 셈이다.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사진 교육은 어떻게 시작됐나
▶2010년 영국의 한 사진전에 초청된 적이 있다. 거기서 작품 하나를 달라고 했는데 워낙 바빴던 때라 뭔지도 모르고 그냥 줬다. 행사에 직접 가서 확인해보니 ‘포지티브 뷰’(긍정적인 시각·A Positive View)라는 이름의 사진전이었고 주최가 영국 윌리엄 왕자였다. 윌리엄 왕자가 전 세계 사진가들의 도움을 받아 그 수익금으로 런던의 노숙자들을 사진작가로 만드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것이다. 행사에 참석한 이후 사진작가로서 너무나 충격을 받은 동시에 나도 이런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 이후 서울시와 ‘희망아카데미’를 만든 것인가
▶그렇다. 운이 좋았다. 영국에서 돌아오자마자 한 고객을 만났는데 서울 시장 선거에 출마한다더라. 선거 포스터용 사진을 찍어주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마침 자기도 그런 활동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내가 찍어준 ‘뒷굽이 떨어진 구두 사진’으로 화제를 모아 당선에도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얘기다. 그 인연을 통해 머릿속으로만 구상하던 노숙인 사진전문학교 희망아카데미를 곧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나
▶처음에 20명을 선발해 총 8주 혹은 10주 코스의 사진 교육이 실시된다. 기본적으로 내가 재능기부로 사진을 가르치는 형식이다. 이벤트성이 아닌,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되기 위해선 노숙인들이 운영할 수 있는 사진관이 마련돼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서울시의 도움을 받았다. 광화문 앞에 위치한 ‘희망사진관’이다. 프로그램을 끝마친 2명은 그곳에서 영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2012년부터 시작된 교육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수업 초반에는 노숙자들이 모두 배낭을 메고 수염도 덥수룩하게 길러서 온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눈에 띄게 변하더라. 면도를 하고 머리도 빗고 옷도 깔끔히 갖춰 입는다. 사진이라는 문화 예술 활동을 통해 그들이 정서적으로 치유되고 사회적응력이 높아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 게 성공 아닐까?

조세현 작가와 그 뒤로 보이는 '사랑의 사진전' 작품들./사진=아이콘스튜디오 제공
-입양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시작된 사랑의 사진전이 벌써 15주년을 맞았다
▶입양 기관인 대한사회복지회가 아기들의 백일 사진을 남겨보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당시에는 대부분 해외입양이 이뤄져 아기들이 가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상황이었던 것. 제안을 받고서 그 작업도 하나의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졌다. 사실 처음엔 너무 바쁘다보니 한번만 하고 그만하려고 했다. 그런데 기관 측에서 사진전도 여는 게 어떻겠냐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아이들 초상권에만 문제가 없으면 하자고 했다. 그게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게 됐다.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것에 만족을 느낀다는 것을 또다시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동안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초반에는 아기를 이용해 쇼를 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5년 정도 지나니까 사람들이 진정성을 알아줬고 입양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국가 지정 입양의 날이 생겼으며, 해외 입양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국내 입양 건수가 늘어나기도 했다. 그런 공로를 일부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지금도 보면 입양을 숨기지 않고 공공연히 하고 있지 않나. 사진전의 여파로 입양에 대한 문화나 인식이 긍정적인 쪽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젊은 사람들이 나중에 입양을 결정할 때가 되면 내 사진을 기억할 것이다. ‘방탄소년단이 아기 안고 있던 사진 있잖아’하며.

-올해는 평창동계올림픽 선수들이 등장하던데
▶사람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가기 위해 매년 각기 다른 주제로 사진전을 진행한다. 어떤 때는 부부만 등장하기도 하고 아이돌만 나올 때도 있다. 올해는 평창올림픽을 기념해 선수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했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상화, 이승훈 선수를 비롯해 패럴림픽에 참여하는 휠체어컬링팀, 아이스하키의 정승환 선수들이 참여해줬다.

-매 올림픽마다 만나는 패럴림픽 선수들과는 특별한 인연이겠다
▶개인적으로 패럴림픽을 위해 열심히 뛰는 편이다. 2008년 베이징에서 열린 패럴림픽을 시작으로 벤쿠버, 런던, 소치, 리우 패럴림픽에 모두 참여해 ‘마이드림 스포츠’라는 사진전을 열었다. 사진을 촬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카메라 렌즈를 닦는 일이다. 그래야 왜곡이 없는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편견들을 벗어던져야 피사체의 온전한 모습을 담은 좋은 사진이 나온다. 장애인 선수들을 찍으면서 내가 중시했던 것도 그런 부분이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항상 괴팍하고 열등감에 휩싸인, 어둡고 그늘진 모습만 갖고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편견이다. 특히나 올림픽 무대에 나오는 선수들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이지 않나. 그들은 그런 자존감과 자부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심지어 나에겐 그들이 착용한 보조기구와 휠체어 같은 것이 멋진 액세서리 같기도 하더라. 선수들의 멋지고 고운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더니 반응이 좋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에 참여한 조세현 작가. 희망프레임에서 가르친 16명의 리틀 포토그래퍼들이 함께했다./사진=아이콘스튜디오 제공
-그런 공로 덕분일까. 평창올림픽 홍보대사로 선정돼 성화봉송도 했던데
▶성화봉송을 했다는 사실보다 16명의 청소년들이 함께 뛰었다는 것이 더 값지게 느껴진다. 리틀 포토그래퍼인 그들은 모두 내가 희망프레임에서 가르쳤던 아이들이다. 고아원과 다문화 가정 출신, 그리고 시각 장애를 가진 아이들까지 참여했다. 이런 아이들은 아무래도 학교나 사회에서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로 정말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작년 말 환경재단의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에서 수상했다. 못 다한 소감이 있나
▶문화예술인의 대표로서 받은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직접 뭘 한 것보다도 세상과 단절된 사람들을 우리 사회와 연결해준 공로에서 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브릿지(bridge·다리)같은 역할이랄까. 나의 전문인 사진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을 사회의 빛과 이어준 것이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평창올림픽 홍보대사로서 지금은 올림픽과 패럴림픽이이 성공하길 바란다. 그런 염원에서 이번 사랑의 사진전도 선수들과 함께 한 것이니까. 또 이번에 한국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평창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공식 사진가로 선정돼 화보집을 찍게 됐다. 휴머니즘이 가득 담긴 역사적인 작업을 남기게 될 것 같아 뜻깊게 생각한다. 감동의 순간이 담긴 사진을 기대해도 좋다.


조세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졸업
2018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석좌교수
UN난민기구 자문위원
국가 인권위원회 자문위원
서울시 홍보대사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위원장
조세현의희망프레임 이사장
입양아동 홍보대사
한국모금협회 이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hoi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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