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예술의 융복합에 대해

임동열의 art & science

홍익대학교 미술학 임동열 박사입력 : 2018.06.12 18:13
▲임동열 홍익대학교 미술학 박사
SBS 뉴스 2011년 7월9일의 보도 영상에서는 서울대 융복합 기술원의 연구원에서 개발된, 장애물을 인식하거나 앞차의 움직임을 읽고 거리를 유지하며 자가운전이 가능한 지능형 자동차를 보여준다. 그 외에도 생물학과 기계공학의 결합체인 다양한 로봇에 관한 연구도 소개하고 있다. 재난 현장 등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는 로봇들로 벼룩처럼 자기 몸의 30배 이상 높이 뛸 수 있는 로봇, 스파이더맨처럼 끈적끈적한 발을 가진 로봇 등을 보여준다. 또한 연구소의 중점 연구 분야인 로봇 개발을 위해서 인문ㆍ사회 계열과 공대, 자연대 등의 다양한 전공 교수들을 연구원으로 위촉하고 있다.1) 

이렇게 다양한 학문 간의 융복합 현상은 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인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렇게 현대의 모든 학문들은 서로 융합하고 공조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데 예술 분야도 이와 다르지 않게 과학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오고 있다.

현대 미술은 첨단 과학기술을 도구 자체로 사용하거나 작품 내용을 통해 보여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과학기술을 직접적인 도구 그 자체로 이용하는 분야는 키네틱 아트로 명명되며 쉽게 이야기하면 움직이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키네틱 아트는 작품의 움직임을 위해 적극적으로 과학기술을 접목해왔으며 현재까지도 과학 분야와의 협업이 매우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예술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와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서 과학기술을 접목한 예술도 존재하는데 과학기술의 부산물들의 이미지를 차용함으로써 내용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작품도 많이 있다. 

◇기계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융합
뒤샹이 일상용품인 레디메이드를 하나의 작품으로 등장시킨 것은 예술작업이 창조라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차용하는 행위일 수 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자율적 주체로서의 예술개념과 하나의 완결체로서 작품개념이 갖는 절대적 권위가 의문시되고, 작품의 원본성 대신 복제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현대 미술사에 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이는 레디메이드를 통해 창조가 아닌 차용이라는 새로운 미학이 현대미술의 주요 미학으로 수용된 것인데 장 팅겔리(Jean Tinguely)의 경우 그 전형적 증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을 단순히 계승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으로 적용하여 그 개념을 확장했는데 이는 그의 작품의 소재적 측면과 방법적 측면 그리고 개념적 측면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작품 중 ‘메타-마틱 No.12(Metamatic No.12)’에서는 관람자의 손이 드로잉 기계와 만나 그림을 제작하는 주체이자 기계의 일부가 되고 관람자가 직접 기계에 종이와 드로잉 재료를 장착시키고 스위치를 켜거나 구멍에 동전을 집어넣어 기계를 작동하면 작가의 팔과 같은 가로대는 3분가량 종이 위를 가로지르며 움직인다. 

“단돈 1달러를 가지고 당신은 당신만의 추상화 작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미술시장에 나와 있는 그 어느 그림 못지않은 작품입니다.”2) 라는 팅겔리의 설명에서와 같이, 관객은 추상표현주의를 연상시키는 자신만의 ‘메타-마틱’ 작품을 직접 제작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자전거 조각가(Cyclograveur)’에서는 관람자가 자전거에 앉아 페달을 돌리면서 손으로 작품 상단에 준비돼 있는 다중언어 사전의 책장을 넘기게 돼있다. 그러한 행위에 따라 이 드로잉 기계는 자전거 후면에 연결된 철판 위로 스크래치를 만들며 그림을 그려낸다. 

이처럼 팅겔리는 기계를 인간과 결합시키려는 경향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지극히 아날로그적 사회에 살고 있던 그가 벌써 기계와 인간의 관계가 사용자와 피사용자의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기계가 곧 작가이며 관람자가 곧 기계가 되는 상호 보완적 역할을 작품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기계는 가동되고 숭배되고 지배되는 하나의 대상이 아니다. 기계는 우리이고 우리의 진행 과정이며 우리가 구현되는 한 측면이다.”3) 라는 도나 해러웨이의 말처럼 기계와 인간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그대로 작품에 녹아 있는 것이다. 

◇기계 이미지의 차용 예술
에두아르도 파올로치(Eduardo Paolozzi)의 작품에서는 디지털의 기반이 되는 기계에 대한 좀 더 시각적인 접근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이전까지의 예술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양식으로 표현됐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기계의 회로판 이미지나 기계의 파편들은 이전에 없던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나타난 새로운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파올로치는 기능을 상실한 기계나 컴퓨터 회로 같은 이미지들을 산업화에 의한 부산물로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테크놀로지에 의한 새로운 질서에서 나타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일련의 폐기된 것처럼 보이는 기계물들의 집합체를 조형적 아름다움을 갖춘 하나의 조각물로서 예술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왔으며 ‘우상’이라는 제목을 붙여 기계들의 집합체가 아프리카 부족사회의 숭배물처럼 보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은 실제로 숭배물로서 기능을 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작품의 부속이 된 기계들과 컴퓨터 회로들은 이성으로 대변되는 당시 산업화 시대의 중요한 요소로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상’이라는 작품의 제목은 파올로치의 작품을 애니미즘적으로 해석하도록 하는 하나의 장치다. 이러한 모순적인 작품의 형태와 제목 간의 관계는 기계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기계를 산업화의 부품으로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래의 목적을 상실함으로써 예술의 영역에서 신격화되어 하나의 숭배물이자 예술작품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2018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학기술은 발견과 실험이라기보다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컴퓨터를 접하고 비디오 게임을 하며, 휴대전화로 음악을 들으며 살고 있는 과학기술의 주요 역사를 함께한 세대인 것이다. 이들에게 광범위한 영역의 과학기술은 어떠한 재료보다 매력적이고 친근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 안에서 기계는 넓은 의미로 에너지를 변환하거나 전달하는 장치의 총칭인데, 가깝게는 휴대전화, 운송수단들, 컴퓨터에서 원자력 관계의 기계, 무기 등을 포함하며 기계의 정의는 새로운 기계가 개발될 때마다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과학기술과 기계에 대한 관심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는 일상과도 같은 현상이다.

1)매일경제, 2010년 5월 13일 기사 참조 2)실제로 팅겔리는 이 중 가장 괜찮다고 생각한 드로잉 표본들을 전시하긷 했다. 3)도나 해러웨이,'simians, cyborgs', p180, 재인용 

임동열
홍익대학교 조소과 학사
미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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