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野黨)의 야당'이 대한민국을 바꾼다

안민호 소통과 여론

머니투데이 더리더 안민호 숙명여대 교수입력 : 2018.01.05 14:46
▲안민호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 학부 교수
세 종류의 기질(氣質)이 있다. 첫째가 대세를 따르는 여당 기질이고, 둘째는 대세의 전복(顚覆)을 도모하는 야당 기질이고, 셋째가 여당과 야당 모두를 반대하는 ‘야당의 야당’ 기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 기질 중 하나에 속한다. 경험적으로 보면, 여당 기질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야당 기질이 많다. 세 번째 ‘야당의 야당’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가장 소수다. 사람들의 이런 기질들은 사회적 소통의 성격과 통합의 정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야가 번갈아 교체되는 자유민주주의적 정치 환경에서는 여당 기질을 가졌다고 해서 항상 여당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야당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항상 야당만 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이 교체될 때마다 서로 입장이 바뀌니 기질로 본다면 여야는 다른 것 같아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질적으로 다른 것은 권력의 교체와 상관없이 항상 비주류에 속하는 야당의 야당이다. 그들의 기질 때문인지, 정치적 판단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안철수와 유승민이 현재 처한 위치가 바로 이런 야당의 야당이다. 이것은 비주류 중의 비주류라는 의미니 당연히 긍정적 뉘앙스는 아니다. 여야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양쪽 모두를 비판하는 야당의 야당은 비주류 소수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항상 곤란에 처한다. 보통은 투덜이 반대자, 심하면 독고다이, 꼴통이라는 이미지가 덧 씌워진다. 주위에 사람도 없고 똑똑은 한데 덕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당연히 가까운 미래에 주류가 될 가능성은 제일 낮아 보인다. 주류가 된다하더라도 그 과정은 훨씬 어렵고 더 긴 시간을 요구한다. 

야당의 야당은 혁신과 창발의 영역
야당의 야당은 변방의 기질이고 그래서 소외와 구별의 땅에 속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그곳이 새로운 창의적 혁신과 창발적 질서가 태동하는 땅이라는 점이다. 복잡계 연구의 태두(泰斗) 스튜어트 카우프만에 따르면 혁신은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edge), 그것도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발생한다. 물리계, 생물계 뿐 만 아니라 사회계에서도 그렇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의 본질적인 변화를 불러오는 크고 강한 혁신은 그런 변방 기질에서 비롯한다. 우리 최근 정치사에서 이런 야당의 야당 기질을 가진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꼽는다면 노무현전 대통령이다. 압도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현재 여당은 주류 중의 주류지만 그 뿌리를 찾아보면 비주류 가장자리다. 노무현도 그랬고, YS를 따라가지 않았던 꼬마 민주당도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무현 뿐 만아니라 우리 현대사의 여러 대통령들이 보수, 진보 구분 없이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을 가진 주류로 변신했기에 처음을 기억 못할 뿐이지, 시작은 대개 야당의 야당이었다. 한국 현대 정치사는 비주류 중의 비주류가 주류로 성장했다가 다시 추락하는 드라마들의 연속이다.

유승민과 안철수 세력의 통합이 주는 의미
안철수와 유승민은 그 정치적 출발도, 개인적 배경도, 지지층도 다르다. 한 사람은 스스로를 보수라고 규정하고 다른 한 사람은 중도라고 주장한다. 이런 두 사람이 합치겠다고 하니 당연히 비판을 받는다. 정략적인 야합이라고도 하고 대통령 병 때문이라고 손가락질도 한다.궁극적으로 자유 한국당과도 합치려는 술수라고 비판하는 이도 있다. 미래는 모르지만, 일단은 몇 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거대 여당과 거대 야당 사이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군소 정치세력이 선택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국 정치 지형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둘의 통합 노력은 부정적이기 보다 긍정적이다. 야당의 야당 세력이 강화되면 사회 전체적 차원에서도 소통과 통합에 유리하다. 사회 소통은 우리끼리 유유상종하는 동종애적(Homophilous) 소통과 우리에 속하지 않은 이들을 향한 이종애적(Heterophilous) 소통으로 구분된다. 우리끼리 만의 소통만 활발하면 개별적 당파성이 강화되고 사회전체의 소통은 어려워진다. 보통은 동종애적 소통을 강화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우리의 영역을 확장하려 하지만, 우리가 결집하면 할수록 그들과는 멀어지고, 그들도 그만큼 결집하기에 전체적으로는 더 크게 단절된다. 이종애적 소통은 이런 단절을 이어주고 전체를 묶어주는 교량적 소통이다. ‘우리 끼리’를 거부하는 야당의 야당 기질은 이런 이종애적 소통을 돕고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보편적인 소통방식이라 할 수 있는 유유상종에 거부감을 보이기에 불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도리어 소통을 돕는다.

탈 정파성과 사심 없음이 보수주의의 가치
두 세력의 통합은 우리사회 보수의 재정립이라는 차원에서도 긍정적이다. 안철수는 스스로 극중(極中)을 지향한다고 하고 정치적 좌표가 보수가 아닌 중도라고 하면서도 유승민의 바른 정당과 주요 정책 지향에서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안철수는 보수가 맞다. 

유승민과 안철수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무엇으로 보나 우리 사회의 상류 계층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익과 거리를 두고, 공공선을 위해 때로는 자신이 속한 집단 이익에 반하는 주장과 행동을 한다. 에드먼드 버크,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함께 보수이념의 3대 사상가라 할 수 있는 매튜 아널드는 이런 심성적 특질을 ‘세상에 드문 외계적 인간들’에게 부여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책 “교양과 무질서”에서 이런 소수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당파성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어떤 이슈를 비판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 오래전 주위의 모두가 오직 한 입장만을 반복해서 말하고 당신 스스로도 그 입장을 지지했던 적이 있을지라도, 현재도 당신이 소속된 당파가 증기엔진처럼 그 한 입장만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다른 입장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상황일지라도, 그래도 반대되는 생각을 할 수 있고 단호하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 

정파적 관점으로 부터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비평하는 담대함과 사심 없음이야말로 보수주의자가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심성이고 지향해야할 가치다. 이런 자세를 가지고 세상을 대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아널드는 ‘교양인’이라고 말한다. 아널드의 관점에 비추어 보면 ‘야당의 야당 기질’은 야만인이 아닌 교양인의 덕목이고, 진보의 심성이라기보다 보수의 특질이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많은 정치인들 중에서 이런 유형의 보수에 가까운 이들이 유승민이고 또 안철수다. 노무현과 정치적 혈통으로 본다면 문재인이 가장 가깝지만 초기 노무현의 기질이나 정치적 포지션으로 본다면 현재의 유승민이나 안철수가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집권 말기 노무현은 보수 대연정을 말해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노무현이 보수라면, 안철수는 말할 것도 없다.

보수가 변해야 대한민국이 변한다.
얼마 전 한국당 마저도 신 보수주의를 주창하며 기득권 계층이 아닌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새롭고 올바른 보수 세력을 정립하려는 시도는 특정 정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 정치의 큰 흐름이다. 안철수와 유승민의 세력이 일차적으로 통합하고 이후에 다시 한국당과 합친다고 해도 그 자체를 비판할 것은 아니다. 결국은 새로운 보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의 주도권 경쟁이고 혁신의 경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둘이서 하지만 전혀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유와 안의 통합 노력이 어떤 창발적 결과로 이어질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좀 더 담대하고 큰 꿈꾸기를 기대한다. 서로 경쟁하면서 보수를 환골탈태 혁신하고 주류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란다. 보수가 변해야 대한민국이 변한다. 보수가 바로서야 진보가 바로 서고, 대한민국이 바로 설 수 있다. 

안민호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 학부 교수
-언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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