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ft power와 sharp power, 강대국 간 각축

[이일환의 情(정보의 눈으로)•世(세상)•思(바라보기)]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이일환 교수입력 : 2018.06.08 09:32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으로 인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에다가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에 이어 예상치 못한 북미정상회담 취소 등으로 인해 국제정세가 날로 불안정해져 가고 있는 가운데, 그 이면에 치열하게, 그러면서도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 전쟁이 있다.


바로 소프트 파워 키우기 경쟁이다.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창안하여 대박을 터트린 소프트 파워는 그간 미국의 전유물이다시피 했으며 공공외교와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간주되어 왔다. 2차 대전 후 마샬 플랜이란 유럽 재건 프로그램을 통해 엄청난 국제적 칭송을 받은 미국은 글로벌 영향력 제고 수단으로 소프트 파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는 ‘언덕위에서 집 비추기shinning city upon the hill’이란 슬로건아래 중동이나 남미 등지의 국가들에게 자유•인권•민주주의라는 미국적 가치관을 확산시키고자 노력했다. 페이스북•아마존•애플과 같은 거대 IT기업들도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부각시키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집권이후 미국 우선주의 정책 등으로 인해 소프트파워 전통 강국인 미국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의 호감도가 10%p나 떨어졌다는 조사결과도 있을 정도다.

 
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서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매년 100억불 상당을 투입하여 유구한 중국의 전통 자산을 바탕으로 중국 특유의 소프트 파워를 육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자비롭고 은혜로운 국가인 것처럼 세계인을 설득하고, 중국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끌어들이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은 2007년 ”중국의 회춘은 번성한 중국 문화와 함께 해야 한다“며 소프트 파워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시진핑 주석도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증진시켜 훌륭한 중국의 서사narrative를 보급하고 세계를 상대로 중국의 좋은 메시지를 전파해야 하며, 중국의 매체는 프로파간다의 최전선에 서야 한다“고 종종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一帶一路 정책(one road one belt)을 경제력 확산 수단으로만 국한시키지 않고 중국적 소프트 파워를 증진시키는 ‘문화 일대일로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2016년 중국 대표 영화감독인 장예모가 미국과 합작하여 만든 영화 <만리장성 The Great Wall>은 그 상징적인 사례다. 미국의 영화제작 기법과 마케팅 능력에다가 중국의 자본을 결합시킨 영화로서, 의미 없는 줄거리와 눈가림 논란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선 1억 7,100만 불을, 미국 등지에선 1억6,300만 불의 수입을 올릴 정도로 빅히트를 쳤다. <만리장성>은 중국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뛰어난 중국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투영시키려는 새로운 소프트 파워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소니 텔레비전>과 같은 할리우드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할리우드 기법을 익혀 세계인의 눈에 매력적인 중국으로 비치게 하려는 노력도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2018년 5월경에는 미국의 대외 홍보매체인 <미국의 소리>를 본떠 <중국의 소리 Voice of China>란 통합매체를 만들었다. 중국 국영 TV, China Radio International, 그리고 China National Radio 등 3개 매체를 통합했다. 종사원만도 15,000여명에 이르고 해외 지국도 수십 곳에 설치했다. 60여개 언어로 방송하는데 ”중국의 미담을 중점적으로 방송할 것임“을 표방하고 있다. 이 <중국의 소리>는 국제적으로 점증하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세계 각국의 우려를 둔화시키고 中國夢을 실현시키는 도구로 기능하려는 속셈도 있다.


여기에는 공자학원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2004년 이후, 140여 개국에 1,500여개의 공자학원이 중국의 지원으로 설립되었고, 150여만 명의 학생들에게 중국의 언어와 문화적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 중국의 이념과 가치를 자연스럽게 전파시키고 있다.


러시아도 차근차근 ‘러시아식 소프트 파워’를 키우고 있다. 최악의 독재자였던 스탈린에 대한 향수분위기를 이용하고 있다. 아직 세계인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얻는 데는 한계가 명확하지만, 적어도 러시아내에서 만큼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스탈린, 라이브>라는 TV드라마를 통해 스탈린을 소비에트 노스탤지어의 강력한 히어로로 탈색시키고, 심지어 정의롭고 현명하며 고결한 지도자로 묘사하며, 사회주의 근대국가를 완성하고 이를 제국의 규모로 확장시킨 영웅으로 탈바꿈시켰다. 푸틴이 이를 장기집권의 발판으로 이용한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러시아는 또한 RT와 같은 국영매체를 공격적으로 활용하면서, 대외적으로 ‘평화의 전도사’라는 이미지를 만들려 하고 있다. 2016년 5월 6일 IS에 점령당했다가 시리아 정부군이 탈환한 고대 도시 팔미라(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유명 지휘자 발레리게르기예프가 이끄는 ‘평화콘서트’를 개최한 적도 있다. ‘야자수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팔미라는 오아시스 도시라는 입지를 이용해 동서양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무역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 고대도시다. 러시아는 팔미라 탈환을 선전해 서방과의 스프트 파워전에서 이기겠다는 의도를 보여 준 것이다. 푸틴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제압한 정의의 사도처럼 이미지화하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서방 언론매체 등은 이 같은 중국과 러시아의 소프트 파워 육성전략을 sharp power라고 부른다. 이코노미스트는 ”미디어를 이용해서 공공여론을 조작하고 전복subversion, 약자 괴롭히기, 압력 등에 의존하는 힘으로써, 자기검열을 고무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소프트 파워와 sharp power를 구분 짓는 경계선은 진실과 공개성이다. 정보시대에서 가장 귀중한 원천은 주목과 신뢰성이다. 프로파간다로 상징되는 테크닉만으로는 소프트 파워를 길러낼 수 없다. 이는 공개성이 중대한 자산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중국의 소프트 파워는 sharp power에 가깝다. 몇 가지 문제점 때문이다. 첫째, 노벨상 수상자인 류사오보 시신 처리와 남태평양 제해권 장악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이미지와 행동의 부조화다. 둘째는 선전을 장려하고 비판의 목소리는 억압하는 미디어 환경이 걸림돌이다. 미디어 보도 조작이나 은밀한 커뮤니케이션 의존은 소프트 파워를 약화시킨다. 한편에선 이런 시각이 중국 특색을 고려하지 않고 서방측의 렌즈로만 바라본 편견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엇이 중국을 매력적으로 만드는지, 그리고 미국모델의 매력 저하를 눈감고 있다는 것이다. 동남아시아 같은 국가들의 눈으로 보면, 중국은 아주 특별한 매력적인 모델이다. 자유주의적이지 않고 권위주의에 기대는 정치지도자들에겐 중국은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는 방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의 소프트 파워 정책은 어떤가?. 문화계는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몇 년째 진영 논리와 과거의 늪에서 헤매고 있다. 그나마 한국의 소프트 파워 중심역할을 해온 한류도 약화일로를 걷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한반도 전문싱크탱크인 <한미연구소>가 새 정부의 기조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예산지원을 중단하여 폐쇄조치한 것은 대의롤 보지 못한 小利에 집착한 矯角殺牛의 행태다. 친한 학자나 언론인을 육성하는데 일본이나 중국이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維用伐邑 貞 吝(린)이라고 <주역>은 말한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이웃을 친다는 뜻인데, 일시적으로 괜찮아 보이나 최종적으로는 어려워진다고 했다. 이제 우리도 하루 속히 적폐라는 함몰된 과거의 덫에서 벗어나 새롭게 펼쳐지는 한반도 안보지형에 맞는 소프트 파워 정책을 설계하여 국민적, 국가적 역량을 모아 실행해야 할 때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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